March 13, 2022

“옛사람과 새사람” (II) (The Old Man & The New Man)

Preacher:
Passage: 에베소서 (Ephesians) 4:22~24
Service Type:

“옛사람과 새사람” (II)

(The Old Man & The New Man)

3-13-22

본문말씀: 에베소서 4:22~24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That you put of concerning the former conversation the old man, which is corrupt according to the deceitful lusts;)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And be renewed in the spirit of your mind;)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And that you put on the new man, which after God is created in righteousness and true holiness.)

[설교 요약]

우리는 지난 시간에 사도 바울이 “옛사람을 벗어버리라”고 에베소 성도들을 도전한 의미를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옛사람을 벗어버리야 하는 이유’는 ‘예수 믿을 때 우리 옛사람이 십자가에 목 박혀 죽었지만’ (롬. 6:6), 문제는 우리가 부패한 죄의 본성을 좇아 행하던 옛사람의 헛된 ‘생활방식’ (the way of life)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옛사람 속에서 역사하는 죄와 싸워 이길수 있는 힘을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 누려 나갈 특권을 가졌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여전히 죄가 역사하는 과거의 헛된 생활방식을 벗어 버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가 ‘옛사람을 벗어버리라’고 도전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이제, 어떻게 옛사람을 벗어버릴 수 있을까요? 그것은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v.23) 가능하다고 사도는 영적 가르침을 줍니다. 여기서 사도가 말하는 ‘심령’ (the spirit of mind)은 ‘성령’이나 ‘불신자의 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고 거듭난 성도의 마음 안에 살게 된 영>을 뜻합니다.

그리고 ‘심령이 새롭게 된다’는 것은 죄악된 옛 생활 습관으로 인해 오염된 우리의 심령을 깨끗이 씻어 활력을 얻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선 성령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새사람을 입으라”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무엇보다도

첫째로, ‘내적 동기’의 변화를 뜻합니다: 겉으로 들어 난 행위 이전에, 내면의 변화요, 내적 동기의 변화요, 가치관의 변화입니다. 사도가 <로마서 12장>에서 도전하듯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를 드리기 위해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롬. 12:1~2). 세상의 가치관을 좇지 않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우리 안에 거하는 영이 강건하게 하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삶의 변화를 추구함’을 뜻합니다: 사도가 <17절>에서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v.17)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과 제가 심령을 새롭게 하여 변화되어 가고 있다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삶의 변화를 추구’하게 될 것입니다. ‘거짓을 버리고,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며,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않고, 빈궁한 자에게 구제를 행하는’ (v.25~28) 모든 삶의 변화를 자발적으로 추구하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하나님 아버지의 택하신 영광스런 자녀들로서 합당한 삶, 곧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날마다 심령을 새롭게 하여 새사람을 입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축원합니다.

[설교 전문]

오늘날 수많은 지성인과 청년 크리스챤에게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사람의 하나로 C.S 루이스를 꼽습니다. 그는 ‘순전한 기독교’라는 그의 대표적 저서에서 ‘새 사람’이라는 개념을 설명하면서 마치 어느 날 ‘장난감 병정’이 인간이 된 것으로 비유합니다. 그는 바로 ‘새 사람’이 우리 크리스챤의 본질을 그 무엇보다도 잘 설명한다고 말합니다. C.S 루이스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 크리스챤이 가져오게 되는 가장 본질적이고 중요한 변화는 바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을 받음으로 ‘새사람’이 된 것이라고 그의 책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이 말은 내가 예수 믿음으로 더 예의 바르고 도덕적이며 고매한 인격의 소요자가 되는 정도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속해 있었던 ‘영원한 생명’ (조에)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의 표현대로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주님의 영원한 생명으로 과거의 옛사람은 십자가에서 죽고, 새사람이 되었음을 이해하십니까? 아담에 속한 옛사람은 죽고,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전혀 다른 인격의 새사람으로 거듭 난 것을 깨닫아 믿으십니까?

우리는 사도 바울이 “옛사람을 벗어버리라”고 에베소 성도들을 도전했음을 지난 시간에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왜 사도는 에베소 성도들에게 “옛사람을 벗어버리라”고 도전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를 깨닫아 나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몸의 지체로 함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단지 율법이나 의무조항의 준수가 아니라, 확신 가운데 성령의 하나되게 하심을 간구한다면, 이제 ‘옛사람을 벗어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옛사람을 우리가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엇이 옛사람인지?’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옛사람’은 <예수 믿고 거듭나기 전에 죄로 인하여 지배 받았던 우리의 부패한 인격 (=존재)>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영적 사실은 앞서 언급한데로 ‘내가 예수 믿을 때 우리 옛사람이 십자가에 목 박혀 죽었지만’ (롬. 6:6), 문제는 내가 과거에 부패한 죄의 본성을 좇아 행하던 헛된 ‘생활방식’ (the way of life)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의 생명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되는 신분의 변화를 가져왔고, 그로 말미암아 옛사람 속에서 역사하는 죄와 싸워 이길수 있는 힘을 성령을 통해 누려 나갈 특권을 가졌지만, 안타깝게도 여전히 죄가 역사하는 옛사람에 속한 과거의 생활방식을 벗어 버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도가 여기에서 우리에게 도전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내가 예수 믿었다고 해서, 자동으로 옛사람이 벗어나지는 것은 아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예수 믿고 거듭나는 순간, 앞서 확인한 데로 첫 사람 아담에게서 물려받은 원죄는 십자가에 목 박혀 죽지만, 그렇다고 부패한 죄의 본성에 지배받는 옛사람에 속한 옛 생활방식이 자동적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전히 죄가 거하는 육체 (=육신)을 입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내가 예수 믿는다고, 갑자기 천사가 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사도는 매우 구체적으로 ‘옛사람’의 특징들을 <17~19절>에서 고발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허무함과 총명이 어두워지고, 굳어진 양심으로 수치심을 잃고 방탕에 자신을 내 맡기는 이 가련한 모습이 바로 옛사람의 단면이요, 세상사람들을 지배하는 죄악된 삶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거듭난 성도들에게서 조차 이런 옛사람의 생활방식이 남아 있느냐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성도들에게도 여전히 우리 속에 군더더기처럼 남아 있는 옛사람의 모습을 아프게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각자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말입니다. 질문은 이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이런 헛된 옛사람을 계속 입고 살아가길 원합니까?

만약 이제 여러분이 이 헛된 옛사람을 벗기 원한다면, 사도는 분명하게 그 길을 제시합니다. “새 사람을 입으라” (v.24)는 것입니다. 사도는 ‘벗을 것’을 도전하면서, 동시에 ‘입을 것’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세상의 종교와 우리 기독교의 근본적인 차이를 확인하게 됩니다. 세상 종교는 ‘비우라’고 말합니다. 우리 인간의 욕심과 모든 번뇌를 비우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그 이상을 말하지 않습니다. 거기에 비해, 기독교는 나를 비우고 나서 다시 채우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누가복음 11장>에서 ‘악한 귀신에 사로잡힌 사람’에 대해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더러운 귀신이 어떤 사람에게서 나가서 쉴 만한 곳을 찾았으나 찾지 못하고는 그가 있던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 집이 깨끗이 청소된 것을 보고 자기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심하게 되었다’고 주님은 경고하십니다 (눅. 11:24-26). 예수님께서 이 메시지를 통해 말씀하시고자 함은 ‘신앙의 핵심은 비우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채우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소극적으로 악한 귀신을 내 쫓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바른 영 (성령)으로 채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 ‘심령이 새롭게 되어 새사람을 입는다’는 것을 이해하는 중요한 영적 원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럼으로 사도 바울은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을 수 있는 열쇠가 되는 길을 <23절> 에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됨어” (v.23) 가능하다고 그는 우리들에게 촉구하고 있음을 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심령이 새롭게 된다는 뜻일까요?” 여기서 ‘심령’은 ‘성령’을 의미하는 것이나, 혹은 ‘불신자의 마음’을 뜻하지 않습니다. 이 ‘심령’은 ‘우리 크리스챤들이 예수 믿고 거듭남으로써 우리의 마음 안에 살게 된 영’입니다. 그럼으로 ‘심령’은 ‘마음의 영’ (the spirit of mind)이라고 번역되며, 성경학자들은 이와 같은 ‘마음의 영’은 ‘마음 자체를 주장하고 조정하고 작용케 하는 내적인 원리’ 혹은 ‘마음의 능력’이라고 설명합니다. 이와 같이 “심령이 새롭게 되어”라는 말의 의미는 1차적으로 <우리가 예수 믿고 거듭날 때 받게 된 ‘새로운 마음의 영’>을 회복해 나가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로 우리 속에 영은 죄로 인하여 오염되어 있고 근본적으로 뒤틀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오염된 우리의 영이 회복되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님의 전능하신 도우심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시제적으로 볼 때 ‘심령이 새롭게 되어’라는 말은 ‘현재진행’으로써 한번 새로와지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새롭게 되어진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여기서 ‘심령이 새롭게 되어지는 것’은 불신자들이나 처음으로 예수 믿게 되는 순간 일어난 변화가 아니라, 이미 거듭난 성도들에게 해당됨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럼으로 ‘심령을 새롭게’ 해 나감으로써 성도들 안에 이미 들어와서 마음을 주관하고 지시하는 ‘새로운 영’을 통하여 새생명의 원리가 우리 안에서 힘있게 작동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마음의 성향이 우리 안에 주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심령이 새롭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심령이 새롭게 되어지는 것은 결코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변화가 아닌 것입니다. 내 스스로가 계속해서 새 생명 안에서 전인격적인 결단을 통해 변화를 추구해 나감으로 이와 같은 심령의 새롭게 되어지는 변화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도가 도전하는 이제 “새사람을 입으라는 의미가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첫째로, ‘내적 동기’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지, 겉으로 들어난 행위를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새롭게 변화된 사람의 핵심은 ‘심령의 새롭게 됨’을 통 해서입니다. 우리가 이해해야 할 중요한 인간행동의 원리는 사람의 속에 있는 마음이 변화되면, 외적인 행동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그러므로 형제들아 ~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롬. 12:1)고 도전한 다음, 어떻게 그들이 거룩한 산제사로 자신들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지를 다음 절에서 이렇게 선언한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2)라고. 여기서 바울은 우리 성도가 하나님께 자신을 살아있는 제물로 드리는 구체적인 방법을 추상적인 단어나 알듯 말듯한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간단명료하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음으로써”라고. 이와 같이 로마서 12장과 에베소서 4장 오늘 본문의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가 의미하는 것이 동일한 목표를 가르키고 있습니다. 이것이 “변화를 받으라”는 것이요, “새사람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변화는 언제나 외적인 행동의 변화 이전에 심령의 변화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내적 동기의 변화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와 생명에 기초한 본질적인 가치관의 변화인 것입닏가.

이제 자연스럽게 새사람을 입는다는 두번째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그것은 ‘삶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 입니다. 사도가 <17절>에서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v.17)는 것입니다. 왜 사도가 이렇게 강하게 그들을 도전하는 것일까요?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그리스도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에베소 성도들 안에는 이미 새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앞서 말씀을 시작하면서 C.S 루이스가 우리 크리스챤의 존재를 설명하면서 그리스도의 영원한 생명을 통하여 ‘새사람’이 되었음을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가 말하는 ‘새사람’은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말하는 ‘새사람’과는 서로 다른 의미임을 우리는 이해해야 합니다. C.S 루이스가 언급한 ‘새사람’은 영적으로 죽었던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될 때 예수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다시 살아나게 되는 중대한 사건을 경험하게 된 우리 크리스챤의 존재를 뜻합니다. 거기에 비해 오늘 사도가 말하는 ‘새사람’은 우리가 함께 살펴본 대로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게 될 때 우리의 심령 (=마음의 영) 가운데 살게 된 ‘새로운 마음의 영’을 통해 작용하는 ‘새로운 마음의 성향’ 혹은 ‘성도의 성화되어가는 모습’이라고 저는 정의하고 싶습니다.

제가 지난 시간에 사도가 에베소 성도들에게 옛사람을 벗으라고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옛사람이 이미 십자가에서 죽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던 것과 같은 원리로, 사도가 그들에게 새사람을 입으라고 격려하는 이유는 그들 안에 새사람이 이미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구원받는 순간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 우리 심령 안에 ‘새로운 마음의 영’의 씨앗을 심으셔서 ‘새사람’이라는 거듭난 인격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자랄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사도는 성도들에게 사실상 이렇게 격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들은 지금 너희 안에 있는 새사람과 일치하게 삶을 영위해야 한다”라고 말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스러운 신분에 합당하게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오늘날 우리 크리스챤들의 심각한 비극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그 비극에 중심에는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확신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가 이제 어떤 존재가 되었는지를 점점 더 이해하(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고 믿습니다. 이 말은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심히 사랑스럽고 귀중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구약의 선지자, 스바냐는 이렇게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을 노래합니다.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He will take great delight in you; in His love He will no longer rebuke you, but will rejoice over you with singing) (스바냐/Zephaniah 3:17)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랑받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랑받음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우리 신분에 걸맞는 삶을 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 선하신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과거의 죄 가운데 지배 받았던 옛 생활습관을 벗어나지 못하고, 우리 심령 가운데 심어주신 새사람의 형상을 인격적 결단을 통해 추구해 나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이제 옛사람을 벗어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소망합니다. 심령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선하신 뜻을 깨닫아 나감으로 세상을 본받지 않고,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아름답고 영광된 그리스도의 장성한 형상을 함께 이루어 가는 축복된 우리 교회 공동체 되길 기대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