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il 12, 2026

“의인은 없나니” (There Is No Righteous)

Preacher:
Passage: 로마서 (Romans) 3:9~12
Service Type:

“의인은 없나니”

(There Is No Righteous)

4-12-26

본문말씀: 로마서 (Romans) 3:9~12

9 그러면 어떠하노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10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설교 요약]

          우리는 지난번 <로마서 2장>에 이어 계속해서 이제 <3장>을 묵상해 가겠습니다. 사도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v. 10~12)라고.

먼저 우리가 지금까지 ‘로마서’가 진행되어 온 전체 흐름을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1장17절>에서 로마서 ‘주제말씀’인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1:17)라고 바울은 복음을 정의합니다.

그리고 나서, 이어지는 <17절>에서부터 곧바로 ‘어떻게 복음이 시작되는 것인지?’를 영적으로 설명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나 용서나 자비’가 아니라, 먼저 ‘하나님의 진노’에서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롬. 1:18)라고.

그렇다면, ‘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되었는가?’를 바울은 <1장19절>에서부터 오늘 본문을 포함한 <3장20절>까지 상세하고도 논리적으로 설명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 인간의 불경건과 불의 때문’이요, 한마디로 ‘인간의 죄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 인간이 얼마나 죄악된 존재인지?’를 사도는 ‘세 장’에 걸쳐 철저하게 복음의 진리로 규명해 나가고 있는데, 역설적인 사실은 ‘이 같은 우리 인간자신의 전적 부패와 총체적 죄악성’을 직시하는 것이 복음의 능력이 역사하는 출발점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사도는 <3장>을 시작하며, 먼저 ‘유대인들이 받은 영적 유익’ (3:1~2)을 언급하면서, ‘죄를 범하는 자들의 온갖 자기 변명과 하나님 탓하는 <인간의 죄성>’을 묘사합니다 (3:3~8).

그리고 이어지는 오늘 본문 <9절>에서 <18절>에 이르기까지 ‘우리 모든 인간은 단 한사람도 예외 없이 죄 아래 놓인 존재’임을 그는 선언합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렘. 17:9)는 예레미야의 선포처럼, 사도는 ‘전적 부패한 인간의 실존’을 고발합니다. 어떻게 부패했습니까?

  • 목구멍은 열린 무덤/ 혀는 속임을/ 입술은 독사의 독이/ 입은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르고/ 파멸과 고생의 길로 가고,
  • 눈은 어둡고 오만하고/ 눈 앞에 계신 하나님을 두려워 않는 것입니다 (v. 13~18)

이렇게 사도는 ‘인간의 죄성’을 철저하게 고발하고 나서, “그럼으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3:20)고 결론을 맺습니다. 바라기는 주의 영, 성령님을 통해 여러분의 허물과 죄를 날마다 고백하고, 그리스도의 의로운 옷을 입고 겸손하게 주와 함께 날마다 육신과 죄와 싸워 승리하시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설교 전문]

          우리는 지난번 <로마서 2장>에 이어 계속해서 이제 <3장>을 묵상해 가겠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사도가 우리 인간의 실존에 대한 놀라운 자화상을 매우 정밀하게 사진을 찍듯 묘사하고 있음을 봅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v. 10~12)라고 말입니다. 저는 계속해서 로마서의 진리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복음의 참된 사역은 그 무엇보다도 우리 인간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진리의 빛으로 철저하게 드러내고 밝히 비춤으로써, 시작됨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진리의 영,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우리 각자의 모습을 겸손히 성찰하고 깨닫는 시간 되기 원합니다. 이런 각자 우리 자신과 또한 모든 인간존재의 적나라한 모습을 복음의 진리 가운데 성령의 은혜로 바로 깨닫아 나감으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의 아들 안에서 허락하신 구원과 의롭게 된 자의 권세와 복된 열매를 맺어 나가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기대합니다.

먼저 저는 성도 여러분과 잠시 지금까지 ‘로마서’가 진행되어 온 전체 흐름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사도가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되는 복음이 무엇인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약속하신 것’ (1:2)이요, <이 아들>은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받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1:3~4)라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복음’은 복음의 주인공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기쁜 소식’인데, 이와 같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원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사함 받고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로마서 전체의 주제 말씀인 <롬. 1:17>말씀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1:17)라고 말입니다.

이렇게 사도 바울은 로마서의 주제인 ‘복음’을 놀랍게 정의하면서 선포하고 나서, <18절>에서 곧바로 ‘복음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인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어디에서부터 시작한다고요?! 이 복음은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 그리고 자비하심’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에서 시작하는 것임을 사도가 밝히고 있음을 여러분은 기억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롬. 1:18,19)라고. 사도는 이처럼 <1장19절>에서 <우리 인간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해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 좇아 나타나게 되었음>을 선언하고 나서,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의 죄의 실체, 곧 모든 불경건과 불의의 실체인지?’를 <1장19절>에서 오늘 본문을 포함한 <3장20절>에 이르기까지 상세하면서도 논리적으로 밝혀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동안 <1장19절>이후에 <2장>을 거쳐 오늘 본문 <3장>에 이어지기까지 사도의 논리를 따라오면서, 우리 인간의 실존의 민낯은 무엇인지를 묵상해 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나눈 사도의 메시지의 중심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모두 죄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 말씀을 앞에서 설명 드린 것처럼, 사도가 1장 18절에서 시작하여 3장20절에 이르는 <우리 인간의 실존>을 고발하는 결론에 해당하는 말씀에 대해서 함께 묵상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사도는 <3장>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런 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뇨, 범사에 많으니 첫째는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롬. 3:1~2)라고 말입니다. 사도는 여기서 다시 한번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고, 그분의 진리의 율법을 먼저 맡은 유대인들의 영적 유익과 특권이 크다는 점을 분명히 밝힙니다. 그리고 사도는 로마서 뒷부분인 <롬. 9~11장>에서 자기 동족 유대인들이 무엇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함으로 구원에서 제외된 것인지를 복음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동족 유대인들이 누렸던 영적 은혜와 특권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이렇게 자세하게 술회합니다. “저희에게는 양자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이 있고,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하면 그리스도께서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롬. 9:4-5)라고.

이와 같이 이스라엘백성, 곧 유대민족은 하나님으로부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은혜의 단비와 특권을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고, 율법을 행하는데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율법을 자랑하고, 조상이 아브라함인 것과 육신에 할례를 받은 표는 자랑했지만, 정작 하나님께서 할례를 명하신 이유와 율법의 정신은 깨닫지 못했기에, 먼저 택함 받은 자의 은혜와 유익을 누리지 못하고 구원의 은혜를 누리는데 실패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난 시간 <2장>을 마무리하면서 사도가 ‘누가 진정한 유대인인가?’라고 질문하고 나서, 그 사람은 ‘몸에 행하는 할례를 행하는 자가 아니라, 마음에 행하는 할례를 행하는 자, 곧 <이면적 유대인>이 참된 유대인이다’라고 사도가 도전했던 이유인 것입니다.

이처럼 유대인의 영적 모순과 율법준수의 실패를 선명히 드러내며 사도가 이어지는 <3~8절>에서 변증법적으로 주장하고자 하는 본론이 <9~18절>까지의 ‘인간존재의 죄성에 대한 고발’이라고 저는 이해합니다. 사도는 오늘 본문에 해당하는 <9절>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v.9)고 말입니다. 그런데, <9절>에서 우리는 몇가지 점을 이해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로, 사도가 <9~18절>까지 마치 ‘법정에서 검사가 피고를 고소하듯이, 법적 용어를 통해 신랄하게, <우리 인간의 존재를 심판자 앞에서 고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가 하면, 또 한가지 주목할 점은 사도가 <9절>을 시작하며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v.9)라고 했을 때, 여기서 “우리”는 누구를 말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 점에 대해 일부 신학자들은 ‘우리’는 <사도 자신을 포함한 동족 유대인들>을 뜻한다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매튜 헨리’와 ‘죤 맥아더’목사와 같은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은 여기서 ‘우리’는 유대인이 아니라, <사도와 이 편지를 받는 로마교회 성도를 포함한 크리스챤 성도들>을 의미한다고 주석합니다. 왜냐하면, 논리적으로 볼 때 사도는 <3장>을 시작하며 앞절에서 이미 유대인에 대한 고발 (도전)을 마쳤기 때문이요, 내용적으로 볼 때도 사도가 ‘우리’라고 말하는 상대는 ‘성도들’이지 ‘유대인들’이 아님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사도는 로마서 전체를 통하여 ‘유대인’을 지칭할 때, 일관되게 ‘우리’ (we)가 아니라 ‘그들’ (they)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게 됩니다 (롬. 3:2; 9:4~5,32; 10:2;16~18; 11:11,14~31).

그럼으로 사도는 우리 인간의 죄성을 고발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마지막 단계에서 사도 바울 자신과 그가 속한 영적 공동체인 초대교회의 구성원인 모든 성도들까지도 예외 없이 진리의 심판대 앞에 세우고, 우리 존재를 정직하게 직시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사도 바울은 우리 크리스챤도 역시 실수하고 동일하게 범죄하는 존재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런 그의 태도에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지난 주 <2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사도는 동족 유대인들과 같이 ‘남을 판단하면서도 자신도 동일한 죄를 범하는 영적 모순’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자신이 속한 영적 공동체인 초대교회 모든 성도들까지도 예외 없이 하나님의 진리의 잣대로 스스로를 돌아봄으로 ‘의인은 없다’고 정직히 성찰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 또한 동일한 죄인이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도는 이방인과 유대인 그리고 우리 크리스챤 성도들까지도 모두 포함해서 우리 모든 인간의 ‘존재상태’에 대해 결론적으로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여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 첫번째 말씀은 <3장10~12절>말씀으로써, <시. 14:1이하; 53:1이하>의 구약의 말씀을 사도가 인용한 것인데, 그것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롬. 9:10~12)라고 말입니다. 이렇게 서로 하나로 연결된 구약의 두 말씀 모두, ‘다윗의 시편’ 말씀인데, 이 말씀이 포함된 <시편 53편>말씀을 보면, 이렇게 시작합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그들은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 각기 물러가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 없으니 한사람도 없도다” (시. 53:1~3)라고. 여기서 사도가 주장하고자 하는 핵심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 인간의 총체적인 죄성’이 아닐까요?! 어느 설교자의 말과 같이 ‘우리 인간은 죄를 범해서 죄인이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범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주께서 유대인들을 향해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마. 12:34~35)라고 도전한 것이 바로 그것이 아닐까요? 이미 속에서 시작되고 쌓여진 악은 반드시 드러날 수밖에 없듯이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레미야가 우리 인간내면의 전적부패를 고발하며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렘. 17:9)고 선포했듯이, 우리 인간은 그 부패한 심령으로 인해 그 누구도 선을 행할 수 있는 자가 없고, 모두 악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단 한명도 예외가 없이 말입니다.

그리고 나서, 사도는 우리 존재를 마치 ‘엑스레이’를 통과하며 온 몸 내부를 구석 구석 확인하듯, 계속해서 구약의 말씀을 통해 그 악한 존재를 ‘입’과 ‘발’과 ‘눈’으로 세분화하여 적나라하게 해부합니다. 먼저 우리의 <입>에 해당하는,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고,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그리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v. 13~14). 또한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르고, 그 발로 걸어가는 길은 파멸과 고생이 있고, 평화의 길을 알지 못하며’ (v. 15~17), <눈>은 ‘어둡고 오만함으로, 눈 앞에 계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다’ (v. 18)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앞서도 제가 말씀드렸듯이, 사도는 지금 <10절>이후의 말씀을 통해 ‘인간의 전적 부패’ 곧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음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함’ (v. 23)을 있는 모습 그대로 진리의 빛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도가 ‘인간의 죄의 실상’을 <1장18절>에서부터 진술하는 가운데 <1장 후반부>에서는 ‘우상숭배, 욕심. 불의, 추악, 탐욕, 시기, 살인, 분쟁, 미움, 무자비 등’과 같은 다양한 <죄의 종류/양상>을 진술했다면, 오늘 살펴보는 <3장13~18절>까지의 말씀은 우리 몸의 ‘입과 발과 눈’의 본래적인 죄성의 모습을 통해 우리 인간의 <총체적이고, 본래적 죄성>을 고발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1장 후반부에서 사도가 언급한 것처럼, 우리 인간이 이토록 다양한 죄를 양산하게 되는 그 본질적인 이유는 ‘우리 인간의 마음이 전적으로 부패했고, 하나님을 떠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사도가 우리 인간의 죄성에 대해 이제 결론적으로 주장하고자 하는 바가 <19~20절> 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함이라” (v. 19)라고. 사도는 <1장18절>에서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이유’인 ‘우리 모든 인간의 불경건과 불의’ 곧 ‘인간의 죄’를 <1장19절>에서부터 시작하여, 이제 <3장18절>까지 적나라하게 고발하여 마무리하면서, 이런 우리 인간의 죄를 <의로우신 심판자 되신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가지고 와서 고소하는 것입니다. 과연 인간의 모든 삶과 행위를 하나님의 진리 되신 율법의 기준과 잣대로 정확히 평가하고, 그분의 심판대 아래에서 판단 받게 하는 것입니다. 결론은 무엇일까요? “그럼으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3:20) 그 어떤 사람도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을 존재가 없다는 것입니다. 단지 율법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죄를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저는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지난 주간 묵상하는 가운데 어느 설교자의 말이 생각 났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은 죄인입니다. 그러나 두 그룹의 죄인이 있습니다. 그것은 ‘용서받은 죄인’과 ‘용서받지 못한 죄인’이 있습니다”라고 말입니다. 이것이 사도가 로마서를 진행해 나가면서, ‘로마교회 성도들’을 향해 질문하는 내용입니다. 이것은 ‘당신은 하나님의 은혜 아래 (영역 안에) 속한 자’인지, 아니면 ‘죄 아래 (영역 안에) 속한 자’인지를 스스로 돌아보고 분별하라는 것입니다 (롬. 6:14~23). 만약 이처럼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의 선하신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고, 그분의 아들을 통해 약속하신 죄 용서함과 영생의 복과 자녀의 권세를 누리기 원한다면, 그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자신을 거짓 없이 있는 모습 그대로, 말씀을 통해 직시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복음의 진리와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나 자신의 씻을 수 없는 죄성과 전적 부패를 인정하고,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 회개함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가장 안타까운 우리 인간의 상태는 과연 어떤 상태인 것인가를 생각해봅니다. 그런 상태는 ‘죄로 깊이 얼룩지고, 죄의 힘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도 비참하고 절망적이지만, 그것보다도 더욱 안타깝고 비극적인 것은 ‘내가 죄인인 줄 깨닫지 못하는 스스로 의롭다고 착각하는 영적상태’라고 저는 믿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과 같이 말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v.10-12) 성도 여러분의 지금 영적 상태는 어떤 상태입니까?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용서받은 자입니까? 아니면, 여전히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죄의 힘 아래 살아가는 용서받지 못한 자입니까? 바라기는 진리의 영, 성령님을 통해 우리의 허물과 죄를 날마다 고백하고, 그리스도의 의로운 옷을 입고 겸손하게 주와 함께 날마다 육신과 죄와 싸워 승리하시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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