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늙은이는 꿈꾸며” (Your old men will dream dreams)
“너희 늙은이는 꿈꾸며”
(Your old men will dream dreams)
2-17-19
본문말씀: 요엘 (Joel) 2:28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And afterward, I will pour out my Spirit on all people. Your sons and daughters will prophesy, your old men will dream dreams, your young men will see visions)
[설교 요약]
이번주는 <영적 훈련> 2번째 메세지 입니다. 주님께서 ‘꿈꾸게 하심으로’ 우리를 훈련하심을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과연 무엇이 꿈꾸는 삶인지를 근대선교의 아버지로 불리는 ‘윌리엄 켈리’ 인도선교사는 이렇게 잘 선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 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 (Expect great things from God, attempt great things for God)”
요엘은 먼저 1~2장에서 그 당시 남유다백성들의 임박한 심판을 경고하고 회개를 촉구하고나서, 오늘 본문을 통해 먼 훗날 ‘성령충만’을 통해 회복될 하나님의 백성들의 꿈꾸는 소망을 예언하고 있는 것 입니다.
이제 구체적으로 “어떻게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꿀수 있을까요?”
첫째, ‘성령의 충만’을 통해 가능합니다 (We may dream dreams through the fulfilment of the Holy Spirit); 요엘 선지자는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심판의 날이 지난 후에’ 일어날 일을 예언하는 것 입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v.28) 이 회복의 날에 주의 성령께서 충만히 우리에게 임하실때 <늙은이는 꿈을 꾸며, 젊은이는 비젼을 볼것> 입니다. 성령충만은 내 행복과 내 소원성취를 위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충만은 주께서 명하신 사명을 충성되게 잘 감당하고 아름다운 열매맺게 하고자 허락하신 은혜인 것 입니다.
둘째, ‘기도로 나아감’을 통해 가능합니다 (We may dream dreams through the our prayers); 무명의 저자로 알려진 “무릎으로 사는 그리스도인” 에는 이런 글이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없이는 하나님의 환상을 볼수 없다. 그리고 환상이 없는 곳에서는 영혼이 죽어간다” 라고. 무릎 꿇어 기도함으로서 날마다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는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을 꿀수가 없고, 그로말미암아 그의 영혼은 영적으로 죽는다는 것이다. 성도 여러분은 기도 가운데 꿈을 회복하고 있습니까?
셋째, ‘겸손히 맡김’을 통해 가능합니다 (We may dream dreams through humble commitments to God); 우리가 잘 알드시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한 후 하나님께 눈물의 회개를 드리며, 그토록 자신의 죄를 고통스럽게 깨닫은 이유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거두어 가셨기 때문입니다. “주님 앞에서 나를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거룩한 영을 나에게서 거두어 가지 말아 주십시오” (시. 51:11) 라고 다윗은 간구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히 자신을 맡기는 자녀들에게 그의 충만한 영을 허락 하셔서 다시 꿈을 회복케 하십니다. 그리하여 구원의 감격과 꿈을 회복시키시는 것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그의 제자들을 꿈꾸게 하심으로 강한 제자로 훈련시키심을 저는 믿습니다. 비록 육신의 눈으로 보이지 않고, 현실 상황은 바랄수 없는 상황일찌라도 그 약속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권능을 신뢰하며 끝까지 인내함으로 허락하신 꿈을 하나님의 때에 아름답게 열매맺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기대 합니다.
[설교 전문]
이번주는 우리 주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허락하신 <영적 훈련>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2번째 메세지 입니다. 지난주에 주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배움’ (learning)을 통해 훈련하심을 살펴 보았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배우고, 우리자신은 계속해서 겸손히 배워야하는 존재임과 그리고 실패를 통해 배워야 함에 대해 살펴 보았습니다. 이번주는 주님께서 ‘꿈꾸게 하심으로’ 우리를 훈련하심을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꿈꾼다’ (dreaming) 는 말은 때에 따라선 막연하고 비현실적으로 듣릴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역사도 소수의 꿈꾸는 자에 의해 바뀌어 왔음을 우리는 압니다. 더욱이 크리스챤의 역사는 꿈을 꿈으로 열매맺는 역사임을 우리는 부인할수 없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나는 꿈을 꾸고 있는지? 꾸고 있다면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를 살펴보며 주님의 충성된 제자로 꿈꾸는 행복과 그 열매를 맺는 복된 인생 되기를 기대 합니다.
주께서 그의 제자들을 훈련하시는 중요한 원리의 하나가 ‘꿈꾸게 함’이라면, 우리가 물어봐야 하는 첫번째 질문은 ‘그것은 무슨 꿈을 꾼다는 것인가?’라는 것 입니다. 이 꿈은 어떤 꿈입니까? 이것이 나의 인간적인 야망이나 비현실적인 막연한 바램을 꿈꾸는 것 입니까? 그것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렇다면, 도데체 그 꿈은 무엇입니까? 그 꿈은 바로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꿈꾸게 하실수 있는 꿈인 것 입니다. 과연 무엇이 꿈꾸는 삶인지를 근대선교의 아버지로 불리는 ‘윌리엄 켈리’ 인도선교사는 이렇게 잘 선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 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 (Expect great things from God, attempt great things for God)” 하나님으로 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는 것이,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시도하는 것이 꿈꾸는 삶이라는 것 입니다. 만약 우리가 진지하고 면밀하게 성경을 살펴보면, 얼마나 꿈꾸는 자의 삶으로 가득차 있는지를 발견할수 있는것 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그를 따르는 제자들을 ‘꿈꾸게 함’으로서 훈련시키시는 것 입니다.
저는 먼저 오늘 본문이 포함된 <요엘서>의 개요와 본문과의 관계는 무엇인지를 살펴 보겠습니다.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라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의 ‘요엘’선지자는 BC 830년경에 요엘서를 기록한 것으로 추측 됩니다. 이시기는 아직 이스라엘민족이 바벨론과 앗시리아의 침략을 받지 않고, 나라가 망하여 포로로 잡혀가지 전에 해당 합니다. 요엘선지자의 메세지는 ‘심판과 회복’ 로 요약할수 있습니다. 요엘서의 기록목적은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에 대한 경고’입니다. 그리고 교리적으로 (1) 여호와의 날 (=심판)과 (2) 여호와의 영이 오심 (축복)으로 정리 됩니다. 그리고,
내용적으로 볼때 요엘서는 크게 2부분으로 나눌수 있는데, 첫째는 [1장~2:18]으로서 ‘메뚜기 재앙과 장차 임할 여호와의 날에 대한 경고’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그는 유다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고 그들의 회개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2:19~3:21]인데 ‘이스라엘의 회복과 축복의 약속’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요엘은 참되게 회개하는 자들에 대한 회복의 약속을 성령의 감동으로 선언하고 있는 것 입니다. 모든 성경이 그러하듯 요엘서에서도 구체적인 문제상황은 ‘당면한 메뚜기떼의 피해, 그리고 임박한 강대국의 침략’을 예언하고 있으나, 그것은 본질적으로 모든 시대와 사람들을 막라하는 ‘여호와의 날’, 즉 하나님의 심판날의 경고와 회개하는 자에게 허락된 ‘회복’을 예언하는 것 입니다. 바로 오늘 본문의 ‘장차오실 성령의 충만한 임재’가 또한 그것 입니다. 요엘은 그 당시 남유다백성들의 임박한 심판을 경고하고 회개를 촉구하면서도, 먼 훗날 ‘성령충만’을 통해 회복될 하나님의 백성들의 꿈꾸는 소망을 예언하고 있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구체적으로 “어떻게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꿀수 있을까요?” (How do we dream dreams from God?):
첫째, ‘성령의 충만’을 통해 가능합니다 (We may dream dreams through the fulfilment of the Holy Spirit); 오늘 본문에서 선지자 요엘은 ‘그후에’라는 접속사로 말씀을 시작합니다. ‘그후에’ (and afterward) 는 ‘언제 후’에라는 뜻일까요? 그것은 <‘여호와의 날’ 즉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심판의 날’ (v.31)이 임한 후에> 라는 뜻 입니다. 따라서,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심판의 날이 지난 후에’ 일어날 일을 예언하는 것 입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v.28) 여호와께서 그의 영, 성령을 모든 만민에게 부어 주시겠다고 약속 하심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바로 회복의 날 입니다. 이 회복의 날에 주의 성령께서 충만히 우리에게 임하실때 <늙은이는 꿈을 꾸며, 젊은이는 비젼을 볼것> 입니다. 그렇다면, 성령님은 누구십니까? 성령님은 우리 성도들을 거듭나게 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게 하실뿐 아니라, 성도들이 그 거듭난 신분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고 저는 말씀 드렸습니다. 주님을 믿는 성도들은 반드시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함’을 말 입니다. 물론 저는 잘 압니다. 현실은 성령충만 받지 못한 구원받은 자가 너무도 많다는 사실 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충만을 받고자 결정하는 것은 바로 우리자신이기 때문 입니다. 내가 인격적으로 성령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성령께 순종할때 ‘그분의 충만하신 임재’를 경험할수 있는것 입니다. 이것이 에베소교회를 향해 사도바울이 도전한 핵심 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엡. 5:18)고 말 입니다. 내 노력과 성품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을때 우리는 비로소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엡. 5:19) 하는 즐거움과 기쁨이 넘치는 꿈꾸는 자의 삶을 살게 되기 때문 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그의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행. 1:4)고 분부 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성령충만의 역사’ 입니다. 요엘을 비롯한 구약의 여러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이 약속하신 역사 입니다. 그들이 기다리며 합심하여 기도했을때, ‘불의 혀같이 충만하게 임하신 성령의 역사’를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모든 제자들은 함께 경험하게 된것 입니다 (행. 2장). 그리고 그들이 ‘성령충만’의 경이로운 역사를 경험했을때, 사도 베드로가 곧바로 선언한 것이 바로 오늘 본문말씀에서 요엘의 예언이 성취 되었다는 것 입니다 (행. 2:16-21) 무엇이 꿈꾸는 것 입니까? 그것은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한 하나님의 아름다운 역사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즐거워 하는 것>이라고 저는 정의하고 싶습니다. 성령충만은 내 행복과 내 소원성취를 위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충만은 바로 주께서 명하신 사명 (=사역)을 충성되게 잘 감당하고 아름다운 열매맺게 하고자 허락하신 은혜인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지금 성령충만 가운데 꿈꾸는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까?
둘째, ‘기도로 나아감’을 통해 가능합니다 (We may dream dreams through the our prayers); <이사야 6장>을 읽어보면, 이사야가 어떻게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광을 보게 되었는지를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 하였고,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 하도다” (사. 6:1~3) 라고. 52년간의 정치.군사.경제적으로 최고전성기를 누리던 웃시야왕이 죽던 해에 이사야가 성전예배를 드리고 있을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셔서 이사야를 자신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로 부르시는 장면 입니다. 또한 다니엘은 바벨론 느부갓네살왕의 꿈을 해석하기 위하여 자신 뿐 아니라, 그의 세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에게 그 꿈을 깨닫도록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해 달라고 부탁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밤에 간절히 기도 드렸을때 하나님께서 은밀한 환상을 통해 느부갓네살왕이 꾼 꿈의 비밀을 알게 하여 주신것 입니다 (단. 2:17~19).
이와같이 하나님의 특별한 택하심으로 성경을 기록한 여러 성경기자들 뿐 아니라, 수없이 많은 주님의 참된 제자들은 모두 기도를 통해서 그 능력을 얻을수 있었음은 새삼 강조할 필요조차도 없을것 입니다. 무명의 저자로 인해 더욱 유명해진 “무릎으로 사는 그리스도인” (The kneeing Christian) 에는 이런 도전적인 글이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없이는 하나님의 환상을 볼수 없다. 그리고 환상이 없는 곳에서는 영혼이 죽어간다” 라고. 여기서 ‘환상’은 무엇을 뜻할까요? 이 ‘환상’은 어떤 신비주의 자들이 주장하는 초현실적인 체험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환상’은 윌리암 케리선교자가 정확히 정의한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임하는 위대한 일’입니다. 바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꿀수 있는 꿈’ 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환상, 즉 꿈을 꾸지 못한다면 내 영혼은 죽어가고 있다고 저자는 도전하고 있는 것 입니다. 따라서, 무릎 꿇어 기도함으로서 날마다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는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을 꿀수가 없고, 그로말미암아 그의 영혼은 영적으로 죽는다는 것이다. 소망도, 기쁨도, 열정도 상실하는 것이다. 성도 여러분은 기도 가운데 꿈을 회복하고 있습니까?
셋째, ‘겸손히 맡김’을 통해 가능합니다 (We may dream dreams through humble commitments to God); 우리가 잘 알드시 다윗은 충신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하는 중대한 범죄를 하나님 앞에서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단선지자를 통해 그를 책망하심을 듣고, 다윗은 즉시 무릎꿇어 눈물의 회개를 드렸습니다. 그 진정한 회개의 시가 <시. 51편> 입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 하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시. 51:1,2) 라고 그는 거짓없는 참회의 고백을 드리는 것 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놓쳐서는 않되는 중요한 한가지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윗이 그토록 자신의 죄가 악함을 고통스럽게 깨닫은 이유는 그가 단지 매우 양심적인 사람이거나 교리적으로 간음이 심각한 죄임을 인정했기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 입니다. 그를 그토록 견딜수 없을만큼 고통스럽게 한것은 그가 범한 죄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성령을 거두어 가셨기 때문 입니다. “주님 앞에서 나를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거룩한 영을 나에게서 거두어 가지 말아 주십시오. 주께서 베푸시는 구원의 기쁨을 내게 돌려 주시고, 너그러운 영을 보내셔서 나를 붙들어 주십시오” (시. 51:11,12) 라고 다윗은 하나님께 절규하고 있습니다. 지금 다윗이 그 어떤것보다 참을수 없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성령님이 그 속에서 소멸되어 감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기쁨을 상실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성령이 주시는 꿈을 더이상 꿀수가 없었던 것 입니다. 앞에서 나누웠던 어느 무명의 그리스도인 저자가 도전했드시 다윗은 그의 범죄로 인하여 ‘더이상 하나님만이 주시는 꿈을 꾸지 못함으로 영혼이 병들어 죽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울왕과 수없이 많은 그의 원수들로부터의 죽음의 위협가운데서도 빼앗기지 않았던 소망의 꿈을 상실함으로서 말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히 자신을 맡기는 자녀들에게 그의 충만한 영의 임재하심을 통해 꿈을 회복케 하십니다. 그 죄와 허물이 헤아릴수 없이 많을찌라도 더 이상 기억치 않으십니다. 진실하게 죄를 회개하며, 깨끗한 마음과 정직한 영을 얻기 원하는 자녀에게 하나님은 결코 그 은혜를 거절하지 않으시기 때문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그의 은혜얻기를 진실로 원하십니까?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라고 자부하는 크리스챤 청년들조차도 언제나 눈에 보이는 현실적인 가능성으로 스스로의 삶을 제한하는 모습을 우리는 너무도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비젼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 입니다. 그러나, 겸손히 자신의 죄와 허물을 고백하고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에게 하나님은 다시 그의 영, 성령님을 통해 구원의 감격을 회복시키심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를 꿈꾸는 자의 기쁨으로 충만케 하심을 믿습니다. 이때 비로소 젊은 청년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비젼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 볼수있으며, 늙은이들 조차 꿈꾸는 감격의 삶을 살아갈수 있는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날마다 겸손히 자신의 죄를 주께 자복하고 그분께 나를 맡김으로 하나님만이 주시는 비젼을 회복해가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그의 제자들을 꿈꾸게 하심으로 강한 제자로 훈련시키심을 저는 믿습니다. 왜냐면 꿈꾸는 자는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자요, 세상을 이기는 자이기 때문 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약속하신 성령의 충만을 통해 주시는 꿈을 꾸지 못하는 자는 살아 있으되, 영적으로는 서서히 죽어가는 자임을 우리는 깨닫아야만 합니다. 꿈꾸지 못하는 자는 결코 주님의 사명에 관심도 없고 감당할수도 없기 때문 입니다. 꿈꾸지 못하는 자는 결코 그가 받은 구원의 감격을 누리지 못하며 구원의 기쁨을 발견할수 없기 때문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아직도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꿈과 비젼’이 비현실적이고 막연한 바램으로 치부하고 있습니까? 바라건데,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빼앗기지 않음으로서 믿음으로 꿈꾸며 승리했던 앞서간 성도들의 삶을 넉넉하게 본받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기대합니다. 비록 육신의 눈으로 보이지 않고, 현실 상황은 바랄수 없는 상황일찌라도 그 약속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권능을 신뢰하며 끝까지 인내함으로 허락하신 꿈을 하나님의 때에 아름답게 열매맺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간절히 기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