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h 19, 2023

“죽도록 충성하라” (Be Faithful Until Death)

Preacher:
Series:
Passage: 요한계시록 (Revelation) 2:10
Service Type:

“죽도록 충성하라”

(Be Faithful Until Death)

3-19-23

본문말씀: 요한계시록 (Revelation) 2:10

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찌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Do not be afraid of what you are about to suffer. I tell you, the devil will put some of you in prison to test you, and you will suffer persecution for ten days. Be faithful until death, and I will give you the crown of life.)

[설교 요약]

            저는 오늘 <요한계시록 2장>말씀을 통해 부활하신 우리 주님께서는 마귀의 그 집요한 공격을 경고하시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어떻게 생명의 면류관을 얻게 되는지를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죽도록 충성’함으로서 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주께서 소아시아 일곱교회의 하나인 ‘서머나교회’에 주시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지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나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계. 2:9)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주께서 서머나교회 성도의 많은 환난과 궁핍을 아시기에 위로하고 격려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오늘 <10절>의 본문말씀은 주를 향한 믿음의 순결을 잃지 않음으로 남은 환난을 이겨 나갈 때, 영생의 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계. 2:10)라고.

따라서, 주께서 “‘죽도록 충성하라’고 명령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 <우리가 죽도록 충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명령하실 때, 우리가 순종하기 불가능한 것을 명령하시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주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감당하고 (빌. 4:13), 넉넉히 환난과 핍박을 이길수 있는 것입니다 (롬. 8:37).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 <성령을 통해 충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스룹바벨에게 선포하십니다. 무너진 성전을 다시 건축하는 것은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슥. 4:6)고 말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향한 진정한 충성과 영적 승리는 오직 주의 영, 성령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충성된 제자로서 “어떻게 우리는 죽도록 충성할 수 있을까요?”

첫째, <깨어 있어야>합니다: 그 무엇보다도 우리는 말씀과 기도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눅.21:36, 시.119:105). 주님은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마. 13:52)고 <천국의 서기관>으로써 말씀에 깨어 있어야 함을 도전하십니다.

둘째, <서로 사랑함으로 연합해야>합니다: 사랑만이 모든 허물을 덮고, 주님의 사랑으로 우리는 형제 자매와 한 몸을 이루어 함께 대적을 이길수 있습니다 (엡.4:13~16).

셋째, <성령님께 순종함으로 충만을 받아야>합니다: 우리가 예수 믿어 구원함을 받았다 할찌라도, 성령의 충만을 받을 때, 비로소 주님의 참된 주님의 증인이 되어 충성된 제자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행.1:8). 언제나 주께서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소망하며, 늘 말씀과 기도에 깨어 있음으로 서로 사랑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죽도록 충성하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기도합니다.

[설교 전문]

            요즘 한국뉴스를 보면, 한 기독교 이단 교주의 기사로 떠들썩합니다. 한 기독교 사이비 교주의 엽기적인 행각이 각종 매체를 통해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이 사람의 파렴치한 삶이 갑자기 부각된 것은 젊은 층에서 상당히 많이 보는 ‘reflex’ (리플렉스)에서 제작된 ‘나는 신이다’라는 기획물이 최근 방영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영상물은 보지 못했지만, 몇몇 방송사에서 이 영상물에 관련해서 취재한 보도를 보면서, 그 내용이 매우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가장 충격 받았던 것은 그의 가히 성적 광기로 보이는 행각을 지난 40여년간 행했다는 사실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도 지금 현재까지도 한국의 소위 명문대라고 하는 대학을 위시한 유수한 전국의 대학교에서 동아리의 하나로 버젓이 이름을 내걸고 서클로 등록하여 수십년간 지금까지도 활동해왔다는 사실입니다.

그 시대의 지성과 양심의 보루와 같은 청년 대학생들에게 이런 거짓된 가르침이 오늘 이 시간까지도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또한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 저에게는 심히 충격적이고 두렵기까지 했습니다. 자기의 부패한 정욕과 육에 속한 죄악에 사로잡혀 우리 믿는 자를 공격하고 파괴하고자 하는 악한 자들, 그리고 이들을 조정하는 공중 권세 잡은 자 사단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음을 알고, 우는 사자처럼 두루 돌아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과 저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안전합니까? 저는 오늘 <요한계시록 2장>말씀을 통해 부활하신 우리 주님께서 경계하신 마귀의 그 집요한 공격은 무엇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어떻게 승리함으로 생명의 면류관을 얻게 되는지를 함께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 계시록>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던 사도 요한에게 나타나셔서 계시로 주신 말씀입니다. 특별히 흩어져 있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게 주님께서 주시는 메시지와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는 날, 일어나게 될 하늘과 땅의 엄청난 영적 전쟁의 소용돌이와 최후의 심판을 엄중하게 선포하시는 말씀이 요한계시록 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말씀은 주께서 소아시아 일곱교회의 하나인 ‘서머나교회’에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 서머나교회에 주시는 말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계. 2:8)라고.

그렇다면, 이 서머나교회는 어떤 교회라고 주님은 평가하고 계신 걸까요?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지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나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계. 2:9)라고. 무슨 뜻입니까? 많은 신학자들은 초대교회 중에서도 서머나교회는 환난과 핍박을 받은 대표적인 교회라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서머나교회를 위로하고 격려하십니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안다)”라고. 이 말씀은 ‘너희가 비록 육신적인 많은 환난과 핍박을 겪고, 물질적인 심한 궁핍을 당한다 할찌라도, 너희가 사실은 부요한 자다’고 주께서 평가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주께서 오늘 본문의 서머나교회를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고 평가 하신데 반해, <계.3장>에서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해서는 상반된 평가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계. 3:17)라고 주님은 라오디게아 성도들을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을 향한 순전하고 뜨거운 첫 사랑을 잊어버리고, 차지도 덥지도 않은 미지근한 신앙생활 하는 라오디게아 성도들을 향해 주님은 ‘너희가 스스로는 부요하다고 한다마는 실상은 가난하고 궁핍하다’고 평가하시는 것입니다. 정확히 ‘서머나’성도와 반대인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서머나교회가 그 극심한 핍박과 궁핍 가운데서도 주님을 향한 믿음을 변절하지 않았지만, 라오디게아교회는 신앙 양심을 저버리고 현실과 적당히 타협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차지도 덥지도 않은 어중간한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서머나교인’은 물질적 부요를 얻고자 영적 부요함을 팔아 넘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것이 인간의 평가가 아니라, 주님의 분명한 평가라면 우리에게 더 무엇이 필요할까요? 더 이상의 그 어떤 위로와 약속이 필요할까요? 결코 필요 없을 것입니다.

그럼으로 오늘 <10절>의 본문말씀은 주를 향한 믿음의 순결을 잃지 않음으로 영적으로 부유한 서머나 교인에게 주께서 일러주시는 남은 환난과 그 이후의 주실 축복의 약속입니다. 아직 고난이 모두 끝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고난은 마귀가 ‘서머나 성도 중 몇 사람을 감옥에 가두어 시험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십일동안 환난을 받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고난은 영원한 고난이 아니라, 일시적인 고난이라는 것입니다. 감당할 수 있는 고난이라는 것입니다. ‘10일간 동안’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10일’이라는 것이 문자 그대로 10일인지, 10개월 혹은 10년인지 우리는 정확히 알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기간은 악인이 심판 받아 처하게 될 지옥에서 겪게 될 영원한 고통이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기간은 이겨 나갈 수 있는 기간이요, 반드시 극복할 수 있는 기간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10일’이라는 날짜 속에 주께서 상징하여 주시는 뜻임을 저는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고 주께서 성도들을 도전하고 격려하시는 이유임을 저는 믿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충성한다’는 것이 말처럼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께서 ‘죽도록 충성하라’고 명령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죽도록 충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믿음으로 인해서 고난받고 불 같은 핍박 받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두려운 일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창세기에서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았던 모든 그의 구원받은 자녀들은 한사람도 예외없이 그 믿음의 댓가를 지불해야 했습니다. 고난을 감당해야 했던 것입니다. 각자 다양한 상황과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찌라도 반드시 믿음을 지키기 위한 댓가를 지불해야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딤후. 3:12)고 성도의 삶의 본질을 선포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런 고난과 핍박은 우리 성도들에겐 잠시 고통스럽고 불편할 수는 있을지라도 우리를 넘어트리고 망하게 할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우리는 잠시 받는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음)” (롬. 8:18)을 확신하기 때문에 죽도록 충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도록 충성할 이유는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것은 결국 주님의 영, <성령을 통해 충성된 삶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자신은 육신의 정욕과 세상사람들의 핍박과 그들 속에서 역사하는 악한 영 사단 마귀와 싸워 이길수 없는 것입니다. 육신과 세상과 악한 영과 더불어 싸워 이기는 능력은 오직 주님의 영, 성령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함을 우리는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슥. 4:6)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향한 진정한 충성과 영적 승리는 우리의 힘으로도 능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오직 주님의 영 성령님의 능력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충성의 끝은 죽도록 충성하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순교로 충성하는 것’보다 더 큰 충성과 진정한 영적 승리를 거두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우리를 격려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 9:27)

그렇습니다. 죽음으로써, 순교로써 충성한다는 것은 말처럼 결코 쉽지 않고, 두려울 수 있습니다. 우리의 육신이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우리를 깨우쳐 주십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마. 10:28)라고. 세상 어떤 자도, 사단 마귀도 우리의 몸은 잠시 죽일수 있지만, 결코 우리의 영혼을 죽일수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순교로서 주를 믿는 순결을 지킬수 있다면, 하나님은 그의 자녀를 영광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와 영원토록 그분의 나라에서 왕노릇하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한 주님께서 고난받는 ‘서머나교회’성도들을 향하여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v.10b)고 약속하시는 이유임을 저는 믿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시작하면서, 최근에 한국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한 사이비교주의 충격적인 행각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이것은 우리 각자에게 어떤 영적인 깨우침 (경고)를 주는 것일까요? 이것은 사도 베드로의 경고와 같이 우리의 원수, 사단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우는 사자같이 두루 돌아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 것’ (벧전. 5:8-9)임을 저는 믿습니다. 마지막 날, 일어날 거짓 선지자와 극심한 배교가 있을 것에 대한 예언이 현실화되는 것임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이런 사악한 이단의 공격에 무방비로 무기력하게 당해야 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결코 그렇게 해서는 않됩니다. 성경은 결코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깨어 있어야>합니다. 그 무엇보다도 영적으로 깨어 있기 위해선 ‘기도와 말씀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늘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주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기도 이외는 참 능력을 경험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막. 9:29). 그리고 앞서 말씀드린 기독교 이단들의 경우는 비성경적이고, 잘못된 교리로 뒤섞인 거짓 가르침을 행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의 하나가 ‘선악과 열매’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창세기 2장>에 나오는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먹지 말라’고 금지하신 <선악과 열매>를 그들은 ‘성행위’ (sex)라고 가르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생육하고 번성을 이루는 축복의 통로로 주신 ‘성’을 마치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금단의 열매처럼 비성경적으로 거짓되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바로 배우고, 말씀으로 깨어 있지 않을 때 한국 뿐 아니라 이곳 미국에서도 수없는 이단의 공격에 넘어갈 수 있음을 우리는 경계해야 합니다. 여호와증인, 몰몬교, 안식교, 구원파, 신천지등 많은 이단의 위협이 우리 앞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마. 13:52)고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이 되라고 도전하셨듯이, 우리 크리스챤도 옛 구약의 율법과 새신약의 복음의 말씀을 잘 이해하고, 깨닫아 <천국의 서기관>이 된 제자로서 서로 가르쳐주고, 이와 같은 이단의 공격에 바른 말씀으로 대처하고 이겨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서로 사랑함으로 연합해야>합니다. 사랑이 위대하고 강력한 것은 우리가 비록 완전하지는 못하다 할찌라도 서로를 향해 가슴을 열고 자신을 주고 받을 수 있을 때, 이런 모습 가운데 서로의 아픔과 상처가 치유되어지고, 기쁨과 즐거움이 함께 나누어지는 사랑의 역사가 강력하게 임하게 됩니다. 어릴 적부터 사랑을 듬뿍받은 아이는 커서 잠시 엇나갈 수는 있더라도, 결국 훌륭한 인격의 사람으로 살게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가 받은 사랑이 강력하게 그를 지켜주고, 참된 인격의 사람으로 자라도록 밑거름이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서로 사랑을 연습합시다. 때로 시행착오를 겪기도 하고, 실수할 수도 있지만 서로의 허물을 감싸 안아주고 격려하며 함께 사랑을 힘씁시다. 첫 숟가락에 배부를 수는 없겠지만, 우리 안에 역사하는 주님의 사랑만이 반드시 우리를 하나되게 하고, 그 사랑만이 모든 허물을 덮고, 반드시 우리를 승리하게 하실 것을 저는 믿습니다.

그리고 <성령님께 순종함으로 충만을 받아야>합니다. 이 성령충만의 출발은 성령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내 속에서 신앙 양심을 통해 말씀하시는 성령님께 귀 기울이고, 그분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나의 중심을 주께 드리고, 하나님 아버지를 이 세상 어떤 것보다 더욱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앞서 말씀 드린데로, 성경말씀을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사랑하고 묵상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성령님은 우리 각자를, 그리고 그분을 통해 하나로 연결된 우리 공동체를 충만하게 통치하시고, 그분의 임재 안으로 이끌어 주심을 믿습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 공동체는 진정 ‘죽도록 충성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실천해 나갈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처음이요 나중이시며 부활하신 우리 주님은 충성되게 믿음을 지켜나가는 서머나교회 성도 뿐 아니라, 여러분과 저에게도 동일하게 이시간 이렇게 격려하시고 약속하심을 믿습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이 땅에서의 삶은 우리를 때로 실망시키고 낙심시킵니다. 특별히 우리의 원수 사단 마귀는 지금도 우는 사자같이 두루 돌아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주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바라기는 여러분 안에 역사하시는 주님의 영, 성령을 의지하고 죽도록 충성하심으로 주와 함께 반드시 승리 하시길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면류관을 쓰고, 그와 함께 세세토록 영광을 누리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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