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 13, 2022

“그리스도의 제자” (The Disciple of Christ)

Preacher:
Series:
Passage: 누가복음 (Luke) 14:27, 33
Service Type:

“그리스도의 제자”

(The Disciple of Christ)

11-13-22

본문말씀: 누가복음 (Luke) 14:27, 33

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니라 (And anyone who does not carry his cross and follow me cannot be my disciple)

33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In the dame way, any of you who does not give up everything he has cannot be my disciple)

[설교 요약]

            예수님은 오늘 말씀을 통해 ‘자신의 제자로서 합당한 자’가 누구인지를 도전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말씀 <27절>과 <33절> 사이에 있는 <28-32절>에서 주님은 2가지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한가지는 ‘만약 망대를 건축코자 한다면, 먼저 그 비용을 계산해 볼 것이다’라는 것이고, 다른 한가지는 ‘만약 전쟁을 준비하고자 하는 임금이 있다면, 그는 먼저 그 전쟁이 승산이 있는지를 점검해 볼 것이다’라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이 비유를 통해 ‘너희가 나를 따르려면, 먼저 치뤄야 할 대가가 무엇인지를 계산해 보아야 한다’고 도전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주님의 제자로서 치뤄야 할 대가지불일까요?” (What are the costs of being His disciples?) 그것은,

  • 가치관의 대가지불” (These are the paying the costs of our values)입니다: 한 부자청년이 주께 달려와 영생 얻는 길을 구했을 때,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마. 10:21)고 주님은 도전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청년은 슬픈 기색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의 많은 재물이 주님을 따르는 길을 가로막은 것입니다. 우리 각자는 마찬가지로 다양한 ‘세상적 가치관’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세상을 향한 야망, 육신의 쾌락, 자기 철학, 자기계획 등이라는 가치관을 버리는 대가 지불이 있습니까?
  • 인간관계의 대가지불” (These are the paying the costs of our relationships)입니다: 주님은 오늘 말씀 앞절 <26절>에서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눅. 14:26)라고 도전합니다. 물론 부모와 처자와 형제, 자매는 우리가 늘 사랑할 대상이지만, 주님은 제자된 우리들에게 그 누구보다도 자신을 먼저 사랑할 것을 도전하십니다. 주께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요. 21:15)라고 베드로에게 질문하셨듯이 말입니다.
  • 자기 십자가를 지는 대가지불” (These are the paying the costs of carrying our own crosses)입니다: 주님은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니라” (v.27)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자기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가치관과 인간관계의 대가지불’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받는 고난’입니다. 우리 각자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지키고자 순교를 각오한 대가지불인 것입니다.

바라기는 주님을 따르는 영광된 제자의 삶을 성령을 통해 깨닫아 감으로,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충성된 제자로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기도합니다.

 

[설교 전문]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될 때,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자를 ‘제자’ (disciple)라고 불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듯이 주님은 자신을 믿는 자를 “나의 제자들” (my disciples)라고 부르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 본문이 포함된 <눅. 14장>에서 ‘누가 진정한 주님의 제자인지?’를 밝혀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날 우리가 익숙한 용어로 표현한다면, “누가 참된 그리스도인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주님 자신의 중요한 답변일 것입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합당한 주의 제자인가?’를 진지하고도 겸손하게 스스로 되돌아보며, 주께서 우리에게 격려하시고 도전하시는 <제자의 삶>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또한 충성된 제자의 삶 살아가기를 결단하는 시간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은 오늘 말씀을 통해 ‘자신의 제자로서 합당한 상태’, 즉 ‘제자의 조건’에 대해 분명히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먼저 한가지 생각해 볼 것은 이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인 <27절>과 <33절> 사이에 있는 <28-32절>의 주님의 말씀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여기서 2가지 예화를 들고 있는데, 그것은 첫째, ‘만약 누군가가 적군이 오는지를 감시하기 위해 높이 세우는 <망대> (watchtower)를 짓고자 한다면, 반드시 먼저 그것을 세울 비용을 계산해 볼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치적이고 지혜로운 처사라는 것이죠. 만약 공사를 시작했다가 비용이 없어서 중도에 그만둔다면, 그것은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은 만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보는 자들이 그것을 비웃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두번째 비유는, 어떤 임금이 다른 나라 임금과 전쟁을 벌이려고 할 때, 반드시 먼저 계산해 볼 것이라는 것입니다. 즉, 우리측 병사 1만명으로써 상대방 2만명을 대항하여 이길 승산이 있는지를 말입니다. 그리하여 만약 승산이 없다고 판단되어진다면, 상대 임금이 아직 멀리 있어서 공격을 개시하기 전에 일찌감치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명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두가지 비유를 통해 주께서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을 향해 도전하시는 메세지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분명히 계산해 보라’는 것이 아닐까요?! ‘만약 너희가 나를 따르는 제자의 삶을 살고자 한다면, 무턱대고 따라 나섰다가 중도에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산해보고 그것이 가치 있는 삶이라면, 그 무엇을 지불해서도 아깝지 않고 값진 삶이라고 확신이 선다면, 따르라!!”고 도전하시는 말씀이 아닐까요? 그러나 이 말씀은 ‘생각해보고, 계산해 보고, 자신이 없고 확신이 없으면 나를 따르기를 포기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은 분명히 ‘지불해야 할 대가가 있는 삶임을 처음부터 분명히 인식해라’는 뜻이라고 저는 이해하는 것입니다. 제자의 삶은 기쁨과 확신과 승리의 삶임과 동시에 피할 수 없는 고난과 연단이라는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삶임을 먼저 각오하고 주를 따르고자 결심하라는 뜻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주님의 제자입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도전하는 말씀을 주의 깊게 마음에 새기고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제가 오늘 말씀의 제목으로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잡았는데, 이것을 좀더 직접적으로 표현하면 ‘제자의 조건’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과연 무엇이 그리스도의 합당한 제자의 조건이냐?’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대가를 지불할 준비가 된 자>라고 이해합니다. 바로 주님은 자신을 따름으로 치러야 될 대가를 감당할 준비가 된 자를 “나의 제자”라고 인정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저는 무엇이 주님의 제자로서 치뤄야 할 대가지불일까요?” (What are the costs of being His disciples?)에 대해 주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첫째, “가치관의 대가지불” (These are the paying the costs of our values)입니다: 저는 제 개인적으로 주님을 따르고자 했지만, 끝내 그분을 따르지 못하고 떠나버린 한 청년을 안따까운 마음으로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는 한 부자 청년입니다. 마가는 그 청년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 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막. 10:17)라고. 예수님께서 길을 가실 때, 달려와서 주님의 발 앞에 꿇어 앉아 진지하게 어떻게 하여야 영원한 생명, 즉 구원받을지를 묻은 청년이 있었습니다. 주께서 그 청년의 질문에 대해 먼저 십계명의 말씀을 언급하시며,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막. 10:19)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그 청년은 자신은 이 계명을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자신있게 대답할 만큼 (v.20) 나름 열심으로 신앙생활 했다고 자부하는 청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청년에 대해 그 다음 말씀은 저의 마음을 아련하게 합니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마. 10:21)고. 주님은 그 청년을 힘들게 하고자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그 청년을 사랑하사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looked at him, and loved him)라고. 그를 진실로 사랑하셨기에 주님은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무엇을요?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 그리고 나를 따르라”고. 왜요? 주님은 그 청년에게 있어서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게 가로막는 장애물은 바로 ‘재물’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그 청년의 많은 재물이 탐이 나신 것도, 배가 아파서도 아닙니다. 그의 많은 재물이 자신과 주님의 관계를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주님을 따라 나서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장애물이 됨을 주님은 잘 아셨기에 그것을 정확히 지적하셨고, 성경에서 가장 안타까운 장면을 저는 보는 것입니다. 그 청년은 주님의 도전의 말씀으로 인해 슬픈 기색으로 근심하여 발길을 돌렸던 것입니다 (v.22). 그리고 그는 두번 다시 주님을 찾아오지 않은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나는 돈에 대해 별 욕심이 없어서 예수님을 따르는데 문제없다고 생각하는 분은 없습니까? 여러분도 베드로처럼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막. 10:28)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출세하고자 하는 야망, 학문적인 욕심 혹은 육신의 쾌락을 추구하는 마음, 그리고 스스로 만든 가치관에서부터 여러분은 자유롭습니까? 여러분은 예수님을 따르는데 걸림돌이 되는 이런 육신적인 가치관을 내려놓고, 대가를 지불함으로 주님의 제자로 그분을 따르고 있습니까?

둘째, “인간관계의 대가지불” (These are the paying the costs of our relationships)입니다: 주님은 또한 분명히 ‘인간관계에 있어서 우리가 지불해야 할 대가’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씀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예수님은 <마태복음>에서 이렇게 도전하셨습니다. “아비나 어미나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마. 10:37)라고. 그렇다면 “아비나 어미나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않다” 든지, 혹은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않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이 동일한 의미의 말씀을 주님은 바로 오늘 말씀 앞절인 <26절>에서 이렇게 도전하시고 있습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눅. 14:26)라고. ‘부모나 처자나 형제를 예수님 보다 더 사랑함’을 ‘그들을 미워하지 않는 것’으로 주님은 놀라운 강조법을 쓰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정말 주께서 우리가 우리의 부모와 형제와 처자를 미워하기를 원한다고 믿으십니까? 물론 그렇치 않습니다. 조금 전 부자청년에게 말씀하시듯 “내 부모를 공경하라”는 십계명의 말씀으로 가족에 대한 사랑의 중요성을 밝히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와 처자와 형제를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는 이 몰인정해 보이는 주님의 말씀은 무슨 의미일까요? 그것은 ‘우선순위’ (priority)일 것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예수님을 그 누구보다도 더 사랑하십니까? 주님은 이런 우선순위의 사랑을 여러분과 저에게 분명히 요구하십니다. 바로 부활하신 주께서 사랑하는 제자 베드로에게 이렇게 물으셨듯이 말입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Simon son of John, do you truly love me more than these?) (요. 21:15)라고. 주님은 지금 여러분과 저에게도 동일한 질문을 하심을 믿습니다.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만약 여러분이 그 누구보다도 주님을 더 사랑하지 않을 때, 여러분은 능히 자신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주님은 분명히 영적 진실을 도전하시는 것입니다.

셋째, “자기 십자가를 지는 대가지불” (These are the paying the costs of carrying our own crosses)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에서 주님은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니라” (v.27)고 제자의 조건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는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도전하십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 각자의 십자가’ 입니까? 그런데, 사도 바울은 갈리다아 교회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갈. 6:2)고 성도를 격려하고 나서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 (갈. 6:4-5)고 또한 도전함을 봅니다. 먼저 우리 성도들은 서로의 무거운 짐을 사랑 가운데 서로 나뉘짐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의 법을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는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고 우리 각자는 남과 나눠질 수 없는 각자의 짐이 있음을 밝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 십자가’인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데로 돈을 사랑하거나 세상 명예와 쾌락을 사랑하는 것과 같은 육신적인 가치관을 버리는 것과 부모와 형제 그리고 처자와 같은 진한 인간관계를 뛰어 넘어선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도 당연히 ‘자기 십자가를 지는 대가지불’임은 우리는 잘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을 그것과 구분한 것은 특별히 ‘주님을 좇아감으로 지불해야 하는 <고난과 박해>의 대가지불’을 강조함입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받는 고난의 대가지불인 것입니다.

20세기의 대표적인 순교자의 한사람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많은 대가를 지불하고 따랐던 제자로 인정받는 <디트리히 본훼퍼>를 여러분은 아십니까? 그는 히틀러의 나치 독재 치하에서 여러 해 동안 감옥에서 고통 당하다가, 나치정권이 패망하기 몇일 전 39세의 젊은 나이에 감옥에서 순교 당했습니다.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제자도의 대가” (The Cost of Discipleship)에서 그는 ‘값싼 은혜’ (cheap grace)와 ‘값비싼 은혜’ (costly grace)라는 단어를 대조적으로 소개합니다. 여기서 본훼퍼는 ‘값싼 은혜’는 <죄에 대한 고백이 없는 성만찬, 죄에 대한 회개 없이 용서받을 수 있다는 설교, 그리스도를 따름이 없는 은혜, 그리스도를 따름에 따른 고난이 없는 은혜>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반면 ‘값비싼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이다. 은혜가 값비싼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촉구하시기 때문이다. 은혜가 값진 것은 죄를 정죄하고, 죄인을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은혜가 값비싼 까닭은 하나님께서 그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셨기 때문이다. 곧 자신의 외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위해 생명의 대가로 지불하셨기 때문이다>라고 선언합니다. 우리는 본훼퍼를 통해 무엇이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며, 무엇이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인지를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선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의 독생자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위해 내어 주신 값비싼 은혜를 깨닫아 감으로 말미암아 어떤 대가라도 지불해 나가는 삶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돈이나 명예나 세상 쾌락보다도, 아니 여러분이 사랑하는 그 누구보다도 더욱 주님을 사랑하는 그분의 제자입니까? 그럼으로 날마다 여러분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그분의 제자입니까? 바라기는 어떤 부득이함으로나 의무감에서 가 아니라, 선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값비싼 은혜를 성령의 도우심으로 날마다 더욱 더 깨닫아 감으로 주님의 충성되고 신실한 제자로 살아가는 복된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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