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20, 2020

“의의 열매” (The Fruit of Righteousness)

Preacher:
Series:
Passage: 빌립보서 (Phillipians) 1:9~11
Service Type:

“의의 열매”

(The Fruit of Righteousness)

12-27-20

본문말씀: 빌립보서 (Phillipians) 1:9~11

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And this is my prayer: that your love may abound more and more in knowledge and depth of insight,)

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so that you may be able to discern what is best and may be pure and blameless until the day of Christ,)

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filled with the fruit of righteousness that comes through Jesus Christ – to the glory and praise of God.)

[설교 요약]

오늘 말씀은 성탄절 마지막 메세지로서 하나님의 의를 통하여 누리게 되는 열매 맺는 성도의 삶이 무엇인지를 함께 이해하고자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빌립보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기를 소망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의의 열매를 가득히 맺는다는 뜻일까요?” (What means to be filled with the fruit of righteousness?)

          첫째, ‘죄를 짓지 않는 것’ (You may not to sin) 입니다: 사도 요한은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나신 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요일. 3:5)라고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의 죄를 없이하려 하심>임을 밝혔습니다. 우리 거듭난 성도들에게 있어서 더 이상 멸망될 죄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죄가 거하는 육체를 입고 살아가기에 실수하고 죄를 저지르기도 합니다 (요일. 1:8~9).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 마귀의 종이 되어 죄에 끌려 다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신자는 죄를 거부하고 죄를 짓지 않을 자녀의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요일. 3:9, 5:18).

둘째, ‘서로 사랑을 행하는 것’ (You may love each other) 입니다: 우리 주님은 자신과 성도의 관계를 <포도나무와 가지>로 비유하셨습니다 (요.15장). 그리고 포도나무의 가지된 성도가 풍성한 열매를 맺기 위해선 나무에 붙어 있어야 함을 주님은 가르쳐 주십니다. 그것은 어떻게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는지를 “내 안에 거하라” (요.15:4)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요.15:7)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요.15:9) 그리고 “서로 사랑하라” (요.15:12) 고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서로 사랑을 행함으로서 우리는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셋째, ‘거룩으로 나아가는 것’ (You may go forward the holiness) 입니다: 존 맥아더 목사는 그의 <빌립보서 강해설교>에서 <영적 삶의 5가지 요소>를 ‘사랑’ (love), ‘총명’ (excellence), ‘선함’ (goodness), ‘진실’ (integrity), 그리고 ‘영광’ (glory)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런 5가지 영적 요소는 성숙된 크리스챤의 성품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성숙되어가는 성품이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레. 11:45)고 명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거룩으로 나아가는 성도의 의의 열매인 것입니다.

바라기는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의로우신 옷을 입고 의의 열매를 사랑 가운데 가득히 맺어 나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설교 전문]

            저는 지난 2번의 설교를 통하여 우리 인간의 의로움은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그러나 오직 선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의를 통해 우리 인간은 진정한 소망과 생명을 그리고 구원과 풍성한 은혜의 삶을 누릴 수 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바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됨을 통해서 입니다. 이것이 크리스마스의 주인공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로우신 능력일 것입니다. 그럼으로 이제 여러분이 예수를 믿고 죄사함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를 누리게 되었다면, 우리의 구원자 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의의 열매를 가득히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우리를 자녀 삼으신 뜻이요, 그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게 하시고 자신과 화목케 하신 뜻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본문말씀에서 사도 바울이 빌립보 성도에게 격려하는 열매 맺는 삶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v.11) 원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풍성한 의의 열매를 그리스도 안에서 넘치게 거두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소망합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빌립보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들을 향한 기도와 간구를 하나님께 아뢴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에서 보듯이,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도들이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이 될 수 있기를 소망했던 것입니다.

특별히 사도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에게 오늘 말씀을 통하여 간구하는 형식을 통해 우리 모든 크리스챤들에게 주는 교훈의 핵심은 ‘우리는 의의 열매를 맺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제가 그동안 여러 번 강조한 바와 같이 구원받은 성도의 삶의 목적은 천국 가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창세기에서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성경이 우리에게 밝히는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의 특징은 구원받을 뿐 아니라, 자녀에 합당한 복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녀에 합당한 영적 성장이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거듭 났다고 하면서도, 이런 영적 성장이 없다면 우리는 자신의 구원을 심각하게 되돌아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예비하신 이런 풍성한 삶을 한 문장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한 삶’이라고 정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그렇다면, 저는 성도 여러분과 함께 과연 무엇이 의의 열매를 가득히 맺는다는 뜻일까요?” (What means to be filled with the fruit of righteousness?) 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원합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첫째, ‘죄를 짓지 않는 것’ (You may not to sin) 입니다: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을 향해 편지하면서,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나신 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요일. 3:5)라고. 우리 주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의 죄를 없이하려 하심>인 것입니다. 이 점을 요한은 이어지는 말씀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 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요일. 3:8)고. 요한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이 땅에 오셨는지를 설명하면서, 그 목적은 ‘우리가 죄를 짓지 (=범하지) 않게 하고자 함’이요, 이것은 곧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첫 범죄자, 사단 마귀로 인하여 우리 인간 또한 죄 저지르게 된 불행한 출발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런데 우리를 죄 짓게 하는 마귀의 일을 주께서 십자가 위에서 승리하심으로 멸하셔서 우리가 이상 죄 짓지 않게 하고자 주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사실 우리 크리스챤들 중에서도 이 죄에 대한 개념을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음을 보게 됩니다.

저는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 사도 요한이 그의 첫번째 편지에서 우리 <그리스도인과 죄와의 관계>는 무엇인지를 밝힌 두 구절의 말씀을 우리가 영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는 이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 저는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요일. 1:8~9)라는 말씀이고, 둘째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요일. 3:9)는 말씀입니다. 사도는 두 말씀 모두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인데, <1장>에서는 ‘우리가 죄를 안 짓는다고 하면 거짓말하는 것이다’라고 선언하는 가 하면, <3장>에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죄를 짓지 않는다’고 함으로서 마치 두 구절의 말씀이 서로 상반된 주장을 하는 듯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같은 영적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죄를 짓는다’는 것은 ‘계속해서 반복하는 죄의 행위’임을 의미하는 것임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로 구원받지 못한 자, 불신자의 영적 상태입니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죄를 행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반해서, <요일. 3:9>에서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죄를 짓지 않는다’고 요한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의 영적 상태를 정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첫 범죄자 마귀의 권세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셨기 때문이요, 계속적으로 우리를 죄 짓게 하는 마귀의 일을 멸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았다고 할찌라도 우리는 여전히 죄가 거하는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때로는 실수하고 때로는 죄를 짓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죄는 께속해서 반복되는 죄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더 이상 마귀의 종이 되어 저항할 수 없는 죄의 힘에 끌려 저지르는 존재가 아닌 것입니다. 이 사실이 <요일. 1:8~9>의 “만일 우리가 죄 없다하면 스스로 속(인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 성도는 사단이 조정하는 죄의 막강한 힘에서는 해방되었지만, 여전히 육신의 연약함으로 인해 실수하기도 하고, 죄를 저지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죄는 계속적으로 반복해서 행하는 죄가 아닌 것입니다. 그럼으로 영적으로 점점 더 성숙해가는 성도들은 그 성숙된 만큼 죄와 싸워 이겨 나가고 죄를 다스려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요한이 성도가 죄를 짓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둘째, ‘서로 사랑을 행하는 것’ (You may love each other) 입니다: 우리 기독교가 다른 타 종교와 확연히 구별되는 점이 한가지 있다면 그것은 우리 크리스챤이 믿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점입니다. (예화/당신은 석가를 사랑합니까?) 사랑이 기독교의 본질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요일. 4:8) 때문이요,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기)” (고전. 13:13) 때문이며, “~ 사랑은 율법의 완성” (롬.13:10)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이 의의 열매를 맺는다는 뜻인지?’에 대해 살펴보고 있는데, 이런 열매 맺는 삶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에 대해 우리 주께서 분명히 약속하신 한 본문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요. 15:1)라고 시작하는 <요한복음 15장>말씀에서 주님은 자신은 <참 포도나무>요, 그의 제자된 우리 모든 성도들은 <가지>라고 선언하십니다. 그럼으로 가지된 우리가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선 나무에 붙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참 포도나무되신 주님께 붙어 있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내 안에 거하라” (요. 15:4~7)는 말씀으로 대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내 안에 거하라’는 말씀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더 영적으로 그 말씀의 의미를 더 구체적으로 밝혀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어지는 <7절>에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 15:7) 고 하심으로, ‘그분 안에 거한다는 것은 곧 그 분의 말씀 안에 거하는 것’임을 밝히셨습니다. 더 나아가서, <9절>에서는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요. 15:9)고 하셨습니다. ‘주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결국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주님의 그 유명한 ‘새 계명’ (The New Commandment)를 주신 것입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요. 15:12)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고전. 13:1~2)라고 바울은 선언합니다. 이 사랑을 행한다는 것은 결국 나의 성경 지식이나 나의 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진정한 영적 능력의 문제요 열매의 문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으로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를 가득히 맺어 나간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그분의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을 지켜 나간다는 뜻이요, 점점 더 ‘사랑의 사람’이 되어간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더욱 서로를 사랑하고 있습니까?

셋째, ‘거룩으로 나아가는 것’ (You may go forward the holiness) 입니다: 존 맥아더 목사는 그의 <빌립보서 강해설교>에서 본문말씀을 통하여 우리 크리스챤이 추구해야 할 진정한 <영적 삶의 5가지 요소>를 제시했습니다. 그것은 ‘사랑’ (love), ‘총명’ (excellence), ‘선함’ (goodness), ‘진실’ (integrity), 그리고 ‘영광’ (glory) 입니다. 이런 5가지 우리 성도들이 지녀야 할 영적 덕목의 요소들이 점점 더 풍성하게 열매 맺어가게 될 때 이런 크리스챤은 아름다운 성도의 열매를 맺는다고 우리는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성도의 상태를 한마디로 부른다면 ‘거룩을 향해 나아가는 삶’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거룩’이라는 말은 결코 우리 죄를 범한 인간들에게는 어울리는 말이 아닙니다. 아니 죄를 범하지 않은 천사들 조차도 감히 거룩이라는 단어를 붙일수 없는 것입니다. 거룩은 오직 천지를 지으신 유일하신 하나님 한분만이 받으시기에 합당한 수식어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우리의 영적 상태를 인정하면서도 우리가 또한 끝까지 추구해야 만 하는 것이 ‘거룩’임을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결코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바로 홀로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의 자녀된 우리에게 거룩을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레. 11:44~45) 고 말입니다. (‘레위기’의 정신/음식과 안식일/구별됨…) 첫 범죄자 사단 마귀처럼 스스로 하나님과 같이 영광스러운 존재가 되고자 하는 악한 동기에서의 ‘거룩과 영광’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함으로 그분께서 명령하신 거룩을 행하고자 하는 충성과 순종이 바로 우리 진실한 성도의 거룩으로 향하는 동기인 것입니다. 그럼으로 진정한 거룩은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거룩한 채’하는 것이거나 ‘하나의 막연한 추상적인 거룩’이 아닌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 성도의 핵심적인 덕목들, 사랑과 총명과 선함과 진실과 그리고 영광이 더욱 구체적으로 그리고 풍성하게 열매 맺어가는 것이 바로 ‘거룩으로 향하여 나아가는 성도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는 우리가 이런 의의 열매, 곧 거룩으로 향하는 성도의 풍성한 삶은 어떻게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이것이 오늘 제가 성도 여러분과 나누고자 하는 결론인 것입니다.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Through Jesus Christ) 가능한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통하여 의의 열매를 맺게 되며, 그분의 의의 옷을 입고 그의 거룩하심과 같이 거룩해지고자 하는 소망과 열망을 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안타깝지만 우리 주님의 태어나신 올해의 성탄절도 이미 며칠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비록 우리가 기쁘고 즐거운 주의 성탄절을 붙잡아 둘 수는 없다 할찌라도, 우리의 삶 가운데 그분의 사랑과 은혜를 날마다 더 풍성히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허락하신 의의 열매를 가득히 맺음으로서 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마귀의 권세를 이기고 승리하심으로 그를 믿는 모든 제자들에게 허락하신 그분의 장성한 분량의 영적 성숙을 누려 나가며, 주님 만나는 날까지 날마다 거룩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바라기는 우리 자신이 만들어내는 의로움이 아니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의로우신 옷을 입고 의의 열매를 사랑 가운데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가득히 맺어 나가는 축복된 삶 모두 사시길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