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14, 2022

“화목된 자의 즐거움” (The Joy In A Reconciled God)

Preacher:
Passage: 로마서 (Romans) 5:9-11
Service Type:

“화목된 자의 즐거움”

(The Joy In A Reconciled God)

8-14-22

본문말씀: 로마서 (Romans) 5:9-11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 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 되었은 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11 이 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설교 요약]

            오늘날 왜 수많은 성도가 하나님과 진정한 화목을 누리지 못하는 것일까요? 저는 그 가장 큰 이유는 성경 (=복음)안에서 밝혀주고 있는 구원받은 자의 삶이 무엇인지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그것은 <로마서 5장>에서 밝히고 있는 ‘무엇이 <하나님과 화목하다>는 뜻인지?’를 이해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그것은

  • ‘신분적 의미’입니다: 내가 예수 믿어 구원받았다는 말은 그분의 피로 죄 씻음 받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v.9). 이것은 모든 구원받은 성도의 신분 (status)적 상태입니다. 다시 말해,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이 상태는 신분적으로 ‘하나님과 화목된 상태’라는 것입니다 (v.10). 한편,
  • ‘실제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우리 크리스챤이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신분을 소유할 뿐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과의 이런 화목된 평화’를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이 <11절>에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v.11)고 선언했을 때, 이것은 그들이 실제로 하나님과 화목과 즐거움을 누린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한걸음 더 나아가서 “어떻게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한 삶을 살수 있을까요?” 그것은

첫째, <영적인 자각>을 통해서 입니다: 하나님은 어쩌다가 충동적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그 기쁘신 뜻대로 천지가 창조되기도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자녀 삼으신 것입니다 (엡. 1:4-5). 이것이 어떤 우리의 행위가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하나님 아버지와 화목할 수 있는 근거인 것입니다 (롬. 5:1). 우리가 원수되었을 때에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v.10)

두번째, <자기점검>을 통해서 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신분에 있음에도, 실제적인 하나님과의 화목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면 ‘그 원인은 무엇인가?’를 우리는 분명히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성장배경의 쓴 뿌리’ ‘죄의 문제’ ‘건강하지 못한 자아관’ 그릇된 가치관’ 그리고 ‘잘못된 생활습관’ 등 다양한 장애물들이 성도를 하나님 아버지께로 나아감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세번째, <실천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를 향해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 새사람을 입으라” (엡. 4:22~24)고 도전했습니다. 이러한 도전은 분명한 결단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바로 ‘말씀과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성도의 교제 가운데 함께 성장함으로써 입니다. 사도 요한의 격려처럼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담대하게 사랑함으로 온전한 사랑을 이뤄나가는 것입니다 (요일. 4:16-18).

이와 같이 하나님과 화목된 관계 속에서 죄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승리하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소망합니다.

[설교 전문]

            성도 여러분이 만약 예수 믿고 거듭난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인정한다면, 여러분에게 있어서 가장 큰 특권과 만족은 무엇입니까? 만약 누군가가 저에게 그것을 질문한다면, 저는 <하나님과 누리는 평화의 삶>이라고 말씀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과 더불어 화목된 그분의 자녀가 됨으로, 더 이상 그분을 두려워하거나 그분과 서먹서먹한 관계가 아니라, 그의 사랑 안에서 충만한 즐거움과 만족을 누리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영적 삶을 실제로 살수 있다는 점이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구원받은 자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크고 영광된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 되었은 즉 ~ (또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v.10-11)고 사도는 복음의 진리를 선언합니다. 바라기는, 오늘 로마서에서 사도바울이 선포하는 놀라운 복음의 진리를 더욱 깨닫아 나감으로 하나님 아버지와 화목된 그의 자녀가 누리는 참된 평화와 즐거움을 점점 더 넘치게 누려 나가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아마 성도 여러분 중에 제가 앞에서 ‘누가 하나님의 자녀된 특권과 은혜를 누리는 자인가?’라는 질문에서 간파하신 분도 있겠지만, 적지 않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여전히 하나님과 참된 화평, 즉 ‘평화의 관계’를 누리지 못한다는 사실은 심히 안따까운 것이며, 우리 크리스챤은 이점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점이 제가 오늘 말씀을 통해 성도 여러분을 도전하고 격려하고자 하는 핵심 포인트인 것입니다. 바로 성도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었다면, “과연 여러분은 오늘 사도가 선포하는 것과 같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화목된 자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이점에 대해서, 우리 각자는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하고, 만약 여전히 그렇지 못한 자신을 발견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복음의 진리를 통해 파악해 나가야만 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에게 약속하신 이 진정한 복 (은혜/특권)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의 오늘 본문말씀이 포함된 <로마서 5장>의 주제는 ‘칭의의 결과’ 혹은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의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으로 복음의 진수로 불리는 로마서 가운데서도 <로마서 5장>을 통해 구원받은 자, 즉, 의롭다고 인정함을 받은 자의 본질적인 삶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사도는 잘 밝혀주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사도는 <8장>에서 구원받은 자의 ‘죄와 사망’에서 자유하게 된 상태가 어떠한 것인지를 성령과의 관계를 통해 영광스럽게 잘 묘사하고 있고, <12장> 이후에도 성도가 가지는 영적 유익을 보다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음식문제/ 인간관계의 문제/ 국가와의 관계 등을 통해)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성도가 누릴 수 있는 약속의 삶의 시작이자 끝은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결정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화목>하는 것이요, 이 화목된 관계로 인한 <하나님 아버지와의 평화한 삶>입니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성도들에게 기쁨과 감사와 즐거움이 넘치는 삶의 결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제 그렇다면, 우리가 함께 묻어보아야 할 중요한 질문은 ‘무엇 때문에 수많은 성도가 이와 같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축복된 그분과의 관계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인가?’하는 점입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그 무엇보다도 사도 바울의 오늘 본문말씀과 같이 ‘성경에서 말씀하는 구원받은 자 (=하나님의 자녀)의 진정한 특권과 은혜가 무엇인지를 우리 크리스챤들이 아직까지 영적으로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반면에 자녀에게 주어지는 특권을 복음의 진리를 통해 충분히 이해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고의로 불순종하고 거스리는 관계로 나아가는 경우는 극히 소수가 아닐까 하고 저는 미루어 짐작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복음의 말씀을 통해 ‘나의 영적 신분’ (존재)에 대해 올바로 자각하는 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이 예배에 참석한 성도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과 화평의 관계를 맺어 나가고 있습니까?! 그리고 만약 여러분 스스로 “내가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하다”고 느낀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런데, 여기서 ‘우리 인간이 하나님과 화목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우선적인 자기점검의 기준은 ‘현재 내 마음상태를 살펴볼 때 가능할 것입니다. 내 마음이 알 수 없는 불안과 염려, 두려움과 공포에 싸여 있다면 가장 먼저 나와 하나님의 관계에 대해 영적으로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크리스챤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음의 평화를 누리지 못하고 불안과 염려 가운데 살아간다는 것은 앞서 말씀드렸듯이 매우 불행하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런 영적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우리 성도에게 분명히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물론 우리 크리스챤의 삶에 있어서 실제적으로 우리의 내면의 평화와 기쁨을 앗아가는 것들은 다양한 원인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그 사람이 자라온 성장배경 (=환경)이 어떠 했느냐에 따라서 그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어떤 것보다도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입니다. 특별히 어릴 때 받은 상처와 나쁜 영향력은 비록 거듭났음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영적 치유와 회복이 뒤 따르지 않을 때, 여전히 그 여파가 남아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직접적인 죄의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부정적 생각이나 열등감, 우월감과 같은 잘못된 사고방식과 게으름이나 불규칙하고 충동적인 생활습관 등이 우리 크리스챤의 영적 성장을 가로막고 더 본질적으로 하나님과의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가는 것을 가로막고 있음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크리스챤의 내면의 평화와 즐거움을 앗아가는 원인들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말씀이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진실로 값진 복음의 진리의 말씀이 되는 것은 그 각자의 원인이 어디에서 출발한다 할찌라도 관계없이 하나님은 우리 자녀들에게 진정한 평화와 즐거움을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어떤 상황과 형편에도 관계없이, 하나님은 그의 전능하신 능력과 무한하신 사랑으로 그의 자녀를 그 모든 상처와 고통에서 치료하시고 악한 영의 공격에서 보호하신다는 것입니다. 아니 회복시킬 뿐 아니라 지금까지 한번도 경험해 보지도 못하고 기대해 보지도 못한 하나님 자신의 기쁨과 안식으로 우리를 채우시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바로 ‘하나님과 화목된 관계’를 회복함 으로서 입니다.

이제 ‘무엇이 <하나님과 화목하다>는 의미인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이것은 첫째, ‘신분적 의미’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분적 의미에서의 하나님과 화목이라는 뜻은, 내가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게 되면,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신분을 소유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게 된 것일까요? 이것은 오늘 본문 바로 앞에 있는 <롬. 5:8>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v.8) 여러분이 잘 알는데로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가져온 영적 결과가 오늘 본문말씀인 것입니다.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v.9) 라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죄사함 받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되는 것이요, 이것이 성도가 신분적으로 하나님과 화목 되었다는 영적 논리의 근거가 되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 즉” (v.10)이라고 바울이 선언하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볼 때,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될 때, 그분의 피로 말미암아 죄씻음 받아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불러주시고 이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와 화목한 관계를 회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 두번째, ‘실제적인 영적 상태의 의미’에서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내가 하나님과 평화의 관계에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 저는 이점을 성도 여러분과 강조해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사도가 이어지는 <11절> 말씀에서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v.11)고 말입니다. 여기서 보는 것처럼 사도는 우리 성도가 하나님 아버지와 더불어 화목하게 됨으로써 이제 더 나아가 그분 안에서 또한 즐거워한다고 고백한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여기 <11절>에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한다고 이해하십니까? 이것은 그런 대단한 신분을 가진 존재일 뿐 아니라, 그 영광스런 신분에 합당한 실제적인 삶을 산다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아버지와 더불어 화목 되어지는 삶을 살고 있고, 이로써 그분 안에서 즐거움이 넘치는 은혜의 삶을 실제로 누리고 있다는 똣입니다. 사도가 계속해서 <롬 5장>을 통해 강조하고 또한 소유하기 원하는 것은 이와 같은 우리가 삶속에서 하나님과 누리는 실제적인 평화요, 기쁨이요, 능력인 것입니다. 더 이상 신분에만 매달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두가지 점이 크게 ‘하나님과 화목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에 대한 신분적 그리고 실제적인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어떻게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한 삶을 살수 있을까요?”라는 가장 주요한 질문을 하기 원합니다. 어떻게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과 진정한 화목된 삶을 누리고 그로 말미암아 평화와 만족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저는 이런 삶은 그 무엇보다도 첫째, <영적인 자각>에서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얼마전에 끝마친 ‘에베소서’ 강해 말씀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듯이,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를 우연히 택하신 것이 아닌 것입니다. 내가 한번 믿어 봐야지 하고 마음 한번 먹었다고 택하신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이 창조되기도 전에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엡. 1:4). 물론 이것은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는 그분의 무한하신 은혜입니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 (엡. 1:5)는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 아버지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과 저를 그분의 사랑받는 아들과 딸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죄 씻어 주시고, 의롭다 불러 주심으로 하나님의 죄에 대한 진노를 없이해 주셔서 그분과 화목할 자격이 있는 자녀의 신분으로 회복시켜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영적으로 이해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단어 속에 담겨있는 이 영적 축복, 이 영적 진리를 이해했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두번째, <자기점검>이 필요합니다. 무슨 점검을 해야 할까요? 그것은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됨으로서 약속하신 하나님 아버지와 화목된 영적 관계를 가로막는 장애물은 무엇인지를 영적으로 점검해 보는 것입니다. 물론 이 작업이 결코 간단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때로 이 장애물은 제가 앞서 언급했듯이 여러분의 성장배경에서 찾을 수도 있습니다. 어린시절 받은 어떤 상처와 부정적인 영향이 계속해서 내면의 쓴 뿌리로 박혀 있게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또는 언젠가부터 형성된 신앙양심을 거스리는 죄의 문제로 기인하기도 하고, 부정적이고 혼란된 사고방식과 가치기준, 그리고 바람직하지 못한 생활습관 등이 궁극적으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로막을 수 있음을 우리는 인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점검과정에서 혹은 한가지, 혹은 서너 가지가 ‘나의 문제였구나’하고 여러분은 깨닫을 수도 있습니다.

이제 마지막 단계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세번째, <실천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이런 결단함으로 실천하는 삶을 이렇게 촉구합니다.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 새사람을 입으라” (엡. 4:22~24),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 5:16),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엡. 5:18), 그리고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때가 벌써 되었으니 ~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롬. 13:11-12)라고 다양하게 성도를 믿음으로 격려하고 행함으로 도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의 성장환경의 문제이든, 더욱이 죄의 문제이든, 여러 잘못된 가치기준과 생활방식의 문제이든 이것이 내 여적 삶에 악영향을 끼쳤다고 깨닫는다면, 이제 행동으로 보이라는 것입니다.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사람을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더욱 말씀과 가까이함으로써 입니다. 그것은 큐티가 되었건, 통독이 되었건, 더 깊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그 뜻을 깨닫아 순종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또한 기도해야 합니다. 새벽기도와 일정한 시간을 정해서 하는 기도도 좋지만 ‘쉬지 않고 기도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기도가 삶이 될 수 있도록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의 교제도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서로를 책임지고 함께 기도하고, 사랑가운데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할 수 있는 신앙공동체 안에서 함께 자라나가야 합니다.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 함께 나누고, 지체의 허물과 아픔을 사랑으로 품을 수 있는 우리가 되도록 연습해 가야 합니다. 이것을 통해 여러분과 저는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 아버지와 실제적인 화목을 이룰 수 있고, 그 분안에서 평화와 만족을 누려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요한은 이렇게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담대하고 온전하기를 도전하고 격려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요일. 4:16-18)라고. 바라기는 하나님과 더 깊은 사랑의 관계 속에서 죄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사단 마귀의 권세를 이기며 성령의 능력으로 승리하며 주의 사랑으로 귀한 열매를 맺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