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26, 2020

“참 할례당” (The True Circumcision)

Preacher:
Passage: 빌립보서 (Phillippians) 3:2~3
Service Type:

“참 할례당”

(The True Circumcision)

1-26-20

본문말씀: 빌립보서 (Phillippians) 3:2~3

2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 할례당을 삼가라 (Watch out for those dogs, those men who do evil, those mutilators of the flesh.)

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For it is we are the circumcision, we who worship by the Spirit of God, who glory in Christ Jesus, and who put no confidence in the flesh -)

 

[설교 요약]

            과연 ‘무엇이 원래의 할례의 의미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땅을 허락하시고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며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라는 그분의 언약에 참예한다는 뜻입니다. 양피를 베는 의식을 통해 그 언약을 몸에 지니는 표시가 할례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진정한 할례당일까요?” (Who is the true circumcision?)

첫째, ‘성령으로 봉사하는 자’ 입니다 (The true one is who worship by the Spirit):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 (service)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예배 (worship) 하는 것과 서로를 향해 사랑으로 섬김을 뜻 합니다. 참되게 할례 받은 자는 이렇게 봉사하는 자입니다.

둘째,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는 자’ 입니다 (The true one is who glory in Christ Jesus): 사도는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 (갈. 6:14) 라고 자신의 진정한 자랑을 고백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할례 (골. 2:11)를 받은 자의 특징인 것입니다.

셋째,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자’ 입니다 (The true one is who put no confidence in the flesh): 사도 바울은 과거에 그가 가졌던 모든 육체의 자랑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배설물로 여긴다 (빌. 3:8)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기 떄문입니다.

바라기는 마음의 할례를 받음으로 성령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영과 진리로 예배하며, 육체를 신뢰하지 않고 오직 예수 우리 주를 자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기대합니다.

 

[설교 전문]

인간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처음 가졌던 정신은 점점 잃어버리고 하나의 형식만 남은 모습으로 살아갈 때가 많음을 봅니다. 우리 크리스챤에게 있어서도 때로 신앙의 본질은 빠진 채 형식과 조건적인 것이 신앙 좋은 것인 양 취급되어지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발견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인 ‘참 할례당’이라는 것도 바로 그러한 문제를 잘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참되게 할례 받은 자인가?” 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예수 믿고 구원받았습니까? 구원받음으로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서 합당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누가 진정한 할례 받은 자인지?’ ‘누가 참된 그리스도인지?’ 를 말씀을 통해 진정한 할례의 삶을 이해하며 그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따라 살아감으로 그의 자녀의 권세와 은혜를 누리는 성도 모두 되시기를 기대 합니다.

저는 오늘 본문의 주제가 되는 “참 할례당”에 대해 살펴보기 위해서, 먼저 과연 ‘무엇이 원래의 할례의 의미인가?’ 하는 것과 ‘누가 참된 할례 받은 자인가?’하는 2가지 질문을 해 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원래의 할례 (circumcision)의 의미일까요?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성경에서 처음으로 할례를 언급하는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창세기 17장>에 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99세 되던 해에 그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창. 17:1,2)고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아브람’ (고귀한 아비)에서 ‘아브라함’ (열국의 아비)으로 바꿔 주시고, 그가 열국의 아비가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로 심히 번성케 하여, 나라와 열왕들이 그를 좇아 일어날 것과 그와 그의 후손 사이에 영원한 언약을 세워 허락하신 가나안 땅으로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창.17:4~9).

그리고 나서 <창.17:10>에서 ‘할례를 행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창. 17:10~11)라고. 그럼으로 구약시대 당시에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할례는 단순히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넘어서서,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세우신 영원한 언약, 즉 약속의 땅을 영원한 기업으로 주시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라는 언약에 참여한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할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언약의 표시’라는 것입니다.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고, 너는 내 백성이다’라는 하나님의 언약을 몸에 지내는 ‘표시’ (mark)가 할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 할례의식에 있어서 그것은 ‘남자의 양피를 베어 내는 것’ (창. 17:11)을 말합니다. 이런 양피를 베어내는 의식을 통해 이들이 ‘이방민족과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 (=선민)이 되었음을, 즉 옛 사람은 죽고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었음을 알리고 상징하는 것이 할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첫 할례를 행하고 수천년이 지난 이후, 하나님께서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 약속하신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구약에서 선언하신 모든 옛 언약이 성취되었는데도, 구약의 율법준수를 배경으로 개종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적지 않은 수가 옛 언약과 새 언약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오해했다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할례’의 문제인 것입니다. 할례에 있어서 새 언약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피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고 그분의 생명 안에서 새사람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과거에 육체에 행했던 할례는 필요치 않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골. 2:11) 라고. 더 나아가서 로마서에서도 “겉모양으로 유대 사람이라고 해서 유대사람이 아니요, 겉모양으로 살에다가 할례를 받았다고 해서 할례가 아닙니다. 오히려 속이 유대사람이 유대 사람이며, 율법의 조문을 따라서 가 아니라, 성령을 따라서 마음에 받는 할례가 참 할례입니다 ~” (롬. 2:28~29) 라고 하면서, 사도 바울은 무엇이 진정한 할례인지, 그리고 누가 참된 할례를 받은 자인지를 영적으로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 할례당을 삼가라” (v.2)고 성도들에게 경고합니다. 여기서 ‘개들’ ‘행악하는 자’ 그리고 ‘손 할례당’은 결국 강조용법 적인 표현인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럼으로 이들은 각각 다른 자라기 보다는 ‘손 할례당’으로 표현되고 있는 자들을 지적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손 할례당’은 누구입니까? 이들은 육체의 할례를 행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구원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고 가르쳤던 유대교의 배경을 가졌던 거짓 교사들임을 알수 있습니다. 만약 갈라디아서를 성도 여러분들이 다시 한번 읽을 본다면 그가 이 할례의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다루고 있으며,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앗아가는 거짓복음인지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는 이런 손으로 하는 육체의 할례를 주장하는 거짓교사를 삼가 하라는 것입니다. 매우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가지 확인해야 할 점은 ‘왜 사도 바울은 갑자기 이 시점에서 할례문제를 언급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것은 오늘 본문 바로 앞 절 <빌. 3:1>에서 지난 주에 살펴본 데로, 사도는 “~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v.1b) 는 것입니다. 물론 지난주에 살펴본 바와 같이 ‘같은 말을 쓰는 것’은 일차적으로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격려이자 도전이요, 이들이 주안에서 기뻐할 때 성도들의 영적 승리가 안전한 것임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이 ‘안전하다’는 것은 또한 오늘 본문에서 사도가 밝히고 있는 ‘손 할례당’ 즉 ‘거짓교사’들에 대해서 조심함으로써 안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영적으로 깨어 있어서 악한 자들의 거짓된 가르침에 빠지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는 뜻인 것입니다.

이제 사도는 그렇다면 ‘손 할례당’으로 대표되는 이런 거짓교사들의 주장의 근거가 할례일 진데, 그들이 추구하는 할례에 있어서 과연 누구가 진정한 할례를 행하는 자인가 하는 점을 <3절>에서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육체적인 할례가 아니라 마음의 할례를 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3절>에서 설명하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v.3) 이제 저는 성도 여러분과 함께 사도 바울이 밝힌 ‘성령으로 봉사’하고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며 ‘육체를 신뢰하지 않음’이 참 할례당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진정한 할례당일까요?” (Who is the true circumcision?)

첫째, ‘성령으로 봉사하는 자’ 입니다 (The true one is who worship by the Spirit): 먼저 사도가 로마서에서 하나님의 우리를 구원하셔서 그분의 아들과 딸이 된 것이 얼마나 놀랍고 감사한 것인가를 <롬. 8장>에서 감격적으로 설명하고 나서, <롬. 12장>에서 이렇게 결론적으로 성도들에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 12:1) 라고. 그런데 사도가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향해서 자신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고 도전하고 나서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this is your reasonable service)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에서는 ‘reasonable service’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우리 말로는 ‘합리적인/설득력 있는 봉사’라고 직역할 수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에 ‘예배’라고 번역된 것과 영어 성경의 ‘봉사’가 동일한 의미로 쓰인다는 것입니다. 또한 성도 상호간에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갈. 5:13) 하는 것이 성령으로 봉사하는 자라는 것을 갈리디아서에서 사도는 밝히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누가 진정한 할례 받은 자인가?’라는 질문, 즉 ‘누가 참된 하나님의 구원받은 자녀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 하는 자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많은 신학자들이 정의하드시, 구약의 할례가 영적으로 볼때 오늘날 크리스챤들에게 있어서 침례 (혹은 세례)에 해당한다고 말하지만, 마찬가지로 침례나 세례를 받았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는 것은 아닙니다. 참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몸에 할례를 행하는 행위에 달려 있지 않드시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외적 행위를 통해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 구약의 개념으로는 ‘참된 할례 받은 자’ 가 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이며, 이와 같이 구원받은 자의 외적 열매가 ‘하나님의 성령을 통해 봉사’하는 것입니다. 바로 성령의 충만하신 은혜 가운데 영과 진리로 하나님 아버지께 예배 드리는 자인 것입니다.

둘째,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는 자’ 입니다 (The true one is who glory in Christ Jesus): 저는 이 시간 성도 여러분 각자가 스스로에게 이렇게 질문해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생활 어느 정도만 하면 이런 질문에 대한 정답이 무엇인지는 다 잘 압니다. 그러나 제가 지금 묻는 것은 ‘우리 자신은 정말 우리 주 예수님을 자랑하고 있는가?’ 라는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기 원하는 것은 ‘예수님이 나의 자랑이 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나의 내적 상태’라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무엇을 자랑하느냐 하는 것은 그 속에 많은 것을 포함하며, 나의 가치관과 삶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도는 갈라디아서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할례 받은 저희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로 할례 받게 하려 하는 것은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니라.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갈. 6:13~14) 라고 자신의 진정한 자랑을 고백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을 자랑하기에 그를 믿는 모든 자를 살리시고 자 그 위에서 자신의 보배로우신 피를 흘리신 십자가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와 능력을 점점 더 깨닫아 나가는 것이 그리스도 예수를 더욱 자랑하는 것임을 사도는 이해했기에 그는 이렇게 간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 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빌. 3:7~8) 성도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그 어떤 것보다 자랑스러우십니까?

셋째,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자’ 입니다 (The true one is who put no confidence in the flesh): 저는 지난 시간에 사도 바울을 사도 바울 되게 한 것은 그의 그 어떤 뛰어난 영적 감수성이나 성경의 해박한 지식 보다도 그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삶으로 기쁨 가운데 그 믿음을 살았던 것에 그 비밀이 있음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그의 서신서 중에서도 이러한 자신의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삶을 살았던 생생한 신앙고백을 듬뿍 담고 있는 서신서가 빌립보서임을 우리는 이 서신서를 자세히 살펴보는 가운데 구절 구절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누가 과연 참된 할례를 받은 자인가를 밝히면서, 마지막으로 정의하는 영적 기준은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할례 받은 자’ 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는 인간적인 조건으로 보더라도 이런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충분히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v.4) 라고 오늘 본문을 이어서 주장하고 있습니다. “만약 누구든지 육체적으로 자신을 자랑하고 신뢰할 만하다고 주장한다면, 나는 더욱 그러하다. 왜냐하면, 나는 난 지 8일만에 할례를 받았고, 베냐민 지파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과거 열심을 다해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자부 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모든 육체적 조건을 그리스도를 위해 배설물처럼 버렸다”(v. 5~8)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런 육체를 신뢰하는 것이 얼마나 헛된 것임을 그리스도 안에서 철저하게 깨닫았기 때문입니다.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골. 2:11) 그의 고백은 언제나 ‘육체의 할례가 아니라 마음의 할례’요,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할례’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각자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지지해 주는 구원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구약의 성도들이 몸에 행하는 할례를 받음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듯이, 신약의 성도들도 동일하게 침례나 세례를 통해 구원받은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잘 이해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율법을 명하신 첫 시간부터 이렇게 할례의 정신을 밝혀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말라” (신. 10:16) 라고. 손으로 하는 육체의 할례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마음의 할례인 것입니다. 마음의 할례는 어떤 외적인 표시나 사건이 아니라, 마음의 변화를 받아서 지속적으로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예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며, 내 육신적인 것들을 신뢰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통해 우리 마음 가운데 그의 법을 새겨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고, 우리는 그의 백성이 되는 새언약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렘. 33:33). 바라기는 성령님을 더욱 신뢰하심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예배하며, 육체를 신뢰하지 않고 오직 예수 우리 주를 신뢰하고 자랑하는 참된 할례, 마음에 할례를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