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ruary 2, 2020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 (The Knowledge of Christ Jesus)

Preacher:
Passage: 빌립보서 (Phillippians) 3:7~9
Service Type: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

(The Knowledge of Christ Jesus)

2-2-20

본문말씀: 빌립보서 (Phillippians) 3:7~9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 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 로서 난 의라

 

[설교 요약]

오늘 본문에서 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 라고 말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 신지를 이해하면 할수록 그 분이 얼마나 존귀하며 영광스러운 분이 신지를 더욱 깨닫아 경험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나고자 하는 자의 자세를 가장 잘 설명한 말씀의 하나가 <마태복음 13장>의 ‘밭에 감추인 보화’ 말씀입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마. 13:44) 이 말씀에서 우리 주님은 ‘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은 상태임을 깨닫아라’고 도전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천국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고, 오직 발견한 자만이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아 그 밭을 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판다는 주님의 말씀이 오늘 사도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한 내용과 맥을 같이함을 알 수 있습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 즉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감으로 천국을 소유할 뿐 아니라, 계속해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고자 자신의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질문은 ‘무엇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고자 하는 목적인가요?’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 ~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v.8b~9a) 라고. 이 고백은 ‘이제부터 내가 살아가는 것은 그리스도의 생명 때문이니, 내 안에 사시는 이는 그리스도요, 또한 그분 안에 내가 사는 것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임을 믿습니다 (갈. 2:20). 바라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날마다 자라남으로 그분을 바로 알아나가고 그분과 하나가 된 나의 새로운 존재의 영광과 비밀을 성령을 통해 더욱 깨닫아 누려가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기대합니다.

 

[설교 전문]

          저는 오늘 성도 여러분과 함께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라는 제목의 설교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길 원합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지식’이라고 했을 때 그것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모두를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성경에 대한 옳은 지식 뿐 아니라, 여러가지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필요하고 유용한 지식은 신앙적으로 뿐 아니라 한사람이 상식적이고 인격적으로 성장해 나가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 잘못된 지식은 말할 것도 없고, 무분별한 지식 그리고 지식 자체에 대한 맹목적인 추구는 매우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을 우리는 또한 볼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예는 수없이 많겠지만 우리 인간의 첫 조상, 아담과 하와의 하나님을 향한 반역도 결국은 <지식을 향한 잘못된 동기>에서 비롯되었던 사건임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뱀이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창. 3:5)는 꼬임에 넘어가서 하나님께서 금지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은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교만한 마음으로 선악을 알게 하는 무한한 지혜와 지식을 쟁취하고자 하는 그릇된 동기가 첫 인간 부부의 타락을 가져오게 한 것입니다. 한편, ‘지혜와 지식’을 구하고 묵상하는 <전도서>에서도 그 첫 장에서 기자는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 하느니라” (전. 1:16)고 진술합니다. 세상의 지혜는 번뇌를, 그 지식은 도리어 근심을 더하게 한다는 말은 생각할수록 ‘불편한 진실’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한결같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날 것을 격려하고 도전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나는 만큼 그를 향한 온전한 믿음과 순종으로 살아 갈수 있을 것이라고 저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성경의 한결 같은 가르침임을 믿습니다. 물론 우리가 분명히 경계해야 하는 것은 주님에 대한 그릇된 지식이 아니라 올바른 지식에서 자라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에서부터 현재의 이르기까지 성도들을 혼란케 하고 교회를 파괴시키는 주범의 하나가 거짓교사들의 잘못된 가르침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잘못된 교리를 가르침으로 기독교 2000년 역사에서 수많은 이단들이 생겨났고, 그 중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에 대한 잘못된 성경해석, 잘못된 교리해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교리적 지식을 <그리스도론>이라 부르는데, 이와 같이 <잘못된 그리스도론>에 바탕을 둔 성경지식은 도리어 엄청난 해악을 개인과 공동체 안에 끼쳤던 것을 기독교회 역사는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기를 언제나 열망하며 열심을 다해 자라기를 힘써야 하지만, 잘못된 가르침과 잘못된 열심이 가져올 수 있는 위험성을 항상 명심해야 합니다. 그럼으로 바울의 말처럼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뤄 나가듯이’ 주님을 아는 지식에서 겸손과 간절함으로 한걸음 한걸음 자라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는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 입니다. 사도 바울은 ‘왜 내가 지금까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무익한 것으로 여기는지 압니까?’ 그리고 ‘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오물과 쓰레기처럼 여기는지 압니까?’ 고 묻고나서, 그 이유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입니다’ 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자신이 가진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으리 만큼 고귀하고 가치롭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 (the excellency of the knowledge of Christ Jesus) 이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이해하면 할수록 그 분이 얼마나 존귀하며 영광스러운 분이신지를 더욱 깨닫아 경험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분은 단순히 나사렛에서 목수로 살다가 유대인들의 오해로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처형당한 하나님에 대해 신앙 좋았던 사람 정도가 아닌 것입니다. 그 분은 여러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 시라는 것입니다. 그는 이새의 뿌리에서 나셔서 약속하신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그리스도일 뿐 아니라, 그분의 본질은 우리 인간의 이해와 상상을 넘어선 <성삼위 하나님>의 한 분, 즉 <성자 하나님>(The Son of God)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빌. 2장>을 통해 사도 바울이 선언한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비밀이자 영광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 하셨다)” (빌. 2:6)는 것입니다. 그는 근본적으로 하나님 아버지와 동등한 본질의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그분을 아는 지식에서 조금이라도 진실되게 자라나갈 수만 있다면, 이런 주님을 아는 지식은 내가 가진 그 어떤 것보다도, 아니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합친 것보다도 더욱 고귀하고 가치 있는 지식이 된다고 사도는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아는 참된 지식만이 나에게 ‘영생’ (=구원) 을 주고, ‘세상을 이길 힘’을 주며,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한걸음 더 나아가서 생각해야만 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깨닫기 위한 성도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상황을 성경에서 가장 잘 영적으로 설명해 주는 것 중의 하나가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밭에 감추인 보화’의 말씀이라 믿습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마. 13:44) 우리 주님은 <밭에 감추인 보화>의 말씀을 통해 ‘천국은 과연 무엇과 같은 것인가?’를 영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이해해야 할 것은, 이 비유를 통해서 우리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본질적으로 설명하실 뿐 아니라, 천국의 시민이 되고자 하는 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도전함을 우리는 깨닫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첫째>, 천국은 이와 같이 많은 사람들의 눈에는 발견되지 못하고, 전혀 인식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그 밭 주인이 그 땅 밑에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가 그 땅을 팔았을까요? 결코 팔지 않을 것입니다. 그 땅 가격의 10배, 100배의 가격을 쳐 준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 땅에 묻혀 있는 보화의 가치는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감추어졌던 보화, 즉 천국을 발견한 사람은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아 그 밭을 사는 것을 조금도 아깝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도리어 매우 기뻐하고 즐거움이 충만해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살찌라도 그 밭에 숨겨진 보화의 가치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인 것입니다. <셋째> 천국을 발견 (=소유)한 사람은 자신의 가진 모든 것은 판다고 했는데, 여기서 ‘판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마. 5장>에서 ‘누가 복 있는 자인가?’에 대해 도전 하셨듯이, 모든 것을 파는 자는 주님을 위해 모욕당하고 핍박받는 것까지도 기꺼이 감수하는 사람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약속하셨지 않습니까?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 (마. 5:11~12a) 라고. 그럼으로, 본문에서 사도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고자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긴다는 것’은 주님의 가르침으로 이해하자면 ‘나의 가진 모든 것을 팔아 감추인 보화를 산다’는 뜻이며, 또한 ‘내가 주님을 위해 당하는 모욕과 핍박까지도 <보화를 사는 행위>에 속하는 것’이 됩니다. 결론적으로 ‘밭에 감추인 보화’가 ‘천국’ 이라면, 이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한 자가 누리는 축복된 영적 상태’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 ‘밭에 감추인 보배’는 곧 <에수 그리스도>가 되심을 알수 있는 것입니다.

단 여기서 한가지 구분해야 하는 것은, 마태복음에서 주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밭에 감추인 보화>에서 도전하는 것은 보화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고 그를 어떤 댓가를 지불하더라도 영접함으로 천국을 소유하고 누리라는 의미이지만, 오늘 말씀에서 사도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배설물로 여긴다는 뜻은 예수님 영접하여 구원을 얻는다는 뜻이 아니라, ‘이미 주를 영접한 거듭난 자로서 어떤 댓가를 지불하더라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자라고자 온 힘을 다한다’는 뜻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성도의 성화되는 삶’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사도 바울의 삶의 고백을 통해서 우리가 점점 더 이해하게 되는 것은 우리 성도의 삶의 영광과 축복은 단순히 영적으로 출생했다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단지 시작이며, 더 나아가 날마다 자라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체가 더 단단한 음식을 먹고 점점 성장해 가듯이, 우리의 영적 몸도 그와 같이 영적 음식을 먹음으로서 자라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바로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에서 날마다 깊어지고 넓어지고 온전해짐으로써 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형상으로 우리를 창조하신 원래 모습으로 우리 성도들이 회복된다는 것은 영적으로 볼 때 단순히 아기와 같은 상태로 정지해 있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몸과 마음이 자라남으로 장성한 인격체로 성장함으로 가능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럼으로 사도 바울은 자신의 영적 성장의 비결을 남김없이 그의 사랑하는 영적 자녀이자 동역자들인 빌립보 성도들을 향해 고백함으로 써 그들 또한 자신과 같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통해 그분의 아름다움과 같이 자라나기를 도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저는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기 원하는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해 함께 생각하길 원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가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을 통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렇게 고백합니다. “ ~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v.8b~9a) 라고. 다시 말해, 사도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기 원하는 목적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고자 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를 얻을 뿐 아니라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는 뜻은 무엇일까요?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는 것이 다른 성경 버젼에서는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려는 것” (공동번역),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으려는 것” (새번역), “그분과 완전히 하나가 되기 위한 것” (현대인의 성경)이라고 번역된 것을 봅니다. 사도가 그토록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나기를 원했던 목적은 그리스도를 얻음으로서, 그분과 하나가 되고자 함이었습니다.

저는 말씀을 마무리 하면서 미국의 영적 부흥을 이끌었을 뿐 아니라 철학과 여러 학문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조나단 에드워드’의 자서전에서 그가 고백한 그리스도의 영광을 경험한 간증을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1737년 어느 날, 나는 건강을 위해 말을 타고 숲 속을 갔습니다. 휴식 장소에 도착해 평소처럼 말에서 내려 걸으면서 하나님에 대해 묵상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때 나는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즉, 그 분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 되신 것과 그 분의 놀랍고 위대하며 충만하고 순수하며 달콤한 은혜와 사랑, 또한 그 분의 온유하고 부드러운 겸손하심을 보았습니다.

이 은혜는 아주 조용하고 달콤하게 임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늘보다 크게 임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인격은 말로 표현할수 없을 정도로 탁월하게 보였습니다. 그리스도의 탁월함은 모든 생각과 개념을 삼킬 만큼 충분했습니다. 이 체험은 내가 판단하기에 약 한시간 가령 계속되었습니다. 그 시간 내내 나는 눈물을 홍수처럼 쏟으면서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나는 영혼의 열정이 텅 비어 버리고 없어져 버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렇게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다만 땅바닥에 엎드려 그리스도만으로 충만해지고 싶었습니다. 거룩하고 순수한 사랑으로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리스도를 믿으며 그리스도를 의지해 살고 그리스도를 섬기며 따르고 싶었습니다. 하나님과 천국의 순수함으로 완전히 성화되고 순수하게 되고 싶었습니다. 나는 다른 때에도 여러 번 이와 아주 비슷한 체험을 했는데 그 때마다 같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여러분이 소유한 그 어떤 것 보다도 영광스럽고 고상한 것임을 경험해 나가고 있습니까?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이라고 사도는 자기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 그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자신, 그의 생명으로 그분과 하나가 된 <새 사람>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그의 생명을 통해 다시 살게 되었음을 믿으십니까? 그럼으로 이제 여러분 안에서 사시는 그리스도를 인식하십니까? 여러분과 그리스도가 하나가 되었다는 이 놀랍고 비밀스러운 연합을 이해하십니까? 바라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날마다 자라남으로 그분을 바로 알아나가고 그분과 하나가 된 나의 새로운 존재의 영광과 비밀을 성령을 통해 더욱 깨닫아가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기대합니다. 그럼으로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의 십자가와 부활의 권능을 날마다 이해하고 누려 나가는 복된 성도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