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3, 2021

“오래 황폐 되었던 곳을” (The Ancient Ruins)

Preacher:
Series:
Passage: 이사야 (Isaiah) 58:12
Service Type:

“오래 황폐 되었던 곳을”

(The Ancient Ruins)

1-3-20

본문말씀: 이사야 (Isaiah) 58:12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Your people will rebuild the ancient ruins and will raise up the age-old foundations; you will be called Repairer of Broken Walls, Restorer of Streets with Dwellings)

[설교 요약]

            2021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오늘 이사야 말씀은 하나님께 자신의 죄와 허물을 겸손하게 자복하는 자에게 허락하시는 ‘새 소망’의 메시지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포함된 <이사야서 58장>의 주제는 <여호와의 기뻐하시는 금식>입니다. 본문에서 보면, 이스라엘민족들은 음식을 금하고 마음을 괴롭게 함으로 금식을 행했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금식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정작 그들이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기뻐하시는 금식을 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일까요?” (What is the fast that God have chosen?) 그것은

첫째, ‘악한 길에서 되돌아서는 금식’입니다 (It is the fast that turn back from sinful ways): 금식의 목적은 그 행위나 절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하여 더 깊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분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고자 함일 것입니다. 이것이 금식의 목적임을 인정한다면, 이런 금식을 이루기 위해 바로 악한 길에서 되돌아서는 회개가 금식의 출발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사. 59:2)라고 이어지는 말씀 속에서 하나님께서 왜 그들의 금식을 받지 않으셨는지를 선언하는 것입니다.

둘째, ‘서로의 멍에를 벗겨주는 금식’입니다 (It is the fast that untie the cords of the yoke for each other): 하나님은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v.6)라고 선언하십니다.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는 금식’이라는 말은 1차적으로 먹을 것과 입을 것과 쉴 공간을 이웃과 함께 나누며, 더 나아가서 남을 압제하거나 착취하지 않고 이웃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푸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가정에서, 교회 공동체와 이웃과의 관계성 속에서 서로의 멍에를 벗겨주는 이런 금식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을 신뢰하는 금식’입니다 (It is the fast that trust God): ‘사를르 드 푸코’는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라고 우리 신자들의 믿음을 도전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은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신뢰하고 믿는 것입니다.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하리라” (사. 58:9)라고 하나님은 믿음으로 나아오는 자녀들에게 반드시 응답하실 것을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금식을 행할 때, 우리의 영혼을 만족케 하여 주시고, 물 댄 동산 같게 하시며, 오래 황폐된 곳을 다시 건설하는 자들이 일어나게 될 것임을 하나님은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약속의 유업을 풍성하게 받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소망합니다.

[설교 전문]

            2021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코로나 사태라는 전 세계를 강타한 전대미문의 가공할 만한 바이러스의 공포에 전 세계시민을 떨게 했던 2020년도 역사 속으로 물러 갔습니다. 그렇다고 코로나 사태가 진정 국면에 든 것은 아니고, 사태가 종식된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누구도 이 사태가 언제 끝을 낼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역설적으로, 이런 힘든 상황 속에서 성도 여러분의 삶 속에서 지금까지 경험한 어떤 시간보다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풍성하심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로 기쁨과 만족의 삶을 누리는 한 해 되시길 소망하고 축원합니다. 여러분이 간구하는 기도제목들이 신실하게 응답될 뿐 아니라, 기대하지 못하고 구하지 못한 주의 신실하신 채워 주심까지도 경험하는 은혜의 한 해 되길 소망합니다. 오늘 이사야 말씀은 하나님께 자신의 죄와 허물을 겸손하게 자복하는 자에게 허락하시는 ‘새 소망’의 메시지입니다. 파괴되고 황폐된 삶이 새롭게 회복되고,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의 대로가 건설되는 소망의 메세지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이런 새 소망과 영적 회복의 은혜를 점점 더 누려 나가는 성도 모두 되시길 기대합니다.

제가 신년벽두에 성도 여러분과 나눌 올해의 첫 말씀으로 오늘 본문말씀을 잡은 것은 이 말씀 가운데 우리의 죄가 사함 받고 하나님의 진정한 복을 누릴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하나님께서 밝혀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택하신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어떻게 내 죄가 사함 받고, 하나님의 약속하신 자녀의 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인지를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상처를 받았거나 상처를 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면, 각자 말씀 가운데 회복함 받고 또한 회개로 주 앞에 나가는 시간되기 원합니다. 그로 말미암아 주께서 허락하시는 새롭게 출발하는 복된 올해의 첫 걸음되기를 기대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포함된 ‘이사야서 66장’의 전체 주제는 <거룩> 혹은 <거룩한 하나님의 비젼>입니다. 즉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로 묘사된 여호와 하나님의 비젼이 이사야서의 전체 주제입니다. 그럼으로 이사야서에서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가 무려 26번 선언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하나님의 개념은 전반부에서는 ‘심판자’로, 중반부에서는 ‘구속자’로, 그리고 후반부에서는 ‘시온의 회복자’로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큰 그림에서 봤을 때, 오늘 본문의 <사. 58장>은 후반부에 해당하는데, ‘시온의 회복자’되신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 58장>의 주제는 <여호와의 기뻐하시는 금식>입니다. <사. 58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크게 외치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 같이 날려 내 백성에게 허물을, 야곱 집에 그 죄를 고하라” (v.1)고.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그의 백성 이스라엘백성의 죄악을 고발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인지 아십니까? 지금 이사야가 백성들에게 그들의 죄악과 허물이 무엇인지를 선언하는 상황 가운데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본다면, 이들은 가장 종교적인 행위를,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실 것 같은 <금식>을 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께서 그들이 행하는 금식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인정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아마도 이 백성들은 얼굴에 슬픈 표정을 하고, 머리를 풀어 헤치고 음식을 먹지 않고 배고픔을 참으며 율법에서 명하는 금식을 충실히 행하고 있다고 스스로 자부심을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노력이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지 않음을 그들이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은 이렇게 주께 항변합니다. “이르기를 우리가 금식하되 주께서 보지 아니하심은 어찜이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심은 어찜이니이까” (v.3)라고. ‘하나님은 왜 우리가 배고픔을 참아가며 명하시는 금식을 행했지만 인정해 주지 않으시고, 마음을 괴롭게 했지만 알아주지 않으시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평가는 정반대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금식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들이 금식 가운데 죄악을 행하고 있음을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분명히 무엇이 유다의 죄이며, 왜 그들의 금식을 받지 않으시는지,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은 무엇인지?’를 이어지는 말씀을 통해 선언하십니다. 하나님은 선언하십니다.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v.6)라고 말입니다.

이제 저는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이 어떠한 금식을 인정하시는 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무엇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일까요?” (What is the fast that God have chosen?) 그것은

첫째, ‘악한 길에서 되돌아서는 금식’입니다 (It is the fast that turn back from sinful ways): 우리가 금식에 있어서 가정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금식의 목적은 금식을 행하는 어떠한 행위나 절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하여 더 깊은 하나님과의 관계속으로 들어가고자 함입니다. 그분의 뜻을 더욱 온전히 깨닫고 그분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고자 함일 것입니다. 이로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즐거워하고자 함입니다. 이것이 금식의 목적임을 우리 각자가 인정한다면, 이런 금식을 이루기 위해 바로 악한 길에서 되돌아서는 회개가 금식의 출발이 되어야 함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리가 금식하되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고, 마음을 괴롭게 하되 주께서 알아주지 않으신다’ (v.3)고 <3절>에서 하나님께서 금식을 받아주지 않으심을 불평하며 질문하는 것에 대한 대답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서 이어지는 <이사야 59장>을 시작하면서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실 수 없으시는 지를 이렇게 적나라하게 선언하십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사. 59:1~2)라고 말입니다. 사실 세상 신들은 도덕이나 양심이나 정의에 관심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그 신에게 많은 재물을 바치고 그 신이 즐거워하는 제사를 드리는 가에 관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재물을 드리는 자가 남의 물건을 도둑질해서 바쳤건, 남을 피 흘리게 해서 빼앗은 것이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하나님은 죄가 없으신 하나님이시요, 공의로운 하나님이시기에 우리의 죄를 못 본 척 넘어가지 않으시고, 없는 것으로 여기지도 않으십니다. “만일 우리가 죄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요일. 1:8~9)라고 사도요한은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최우선적으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겸손하고 진실하게 우리의 죄와 허물을 고백하고, 그분의 죄 용서하여 주심과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의 올바른 금식의 출발일 것입니다.

둘째, ‘서로의 멍에를 벗겨주는 금식’입니다 (It is the fast that untie the cords of the yoke for each other) 오늘날 최고의 명 설교자의 한명으로 꼽히는 달라스, 텍사스 ‘스톤브라이어 커뮤니티 교회’ (Stonebriar Community Church)의 담임목사인 ‘척 스윈돌’ 목사는 오늘 본문말씀을 전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새로운 출발의 삶을 시작하기 위해선 먼저 피하기 힘든 고통스러운 현실을 직시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첫째 ‘우리는 모두 불안전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둘째 ‘지나간 과거는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셋째는 ‘나 자신의 잘못을 인격적으로 인정할 수 있어야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상대방의 잘못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것’입니다. 책임이 없을 뿐 아니라, 그 잘못에 얽매여 언제까지나 그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앞서 살펴봤듯이 하나님은 선언하십니다.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v.6)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약 내가 나의 허물과 죄악을 그분께 겸손히 고백하고 그 죄에서 돌이켜 회개했다면, 그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 가운데 실천되는 살아있는 금식이 나타나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벗겨주며, 압제 당한 자를 자유케 하는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헐 벗은 자에게 입을 옷을, 그리고 쉴 곳이 없는 자에게 내 안식공간을 함께 나누는 것 (v.7)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우리의 가족과 믿음의 공동체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에서 적용해 본다면, 문자 그대로 먹을 음식이나 입을 옷이나 쉴 공간을 함께 나눈다는 것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단순히 물질적인 필요 이상으로 특별히 서로의 관계를 파괴시킨 상대의 허물과 실수를 용서할 수 있는가에 더 큰 적용점이 있을 것입니다. 스윈돌 목사의 지적과 같이 상대방이 행한 이제는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잘못을 나는 이제 그 멍에를 벗기고 결박을 풀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용납하고 용서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상대를 용서하는 차원일 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 내 자신이 그 잘못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와 영적 속박에서 자유케 되는 가장 강력한 치유의 길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서로의 멍에를 벗겨주고 있습니까?

          셋째, ‘하나님을 신뢰하는 금식’입니다 (It is the fast that trust God):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 크리스챤에게 있어서 생명과 같이 중요한 ‘믿음’을 생각할 때 마다 문득 문득 떠오르는 프랑스의 위대한 수도사 ‘사를르 드 푸코’ (Charles de Foucauld)가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라고. 여러분은 이 사람의 이런 지적에 동의하십니까? 저는 안타깝지만 이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를 포함한 수 없이 많은 우리 성도들의 모습에서 신실하게 하나님의 선하심과 전능하심을 그대로 믿는 지체를 그리 많이 보지못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저께 1월 1일 새해 첫날 큐티 말씀으로 <누가복음 1:1~25>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다시한번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 가장 어려운 것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실임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아비야 반열>에 속하는 ‘사가랴’라는 제사장 있었습니다. 성경은 ‘사가랴’와 그의 아내는 ‘엘리사벳’에 대해서 “이 두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눅. 1:6)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두사람의 가정에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다음절에서 이렇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엘리사벳이 수태를 못하므로 저희가 무자하고 두사람의 나이 많더라” (눅. 1:7) 두사람은 노인이 되도록 자식을 가질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아이를 간절히 원했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어느 날, 사가랴 제사장이 하나님의 전에 나아가서 분향 드리고 있을 때, 가브리엘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 머지 않아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아이를 가지게 될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때 그의 첫 반응은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 많으니이다” (눅. 1:18)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사가랴가 이런 기적과 같은 소식에 대해 놀라며 믿기지 않아 했음을 인간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하나님께서 결코 기뻐하실 수 없는 모습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가랴는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선하심 보다도 자신이 가진 상식과 현실적인 가능성을 그 순간 더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선하신 하나님은 약속하십니다.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하리라” (사. 58:9)라고.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약속하신 우리를 치유하시고 회복하시며, 새롭게 출발하게 하는 삶은 이와 같은 참된 금식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이와 같이 그분께서 기뻐 받으시는 금식을 통하여 그의 자녀들의 빛이 아침 같이 비췰 것이며 그 치료가 급속할 것이라 약속 하셨습니다 (v.8). 그리고, 우리가 주께 부르짖을 때 반드시 응답하실 뿐 아니라, 항상 우리를 인도하셔서 우리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우리의 뼈를 견고케 하시고 물 댄 동산 같게 하시겠다(v.9~11)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가운데 오래 황폐된 곳을 다시 세우고 파괴된 기초를 쌓을 자들이 나오게 되는 기초와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21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여러분들이 벗어 버리기를 원하고, 던져 버리기를 원함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던져 버리지 못하고 짊어지고 왔던 그 무엇은 없습니까? 바라기는 이 모든 멍에와 굴레를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의 은혜로 완전히 던져 버리는 올 한 해 되기를 축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을 통해서 가능한 것입니다. 바로 죄에 대한 진정한 회개요, 인간관계 속에서 환경 가운데 상처주고 상처받았던 허물을 서로 용서하고 성령을 통해 치유하는 것이요, 이 모든 것을 통하여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물 댄 동산같이 은혜로 채우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를 온전히 믿음으로써 말입니다. 이런 오래 황폐된 곳을 다시 세우고, 시온의 대로를 건축하는 복된 성도 모두 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