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목제물” (II) (The Propitiation)
“화목제물” (II)
(The Propitiation)
5-3-26
본문말씀: 로마서 (Romans) 3:23~25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For all have sinned and come short of the glory of God;)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Being justified freely by His grace through the redemption that is in Christ Jesus:)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Whom God has set forth to be a propitiation through faith in His blood,)
[설교 요약]
우리는 계속해서 ‘화목제물’을 주제로한 두번째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지난 시간 ‘화목제물’ (The propitiation)을 성경적으로 정의하면서 “<화목을 위한 제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달래고,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관계를 평화로 회복하는 제물”임을 알아보았습니다.
사도는 이제 “그러나 이제는” (롬.3:21a)이라고 시작하는 ‘3장21절’ 말씀에서 ‘율법 이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남으로’ 구원 얻는 길을 열어 놓으셨음을 선언합니다. 그 길이 무엇이라구요? 그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3:22) 주어진 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게 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그것이 <24절>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v.24)라고.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게 될 때, 그분께서 우리 죄를 갚으시고자 (=구속)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값없는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어떻게 예수께서 우리 죄를 대신 갚으셨는지?’를 정확히 밝혀주는 말씀이 이어지는 <25절>입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v.25)고 말입니다. 한마디로 자신이 ‘화목제물’되심으로 그의 피로 우리의 죄를 갚으신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인 복음’ 안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의’는 <예수님의 화목제물 되심>을 통해 구원으로 놀랍게 역사하는 것입니다. 한편, “무엇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화목제물 되셨다는 뜻일까요?” 그것은
첫째,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셨다’는 뜻입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 1:29)고 주의 길을 예비한 침례자 요한이 선포했듯이, 주의 화목제물 되심은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셔서 그의 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희생제물 되셨다는 뜻입니다.
둘째, ‘새 사람이 되셨다’는 뜻입니다: 한편 예수님의 ‘화목제물’되심은 단순한 우리 죄를 위한 ‘속죄’만이 아니라, 다시 살아나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인 ‘마지막 아담’ (고전. 15:45) 곧 <새 사람>이 되셔서, 그를 믿는 모든 자들을 또한 그의 생명 안에서 새사람 되게 하십니다 (갈. 2:20).
셋째, ‘천국시민의 본을 보이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 12:24)고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주님은 ‘죽어지는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성도들이 어떻게 천국시민의 합당한 삶을 살아갈 것인지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죽어짐’을 통해서 말입니다.
바라기는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하나님과 평화을 누리고, 가족과 이웃을 하나님과 화목케 하는 일에 쓰임 받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설교 전문]
우리는 지난 시간 하나님의 구원역사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의 중심에 있는 ‘화목제물’이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와 중요성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먼저 그 사전적 의미와 성경에서 화목제물이 상징하는 영적 중요성을 구약의 <레위기서> 뿐 아니라, 신.구약 성경 전체에서 묵상해 보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계속해서 ‘화목제물’이라는 그 개념을 중심으로 구원의 근거를 이해해 나가기 원합니다. ‘복음 안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의>를 통해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화목제물>과 어떻게 연결되고, 영적으로 맞물려 있는지 확인해 보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나의 행위와 노력 이전에 하나님의 어린 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제물 삼으심으로 율법 외에 자신의 의로우심으로 예수 믿는 우리를 죄 용서하시고, 의롭다 하심으로 구원을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측량할 길 없는 그 사랑과 은혜를 더욱 깨닫아 나가고, 풍성히 누려 나가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먼저 우리는 지난 시간 ‘화목제물’이라는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살펴보았습니다. 성경적 어원으로써 <화목제물/The propitiation>은 “<화목을 위한 희생제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달래고, 우리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관계를 평화로 회복하는 제물”이라고 정의하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율법이 아니라 전혀 다른 방법으로 우리 인간에게 구원받는 길을 제시하신 <하나님의 한 의>가 되는 ‘복음’ (Gospel)의 중심근거가 되는 이와 같은 <화목제물>이라는 단어와 그 개념을 싫어하는 신학자들과 일부 복음주의자들이 있음을 또한 나누었습니다. 그들이 왜 싫어할까요? 그 이유는 첫째, ‘화목제물’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희생제사로 드려지는 제물> 곧 ‘피를 흘려 그 생명의 희생으로 드려지는 제물’이 뜻하는 개념을 ‘고대 유대인들의 미개한 종교의식으로 치부하고, 고등종교인 우리 기독교는 더 이상 이와 같은 원시종교적 형태의 ‘피의 제사’는 폐기처분 되어야 한다고 그들은 주장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둘째는, 이 ‘화목제물’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진노’라는 것은 그분의 성품과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언제나 사랑과 용서와 자비의 하나님인데, 이처럼 진노하는 하나님은 마치 ‘그리스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처럼 화내고 미워하는 식의 불완전하고 미성숙한 신적 개념이기에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이들은 <화목제물>이라는 단어 대신에 <대속> 혹은 <속죄>이라는 정도의 단어로 그 의미를 희석하고 약화시키고자 노력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것이 지난시간 우리가 함께 살펴본 중심 내용인데, 우리는 계속해서 ‘화목제물’에 담긴 그 중요한 구원의 의미를 묵상해 보겠습니다. 저는 먼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로써 제시하신 복음의 주인공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무슨 일을 행하셨는지?’를 살펴보기 원하는데, 그것을 영적으로 탁월하게 설명한 것이 오늘 본문말씀인 <24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v.24)라고 말입니다.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이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셔서 우리의 죄값을 대신 갚으심으로, 그를 믿는 우리를 값없는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고 불러 주심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24절>말씀 한절 안에 기독교의 핵심교리가 가득 담겨 있음을 여러분은 보십니까? 그것은 <죄에 대한 ‘구속’ (redemption)>,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를 믿음을 통해 의롭다고 불러 주시는 ‘칭의’ (justification)> 그리고 <우리의 어떤 행위나 노력 없이 하나님의 거져 주시는 구원의 은혜, 즉 ‘값없는 하나님의 은혜’ (Free grace of God)>가 그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값을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대신 담당케하여 모두 갚게 하심으로, 우리는 아무런 행함 (공로)없이 오직 믿음을 통해 의롭다 불러 주시는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의 복을 누리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Not by our works, but by the grace of God). 이것이 ‘왜 복음이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지?’에 대한 정확한 근거 (대답)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의 주인공 되신 예수님을 믿게 될 때, 우리는 자격이 없지만, 오직 예수님의 의로우심으로 우리 죄를 대신 갚아 주시고, 값없이 의롭다 불러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성도가 받은 구원인 것입니다.
이렇게 사도는 우리 모든 성도가 구원의 근거가 되는 ‘복음 안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의가 역사하는 방식’을 <24절>에서 영적으로 놀랍게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다시 한번,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성도의 죄를 어떤 방법으로 구속하셨는지? (대신 갚으셨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25절>입니다. 그것은 바로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 (3:21)인데, 구약에서 행했던 ‘<화목제물> (The propitiation) 되심으로써’라는 것입니다. 사도는 말합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v.25a)라고 말입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속하심> 곧 <대신 죄 값을 치루게 하심>’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25절>을 통해 정확히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그를 <화목제물>로 삼으심으로 우리를 향한 죄용서와 구원의 역사를 행하셨다고 사도는 밝히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우리가 사도 바울의 말씀을 통해 살펴본 ‘화목제물’의 의미를 살펴보았는데, 이제 남은 시간 큰 그림에서 <화목제물>이 의미하는 바를 함께 묵상해 보겠습니다.
먼저 ‘화목제물’의 그 의미를 살펴봄에 있어서, 청교도의 최고 신학자로 일컬어지는 <존 오웬>은 이렇게 4가지로 ‘화목제물’이 성립하는 조건을 설명합니다. <첫째, ‘가해를 중단’해야 하고, 둘째, ‘피해자를 유화’시켜야 하고, 셋째, ‘가해자는 상해의 책임’을 져야 하고, 넷째, ‘가해를 사유케하는 희생’을 취뤄야 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화목제물 되셨다는 뜻일까요?” 그것은
첫째,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셨다’는 뜻입니다: 제 개인적으로 성경말씀을 묵상하면서 놀랍게 깨닫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신구약 성경의 그 수많은 말씀은 읽고 묵상하면 할수록 서로 통하고, 하나로 연결된다는 사실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화목제물’인 것 같습니다. 제가 2주전에 “그러나 이제는 율법 외에~”라고 시작하는 <로마서 3장21절>말씀을 중심으로 설교말씀을 나누며, 하나님께서 율법과 전혀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 자신의 의를 나타내심으로 우리 인간을 구원할 길을 제시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이와 같이 ‘인간을 새롭게 구원하는 길은 하나님께서 이제 사도 바울에게 처음으로 보여주시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구약의 율법과 선지자들에 의해 증거를 받았고, 예시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한다면, <구약에 기록된 ‘하나님의 복음’> 혹은 <구약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암시/예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찌되었건, 분명한 사실은 대부분의 구약에 속한 유대인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이미 율법과 선지자를 통해 율법 외에 우리 인간을 구원할 하나님 자신의 한 의로우신 방법을 보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우리를 구원할 복음의 주인공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의 말씀들에 대해서는 제가 지난 몇 번의 설교를 통해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그 중에서 특별히 오늘 주제와 관련해서 그리스도의 이 땅에 오신 목적과 그분의 삶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는 단어가 바로 <화목제물>이라는 것을 우리는 놓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화목제물’이라는 단어가 구약에서 ‘희생제사로 드려지는 제물’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화목제물>을 드리게 된 매우 분명한 출발점이 <출애굽기>에 나와 있는데, 하나님께서 악한 애굽의 바로 왕에게 마지막 열번째 재앙인 죽음의 사자를 보내어 그의 장자와 그에 속한 애굽의 모든 가정의 장자를 죽게 하셨을 때, 이스라엘민족의 집에는 문지방과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바름으로 죽음의 사자가 건너감을 기념하여 제정케 하신 ‘유월절 화목제물의 제사’가 그것입니다. 그 이후에 <레위기서>에 집중적으로 기록되어 있듯이 유대민족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실 때까지 <화목제물>의 희생제사를 하나님께 죄 용서함 받는 근거로 계속해서 드렸던 것입니다. 이렇게 1400여년이 지난 후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는데, 그분은 왜 이 땅에 오신 것일까요? 그분이 오신 목적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여러분도 잘 알듯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살리기 위해 그의 살을 찢으시고, 그의 보혈을 쏫으심’으로, 곧 ‘자신을 화목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시고자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침례자 요한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어린 양> (The Lamb of God)이라고 선언했던 것입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 1:29)고 말입니다.
그런데 앞서 살펴본 것처럼 출애굽사건때, 이스라엘 가정의 모든 장자의 목숨을 대신해서, 그리고 계속해서 유대인들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하나님께 ‘화목제물’로 드려졌던 ‘유월절 어린 양의 제사’은 그 어떤 것보다도 <오실 메시아가 어떻게 우리를 구원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그리고 극명하게 영적으로 보여주는 율법과 선지자들의 증거>가 됨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난 <부활절 메시지>를 함께 나누며, 제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그 타이밍 (그분의 때/카이로스)이 그 얼마나 정확하게 구약의 ‘유월절 어린 양’의 화목제물로 드려지는 기간과 절묘하게 일치하는 것인지를 함께 나누며, 참으로 감탄했던 이유였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목박혀 죽으시기 전날 밤, 그의 제자들과 나누셨던 ‘유월절 성만찬’은 바로 ‘자기 자신이 <유월절 어린 양>이 되셔서 우리 죄를 담당하시고 하나님께 화목제물로 드려지는 것’임을 분명히 밝히신 사건인 것입니다. 이것이 제자들에게 떡을 나눠 주시며, “이것을 받아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마. 26:26)하시고, 또 포도주 잔을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 26:27~28)는 말씀하신 뜻입니다.
주님은 이처럼, 유월절 절기 마지막 성만찬을 베풀며, 하나님께서 출애굽 당시에 모세를 통하여 제정하시고 명령하신 유월절 절기의 절정인 유월절 어린양을 화목제물로 드리는 희생제사가 바로 자신을 예시한 것임을 마지막 성만찬을 통해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곧 출애굽 당시 유월절 어린 양을 드린 후 1400년이 지난 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자 되신 예수님 자신이 이 땅에 오셔서 행하실 임박한 ‘대속죽음’을 증거하는 것이 구약의 희생제사인 <화목제물>의 제사라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예수님은 이제 정확히 유월절 어린 양이 되셔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셔서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 되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와 저주를 한 몸에 받고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 죽으셨고, 죽은지 3일만에 다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그를 믿는 모든 자를 자기의 피로 깨끗케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그를 믿는 우리를 의롭다고 불러 주시고, 구원케 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셨다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께서 화목제물 되셨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둘째, ‘새 사람이 되셨다’는 뜻입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화목제물’이 되셨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로 ‘새 사람’이 되었음을 의미한다고 이해합니다. 물론 ‘새 사람이 된다’는 것과 ‘화목제물이 된다’는 것은 그 개념으로 볼 때는 서로 동일한 것은 아닙니다. 지난번 제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3일만에 다시 살아나심으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심으로 이제 그분을 믿는 우리 모든 성도는 다시 살아나게 되어 주님의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음을 함께 나눈 바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될 때, 구원을 얻는다>는 궁극적인 의미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내가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될 때, 죄 씻음 받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는데, 여기서 영원한 생명의 구원을 얻었다는 것은 죽어서 가는 천국에서의 삶 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영접하는 순간, 그 분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 곧 ‘조에’가 나를 다시 살림으로 내가 이 땅에서부터 영생의 은혜를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로마서 6장>에서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롬. 6:5)고 선언합니다. 이 말은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게 될 때,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또한 그와 함께 다시 살아나게 되었다’고 사도는 영적으로 잘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내가 예수님을 믿게 될 때, 과거에 아담과 육에 속한 나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이제 예수님과 함께 그분의 생명을 덧입고 다시 살아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밤에 주님을 찾아와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을지를 알기 원했던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 3:5)고 말씀하신 뜻이요, 예수님을 ‘영접한 성도가 물 속에 잠겼다가 다시 일으킴을 받게 되는 <침례의식>’이 상징하는 정확한 영적 의미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사람이 구원받게 된다는 것, 곧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은 우리 성도가 죽어서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으로 설명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깨닫고, 그분을 영접하게 된 상태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주님은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 17:3)라고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이 땅에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요, 구원인 것입니다. 그리고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첫째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될 때, 나는 화목제물 되신 예수님의 피로 죄사함 받고,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됨으로 장차 죽어서 가는 천국 이전에 이미 이 땅에서 허락하신 천국시민의 권세를 누리며, 하나님의 은혜가 지배하는 영토(영역)에서 살아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을 때, 앞서 살펴본 것처럼 예수님의 생명, 곧 ‘영원한 생명’ (조에)를 통해 다시 살아나게 됨으로 내 영적 신분은 ‘영생을 소유한 새사람’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갈. 2:20>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목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갈. 2:20)고 신앙고백한 이유입니다. 또한 이와 같은 ‘새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C.S 루이스’가 그의 책 <순전한 기독교>에서 설명했듯이, 우리 성도가 예수님을 믿게 될 때, 변화된 존재인 것입니다. 이전에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범죄함으로 ‘원죄’를 물려 받고 태어난 모든 인류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새사람’이 되었다고 C.S 루이스는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난주 침례식 때 나누었듯이, <챨스 스펄젼>목사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나쁜 사람을 좋은 사람으로, 그리고 좋은 사람을 더 좋은 사람으로 변화시키시고자 오신 것이 아니라, 죽은 자를 살리고자 오신 것”입니다. 자신을 화목제물로 드리심을 우리를 모든 죄에서 구속하시고, 죽었던 우리를 자신의 생명으로 다시 살리시고자 오신 것입니다. 아담에 속한 옛사람은 완전히 죽고,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그럼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화목제물 되셨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우리를 그의 피로 모든 죄의 속박과 권세에서 벗어나게 하심으로, 영으로 죽었던 우리를 자신의 생명으로 다시 살리셔서 ‘새사람’이 되게 하시고자 함임을 깨닫게 됩니다.
셋째, ‘천국시민의 본을 보이셨다’는 뜻입니다: 이제 저는 마지막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화목제물 되셨다’는 의미는 우리 성도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써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시는 본이라고 믿습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주님의 ‘화목제물 되심’은 ‘우리 성도가 천국시민의 합당한 삶을 살아 갈 것인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 주시는 본’이라고 믿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의 삶을 본받을 것인가에 대해,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도전하였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 2:5~8)고 말입니다. 사도는 우리 구원받은 성도들을 향해 ‘그리스도의 마음’을, 곧 ‘그분의 마음과 이 땅에서 보여주신 삶’을 본받으라고 도전합니다. 그리고 그 <본의 삶>은 한마디로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기를 낮추심’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신 삶> (빌. 2:8)이란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의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복종한 삶’이 바로 <화목제물 되신 삶>임을 우리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면, 주님은 자신 뿐만 아니라, 그를 믿고 따르는 우리 모든 크리스챤들도 이와 같은 ‘화목제물’의 삶을 살아가기를 기뻐하시리라 저는 믿습니다.
물론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셔서 <화목제물>로 우리 모든 죄를 대속하신 죽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 어떤 우리 인간도, 그 어떤 하늘의 천사도 그 완전한 인간이자 완전한 하나님이신 주님의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심의 조건을 충족할 존재는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어린 양’되셔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본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예수님께서 화목제물 되셔서 보여주신 십자가 위에서의 완전한 속죄의 죽으심과 승리’를 행할 수 없고, 그것은 이미 주님께서 완벽히 성취하셨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더욱 주님으로부터 본받고 추구해야 하는 것이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께서 화목제물 되셔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와 영광을 주셨듯이, 우리도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복종함으로 ‘화목제물’의 삶을 살아 가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화목제물의 삶은 곧 하나님과 평화의 관계의 삶이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원수 되어 살아가는 자들을 그분과 화목된 관계로 회복되는 일에 쓰임 받는 삶임을 믿습니다.
만약 성도 여러분이 이와 같은 ‘하나님의 자녀’로써 주님의 삶을 본받기 원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저는 그 무엇보다도 주께서 임박한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시고, 제자들에게 격려하고 도전하셨던 한가지 말씀을 성도 여러분과 나누고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그 말씀은 <요한복음 12장>에서 ‘한 알의 밀알’이라 불리는 말씀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요. 12:24~25) 주님은 ‘한알의 죽어지는 밀알’이 상징하는 ‘자신의 십자가의 죽음’과 ‘그로인한 수많은 생명의 구원’을 암시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자신의 죽음만이 아니라, 그를 믿고 따르는 제자들에게 분명히 ‘한 알의 죽어지는 밀알이 될 것’을 도전하시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왜냐하면, 죽지 않을 때 우리는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고 한알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죽지 않을 때,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시민에 합당한 사랑과 영에 충만한 열매’를 맺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주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을 향해 ‘한알의 죽어지는 밀알이 되라’고 도전하시는 것입니다. 주께서 보여주신 ‘화목제물’의 본을 통해서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죽어지는 밀알이 될 수 있을까요?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요. 12:25)라고. 주님은 나의 이기적인 마음, 세상을 향한 사랑, 곧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사랑치 말고, 미워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참된 제자의 삶’ (마. 16:24)임을 우리는 잘 압니다. 이제 주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보여주신 ‘화목제물의 순종’으로 죄 씻음 받고,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된 은혜에 속한 자로써, 풍성한 열매 맺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 기대합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새사람’되어, 주님의 모범을 따라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한 알의 죽어지는 밀알이 되어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또한 가족과 이웃을 하나님과 화목케 하는 축복된 일에 쓰임 받는 여러분 모두 되시길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