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2, 2026

“옛 사람” (Old Self)

Preacher:
Passage: 로마서 (Romans) 6:6~7
Service Type:

“옛사람”

(Old Self)

8-2-26

본문말씀: 로마서 (Romans) 6:6~7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 이니라

 

[설교 요약]

우리는 지난 시간 <로마서6장>을 시작하며 6장의 주제와, 그리고 5장과의 관계성을 살펴보았습니다. 먼저 ‘6장’의 주제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고, 6장은 이제 새로운 주제로 시작되는 장이 아니라, ‘5장’에서 강조하는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은혜가 왕 노릇하는지?>를 계속해서 사도는 설명하는 장임을 저는 지난 시간 말씀 나누었습니다.

사도는 ‘왜 우리가 죄 가운데 거할 수 없는지?’를 ‘우리가 죄에 대해 죽었기 (때문)’ (6:2)이라고 선언하고 나서. 이어지는 오늘 말씀 <6~7절>을 통해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고, 그럼으로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라고 더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더 이상 죄에 거할 수 없는 이유는 ‘우리 옛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었고, 따라서 우리의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 죄에게 종 노릇하지 않고자 함’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6절>에서 2가지 주요개념을 이해하고 구별하는 것이 사도 바울의 메시지를 이해하는데 열쇠가 됨을 ‘마르틴 로이드 존스’목사는 주장합니다. 그것은 <옛사람>과 <죄의 몸>인데, 그 개념은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습니다.

  • ‘옛사람’ (old self/man): ‘중생하지 못한 자/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옛 본성’
  • ‘죄의 몸’ (the body of sin): ‘우리의 몸/ 구원받았지만 여전히 죄가 거하는 몸’

이와 같이, <6절>은 <2절>에서 ‘우리가 죄에 대해서 죽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열쇠를 제공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분의 죽으심과 합하여 ‘성령 침례’를 받게 될 때 (v. 3~5),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 (v.6)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사도가 주장하는 핵심은 우리의 ‘옛 사람’은 예수님과 연합할 때 죽지만, 우리는 여전히 ‘죄의 몸’ 곧 ‘죄가 거하는 몸’을 입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도의 결론은 ‘죄의 몸을 멸하여 다시는 죄에게 종 노릇하지 않도록 합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죄의 몸을 멸할 (=죽일)까요?’ 그 동일한 뜻이 <롬. 8장>에서 사도가 “(너희가)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롬. 8:13)고 했을 때의 “몸의 행실을 죽이면” 말과 동일한 개념입니다. 과거 옛사람의 행실과 죄된 성품을 따르고자 하는 죄의 유혹을 주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죽이는 것이 ‘죄의 몸을 멸하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옛사람에 속한 헛된 본성, ‘허무’ ‘무의미’ ‘어두움’ ‘굳어짐’ ‘방탕’과 ‘욕심’을 벗고,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의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는 (엡. 4:17~24) 성도 여러분 되시길 기대합니다.

 

[설교 전문]

우리는 지난 시간 <로마서6장>을 시작하며 6장의 주제와, 그리고 5장과의 관계성을 살펴보았습니다. 먼저 ‘6장’의 주제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고, 6장은 이제 새로운 주제로 시작되는 장이 아니라, ‘5장’에서 강조하는 바가 계속 이어지는 장임을 저는 지난 시간 말씀 나누었습니다. 그것은 사도가 <5장>끝에서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5:20)라든가, “은혜가 왕노릇한다” (5:21)는 놀라운 주장을 했는데, 그 의미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6장>에서 사도는 자세히 영적으로 밝힐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고, 심지어 은혜가 왕 노릇한다’는 이 복음의 심히 깊고 넓은 진리를 선언하고 그친다면, 자칫 많은 오해를 불러올 수 있음을 사도는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사도는 5장의 주제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은 우리 성도의 영광스러운 존재의 변화를 밝혀 나가면서, 그것을 한마디로 <그리스도 안에서>라고 정의하고, 그의 생명 안에서 누리게 된 ‘은혜가 왕 노릇하는 이런 복된 삶은 과연 어떤 삶인지?’를 이어지는 6장에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는 주제 아래 탁월한 영적 통찰력과 논리로 설명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는 지난 시간에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왜 우리가 죄 가운데 거할 수 없는지?’를 ‘우리가 죄에 대해 죽었기 (때문)’이라고 선언하고 나서. 이어지는 오늘 말씀 <6~7절>을 통해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고, 그럼으로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라고 영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사도는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은 이유’와 그리고 ‘죄 가운데 거할 수 없는 이유’를 더욱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계속해서 이어지는 6장 말씀 가운데 사도가 밝혀 나가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죄에 대해 죽고, 의에 대해 살아 나감으로 은혜가 왕 노릇하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밝히 이해해 나가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사도는 오늘 말씀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된 우리 성도의 존재’를 <옛 사람>이라는 개념과 연관시켜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혔다)” (v.6a)는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이해할 것은, 사도 바울은 1차적으로 <6장 전반부>에서 앞서 살펴본 것처럼, 자신의 전하는 복음이 죄를 조장하거나, 율법을 폐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님을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될 때, 죄에 대해서 반드시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 6장을 시작하면서 <2절>에서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라는 말씀에서 ‘죄에 대해서 죽었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묵상해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의미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그 의미는 첫째로, ‘행위’가 아니라 ‘존재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5장>을 시작하며 살펴보았듯이, ‘하나님과 화목한 자녀의 관계’가 되며, ‘믿음으로 서 있는 하나님의 은혜 안으로’ 들어가며, 그로 말미암아 장차 주어질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이런 구원받은 자의 존재의 변화를 가지게 된 것이 ‘우리가 죄에 대해 죽었다’는 의미인데, 이런 변화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속해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다시 말해, 이제는 더 이상 아담 안에 속한 자가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속해 있기 때문에 죄에 대해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로, ‘죄에 대해 죽었다’는 뜻은 ‘영역의 변화’를 뜻한다고 했습니다. 이 의미는 이해하기 그다지 어렵지 않는데, 그 이유는 만약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앞서 확인한 것처럼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 속한 존재>로 변화되었다면, 우리의 모든 ‘삶의 방식과 가치기준’을 내 삶의 주인 되신 그리스도께로 맞춰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는 그것을 ‘과거에는 <아담 안에서 죄가 사망 가운데 왕 노릇>하는 삶의 영역이었다면,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가 생명 가운데 왕 노릇>하는 삶의 영역으로 옮겨지게 되었다’고 설명했음을 나누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더 이상 사단 마귀가 죄를 통해 우리를 통치하는 영역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우리를 다스리시는 은혜의 영역으로 옮겨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왜 그리스도 안에 속한 자가 죄를 지을 수 없는지?!’에 대한 사도의 핵심적인 주장입니다.  그리고 또한 사도는 지난 시간 <3절>에서 ‘침례’의 개념을 사용했는데, 그 이유는 ‘침례가’가 ‘예수님과 우리 성도의 연합’을 가장 본질적으로 잘 밝혀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침례는 우리가 성도들 앞에서 신앙고백으로 받는 ‘물 침례’ (water baptism)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행하시는 ‘성령 침례’ (the baptism in the Holy Spirit)를 의미합니다. 물론 물 침례를 통해 주께서 명하신 침례의식에 순종하고, 성도들 앞에서 내 신앙을 고백하는 일을 매우 귀하고 중요한 성도의 의무이자 특권이지만,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이 ‘물 침례’가 우리의 구원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v“.3)라는 사도의 <3절>에 언급된 침례의 의미는 바로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성령 침례’를 뜻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 침례’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또한 그리스도께서 부활할 때 그분과 함께 살아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나의 신분이 변화했다’는 뜻이요, ‘그리스도 안에 속함으로 아담에 속한 죄와 사망의 영역에서, 생명과 은혜가 왕 노릇하는 영역으로 옮겨졌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 사도가 ‘옛사람’으로 연결되는 논리적 근거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사도가 ‘옛사람’이란 표현을 사용하는 근본적 이유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더 이상 옛날의 우리 자아 (존재)가 아니다’는 것을 밝히고자 함입니다. 여러분도 기억하시듯이, <5장>에서 ‘우리 존재의 변화’가 의미하는 것이 이것인데, 이제는 더 이상 <나는 아담에 속한 ‘옛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속한 ‘새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과거의 나 곧 ‘옛사람’은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었고, 이제는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남으로 새 생명 안에서 ‘새사람’으로 살아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v.6~7)라고 말입니다.

이제 그렇다면, 사도가 오늘 묘사한 <옛사람> (old man/self)이란 무슨 뜻일까요? 먼저 사도가 ‘에베소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옛사람과 새사람’을 대조적으로 사용하면서 권면했던 것을 보게 됩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성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엡.4:22~24) 라고. 사도는 <에베소 말씀>에서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 새사람을 입으라”고 도전적으로 말하고 있지만, 엄격한 (본래의) 의미에서 ‘옛사람’은 우리의 의지와 행위로 벗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예수님을 믿게 될 때 그분 안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 ‘옛사람’은 우리 인간의 노력과 능력으로 결코 벗어나고 떠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속함을 통해서 비로소 ‘죽는 것’이요,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6절>에서 사도가 밝히듯이,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분과 연합할 때, 우리 옛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써 벗어나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옛사람” (Old self)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살펴보자면, 그것은 ‘중생하지 (구원받지) 못한 자’ 혹은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우리 인간의 옛 인성 (과 아담의 본성)’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옛사람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생명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순간 죽는 것이요, 그럼으로 (신분적으로 완전히) 옛사람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저는 이렇게 여러분에게 질문하기 원합니다. 만약 내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나의 ‘옛 자아’ 곧 ‘옛사람’이 죽었다면, 왜 우리는 여전히 죄와 싸워야 하는 것일까요? 아담에 속한 옛 인성인 ‘옛사람’이 이미 죽었는데도, 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여전히 죄에 유혹을 받고, 죄와 싸워 나가야 하는 것일까요? 여기서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는 <6~7절>말씀에서 두가지 중요 개념을 언급하며, 이 둘을 구별해서 이해하는 것이 우리 존재를 더욱 분명히 이해하고, 열매 맺고 승리하는 신앙생활의 핵심의 하나라고 저는 믿습니다. 해야 함을 자세히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해하고 서로 분명히 구별해야 할 이 두가지 개념에서 첫번째는 앞서 언급한 ‘옛사람’ (old man)이고, 두번째는 ‘죄의 몸’ (the body of sin)입니다. 그렇다면, ‘옛사람’과 ‘죄의 몸’은 각각 그 정확한 뜻은 무엇일까요?

먼저 그 개념상 ‘옛사람’은 앞서 확인한 것처럼 <중생하지 못한 자가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옛 인성>이라고 한다면, ‘죄의 몸’은 우리의 <육체> 혹은 <죄가 ‘거하는/지배당하는’ 몸>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두 개념을 함께 비교하며 생각해 본다면,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옛사람’은 이미 죽었지만, ‘죄의 몸’은 여전히 죄와 타락의 영향에서 완전히 해방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우리 성도의 존재양식을 이해함에 있어서, 이런 <6장6절>의 ‘옛사람과 죄의 몸’이라는 개념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지난시간 로마서전체에서도 중요한 개념인 ‘우리 성도가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6장2절>의 의미를 이해하는 결정적인 열쇠라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크리스챤이 죄에 대해 죽었다는 것이 도대체 어떻게 되었다는 것이냐? 우리는 죄를 짓는다는 것인가? 안 짓는다는 것인가? 와 같은 이런 질문에 대한 성경적 대답을 이 두 개념을 분명히 이해할 때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분별해야 할 사실은 ‘우리 성도가 추구하고 목표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연합하는 것>이 아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우리의 ‘옛사람’을 죽이고자 노력하는 것>도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리스도를 믿게 될 때 영적으로 그분께서 베푸시는 침례를 통해 그분의 죽으심과 함께 죽고, 또한 그분의 부활과 함께 연합하여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우리의 존재는 이미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이렇게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되는 순간, 과거 우리 자신이 아담 안에 있을 때 살아 있던 ‘옛사람’은 완전히 죽게 되었다는 것이요, 두 번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진정으로 힘쓰고 노력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죄의 몸’을 죽여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죄의 몸’을 죽여 나간다는 뜻은, 우리 구원받은 성도의 경우에서도 ‘우리의 몸 (육신)’은 여전히 죄가 거하는 장소이기에 비록 ‘옛사람’은 죽었을찌라도, ‘우리 몸/육신’은 여전히 옛사람처럼 살아가고자 하는 옛 습관과 옛 생활방식을 추구하기에, 이런 옛사람에 속한 생활 방식과 습관, 곧 죄가 주장하는 옛사람의 성품(특성)을 죽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확히 <로마서 8장>에서 사도가 “그럼으로 형제들아 우리가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 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롬. 8:12~13) 사도가 주장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여전히 우리 몸 안에 거하는 죄가 이미 죽은 옛사람의 악한 성품과 죄악된 생활 방식으로 우리를 유혹하기에, 영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고, 온 힘을 다해 죄와 싸우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죄의 몸’은 과연 죽일 수 있는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여기에 대한 궁극적인 대답이 오늘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 이니라” (v.6,7) 사도는 오늘 본문에서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v.6)라고 주장합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이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죽음으로, 아담에 속한 옛사람이 죽게 되었다면, 이제 우리의 죄가 거하는 몸 또한 멸하여 죽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결단과 의지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자녀 삼으신 하나님께서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하기를 원치 않으시고, 죄에서 해방시키시고자 그 사랑하는 아들을 내어 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옛사람이 이미 죽었다면 우리는 더 이상 죄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의 죄가 거하는 몸이 여전히 우리를 유혹하고 충동하더라도 결코 흔들리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그리스도 안에서 담대하게 죄와 함께 싸우고 이겨 나가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의 착한 일을 시작하셨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친히 그의 영, 성령을 통하여 내 속에서 권능으로 이루어 가시고 구원을 완성시켜 나가시는 분은 하나님 아버지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빌립보서 1장6절>의 뜻입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빌. 1:6)라고 말입니다.

이제 그렇다면, 저는 여러분과 ‘옛사람’의 특성은 무엇이며, 사도의 도전처럼 ‘옛사람이 죽었다면, 우리가 추구할 것은 무엇인지를 함께 묵상해 보겠습니다. 저는 앞에서 <에베소서4장>말씀을 통해 사도가 “옛사람을 벗어 버리(라)” (엡.4:22)고 선언했는데, 그는 구체적으로 무엇이 옛사람에 속한 성품인지를 그 앞 몇 절에서 자세히 밝힙니다. 첫째, ‘허무함’ (emptiness)입니다.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엡.4:17)라고 불신자의 마음에 있는 허무와 의미 없음을 경계합니다. 둘째는 ‘어두움’ (darkening)과 ‘굳어짐’ (hardening)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자들이기에, 필연적으로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 마음이 굳어짐으로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엡. 4:18)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로 ‘방탕’ (indulgence)과 ‘욕심’ (greed)입니다.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엡. 4:19)라고 사도는 이와 같이 과거의 옛사람에 속한 거짓되고 악한 옛 성품과 습관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사람들의 적나라한 죄악들을 밝히 드러냅니다. 바로 그들 안에 있는 무감각함으로 말미암아 절제하지 않고 방탕에 사로잡히고, 모든 더러운 욕심에 지배되는 삶의 방식인 것입니다. 이것이 정확히 옛 사람의 성품과 생활방식이요, 이것을 죽이는 것이 ‘옛 사람을 벗는 것’이며, 또한 ‘육의 행실을 죽인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우리 성도가 결론적으로 추구할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새 사람을 입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새 사람을 입는 것’일까요? 앞서 살펴보았듯이, ‘<옛 사람>은 우리가 벗고자 노력하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 속하는 순간 이미 죽었고, 이제 남은 것은 옛 사람의 성품과 거짓된 생활방식으로 여전히 유혹하는 죄를 죽이고 벗어나야’ 하듯이, 마찬가지로 ‘<새 사람>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으로 살아가는 순간, 나의 존재가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고백한 것,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갈. 2:20)는 고백처럼, 이제는 사도 바울 안에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그가 ‘새 사람’이 되었다면, 동일하게 우리 모든 성도들도 예수님의 생명으로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럼으로 ‘새 사람을 입는다’는 것은 이미 <새 사람이 된 우리 존재에 합당한 삶을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사도는 이렇게 에베소 성도들에게 사랑의 권면을 아끼지 않는 것입니다. “오직 너희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엡. 4:23)라고. 오직 심령이 새롭게 되어 변화를 받아 이 세대의 헛된 가르침과 왜곡된 가치관을 좇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함으로써 의로움과 진리의 거룩함을 따라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새 사람을 입는 삶’의 핵심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계속해서 <6장>을 통해 이렇게 ‘그리스도께 속한 ‘새 사람’의 축복된 신분에 합당한 삶은 어떻게 누려 갈수 있는지를 사도의 가르침을 통해 살펴 나갈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영원한 생명으로 새롭게 태어난 새 사람입니까? 만약 그렇다면, 여러분의 삶의 방식은 ‘새 사람’에 합당한 하나님을 따라 의로움과 진리의 거룩함을 입는 삶을 점점 더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여전히 ‘옛 사람의 거짓된 성품과 악한 옛 생활방식을 버리지 못하고 육신의 소욕에 지배되어 살아가십니까?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v. 6~7) 바라기는 성도 여러분의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못박혀 죽은 것만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여러분의 육체 가운데 거하는 죄가 여러분을 과거 옛 사람의 허무함과 무의미함, 정욕과 무정함과 방탕과 욕심으로 충동질하는 유혹으로부터 담대히 맞서 싸워 나가는 하나님의 자녀로 합당한 삶 살아가기를 기대합니다. 그리하여 날마다 주의 말씀과 성령의 도우심과 충만한 능력으로, 죄와 육신의 소욕을 죽이고, 주와 함께 승리하는 복된 새 사람 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