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il 26, 2026

“화목제물” (I) (The Propitiation)

Preacher:
Passage: 로마서 (Romans) 3:23~25
Service Type:

“화목제물” (I)

(The Propitiation)

4-26-26

본문말씀: 로마서 (Romans) 3:23~25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For all have sinned and come short of the glory of God;)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Being justified freely by His grace through the redemption that is in Christ Jesus:)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Whom God has set forth to be a propitiation through faith in His blood,)

 

[설교 요약]

          우리는 지난시간 <로마서>전체에서 가장 중대한 국면전환을 가져오는 <롬. 3:21>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저는 이번주와 다음 주에 걸쳐 <화목제물>이라는 주제로 말씀으로 묵상고자 합니다.

먼저 ‘화목제물’ (The propitiation)은 <표준국어대사전>에서 “① 죄로 인하여 깨어진 피조물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하여 바치는 제물, ②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를 뜻한다”라고 정의합니다.

한편, 성경에서 그 어원적으로 보면, “화목(샬롬)을 위한 희생제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달래고, 그분과 원수 되었던 관계를 평화롭게 회복하는 제물”이라 정의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신학자들이나 복음주의자들 중에서 <레위기서>와 같은 구약성경에서 비롯된 <화목제물>이라는 ‘개념’을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화목제물’이 뜻하는 ‘피의 희생제물’의 의미를 ‘고대 유대인’의 원시적인 종교형태로 폄하하고, 또한 ‘하나님의 진노’는 그분의 사랑과 용서의 성품과 모순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로마서 6장>에서 “죄의 삯은 사망이요” (롬. 6:23)라고 하나님의 진노를 유발한 인간의 죄는 사망을 가져오며, 히브리서기자는 “피 흘림이 없은 즉 사함이 없느니라” (히. 9:22)라고 죄의 사함을 오직 ‘피흘림’ (=희생제물)을 드림으로 가능함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것이 ‘왜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를 화목제물로 세우셨는지?’를 사도가 설명하는 이유입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v. 25)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셔서 ‘죄 없는 자로써, <화목제물>로 십자가 위에서 그의 보배로운 피 흘려심으로 그를 믿는 우리를 살리시고자 함’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실 뿐 아니라, 더 풍성하게 얻게 하시려고’ (요. 10:10) 오셨습니다. 바로 우리를 ‘구원’하실 뿐 아니라, ‘하나님과 화목’된 평화와 충만한 은혜의 관계로 회복시키고자 오신 것입니다.

우리는 다음 시간에 그렇다면 ‘무엇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화목제물이 되셨다는 뜻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모쪼록 성도 여러분 모두 ‘화목제물’되신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게 되어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고, 주의 영 성령 안에서 생명의 열매를 풍성히 맺어 가시길 소망합니다.

 

[설교 전문]

          우리는 지난시간 <로마서>전체에서 가장 중대한 국면전환을 가져오는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롬. 3:21>에서 “그러나 이제는” (But now)라고 시작하는 말씀을 통해 사도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율법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경이롭게 우리 인간의 구원을 제시하셨음을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복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의>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에게 증거를 받은 것들이라” (v. 21)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의>가 어떻게 우리를 구원한다고요? 그것은 우리가 율법을 행함으로서가 아니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될 때, 그분의 의로우심을 받게 됨’으로 죄용서받고, 의롭다 함을 얻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22절>의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v.22)라는 뜻입니다. 이제 저는 오늘과 다음 주 두 번에 걸쳐 <화목제물>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화목제물이라는 단어가 가진 중요성, 곧 로마서뿐 아니라, 성경전체에서 가장 깊고 넓은 구원의 은혜로 상징되는 단어의 하나인 ‘화목제물’이 가진 올바른 의미를 깨닫고, 말씀 가운데 넘쳐 흐르는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사랑을 더 깊이 깨닫고 누리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저는 이번주에 먼저 오늘 말씀의 주제가 되는 ‘화목제물’이 갖는 사전적인 정의와 함께 역사적인 의미를 그동안 기독교 교회 역사에서 이 ‘화목제물’이라는 단어가 어떻게 인식되고, 취급을 받았는지를 통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다음 시간에는 ‘화목제물’의 성경적 의미 (영적 의미)를 살펴보고, 그 의미의 중요성에 대해 함께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그러면, 먼저 ‘화목제물’의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겠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화목제물’이란 <(기독교에서) 죄로 인하여 깨어진 피조물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하여 바치는 제물/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를 뜻한다>라고 정의합니다.

먼저 오늘날 여러 성경번역에서 ‘화목제물’로 된 <흠정역>이나 <개역한글>이 있는가 하면, <우리말성경>이나 <새번역>등에서는 ‘속죄제물’로 번역하고 있음을 우리는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속죄제물’은 영어로 ‘sacrifice of atonement’ 혹은 ‘sacrifice of expiation’이라고 번역됩니다. 물론 여러분 중에서 그 말이 그 말 아니냐는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 신앙인의 구원을 결정하는 중요한 단어에 대한 올바른 성경적 이해를 할 수 있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복음으로 인한 구원’을 바로 이해하는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이 단어의 의미를 바로 이해하는 것은 중요함을 저는 믿습니다. 핵심적으로 말해서, <화목제물>이 ‘구약시대에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고, 평화를 이루기 위해 드리는 제물’인데, <속죄제물>도 ‘인간의 죄를 속하기 위해 드리는 제물’이라는 의미에서는 비슷하기도 하지만, ‘화목제물’이 훨씬 정확하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을 본질적으로 밝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오늘 본문 <3장25절>에서 사도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v.25)라고. 이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그의 피를 통하여 그를 믿는 자들의 죄를 대신하여 ‘화목제물’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화목제물’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저는 먼저 오늘 말씀을 구약의 <레위기서>말씀에서 함께 시작하고자 합니다. <레위기서>는 지난 시간에도 잠깐 언급했듯이, 구약성경에서 ‘우리 인간의 죄가 어떻게 하나님으로부터 용서함 받을 수 있는지?’를 영적 방법으로 가르쳐 주고, 궁극적으로 우리 인간이 어떻게 구원을 얻을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레위기서>라고 저는 이해합니다. 그런데, 이 <레위기서>에서 보면, 인간의 죄목에 따라 다양한 짐승의 제사들이 요구되지만, 그 모든 ‘희생제사들’을 통해서 공통적으로 흐르는 중심사상은 <나의 죄로 인하여 그 어떤 짐승이 희생하게, 곧 ‘피를 흘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죄는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로마서 6장>에서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롬. 6:23)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 죄는 반드시 대가를 치루게 된다는 것이요, 그 대가는 ‘생명의 희생’ 곧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와 같은 ‘희생제사’가 상징하는 ‘죄에 대한 결과로서의 생명의 희생’ 곧 ‘죄의 형벌’로서의 ‘생명의 희생’은 ‘레위기서’ 뿐만 아니라, 신구약서 전체를 꿰뚫고 흐르는 영적 법칙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사도가 <로마서 1장18절>에서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 인간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해 하늘로부터 좇아 나타났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진노’는 한마디로 우리 인간의 죄에 대한 결과임을 생각해 볼 때, ‘우리 인간의 죄로 인한 생명의 희생’은 변함없이 하나님께서 세상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의로운 율법’에 숨쉬고 있는 영적 법칙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율법에 흐르는 영적 법칙을 히브리서 기자는 한마디로 “피흘림이 없은 즉 사함이 없느니라” (히. 9:22)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신학자들’과 일부 복음주의자들 가운데는 ‘희생제물’ (화목제물)이라는 단어와 그 개념을 매우 싫어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첫째 ‘구약에서 고대 유대인들이 행했던 제사의식은 <원시종교 의식>의 산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흔히 문헌이나 영화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원시사회는 ‘피의 제사’와 같은 원초적인 제사들이 신에게 행했지만, 이제는 이런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하나님은 사랑과 용서와 자비의 하나님’인데, 이처럼 ‘진노하고, 피의 제사’를 요구하는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의 개념과 맞지 않다’는 것입니다. 앞서 본 것처럼, 비록 고대 구약의 하나님은 무섭고 화내는 진노의 하나님이라고 할지라도, 신약의 하나님은 보다 발전한 개념의 하나님으로써 ‘진노와 심판’이 아니라 언제나 ‘포용과 용서’만을 행하시는 하나님이 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피의 제사>와 같은 종교개념은 과거 ‘원시시대’의 종교의식으로써 이제는 폐기처분 되어야 한다는 것이 오늘날 일부 신학자들은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이들은 ‘화목제물’이라는 ‘희생의 개념’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앞서 제가 언급했듯이, ‘우리 인간의 모든 불경건과 불의’ 곧 ‘인간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가 발생했다면, 어떻게 이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트려야 합니까? 다시 말해, ‘어떻게 그 죄를 처리하여 하나님의 선한 율법의 기준을 만족시킬 수 있습니까? 이것이 바로 <롬. 1장18절>에서 <롬. 3장18절>까지 ‘인간의 죄에 대한 철저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3장 21절>을 시작하며, “그러나 이제는”이라고 반전의 접속사를 사용하며 사도는 복음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왜 나타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그것은 오직 ‘스스로의 의’로써 하나님의 자신의 진노를 누그러트릴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의로운 율법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하나님께서 그의 선지자를 통해 약속한 그리스도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죄를 지고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써 ‘화목제물’ 되어 생명을 드리심’으로>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의’가 역사하는 방법입니다. 이와 같이 사도는 하나님의 선한 율법을 지켜 행할 수 없는 우리 인간의 실존, 곧 ‘영적 무능’과 ‘총체적 죄악성’을 <1장18절>에서부터 <3장18절>까지 통렬하게 심판자 앞에서 피고의 죄목을 낱낱이 고발하는 검사처럼 선언하고 나서, “그러나 이제는” (But now)이라는 대국면의 전환을 통해 율법이 아닌 전혀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의 크신 은혜를 제시하셨음을 놀랍게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의’를 통해서>라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하나님의 의’가 역사하는 핵심은 “하나님의 어린 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화목제물’로 그의 생명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그를 믿는 모든 자를 죄 용서하시고 의롭다고 불러 주심으로, 자녀의 권세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가 작동하는 본질적인 영적 원리입니다.

저는 이제 오늘 말씀을 정리하면서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오셨는가?’를 함께 묵상해 보기를 원합니다. 우리 주님은 왜 이 땅에 오셨을까요? 그렇습니다. 우리를 위해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셔서 우리의 죄를 속하시려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된다는 것은 다음 시간에도 살펴보겠지만, 그 어린 양의 피로써 죄 씻음 받아 깨어졌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축복된 화목의 관계, 곧 <하나님을 나의 하늘 아버지로 모시는 그분의 아들과 딸이 되어 권세와 은혜를 누리는 관계>가 되게 하시고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주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와 목적을 ‘히브리서기자’는 이렇게 잘 설명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히. 9:11,12)라고 말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아버지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셔서 십자가 위에서 피흘려 죽으심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성소에 들어 가셨다’는 의미는 무엇을 뜻할까요?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전부터 성자 하나님이시요, 성부 하나님과 영원 전부터 함께 동거하신 거룩하신 분이시지만,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이제 그분을 믿어 죄씻음 받은 우리가 비로소 의롭게 되고, 자신이 이루어 놓은 의의 옷을 입고 ‘하나님의 거룩한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다>는 뜻입니다. 자신의 피의 공로로, 자신이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심으로 율법의 모든 요구를 만족시킴으로 주님의 의로운 옷을 입고 이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거룩한 보좌로 담대히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 4:16)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다음시간에 그렇다면, ‘무엇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화목제물이 되셨다는 뜻인지?’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시간 갖기 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과 제가 예수님을 믿고, 죄 용서함을 받고 구원을 얻게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성도 여러분의 현재의 삶은 만족스럽고, 참된 기쁨으로 충만합니까?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사도 바울은 구원받은 여러분과 저에게 이렇게 도전하고 격려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롬. 4:1)라고. 바라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화목제물 되신 피로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로써, 날마다 하나님 아버지와 더불어 화평을 누리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소망합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의 어린 양 되신 우리 주님으로 인하여, 날마다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감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참된 기쁨과 즐거움을 누려가는 이런 축복된 인생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