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의 의미” (I) (The Meaning of Sabbath)
“안식의 의미” (I)
(The Meaning of Sabbath)
10-16-22
본문말씀: 창세기 (Genesis) 2:1-3
1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2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 하시니라
3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설교 요약]
성경 전체에서 볼 때 ‘안식’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언급된 것은 오늘 본문말씀의 <창. 2:2-3>입니다. <2절>에 보면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 하시니라” (v.2)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안식”이라는 <히브리 원어>는 “샤바트”인데, 그 의미는 “그치다, 그만두다, 끝내다, 중지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안식하셨다>는 의미는 3가지로 해석됩니다.
- “창조의 사역을 모두 완성하셨음”을 뜻합니다 (창. 2:1)
- “그 지으신 것으로 인해 만족하셨음”을 뜻합니다 (창. 1:31)
- “그 지으신 만물을 축복하셨음”을 뜻합니다 (창. 2:3)
그런데, 또 한가지 ‘안식일’에 대한 중요한 말씀은 <출애굽기 20장>에 나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출. 20:8)고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 십계명의 제 4계명으로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은 <창. 2장>에서 안식하실 뿐 아니라, <출. 20장>에서 그의 택한 백성들에게 또한 안식할 것을 명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의 창세기 2장과 달리 출애굽기 20장의 근본적인 상황변화는 <인간의 타락>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더 이상 하나님의 안식을 누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계명을 통해 안식을 명령하셨지만, 이것은 참된 안식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유대인들을 향해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막. 2:27-28)고. 이것은 엄청난 말씀인 것 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선언하신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이것은 예수님께서 성자 하나님으로서 모든 창조의 사역을 주관하시고, 또한 성부와 함께 안식하신 분이심을 밝히시는 말씀입니다. 또한 중요한 것은 예수께서 구약에서 약속하신 안식을 완성하셨음을 뜻합니다 (히. 4:9-16).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는 주님의 초청은 바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분 안에서 누리는 안식인 것입니다. 성령을 통해 날마다 주님께 배움으로서 말입니다. 이런 진정한 안식을 그리스도 안에서 누려나가는 여러분 모두 되시길 축원합니다.
[설교 전문]
성경에서 그 의미가 가장 깊고도 우리 크리스챤의 삶과 근원적으로 관계된 개념 중의 하나가 ‘안식’ (The Sabbath)가 아닌가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가 자주 자주 사용하면서도 그 정확한 의미를 모른채 사용하는 단어가 또한 ‘안식’이라고도 여겨집니다. 저는 이번주와 다음 주에 거쳐 성경에서 말씀하는 이 안식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한편 오늘날도 여전히 이슈가 되는 ‘안식일’과 ‘주일’과의 관계를 우리 크리스챤은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에 살펴보고자 합니다.
성경 전체에서 볼 때 ‘안식’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언급된 것은 오늘 본문말씀의 <창. 2:2-3>입니다. <2절>에 보면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 하시니라” (v.2)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안식”이라는 <히브리 원어>는 “샤바트”인데, 그 의미는 “그치다, 그만두다, 끝내다, 중지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우선적으로 이해해야 할 것은, 오늘날 우리 크리스챤들이 안식이라고 할 때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안식하다, 쉬다”는 뜻과는 차이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샤바트”의 부차적 (=2차적)인 의미로 ‘쉰다’는 뜻도 포함되지만, 그 중심적 의미는 “그치다, 끝내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2절>에서 의미하는 <하나님께서 안식하심>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신학자들은 3가지로 해석합니다. 첫째)는 이 안식은 “창조의 사역을 모두 완성하셨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자이신 하나님께서 안식하심의 근원적인 의미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하나님은 창조를 마칠 뿐만 아니라 “그 지으신 것으로 인해 만족하셨음”을 보게 됩니다. 마치 위대한 미술가가 자기가 완성한 걸작품 앞에서 그것을 바라보며 매우 흡족해하고 기뻐하듯이, 하나님은 그 창조하신 만물을 보시고 기뻐하셨던 것이 바로 ‘그분의 안식’의 중심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만족은 창조를 최종적으로 완성한 여섯째날을 마치며 그분의 소감속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창. 1:31)라고. 하나님은 그 지으신 모든 만물을 보시고 심히 만족하신 것입니다. 또한 세번째)로 하나님은 만족하심과 동시에 “그 지으신 만물을 축복하셨음”을 봅니다. 오늘 <3절>본문에서도 알수 있듯이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주사 거룩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 ‘복 주신다’는 의미는 하나님께서 첫 인간부부를 만드시고 이렇게 복 주셨음을 볼때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시리라 하시니라” (창. 1:28)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창조의 사역을 완성하시고, 그 지으신 만물을 심히 기쁘하시며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안식하신 본질적 의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구별해서 인식해야 할 점은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 <창. 2장>말씀에서 보듯이, 6일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마지막 제 7일째에 그분의 모든 창조의 역사를 마치신 것, 곧 ‘창조를 완성’하시고, 안식하신 이 날에 대해 성경에서는 어떠한 명령도 첫사람 아담 뿐 아니라, 그후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 누구에게도 영령하신 적이 없음을 봅니다. 그러나 이 안식일이 모세가 시내산 에서 하나님께로 부터 받은 <십계명>의 ‘제 4계명’에는 영원토록 지켜야 할 계명으로 주셨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민족에게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출. 20:8)고 명령하시고 난 다음에 그 이유를 설명하십니다.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 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출. 20:9-11)라고 말입니다.
이와 같이 안식일에 관련한 이 두가지 말씀, 즉 ‘안식일’이 처음 언급된 <창. 2장>과 그 이후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안식일을 영원히 지킬 계명으로 주신 <출. 20장>을 비교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창.2장>의 말씀이 하나님을 ‘천지만물의 창조자’로 규정하고,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안식일을 통해 그 창조사역을 더 깊이 묵상하고, 이를 통해 그 창조의 경이로움을 우리가 깨닫아 나가는 것이라면, <출. 20장>의 말씀은 하나님을 ‘율법을 제정하신 분’으로 규정하고, 이 안식일을 통해 그분께서 창조하신 우주만물을 관통하는 ‘하나님의 의로우심’ (The righteousness of God)을 우리가 이루지 못하였음을 회개하고, 그분의 의로우심을 추구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핵심의미인 것입니다. 지난 한주동안 하나님의 의를 행치 못하고 죄 가운데 살았던 삶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의로우신 율법을 묵상하고 그 뜻을 좇아 살아갈 것을 다짐하고 추구하는 것이 안식일의 목적일 것입니다.
그럼으로 <출애굽기 20장>을 통해 성경에서 두번째 언급된 ‘안식일’은 <창세기 2장>과는 달리, 첫 인간부부의 타락 이후에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안식일입니다. 하나님은 이 안식일을 통해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택하신 자녀>에게 그분의 창조사역 6일후 첫 안식의 영광 이후, 인간의 타락으로 허락하신 낙원에서 쫓겨난 인간의 불행한 삶의 원인을 돌아보게 함으로 다시금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인정하고 자신의 죄를 회개함으로 그분의 거룩을 이루고자 하는 날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안식일 하루동안 그 어떤 일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창조의 권능과 의로우심을 묵상하며, 나의 죄를 회개하고 그 창조자의 의로우심을 본받아 거룩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안식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의 안식을 통해, 아니 지금도 정통 유대교를 믿는 유대인들은 안식일에서 있어서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계명으로 지키고자 노력하고 있는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특별히 ‘안식일에 일해서는 안된다’는 것에 그들은 온 힘을 다해 지키고자 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멜라카’라는 ‘안식에 금지된 일’을 39개 항목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그것은 예를 든다면 ‘씨 뿌리기’ ‘밭갈기’ ‘타작하기’ ‘반죽하기’ 등과 같은 39개의 행해서는 안되는 <금지 항목>이 있고, 이 각각의 항목에 따라 가지를 치듯 그 밑으로 다양한 사례가 수백개, 혹은 수천개 금지조항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안식일과 관련한 금지조항의 문제점은 이미 예수님 당시에도 심각하게 드러났음을 신약성경에서는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2:23-28>에 보면,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안식일에 밀밭사이로 지나갈 때에 그의 제자들이 이삭을 자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을 마태는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먹으니” (마. 12:1)라고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조금전에 ‘멜라카’의 인식일 금지항목에서 볼 때, 손으로 이삭을 비벼 먹은 행위는 곧 ‘곡식 타작’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문제는 이 장면을 목격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그들을 고발 (정죄)하며 “저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막. 2:24)라고 따져 묻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주님은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 한 병사들이 시장할 때에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한 자들에게도 준 사실’을 환기시키시면서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막. 2:27-28)는 엄청난 말씀을 하십니다. 여기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는 말씀의 뜻은 무엇일까요? 이것은 결국 인자되신 예수님, 본인 자신의 신성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까? 안식일을 제정하시고, 안식일의 주인공 되신 분이 바로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 자신임을 선언하는 엄청난 말씀을 하십니다. 도리어 이런 예수님의 선언은 유대인의 종교지도자들은 잘 이해할 수도 감당할 수도 없는 ‘신성모독’에 해당하는 말씀으로 그들은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마가는 계속해서 <막3장>을 시작하면서 주님께서 또 한번 같은 날 안식일에 유대인의 심기를 건드리는 행위를 하셨음을 기록합니다. 유대인 회당에서 한쪽 손 마른 사람을 고쳐 주셨던 것입니다. 아니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고발하고자 하여 회당에 ‘한쪽 손이 마비된 한 사람’을 지목하며 “안식일에 이 사람의 병을 고치는 것이 옳습니까?!”라고 교묘한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그때 주님은 망설이거나 눈치보지 않고 손 마른 사람을 가운데 세우시고, 자신에게 질문한 유대지도자들을 향해 이렇게 질문하십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막. 3:4)라고. 그들은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잠잠하였고, 주님은 능력으로 그를 고쳐 주십니다. 그리고 마가는 이때부터 ‘바리새인들이 헤롯당과 공모하여 어떻게 예수님을 죽일지를 의논하였다’ (v.6)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이토록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생명처럼 지키고자 하는 유대지도자들과 적당히 타협하지 않고, 그들을 정면으로 도전하시며 선을 행하고 생명을 구하는 일을 행하신 것입니다. 비록 그들이 예수님을 안식일을 어길 뿐 아니라,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막. 2:28)는 말씀을 가지고 신성모독이라는 죄목으로 자신을 고소하고 죽이고자 함을 아셨음에도 주님은 타협지 않으신 것입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주님의 말씀 그대로 그분 만이 ‘안식일의 주인’이시며, 주님 자신만이 무엇이 진정한 안식을 누리는 길인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자 함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저는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주인이다’라는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앞서 제가 말씀드렸듯이 ‘모든 창조사역의 주체시며, 안식일의 주인공되신 성자 예수님의 신성’이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의미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구약의 모든 영적 개념이 그러하듯이 안식일의 개념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완전히 변화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구약의 안식의 개념은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완성되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해할 때, 구약의 모든 율법과 제사제도에 능통한 히브리서 기자가 <히브리서>를 통하여 힘주어 강조하고자 하는 점도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탁월성과 완전성>이라고 믿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는 모세의 신성한 율법보다도, 그 어떤 제사장이나 선지자나 하늘의 천사와도 비교할 수 없는 탁월하시고 영광스러운 주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히. 4장>은 우리 성도에게 있어서 안식의 진정한 의미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히. 4:9-10) 여기서 우리 성도들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나님이 쉬심과 같이 우리도 쉴 수 있는 것일까요? 그것이 <14절>이후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 4:14,16)고 말입니다. 결국 우리 크리스챤의 진정한 안식, 곧 하나님께서 안식하심과 같이 우리가 안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된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허락하신 진정한 안식은 오직 그의 십자가의 피로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럼으로 주님은 이렇게 참된 평화와 안식 안으로 우리를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는 주님의 초청인 것입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어떻게 우리가 주님의 안식을 누릴 수 있을 것인지를 가르쳐주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 11:29)라고. 바로 주님께 와서 그분께 배우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더욱 묵상하고 깨닫은 말씀에 순종하며, 주의 영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감으로서 주께서 약속하신 안식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무거운 짐을 그분의 발 아래 내려 놓게 하시고, 그분 안에서 진정한 안식을 성령의 충만함을 통해 약속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분께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성령을 통해 배워 나감으로써 말입니다. 우리가 인정하는 한가지 사실은 우리 모든 인간은 안식을 원합니다. 우리 모두는 평화와 만족과 생명의 은혜를 누리기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첫 사람 아담의 범죄 이후 이 안식은 깨어진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그 누구도 하나님 안에서 누린 그 안식을 두번 다시 누리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적어도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바로 안식일의 주인으로 오신 우리 주님은 안식은 무엇 무엇을 하지 않는 것이 그 본질이 아니라고 도전하십니다. 진정한 안식은 그 안식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속해 있음으로 그분 안에서 누리는 되는 쉼이라고 도전하시는 것입니다. 다음 주 시간에는 여전히 논란이 되는 ‘안식일’과 ‘주일’에 관한 기독교회의 입장은 무엇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 안에서 약속하신 안식을 누려 나가고 있습니까? 세상이 줄수도 없고, 빼앗을 수도 없는 안식을 말입니다. 바라기는 선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구원자이자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허락하신 진정한 안식의 은혜와 축복을 성령의 도우심과 능력으로 충성하게 주시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이 안식하는 삶이 주일날 하루 뿐 아니라, 여러분이 살아가시는 일주일 24시간 순간 순간 넘치게 누려 나가는 복된 삶 사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