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26, 2018

“진리로 거룩하게 하사” (Sanctify them by the truth)

Preacher:
Series:
Passage: 요한복음 (John) 17:15~17
Service Type:

“진리로 거룩하게 하사”

(Sanctify them by the truth)

8-26-18

본문말씀: 요한복음 (John) 17:15~17

15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My prayer is not that you take them out of the world but that you protect them from the evil one)

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 (They are not of the world, even as I am not of it)

1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Sanctify them by the truth; your word is truth)

<서 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목 박히시기 하루전날, 하나님 아버지께 이 땅에 남겨둔 그의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해 진리와 사랑이 충만한 간절한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주님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v.1) 라고 기도를 시작 하십니다. 그리고 그의 제자들을 위해 “~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 저희로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v. 11,13,17)”라고 하나님께 간구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주의 제자된 성도 여러분과 저의 삶은 하나님의 진리된 말씀으로 거룩하게 됨을 이해하게 되는 시간되길 원 합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은 지금도 하나님께 그의 제자된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거룩에 이르기를 간구하고 계심을 깨닫는 시간 되기 원합니다.그리하여, 그 뜻데로 거룩함을 입은 성도답게 그 기뻐하시는 삶을 위해 힘써 달려 나갈수 있는 충성된 주의 제자로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기대 합니다.

<본 론>

성도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요한복음 17장> 은 예수님의 지상에서의 마지막 기도이자, 소위 <대제사장의 기도> 라고 불리는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는 영광된 기도인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 우리 죄를 위하여 보내신 하나님의 ‘어린양’일뿐 아니라, 또한 우리 죄를 위하여 하나님께 친히 간구하시는 우리 모든 성도들의 ‘대제사장’ 이시기 때문 입니다. 오늘 본문 내용이 포함된 <요한복음 17장>을 찬찬히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이 땅에 남겨두신 그의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한 기도의 내용에서 2가지 두드러지게 반복하여 간구하시는 것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첫째, <저희들 (=제자들)을 사랑으로 하나되게> 하여 달라는 간구를 5번가량 하셨고, 둘째는 <저희들을 세상 (=악)에서 지켜주시게> 하여 달라고 또한 4번 간구하는 것 입니다.

만약 주님께서 <요. 17장>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의 핵심을 말하라면 여러분은 무엇이라 말 하시겠습니까? 그것은 ‘그의 제자들을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으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라고 저는 말할 것 입니다. 주님은 그의 제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룩하게 되기를 간구 하셨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이것을 주님은 “왜냐하면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이기 때문에, 그 진리가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것입니다!” 고 선포하고 계시는 것 입니다. 이것은 지난주 우리가 함께 살펴본 주님의 말씀, “ ~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 8:31,32) 는 말씀과 본질상 상당히 깊은 연관관계가 있음을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이제 저는 구체적으로 예수님이 하나님께 간구하신 ‘말씀으로 거룩하게 되는것’이 어떻게 가능하게 되는지에 대해 살펴 보기를 원합니다. 과연 어떻게 우리가 진리로 거룩하게 될까요?” (How are we sanctify by the truth?);

첫째, “악에 물들지 않음으로서” (We may be sanctify by protecting us from the evil one) 거룩하게 됩니다: 우리가 지난번 레위기서에서 살펴본데로 하나님은 그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을 향해 이렇게 명령하셨음을 기억 할것 입니다.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바 기어다니는 것으로 인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레위기 11:44,45); “ ~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레. 19:2) 고. 레위기서를 보면, 하나님은 자기 백성 이스라엘민족에게 거룩을 명령하시면서 먼저 몸을 구별하라고 명령 하십니다. 땅에 기어 다니는 부정한 것 (unclean) 들과, 깨끗하지 못한 것으로 부터 구별되라고 하십니다. 구약에서 ‘거룩’ 이라는 단어의 히브리어 원어 ‘코데쉬’ (kodesh)의 뜻은 <잘라냄, 분리함> 을 의미하는 말로써 ‘더러움과 분리된 상태”를 뜻하는 것 입니다. 이런 ‘거룩함’ 을 뜻하는 ‘코데쉬’가 구약에서 약 830회 이상 나옵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바로 레위기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본질을 밝히셨드시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이기에 때문이요, 따라서 그분을 믿는 그의 백성들도 또한 거룩해야 하기 때문인 것 입니다. 그 누구도 부정하고 죄악된 상태에서는 거룩하신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수 없고, 단절될수 밖에 없기 때문 입니다. 그러나, 레위기를 통해 우리가 놓쳐서는 않되는 것은 거룩은 결코 밖으로 드러난 것, 눈에 보이는 행위 자체가 전부가 아니다는 것 입니다. 그 한가지 예가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떡을 먹은 것을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님께 그들이 장로들의 유전을 어기고 부정한 손으로 먹었다고 정죄하는 장면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 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주님께 그의 제자들이 장로의 유전을 어기고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는다고 추궁했읍니다. 그때 주님은 무엇이라 말씀 하셨습니까?주님은 그들에게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셔서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 (막. 7:6,8) 고 그들에게 도전 하셨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유대인들은 밖에 드러난 행위에만 온통 신경쓴 나머지 자신의 내면의 상태를 깨닫지 못한 것 입니다. 거룩은 밖에서 시작되어 내 내면으로 이어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 입니다. “ ~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 ~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막. 7:18,20) 고 주님은 무엇이 우리를 거룩하지 못하게 하는지를 설명하셨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인 것 입니다. 곧 음란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리는 눈과 교만과 어리석음의 모든 악 입니다. 이 속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 입니다. (막. 7:21~23)

오늘 주님은 하나님께 그를 믿는 모든 제자들을 위해 ‘진리로 거룩해지기를’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거룩해진다는 것은 무엇보다 ‘악으로 부터 떠난다’ 는 것, 곧 ‘악에 물들지 않는다’ 는 것 임을 우리는 주님의 기도를 통해서 분명히 이해하게 됩니다. 주님은 무엇이라고 기도 합니까?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v.15) 고 주님은 말씀 하십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마음을 잘 모를까 염려가 되어 재차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있었던 자들이 이 간구의 내용을 분명히 이해하기를 원하신 것 입니다. 주님이 기도하신것은 제자들을 이 세상에서 데려가고자 함이 아니요, 그들을 어떤 고난과 핍박에서 피하게 하고자 함도 아닌것 입니다. 그가 기도한 것은 그들을 죄악에 빠지지 않고 보전코자 하심 입니다. 세상에서 데려감이 아니라, 세상의 유혹과 영향력으로 그들을 분리시켜서 아버지의 진리의 말씀으로 그들을 지켜 보호하시는 것 입니다. 이것이 진리로 거룩하게 되는 것이라 주님은 그들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악에 물들지 않고 점점 더 거룩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까?

둘째, ‘사랑으로 하나됨으로서’ (We may be sanctify by uniting as one) 거룩하게 됩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 살펴보았드시, 주님은 자기를 믿는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선언 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8:31,32) 그렇다면, 무엇이 진리로 말미암아 자유함에 이른 상태일까요? 이것을 여러가지로 설명할수 있을 것 입니다. 그러나, 그중에서 가장 으뜸가는 진리로 자유함에 이른 상태가 바로 ‘서로 사랑하는 상태’ 라고 저는 믿습니다. 왜냐하면, 사도바울은 자유함과 사랑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기 때문 입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 (갈. 5:13,14) 라고 말 입니다. 그는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그들을 격려하고 도전 합니다.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는 것’, 즉 ‘서로 사랑으로 섬기는 것’ 은 온 율법을 행하는 것만큼이나 위대하고 완전한 것이 되기 때문 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진실로 온 율법을 완성하는 위대한 것이라고 하나님은 인정해 주시는 것 입니다 (롬. 13:10). 주 안에서 서로 사랑하게 될때, 우리는 진정한 주의 약속하신 자유의 풍성함을 누리게 되는 것 입니다.

그런데 오늘 저의 설교를 듣는 성도 여러분 중에 사랑의 중요성과 그 가치를 오늘 처음들은 분들은 별로 없을 것 입니다. 우리 대부분 우리 주께서 얼마나 ‘서로 사랑하기’ 를 그 어떤 것보다 강하게 명령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모르는 분은 없을 것 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인지 압니까? 문제는 여러분과 제가 그 <사랑을 실천할 능력>이 우리에게 없다는 사실 입니다. 지금 저는 <사랑을 실천할 의지가 우리에게 없다> 고 말하지 않고, <사랑을 실천할 능력이 여러분과 저에게 없다> 고 말하고 있음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아니요, 저는 마음만 먹으면 사랑할수 있어요!” 라고 대답하고 싶은 분은 없습니까? 죄송합니다만, 만약 여러분들이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그것은 착각임을 아셔야 합니다. 그것도 심한 착각 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사랑할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가 비록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사랑을 실천할수 있을까요? 그 유일한 방법을 주님은 또한 기도 가운데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 입니까?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요. 17:21) 라고. 우리 성도가 서로 사랑할수 있는 것은, 서로 사랑함으로 하나될수 있는 능력을 소유할수 있는 것은 오직 성부하나님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 전부터 누리셨던 하나됨을 통하여 가능 하다는 것 입니다.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서 가능한 것 입니다. 바로 주께서 약속하신 성령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충만하게 부어주실때 여러분과 저는 비로소 옆에 있는 형제, 자매를 사랑할수 있는 사랑의 사람이 되는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사랑의 사람 입니까? 우리 아포슬 공동체는 사로 사랑하는 공동체 입니까?

셋째, ‘하나님을 알아감으로서’ (We may be sanctify by knowing God) 거룩하게 됩니다: 우리가 점점 더 하나님을 알아 나갈수록, 우리는 더욱 그의 거룩으로 나아가는 것 입니다. 구약의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은 이런 가슴아픈 말씀을 선언하십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 버리리라” (호.4:6) 고. 무슨 지식이 없어서 그의 백성이 망한다는 것 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지식이요, 곧 하나님을 아는 지식인 것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할때,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무식하면 하나님을 아는데 실패하는 것 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을 점점 더 알아가고 닮아가는데 실패하는 것 입니다. 호세아는 결코 겁주기 위해서 이런 말을 그의 민족에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등한이 할때, 그를 아는 지식에서 무식할때 결국 망하게 된다는 것 입니다. 이것이 우리 청년들이 알아야 할 ‘불편한 진실’ 이라는 점을 저는 강조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호세야는 그의 민족 이스라엘을 향해 무엇이라고 외치고 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호. 6:3) 고 말입니다. ‘내가 예수 믿고 거듭났다’ 는 감사한 것이지만 결코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계속 하나님의 말씀에서 자라나야 합니다. 그분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나야 됩니다. 이것이 성경의 격려요 도전 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우리 크리스챤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에서 자라지 못할때 여러분과 저는 ‘영생’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는 불행한 삶을 살수 밖에 없게 됨을 우리는 이해해야 합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여러분 중에 ‘목사님, 영생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얻게 되는 것 아닙니까?’ 라고 질문하는 분은 없습니까? 맞습니다. 영생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함으로 거져 주시는 은혜’ 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동시에 깨닫아야 하는 진리는 ‘영생은 우리가 죽어 천국가서 누리는 상태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부터 누리는 영적 상태’ 라는 것 입니다. 그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요. 17:3> 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 17: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과연 누가 영생을 소유한 자일까요? 누가 영생의 삶을 살아가는 자 일까요? 물론 맞습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주어지고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되는 것 입니다. 그러나, 영원한 생명의 주인되신 우리 주께서 직접 선언하시고 설명하신데로 ‘영원한 생명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자’라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자일까요? 유한한 지식과 능력을 가진 우리 인간이 어떻게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를 다 알수 있을까요? 그것은 불가능한 것 입니다. 제가 이 문장을 이해할수 있는것은 <완료형태>가 아니라 <진행형태>일때 가능하다는 것 입니다. 무슨 말 입니까? 내가 점점 더, 계속해서 마지막 주님 앞에 서는 그 순간까지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나가는 것이 영생을 소유한 삶을 산다는 뜻임을 알수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고 살아간다는 뜻인 것 입니다. 내가 예수 믿고 죄사함 받는 것이 영적인 출생이라면, 하나님과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점점 더 알아간다는 것은 구원받은 자녀로서 점점 더 자라나간다는 뜻 입니다. 바로 거룩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삶인 것 입니다. 이것이 ‘영생’이라고 주님은 설명하고 계시는 것 입니다. 영생이 우리가 죽어서 가는 천국에 가서 누리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입니다. 영생의 핵심은 바로 이 땅에서 지금 시작되고 영원을 향하여 계속되어져야 한다는 것 입니다. 이것이 제가 우리 청년들에게 도전하고 확인하는 핵심 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여러분은 영생을 소유하고 있습니까? 처음 믿었을때 한두번이 아니라, 계속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남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남으로 영원한 생명을 지금 누리고 있습니까? 만약 누리고 있지 않다면 도데체 여러분은 누구 입니까?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그동안 학생목회를 통해서 여러 청년들을 만났습니다. 특별히 크리스챤이라는 많은 청년들을 만났습니다. 특별히 아틀란타 이곳 다운타운과 미드타운에 위치한 여러 유수한 대학에 다니는 한인 크리스챤 청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우수하고 야망과 의지로 충만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서 쉽게 찾아보기 힘든 한가지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말씀을 사랑하는 열심 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중 더러는 말씀에 무관심하지는 않을찌라도 우선순위에서 말씀은 역시 밀려나 있었습니다. 말씀이 절대적인 위치에 있지 못하고 언제나 상대적으로 취급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우리 청년들의 진정한 문제임을 자는 발견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그를 믿는 제자들을 위해 “(아버지여)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고 간절히 구하고 있습니다. 진리는 상대적이지 않고 절대적인 것 입니다. 시간이 바뀐다고 변하지 않으며 영원토록 지속되는 것 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되시며, 이 진리된 말씀을 통해서만 여러분과 저는 거룩하게 되는 것 입니다. 오직 아버지의 말씀을 통해 세상의 죄로 부터 우리를 지키고, 사랑으로 하나되며, 점점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나게 되는 것 입니다. 이것이 바로 ‘거룩’인 것 입니다. 거룩은 내 선택사항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인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의 삶에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통해 거룩으로 나아가기를 소원 합니다. 날마다 죄와 싸워 나가고, 사랑으로 하나되고, 더욱 하나님을 말씀을 통해 알아 나감으로 약속하신 거룩의 은혜로 나아가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