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8, 2023

“우리가 어찌할꼬” (What Shall We Do?)

Preacher:
Passage: 사도행전 (Acts) 2:36~38
Service Type:

“우리가 어찌할꼬”

(What Shall We Do?)

10-8-23

본문말씀: 사도행전 (Acts) 2:36~38

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37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설교 요약]

우리는 지난시간, ‘오순절 성령강림’의 충만하게 임하셨던 역사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권능의 날에 베드로가 성령충만 함으로 선포했던 설교의 의미를 함께 이해하기 원합니다.

유대인들의 명절인 ‘오순절’을 맞아서 예루살렘 성전에 예배하러 왔다가, 불의 혀같이 임하는 놀라운 성령의 임재를 목격한 많은 사람들이 소동하기 시작했고, 어떤 사람들이 제자들이 ‘새 술을 마시고 술 주정한다’고까지 조롱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일어나 모인 자들을 향해 말씀을 선포헀고, 이 한번의 설교로 3천명이 주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베드로 설교의 요점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첫째, “<오순절 성령강림>은 예언의 성취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말세에 내가 내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v.17)는 요엘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을 인용하며, 주님의 제자들은 술 취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충만을 받은 것이라 설명합니다.

둘째, “<나사렛 예수>는 다윗이 예언한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또한 다윗의 <메시야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시. 16:10)을 인용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썩음을 당치 않고, 죽은지 3일만에 부활하셨음을 선언합니다. 한편, 다윗의 <시편 110편1절>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는 말씀을 인용하며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고 말하였음 (막. 12:36,37)을 밝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입니다.

이와 같은 ‘나사렛 예수’가 다윗이 예언한 그리스도이심을 밝히고 나서, 베드로는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v.36)합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마음에 찔림을 받아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소리칩니다.

이런 사람들의 반응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바로 베드로가 그들을 ‘예수님의 십자가 앞으로’ 인도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우리는 삶을 바꾸는 결정을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바라기는 성령의 충만한 도우심을 받아 사람들을 주님의 십자가 앞으로 인도하여 죄를 자복하고 주의 이름을 부름으로 그들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복된 그리스도의 증인된 성도 여러분 되시길 소망합니다.

 

[설교 전문]

            우리는 지난시간 <사도행전 2장>을 시작하며 ‘오순절 성령강림’의 역사가 불의 혀같이 권능으로 임하셨음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함께 유대인의 3대 명절의 하나인 ‘오순절’에 성령님의 충만하신 임재가 결코 우연이 아님을 함께 이해했습니다. 바로 유월절의 어린 양이 되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3일만인 ‘초실절’에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셔서 부활하셨고, 40일동안 제자들에게 보이시고 승천하시면서 며칠이 못되어 하나님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을 받게 될 것을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유월절을 통해 애굽에서 해방된 이스라엘민족이 초실절 이후 50일만인 오순절 (=칠칠절)에 성령의 불의 혀 같은 세례를 우리 주께서 행하실 것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바로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돌판에 새겨 주신 십계명을 받던 날인 것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 묵상하고자 하는 것은 이런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에서 한번도 없었던 놀라운 성령의 임재하신 사건을 주의 제자들, 특별히 그들을 대표하는 사도 베드로가 어떤 영적 의미로 깨닫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사도 베드로가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강력한 복음의 메시지를 선포한 것입니다. 그 결과 한번의 설교로 3천명이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오는 엄청난 구원의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우리 각자는 어떻게 생명의 복음을 지혜롭고도 힘있게 전할 수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된 증인이 될 수 있을 것인지를 한걸음 더 구체적으로 깨닫고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기대합니다.

오순절날 성령세례 사건이 벌어진 시간은 <제삼시>라고 저자 누가는 밝히고 있습니다. <제삼시>는 오늘날로 보면, ‘아침 9시’에 해당합니다. 지금까지 한번도 없었던 성령님의 강력한 임재의 역사가 마가의 다락방에 함께 모여 합심하여 기도했던 주님의 120여 제자들에게 동시에 임했을 때, 이들은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목격한 많은 사람들이 이 현상을 보고 어리둥절해 하며 큰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이런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현상을 본 사람을 가운데는 심지어 그들이 ‘자신이 알지 못하는 새 술을 마시고 대낮부터 취했다’고 조롱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혼란된 상황 가운데 사도 베드로가 그들 가운데 일어나 큰소리로 이렇게 강력한 복음의 메시지를 선포하기 시작했습니다.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때가 제 삼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v.14,15) 앞서 제가 언급했듯이 제자들이 성령세례를 받은 시기는 <오전 9시>라는 겁니다. 베드로의 표현대로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이 아침부터 새 술을 먹고 취한 것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그럼 무엇입니까?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기 800여년 전 남 유다에서 활동하던 요엘 선지자가 선포한 예언의 성취라는 것입니다.

그 예언의 내용을 지난 주에 살펴본 바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보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v.17) 바로 오늘 오순절 아침에 일어난 이 권능의 역사는 사람들이 대낮부터 새로 만든 독한 술을 마시고 헤롱 헤롱하여 술기운에 헛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선지자 요엘이 예언한 하나님의 충만하신 영, 성령의 임재를 경험했기 때문에 일어난 놀라운 현상 (=역사)이라는 것입니다. 그 동안 긴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단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불의 혀같이 모인 각 사람 위에 전능으로 임하신 ‘성령세례’의 역사인 것입니다. 요엘 선지자는 먼 훗날 8백년 후인 말세의 때에 임하실 성령세례를 예언하면서 이렇게 이 성령의 권능이 임하시는 이유를 선포했습니다. ‘현상’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유’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게 된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요엘은 이렇게 핵심적으로 선언합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v.21)고.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놀라운 자신의 영, 성령을 모든 육체 위에 물 붓듯이 부어 주시는 이유는 ‘주의 이름을 부름으로 구원을 얻게 하시고자’하는 그분의 선하신 은혜의 발로라는 것입니다. 선지자를 통해 약속하신 말세에 임할 권능으로 만민 위에 베푸신 구원의 역사인 것입니다.

베드로는 먼저 이 오순절날 주의 제자들에게 임한 ‘성령세례’의 경이로운 역사를 모인 무리 가운데 영적으로 탁월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니 좀더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그 지혜와 권능의 영이신 성령께서, 주의 제자들을 대표하는 사도 베드로의 마음을 감동시키시고 깊은 깨닫음을 주셔서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오순절 성령강림’의 역사를 정확히 이해하고 영적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도우신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베드로는 두번째로 보다 더 본질적으로 오늘 이와 같은 <성령세례의 역사>가 발생하게 된 원인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22절>에서 시작하여 오늘본문 <36절>까지의 이어지는 베드로의 설교인 것입니다.

이 설교에서 베드로는 그가 전하고자 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증거하고 있는데, 결코 자신의 주관적인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유대인들이 모두 공감하는 구약의 말씀, 특별히 유대인들이 자랑하고 사랑하는 다윗의 글을 인용하여 객관적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먼저 ‘예수님’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를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 하셨느니라” (v.22)라고. 사도는 그동안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개적으로 행하신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거론합니다. 베드로가 굳이 더 자세히 언급하지 않더라도, 불과 몇 달전까지 주께서 생명의 말씀을 선포하시고, 권능으로 수없이 많은 자들을 고치시고, 심지어 죽은 자를 살리시는 기사와 표적을 대부분의 이스라엘백성들이 직.간접적으로 보거나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여기서 사도는 긴 설교를 하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갑니다. 즉 ‘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는지? 그 목적이 무엇인지?’를 핵심적으로 밝힙니다.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대로 내어준 바 되었거늘” (v.23)이라고.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아무리 사악한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우매한 군중들을 선동하여 “나사렛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라”고 소리치게 했고, 로마 총독 빌라도가 사형을 언도하여, 로마 군인이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했지만,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그들 때문이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잡히시던 날, 제자 베드로가 칼을 빼들고 주님을 지키고자 했을 때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마. 26:52-54)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모든 신적 능력을 철저하게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정하신 뜻에 순종하여 자신 스스로를 십자가의 대속제물로 내어 주시는 것입니다.

왜 입니까? 그 이유는 ‘우리를 살리시고자 함’입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십자가에서 대신 죽게 하셔서 우리를 살리시고자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을 철저히 순종하셔서 그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아는데로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그의 살을 찢으시고, 그 피를 남김없이 흘리심으로 죽으셨고, 죽으신지 3일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럼으로 주님은 구약의 초실절에 다시 살아나셔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부활절이 얼마나 놀랍고 충격적인 사건인 줄을 우리는 영적 상상력을 사용하여 이해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이 부활하신 지가 2,00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그 부활을 생각하면 단지 신비롭고 경외감으로 할말을 잃을 지경인데, 오늘 이 본문이 벌어진 시점에는 오죽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베드로가 설교하던 오순절날은 당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지 50일 되는 시점이라는 것입니다. 불과 두달이 넘지 않은 시점인 것입니다. 여기서 문제의 핵심은 <밖으로 드러난 물증으로는 어떤 사실을 증명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성공할 가능성도 대단히 낮다>는 것입니다. 21세기의 오늘날과 같이 c.c. 티비 확인이나 DNA추적과 같은 다양한 과학적인 도구들을 사용할지라도 빈번히 발생하는 사회적 이슈가 되는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 데는 긴 시간이 요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 진실여부를 밝히지 못하고 미궁에 빠지는 사건들이 허다한 것입니다.

그러할찐데, 2천년전 주께서 사셨던 고대국가시대에는 오죽 했겠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오순절 당시,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의 수는 지극히 미미했던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처형과 그 이후 50일이 지난 오순절까지 주님을 신실하게 믿고 따랐던 그분의 제자들은 오늘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모여 함께 합심으로 기도했던 12사도를 포함한 120여 제자가 거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난번 설교했듯이, 그동안 주님을 따르던 수많은 무리는 고난과 핍박이 따르자 순식간에 뿔뿔이 흩어져 사라졌던 것입니다. 끝까지 따르는 제자는 적고, 흩어지고 돌아서는 무리는 많은 것입니다. 이런 소수의 남은 제자들에 비해 유대종교지도자들과 대부분의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가 되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았을 뿐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광된 진실까지도 왜곡하여 포장하고, 거짓소문을 퍼트려 진리를 덮으려 온 힘을 기울였던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가 마태복음의 마지막 장에 기록되었듯이, 유대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지켰던 로마군인들을 돈으로 매수했던 사실입니다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둑질하여 갔다 하라” (마. 28:13)고 거짓 증거하게 했던 것입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오늘날과 같은 정보와 과학이 선도하는 사회에서도 때로 증거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할 때가 많은데, 수천년 전의 초대교회시절은 물증을 제대로 찾기도 쉽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으로 자신의 주장이 진실함을 입증하기는 더욱 힘들었던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베드로는 다윗의 두 편의 시편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대표적인 메시야를 예언한 시편말씀인 것입니다. 처음말씀은 <시편 16:8>이하의 말씀이고, 다음말씀은 <시편 110:1>말씀입니다.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v.25~27)라고 베드로는 다윗의 <시편 16편>말씀을 인용합니다. 일전에 제가 이 사도행전 말씀으로 설교했을 때, 다윗은 자신의 깊은 고난 가운데서도 끝까지 자신과 함께 하시고 건져주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은혜를 노래했지만, 이것이 놀랍게도 오실 메시야에 대한 예언의 시, 곧 <고난받는 메시야>에 대한 대표적인 예언의 말씀이 됨을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베드로가 이 시편 말씀의 주인공이 다윗 자신이 아니라 메시야가 될수 밖에 없는 근거로써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v.27)를 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이스라엘사람들은 다윗이 이미 1000여년 전에 죽어서 그의 무덤이 그들 가운데 있음을 모두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v.29). 그럼으로 여기서 묘사하는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는 사람’은 다윗이 아니라, 그의 자손 가운데 올 메시야를 믿음의 눈으로 미리 보고 증거한다는 것입니다. 그 구원자 메시야는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한다” (v.31)는 것입니다. 곧 그리스도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한 두번째 다윗의 <시편 110편>에서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시. 110:1)라는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이 시편말씀은 예수께서 친히 그 의미를 이렇게 잘 풀어 해석해 주셨습니다.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로 네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막. 12:36-37)고 말입니다. 바로 다윗은 자신의 후손 가운데 올 그리스도를 주님의 해석과 같이 “다윗 스스로 그리스도를 주라고 부름”으로 그분을 증거하고 예언했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베드로는 주께서 부활하시고 나서 베드로 자신을 포함한 여러 제자들에게 여러 번 부활하신 그대로를 보여주신 그 놀라운 사실을 간증하기보다, 구약성경에 기록된 오실 메시야의 예언의 말씀을 통해 나사렛 예수가 그리스도요, 오실 메시야심을 증거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선동을 받아 죽을 힘을 다해 십자가에 목박으라고 외쳤던 나사렛 예수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자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v.36)고 베드로는 백성들을 향해 강하게 도전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베드로는 오늘 성령이 불의 혀같이 권능으로 임하신 오순절날, 곧 기독교회의 시작을 알리고, 주의 제자들이 성령의 능력으로 그의 참된 증인으로 출발하던 날 무슨 설교를 한 것일까요? 선지자 요엘과 다윗의 충만한 예언의 말씀들을 인용하며 그가 주장하고자 했던 핵심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바로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나사렛 예수는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한 예정하심의 클라이막스요, 결론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베드로의 설교의 핵심은 ‘우리 각자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세우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십자가를 외면하지 못하게 그 앞에 세우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그들과 같이 부르짖게 될 것입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v.37)라고. 성도 여러분의 인생에서 주의 십자가 앞에서 ‘어찌할꼬!’라는 영혼의 부르짖음이 있습니까? 그로 말미암아 주의 이름으로 침례 받고 죄사함 받아, 성령을 선물로 받으셨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진정 복된 인생입니다. 이제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 또한 여러분의 사랑하는 가족, 친구 그리고 이웃을 주의 십자가 앞으로 인도할 차례가 된 것입니다. 그 모든 결정은 그들에게, 아니 주께 맡기시고 우리는 오직 주께 받은 성령의 능력을 통해 이와 같이 사랑하는 자들을 도와야 할 것입니다. “형제여, 자매여, 나는 어찌할꼬”라고 말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런 복된 주이 증인으로 쓰임 받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