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ruary 9, 2020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To Attain from His Dead)

Preacher:
Passage: 빌립보서 (Phillippians) 3:10~11
Service Type: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To attain from His dead)

2-9-20

본문말씀: 빌립보서 (Phillippians) 3:10~11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I want to know Christ and the power of His resurrection and the fellowship of sharing in His sufferings, becoming like Him in His death,)

11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and so, somehow, to attain to the resurrection from the dead.)

 

[설교 요약]

오늘 말씀은 계속해서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 그분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 (v.8~9)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사도는 더 깊은 영적의미로 자신의 삶을 열어서 상세하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v.10~11) 라는 것입니다.

<로이드 존스>목사는 <빌립보 3:10~11>을 강해하면서 ‘사도가 가졌던 3가지 열망’이 무엇인지를 설교했는데, 이것을 함께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이 품었던 3가지 열망”은 무엇일까요?

<첫째 열망>그리스도를 아는 것 입니다: 바로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더욱 온전히 깨달아 나가고 누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그분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어 나간다는 뜻입니다. 사도는 주님과 깊은 인격적인 관계로 맺어지길 열망했습니다.

<둘째 열망>그리스도를 닮는 것 입니다: 그런데, 그 분을 닮기 위해서는 먼저 세가지 필요한 요건들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1)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을 아는 것’ 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 (=능력)을 알기 원한다는 뜻은 무엇보다도 자신이 주님의 놀라운 부활의 능력을 통해 죄와 육신과 사단 마귀의 권세를 이기고 승리하는 경험을 누리기를 원한다는 뜻입니다.

2) ‘그 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 입니다. 우리가 골고다 언덕에서 주께서 지셨던 대속의 십자가를 질수는 없지만, 각자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날마다 주님의 고난에 참여할 수 것입니다.

3) ‘그 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 입니다. 사도 바울은 “형제들아 ~ 날마다 죽노라” (고전. 15:31) 고 고백합니다. 그의 자아를, 육신의 소욕을, 세상을 향한 사랑을 성령의 능력으로 죽였던 것입니다. 사도는 이것들을 통해 날마다 그리스도를 닮아갔던 것입니다.

<셋째 열망>은 ‘그리스도와 영광을 함께 하는 것’ 입니다.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v.11)라고. <11절>에서 사도가 말하는 ‘영광’은 현재가 아니라, 장차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누릴 영광입니다.

성도 여러분 모두 성령의 은혜로 주님의 부활의 능력 가운데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고 그의 죽으심을 본받는 참된 주님의 제자 되시길 기대합니다.

 

[설교 전문]

            우리는 계속해서 사도 바울의 삶의 진수를 보고 있습니다. 그 어떤 서신서 보다도 빌립보서에서 사도는 자신의 삶이 어떠하며, 그 승리하는 삶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하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자신이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과 연합한 삶을 가져올 수 있었는지?’를 집중적으로 밝히고 있는 본문이 <빌. 3장>인 것입니다. 지난 시간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사도는 자신의 간증을 통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고상한 이유는 그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고자 함’ (v.8~9) 이라고 고백했는데, 오늘 말씀을 통해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더 깊이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사도 바울의 그 놀라운 영적 승리의 비결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됨으로서>라고 한다면, 한걸음 더 나아가서 ‘어떻게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서 발견되어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영적 설명이 오늘 말씀인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v.10~11) 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한걸음 더 그리스도와 하나되는 소중한 영적 연합과 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기대합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시작하면서, 먼저 ‘빌립보서의 주제’를 상기하고자 합니다. 빌립보서의 주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기쁨’ 입니다. 세상이 줄수도 빼앗을 수도 없는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기쁨입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의 간증을 통해서 이론적으로 가 아니라, 삶의 경험을 통해서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가 누리는 기쁨이 차고 넘칠 수 있는지?’를 계속해서 목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사도는 이런 기쁨이 가능한 것은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 (v.8)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라는 것은 단순히 ‘머리로 아는 지식’ 뿐 아니라, ‘삶으로 경험한 지식’까지도 모두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지식을 통해 ‘그리스도를 얻고’ (win Christ), ‘그분 안에서 발견되고자’ (be found in Him)한다고 사도는 고백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가능한 것은 <‘나 자신의 의’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즉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서 난 의’ 를 소유한채 그 분 안에서 발견되기 때문> (v.9)이라고 사도는 지난 주 말씀 <9절> 후반부에서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을 통해 우리는 의롭게 되고, 그 의를 통해 주님을 얻고, 또한 그 안에서 발견되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계속해서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 그분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 (v.8~9)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사도는 더 깊은 영적의미로 자신의 삶을 열어서 상세하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점을 여러분과 함께 나눌수 있음을 저는 기쁘게 생각 합니다. 이런 복음의 진수를 바울의 삶을 통해 보여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바로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v.10~11) 라는 것입니다.

이제 <빌. 3장>에서 핵심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고자 함’이라는 사도의 열망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저는 <로이드 존스>목사가 그의 빌립보서에서 오늘 본문말씀을 강해 설교하면서 사도가 가졌던 3가지 열망에 대해 잘 설명했습니다. 저는 로이드 존스 목사가 설명한 오늘 말씀 가운데 “사도 바울이 품었던 3가지 열망”에 대해서 성도 여러분과 함께 나눠 보기 원합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바울의 <첫째 열망>‘그리스도를 아는 것’ 입니다. 바로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더욱 온전히 깨달아 나가고 누리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 각자가 우리 주의 영광과 그 아름다우심을 사도 바울과 같이 한번 맛보아 알게 되었다면, 우리는 그 한번으로 거칠 수 없는 것입니다. 자신이 자랑했고 소중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우리 주 예수님과 비교해 볼 때 얼마나 무가치하고 배설물처럼 쓸모 없는 것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과거, 나사렛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그들을 잡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을 잘 믿는 것으로 굳게 믿었습니다. 그런 그가 다메섹 언덕에서 예수님의 영을 만나고 나서, 그의 인생은 완전히 뒤바뀌게 된 것입니다. 그는 이제 예수 믿는 자를 핍박하는 삶에서 예수를 위해 핍박받는 삶으로 극적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왜요?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히브리 원어’에서 <야다>라고 합니다. 이 <야다>는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넘어서서, 경험을 통해 아는 것입니다. 부부가 서로를 ‘안다’고 할 때, 그 안다는 것은 이론적 으로가 아니라 경험으로 아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부인할수 없는 경험을 통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분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분과 인격적으로 더욱 깊이 교제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사도 바울의 한가지 소원이 있다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더욱 자라남으로 더 깊은 교제를 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의 <둘째 열망>‘그리스도를 닮는 것’ 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이해하게 되는 것은 그 분을 닮기 위해서는 먼저 필요한 요건들이 충족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1)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을 아는 것’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은 사망을 이기셨다는 뜻이요, 죄의 힘을 이기셨다는 뜻입니다. (고전. 15:55~57).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 (=능력)을 알기 원한다는 뜻은 그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죄와 사망과 사단 마귀의 권세를 이기고 승리하셔서 그를 믿는 모든 자를 구원하셨는지 그 구원의 비밀을 더 잘 이해하기 원한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그것보다 자기 자신이 먼저 주님의 놀라운 부활의 능력을 통해 죄와 육신과 사단 마귀의 권세를 이기고 승리하는 경험을 누리기를 원한다는 뜻이 강함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롬. 6:5,13) 내가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알아가고 있다면, 내 삶 가운데서 주의 부활의 능력으로 인하여 우리 자신을 의의 병기로 육신의 소욕과 싸워 이겨 나가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본받아 그분과 연합함으로 부활의 능력을 실천하고 있습니까? 바라기는 사도 바울과 같이 주님의 부활의 능력을 점점 더 경험하며 승리하는 신앙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를 더욱 닮아 가길 기대합니다.

2) ‘그 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 입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딤후. 3:12)고 사도 바울은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말합니다. 시대와 여건에 관계없이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핍박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도 이렇게 우리를 격려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 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벧전. 4:12~13) 라고. 우리에게 불과 같은 고난이 닥칠 때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미워하심도, 우리를 버려 두심도 아니요, 이 불시험을 통해 오히려 여러분과 저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게 되는 것이라고 베드로는 우리를 격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만약 우리가 이런 역설적인 영적 진리를 깨닫았다면 불시험으로 인해 의기소침하고 영적 침체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도전하는 것입니다. 누구도 예수께서 골고다 언덕에서 지신 십자가의 고난을 온전히 질 수는 없습니다. 그 속죄하여 주시는 십자가의 고난은 오직 주님만이 감당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고난에 참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눅.9:23) 고 우리 주님은 그를 따르는 제자된 우리 성도가 감당해야 할 고난의 십자가가 있음을 밝히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어떻게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시겠습니까? 만약 바울과 같이 정말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고 싶다면, 주님을 따라 감으로 여러분에게 주어진 각자의 십자가를 지시기 바랍니다. 바울이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도 각자의 십자가를 날마다 지고 주님을 따를 때 점점 더 그분의 고난에 온전히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3) ‘그 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 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비밀은 죽음에 있음을 잘 압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요. 12:25)고. 또한 사도 바울은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할 것이요” (딤후.2:11~12) 라고 그의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시고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신 것은 그분이 하나님과 동등됨으로 인함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를 낮추시고 겸손하게 종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을 뿐 아니라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심 때문이라고 사도는 앞장, <빌.2장>에서 선언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가 여기서 우리에게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너희 안에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는 것 아니었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그분의 마음을 품을까요? 어디서 출발하는 것이 그의 마음을 품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분의 겸손과 낮아지심을 마음에 품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한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 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와 영광은 오직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바로 앞에서 살펴봤듯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할 뿐 아니라, 그분의 죽으심과 본받아 자신도 죽기를 사도 바울은 열망했습니다. 이것이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주님을 얻고 주님 안에서 발견되는 길임을 그는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전. 15:31) 고 바울은 고백합니다. 그의 자아를, 육신의 소욕을, 세상을 향한 사랑을 성령의 능력으로 죽였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우리 주님을 본받아 날마다 죽고 있습니까?

바울의 <셋째 열망>은 ‘그리스도와 영광을 함께 하는 것’ 입니다. 사도는 선언합니다.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v.11)라고. 여기 <11절>에서 사도 자신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한다’고 말하는 것은 지금의 상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장차 사도가 마지막 날 생명 가운데 부활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누리는 영광된 변화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사도의 3가지 열망에는 <칭의와 성화와 영화의 모든 과정이 포함>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사도 바울의 이 깊고 진실한 삶의 고백을 묵상하면서 왜 제 자신이 지난날 그토록 제가 진지하게 성경을 믿고 주님을 믿는다고 했던 신앙고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힘들어하고 방황했던 지를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약속하신 성령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순종하지 않음으로 성령의 도우심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놀라운 십자가의 비밀과 영광스러운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바라기는 성도 여러분 모두 사도 바울에게 허락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와 부활의 영광이 삶속에서 기쁨의 열매로 임하시길 기도합니다. 바로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름으로 그분의 고난과 죽으심을 본받아 세상이 줄수 없고 빼앗을 수도 없는 주님의 기쁨으로 승리하는 삶을 사시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