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10, 2021

“성소에 들어 갈 담력을” (Confidence to enter the Most Holy Place)

Preacher:
Series:
Passage: 히브리서 (Hebrews) 10:19~22
Service Type:

“성소에 들어 갈 담력을”

(Confidence to enter the Most Holy Place)

1-10-21

본문말씀: 히브리서 (Hebrews) 10:19~22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2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며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설교 요약]

            오늘 히브리서 기자는 ‘누가 진정한 크리스챤인지?!’를 본질적으로 밝혀주고 있습니다. 기자는 <히브리서 10장>을 시작하면서 오늘 본문 바로 앞 절의 <1~18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완전한 속죄사역’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구약의 짐승의 제사를 폐하시고, 자신의 피로써 새언약을 세우셨음을 탁월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v. 6~9).

그럼으로 주님의 대속의 피를 통한 새 언약은 실제적인 크리스챤의 삶을 본질적으로 변화시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 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소 안으로 담대히 들어갈 수 있는지를 밝혀주는 근거인 것입니다.

이제 저는 그렇다면 과연 ‘누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인지?’ 그리고 ‘그리스도인에게는 어떤 특권이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누가 그리스도인이라 불리어질 수 있을까요?

  1.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듭난 자’ 입니다. 아무리 오래 교회를 다녔어도 아직까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다면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입니다 (롬. 10:9~10).
  2. 성령께서 그 안에 거하시는 자’가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 성령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롬. 8:9, 요. 3:3~5).
  3.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 자’ 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믿어 거듭났다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벧전. 2:2).

이제 한걸음 더 나아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어떤 특권을 누리게 되는 것인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그것은

  • 첫째,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며” (v.21) 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셔서 단번에 자신을 대속제물로 드리실 뿐 아니라, 또한 우리를 대신해서 중보의 제사를 드리는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시는 것입니다.
  • 둘째,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담대하게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기)” (v.19)때문이요, 주께서 성소 휘장 가운데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길을 열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 셋째, ‘장성한 분량으로 성장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직시해야 하는 영적 진실은 모든 거듭난 자가 장성한 분량으로 향해 성장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약속하신 성령의 충만하심으로 그의 마음판에 하나님의 말씀을 새기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 이런 영적 성장의 특권은 열매맺는 것입니다 (v.15~18).

바라기는,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되신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 안으로 나아감으로, 주께서 허락하신 장성한 그리스도인의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성도 모두 되시길 소망합니다.

[설교 전문]

            저는 올 한 해 우리 아포슬 교회, 믿음의 공동체가 ‘영적 부흥’을 경험하는 복된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런 공동체의 영적 부흥을 반대하거나 거부하는 성도는 적어도 없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러나 안따깝지만 이런 일에 무관심하거나 방관적인 성도도 적지 않음을 저는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히브리서 기자는 ‘누가 진정한 크리스챤인지?!’를 본질적으로 밝혀주고 있습니다. 내가 진정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었다면, 겉으로 드러나는 종교적인 행위로서가 아니라 속사람의 변화를 통해서 구원받은 성도의 생명의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영적 열매를 맺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예수의 피로 죄사함 받은 그의 자녀에게 하나님 아버지께서 허락하시는 놀라운 특권이 무엇인지를 깨닫아가는 소중한 시간되기 원합니다. 이를 통해 참된 성도의 영적 열매를 맺어가며, 영적 부흥을 이루어가는 우리 믿음의 공동체 되길 소망합니다.

2천년 기독교회사에서 특별히 <영적 부흥>의 역사를 통해 이해할 수 있는 핵심은 이런 부흥의 역사는 어느 한 개인의 노력 이전에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가능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런 부흥의 역사는 과거 뿐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 하나님께서 그의 거룩하심을 갈망하며 성령께 순종하는 그의 자녀를 통해 더욱 더 역사하심을 믿기에, 우리는 더욱 교회 공동체가 먼저 이런 부흥을 소망하고 구하는 것이 소중하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10장>을 시작하면서 오늘 본문 바로 앞 절의 <1~18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완전한 속죄사역’이 무엇인지 하는 것을 특별히 구약의 율법과 제사를 잘 알고 그와 같은 성장배경에서 자란 자들, 즉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탁월하게 영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 하시나니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시니라 ~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였으니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 (v. 6~9). 기자는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단번에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드리심으로 구약에서 드렸던 모든 짐승의 제사를 폐하시고, 자신의 피로써 새로운 언약을 세우셨음을 영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의 짐승의 제사는 필요 없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주님의 대속의 피를 통한 새 언약은 실제적인 크리스챤의 삶을 본질적으로 변화시키게 되었음을 기자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약속하신 성령을 통해 우리의 마음 판에 하나님의 생명의 법을 새겨 주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뿐 아니라, 지난 죄를 다시 기억조차 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의롭다 부르시고, 언약의 자녀로 세우시는 은혜를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v. 15~18).

그리고 나서 오늘 말씀은 이렇게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v. 19~20)라고. 우리 성도의 삶은 단순한 추측이나 희망사항 정도가 아니라, 믿음의 확신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 담대하게 살아 계신 하나님 아버지 앞으로 나아가는 삶인 것입니다. 바로 예수의 피를 힘입어 지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은 삶인 것입니다. 바로 예수께서 성전의 휘장 가운데 열어 놓으신 길을 통해서입니다.

이제 저는 성도 여러분과 함께 과연 ‘누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인지?’ 그리고 ‘그리스도인에게는 어떤 특권이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누가 그리스도인이라 불리어질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무엇인가?’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듭난 자’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교회생활 열심히 하고 오래 교회를 다녔어도, 아직까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다면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무엇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는 뜻인지를 이렇게 영적으로 잘 정의합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롬. 10:9)라고. 그가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고, 입으로 예수그리스도를 나의 구원자로 고백함으로써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롬. 10:10).

그리고, 두번째는 ‘성령께서 그 안에 거하시는 자’가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이렇게 분명하게 밝힙니다. “~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롬. 8:9)고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영, 성령이 거하지 않는 자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성령과 그리스도인과의 절대적인 관계를 주님께서 밤중에 조용히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이렇게 설명하신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수 없느니라 ~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 3:3~5) 라고 말입니다. 쉽게 말해서, 내가 예수님을 믿어 영접하는 그것 자체가 바로 성령님께서 나의 마음을 열어 주심으로서만 가능한 거듭남의 역사라고 우리 주님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소아시아에 흩어져 있는 여러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벧전. 2:2)고 권면합니다. 이 말은 신령한 젖을 먹고 자람으로서 구원받게 된다는 뜻이 아니라, 거듭남으로 영적으로 태어났다면 아기와 같이 젖을 달라고 보채면서 그 젖을 먹고 자라게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거듭난 자의 ‘영적 이치’라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만약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믿어 거듭났다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일까요? 그것은 살아 있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거듭난 성도는 영적으로 다시 태어난 존재이기에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identity)’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한걸음 더 나아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어떤 특권을 누리게 되는 것인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그것은 첫번째로,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며” (v.21)라고 히브리서 기자는 언급하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그리스도인의 큰 제사장, 곧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매년 하나님께 성전에서 희생제물로 바쳐지는 황소나 염소와 같지 않은, 죄 없는 자신의 몸을 단번에 드리셔서 우리 모든 죄를 속죄하신 것입니다.

그럼으로 주님의 놀라운 사역은 주님 자신이 우리의 모든 죄를 지고 하나님께 대속제물로 드려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실 뿐 아니라, 동시에 자신이 하나님의 큰 제사장이 되셔서 우리 성도의 모든 죄를 위해 중보하여 주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허물을 용서하여 주실 것을 아뢰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되심이 영원한 이유는 주님의 의로우신 피의 위력은 단 한번의 희생제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영원토록 역사하는 효력을 발휘한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우리 성도를 대신하여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그 피로 대속하시고, 영원토록 우리를 위해 하나님 우편에서 간구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담대하게 나간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이름조차도 부르기를 매우 두려워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에 해당하는 ‘여호와’라는 단어는 사실 정확한 발음의 단어가 아닙니다. 그것은 ‘히브리어의 모음’을 합친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이렇게 표시한 것은, 이스라엘백성들이 거룩한 하나님의 이름조차도 정확하게 부른다는 것이 죄 있는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는 감당치 힘든 일로 간주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브리 원어의 하나님의 이름에 해당하는 모음 단어를 이스라엘인들은 ‘아도나이’라고, 천주교인들은 ‘야훼’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여호와’라고 읽게 된것입니다. 그 모음에 어떤 자음글자를 붙이느냐에 따른 발음의 차이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약성도와 신약성도에 있어서의 가장 본질적인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여러분은 이해하십니까? 그것은 우리 신약의 성도,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된 성도’는 ‘구약의 성도들이 그 분의 이름조차 부르기를 두려워했던 하나님 아버지를 감히 아바 아버지라고 부른다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구약의 성도들에 비해서 무엇이 그토록 큰 차이를 만들었을까요? 우리의 믿음이 그들보다 월등히 더 커서일까요? 우리의 행위가 그들보다 비교할 수 없을만큼 의로와서일까요? 아닙니다. 이유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의 결과 때문입니다.

오늘 히브리서 기자는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v.19~20)라고. 우리 성도가 하나님 아버지의 거룩한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고자 하는 근거는 오직 그리스도의 피를 힘 입음이요, 그 피로 인하여 지성소와 성소를 갈라 놓았던 성소 휘장을 자신의 육체를 찢으심으로 그 휘장 가운데 새롭고 산 길을 열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장성한 분량으로 성장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저는 앞에서 ‘누가 그리스도인인가’하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대해 살펴보면서, 그리스도인은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 사람’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왜냐하면, 영적으로 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젖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배가 고픈 아이가 젖을 달라고 소리쳐 울어 대드시, 영적으로 태어난 사람은 그를 살리는 신령한 젖인 생명의 말씀을 찾아 먹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거듭남으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의 특권으로서 <장성한 분량으로 성장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리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단순히 이론적으로 말하자면, <영적으로 태어났다면 신령한 젖을 사모할 것이니까, 그는 필연적으로 장성한 분량으로 성장하게 되어 있다>고 결론지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모든 거듭난 자의 삶이 이와 같이 장성한 분량으로 성장하지 못하다는 사실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영적으로 태어난 존재는 젖을 사모한다’는 것이지만, 그 결과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성도들 가운데는 자신의 속사람의 요구데로 신령한 젖을 사모할 뿐 아니라 열심으로 젖을 먹고 자라남으로 놀랍게 성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안타깝게도 우리 중에는 속사람의 이 간절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겉사람 즉 육신의 요구에 져서 영적으로 자라나지 못하는 ‘만년 어린아이’로 젖만 먹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 절, <v. 15~18>에서 히브리서기자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거하시되 주께서 가라사대 그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사 하셨은 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v. 15~18)라고. 약속하신 성령을 통해 우리의 마음 판에 하나님의 생명의 법을 새겨 주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뿐 아니라, 지난 죄를 다시 기억조차 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의롭다 부르시고, 언약의 자녀로 세우시는 은혜를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약속은 우리 주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하셔서 승천하시고 몇날이 못되어, 마가의 다락방에서 주의 제자들이 함께 모여 합심으로 기도할 때 약속의 성령께서 불의 혀같이 임하심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성도들의 특권과 은혜는 마가의 다락방에서 임하신 성령강림의 역사 이후로 충만하게 그 약속의 성령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모든 자들에게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돌판이나 나무판이 아니라,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판에 새겨 주셔서 이제 어린 아기들이 먹는 젖을 떼고 점점 더 단단한 음식을 먹음으로써 (히. 5:13~14)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성장해 갈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특권임을 저는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의 보배로우신 피로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씻어 주실뿐 아니라, 십자가에서 그 몸을 찢으심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을 따라 나아가고 있습니까? 우리 주님의 피를 힘입어 날마다 지성소 안으로 담대히 나아가고 있습니까? 바라기는 성도 여러분 모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길을 따라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날마다 나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리하여 성령께서 우리 마음판에 새겨 주신 생명의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동일하신 성령께서 우리 아포슬 믿음의 공동체를 통해 ‘영적 부흥’의 역사를 이뤄 주시는 2021년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