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롭다 하심” (Being Justified)
“의롭다 하심”
(Being Justified)
5-10-26
본문말씀: 로마서 (Romans) 3:25~27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그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27 그런즉 자랑할 때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설교 요약]
우리는 지난 몇 주 동안 ‘복음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통하여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여기서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의>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어린 양 되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지고 ‘화목제물’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 있음을 우리는 확인했습니다. 이런 그리스도의 <화목제물 되심>이 ‘하나님께서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근거’임을 사도는 <로마서 3장24~25절>에서 밝힙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 (v. 25a)라고.
이제 저는 <로마서 3장> 후반부를 마무리하며, 복음 안에 흐르는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복음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의>일까요?” 그것은,
첫째, “율법의 행위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도는 <로마서 1장18절>에서 <3장18절>까지 ‘인간의 죄악성’을 고발하고 나서, 우리 인간은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게 될 수 없음’ (롬. 3:20)을 결론적으로 선언했습니다.
둘째, “아들을 화목제물로 우리 죄를 대속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너무도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의 아들을 화목제물 삼으셔서 십자가 위에서 보혈을 흘리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감당케 하셨습니다 (롬. 3:24-25).
셋째, “예수님의 피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예수님의 피의 권세를 믿는 것’입니다. 우리를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의롭게 되어 ‘멸망치 않고 영생을 누리는’ 자녀의 권세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요. 3:16).
넷째,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복음>의 최종적인 목적은 ‘인간의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의로우심’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v.25)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위해 내어 주셔서 ‘우리를 의롭다 불러 주심’으로 복음 안에서 자신의 의로우심과 영광을 찬란하게 드러내시는 하나님을 봅니다.
바라기는 날마다 하나님의 의로우신 은혜를 깨닫아, 그의 자녀의 신분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시고, 성령의 충만한 열매 맺는 삶 살아가는 성도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설교 전문]
우리는 지난 몇 주 동안 ‘복음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통하여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로마서의 주제와 관련한 가장 핵심적인 사도의 영적 충만한 해석이자, 하나님의 선하신 구원의 역사가 가능하게 된 근거가 무엇인지를 밝히는 말씀인 것입니다. 특별히 <로마서 3장21절>에서 “그러나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v.21)고 시작되는 말씀을 시작으로 율법 외에 또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의 의’를 통해 허락하신 구원의 길을 사도는 밝혀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의’는 오랜 구약의 역사를 통하여 증거된 것이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그들의 영적 무지로 인하여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의는 이미 <레위기>에 언급된 것과 같이 율법의 여러 희생제사와 또한 구약의 선지자들의 예언을 통해 증거되고 예시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증거는 이 땅에 우리를 구원하러 오실 ‘메시아’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바로 구약에서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하나님께 드려진 ‘어린 양’의 희생제물, 곧 <화목제물>과 여러 선지자들의 <예언의 말씀들>이 오실 메시아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화목제물’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되심의 완벽한 상징성과 그 희생제물 되심의 의미를 그동안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런 주님의 화목제물 되심으로 말미암아 그의 피로 인하여 그를 믿는 우리 성도가 얻게 된 놀라운 결과가 무엇인지를 함께 계속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시간 사도는 주님의 ‘화목제물’되심의 그 강력한 권능이 어떻게 역사하는 것인지를 이렇게 선포했음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자 되었느니라” (v. 24)라고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어린 양’되셔서 죽으심으로 그의 피로 인하여 우리의 죄를 구속하심으로써, 그를 믿는 우리의 모든 죄값을 대신 갚으심으로써,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의롭다고 불러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신의 의를 통해 율법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 핵심적 근거요, 그리스도의 ‘화목제물’되심이 가져온 복된 결과가 무엇인지 하는 골자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화목제물’되심을 통해 가져온 우리 인간이 얻게 된 은혜와 축복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그것은 ‘구원’ (salvation)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 ‘구원받았다’는 것을 성경에서는 다양하게 표현하는데, 이를테면 ‘죄 용서 (씻음) 받았다’, ‘영생을 얻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천국시민이 되었다’ 그리고 ‘의롭다 하심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사도는 ‘화목제물 되신 주님의 십자가의 대속죽음을 통해 그를 믿는 우리 성도가 누리게 될 구원의 은혜’를 <의롭게 되었다>라는 개념을 통해 그 무엇보다도 잘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저는 성도 여러분과 함께 오늘 사도 바울이 <로마서 3장>을 마무리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화목제물 되심’에 이어 마지막 ‘소주제’가 되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음>이라는 구원의 진리가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 하는 점을 살펴보기 원합니다. 다시 말해,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구속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값없는 그 크신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받게 된 자’가 되었음을 살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한 희생제물 되심을 가장 영적으로 잘 밝힌 것이 ‘그리스도의 화목제물’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25절>입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v.25)라고 말입니다.
이처럼 <25절> 전반부에서 사도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어린 양’ 곧 ‘우리 인류의 죄를 대신 지고 피흘려 드리는 화목제물’로 세우셨다고 선언하고 나서, 그 후반부에서 그 영적 이유를 또한 분명히 밝히는 것입니다. “~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v.25b)라고.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사실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 아니십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조금도 악이 함께 하지 않으신 의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사도는 왜 굳이 이런 사실을 재삼 여기서 강조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제물로 삼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 어느 누군가에게 있어서는 <공정성>의 문제로, 다시 말해 ‘이미 하나님께서 세우신 공의의 기존이 되는 <율법>과 충돌하지 않을 것인가?’라고 누군가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음을 사도는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26절>에서 사도가 주장하는 말씀 저변에 깔린 배경 (의미/이유)입니다. “곧 그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v.26) 여기서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내어 주셔서 우리 대신 죄를 사하여 주신 율법 외에 주신 구원의 방법이, 율법을 범함으로 자신의 의로우심에 손상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신의 의로우심을 더욱 밝히 보여주신다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제 저는 성도 여러분과 함께 ‘왜 복음이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가?’를 분명히 밝히는 <롬. 3장>에서 후반부 마지막 단락을 마무리하며, 복음 안에 흐르는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그 은혜를 묵상하고 깨닫아 나가기 원합니다. 그것은 바로 “무엇이 복음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의>일까?”하는 것입니다.
첫째, “율법의 행위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로마서 1장18절>에서 ‘왜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부터 임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여러 주를 거쳐서 살펴본 결론인 것입니다. 우리는 <1장18절>에서 시작하여 <3장18절>에 이르기까지 ‘우리 인간의 죄가 그 얼마나 암덩어리와 같이 치명적이며, 우리의 힘으로는 그 죄에 대해 전적으로 무능하고, 그 죄에 대해 전적으로 사로잡힌 바 된 존재’임을 그동안 확인해 보았습니다. 그럼으로 사도의 결론이 <3장 20절>말씀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 3:20)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조금도 죄가 없으신 분이시요, 죄를 방관하실 수 없는 분이시기에 그 죄는 반드시 정죄되고, 값을 치뤄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의로우신 성품과 세상만물을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그 기준이 되는 것이 <율법>인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율법이 문제가 아니라, 그 선한 율법의 기준을 지키지 못하고, 그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죄 아래 속한 우리 인간이 문제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가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여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롬. 3:10)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 3:23)라고 선언하는 이유입니다. 이것이 <죄의 강력한 힘에 사로잡혀 벗어나지 못하는 죄악된 인간> 곧 <총체적인 죄악에 속한 인간의 실존>을 고발하는 대표적 말씀일 것입니다.
따라서, 복음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의’는 그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인간은 스스로 힘과 노력으로는 하나님의 선한 율법을 지켜 행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해 주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우리의 벗어날 수 없는 강력한 죄의 힘 (=법)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우리 인간은 그 누구도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하심’ 곧 ‘구원’을 얻을 육체가 없고, 단지 죄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아들을 화목제물로 우리 죄를 대속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이렇게 우리 인간이 율법을 지키지 못함으로 상황이 종료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는 아직도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제 자신보다도 저를, 여러분 자신보다도 여러분을 더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내어 주심으로, 우리가 져야 할 죄의 저주를 대신지고 피 흘려 그 죄값을 주께서 남김없이 치루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정확히 그 복음의 축소판이라 일컬어지는 <요한복음 3장16절>의 중심 메시지 아닐까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제가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가 가장 진하게 농축된 이 <요한복음 3장16절>말씀에서 깨닫게 되는 것 한가지는, 이 말씀이 일부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만민구원’을 결코 뒷받침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신 이유’는 ‘그의 아들을 믿음으로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시고자 하심’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내 아들을 너희 죄를 위해 대신 내어 주었으니, 이제 너희들은 마음데로 살아도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라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 주신 그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바로 ‘그의 피를 믿음으로써’ 죄 용서함 받고,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복음 안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의>를 통해 이해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어린 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화목제물 되심’은 ‘우리가 구원받을 만한 완전한 근거를 마련’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화목제물’의 의미라는 것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믿을 때, 그 피의 근거로 나의 모든 죄를 갚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경험하게 된다고 ‘복음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의 피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렇다면, 우리의 구원을 위해 무엇이 남았다고요? 그렇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우리는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처럼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십자가에서 화목제물로 내어 주셔서, 우리가 죄 씻음 받고 구원 얻을 ‘율법 외의 다른 한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약 믿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제가 이미 앞에서 <요한복음 3장16절> 말씀에 내포된 ‘구원의 의미’에서 강조했듯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주신 독생자’의 ‘대속 죽음과 그 피의 권세’를 믿지 않고 거부한다면, 구원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을 때, 영생은 누릴 수 없고, 멸망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의’가 선언하는 핵심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자 되었느니라” (v. 24)라고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v. 28)는 뜻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의 아들을 통해 허락하신 구원의 은혜는 오직 믿음을 통해 죄 용서함 받고, 믿음을 통해 의롭다고 불러 주시는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넷째,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많은 크리스챤들이 <로마서>에 기록된 ‘하나님의 복음’ 곧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복음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자 할 때, 대부분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3번째>’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것으로 복음의 뜻과 의미를 마무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구원받는다’는 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나누었듯이, ‘로마서의 주제’일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복음을 통해 드러내신 <하나님의 의>의 핵심’임을 저는 믿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며 우리가 반드시 깨닫아야 할 것은 ‘복음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의로우심’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복음 중의 복음이라고 일컬어지는 로마서 말씀을 통해 궁극적으로 깨닫아야 하는 것은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의로우심>인 것입니다. 그것이 정확히 오늘 본문말씀 <25~27절>말씀입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그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v. 25~26)
이것이 왜 우리가 자랑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믿음은 구원의 도구이지, 구원의 근거가 아닌 것입니다. 구원의 근거는 우리를 위해 ‘화목제물’되신 예수 그리스도요, 만세 전에 우리를 위해 그의 아들을 통해 우리의 구원을 계획하신 하나님 아버지인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자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즉 자랑할 때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v.27)라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게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게 되셨습니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러분이 마음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된 것도, 믿음을 통해 신실하게 주의 제자로 살고자 하는 결단과 헌신의 마음을 가지게 된 것도 하나님의 한량없으신 은혜인 것입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 곧 그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v. 25~26) 우리를 그의 사랑과 자비로 인하여 그의 아들의 피로 구원하실 뿐 아니라, 이런 구원까지도 하나님의 절대적 공의에 벗어나지 않고, 도리어 자신의 의로우심과 영광을 찬란하게 드러내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이 시간 찬양과 경배를 올려 드립니다. 바라기는 성도 여러분 모두 평생의 삶을 통해 이 선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된 권세가 어떤 것인지를 날마다 더욱 깨닫고 누려 나가시길 소망합니다.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녀로써, 아버지의 무한하신 의와 자비를 누리는 그의 자녀되어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며, 복된 자녀의 권세를 누려가며, 약속하신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어가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