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13, 2018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The true will set you free)

Preacher:
Series:
Passage: 요한복음 (John) 8:31,32
Service Type: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The true will set you free)

5-13-18

본문말씀: 요한복음 (John) 8:31,32

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는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To the Jews who had believed Him, Jesus said, “If you hold to my teaching, you are really my disciples.)

32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Then you will know the truth, and the will set you free.”)

<서 론>

저는 오늘 성도 여러분과 함께 성경 중에서 가장 소망과 은혜를 주는 주님의 말씀중의 하나를 나누기 원 합니다. 바로 <요한복음 8:31,32> 말씀 입니다. 주님은 자기를 믿는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v.32) 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는 선언은 단순히 우리 크리스챤들 뿐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도 많은 도전과 희망의 선언임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진실은 ‘진리를 통해 자유케 되는 삶을 살아가는 자는 별로 많치 않다’ 는 사실 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주께서 약속하신 진리로 자유함에 이르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기대 합니다. 진정 참된 주의 제자가 되어 그 진리 안에서 자유자의 축복된 삶을 사는 성도 모두 되시기를 간절히 원 합니다.

<본 론>

오늘 주께서 그들 믿는 자들에게 말씀하신 내용이 특별히 ‘소망’이 되는 이유는 아마도 그리스도께서 사용하신 두단어 ‘진리’ 와 ‘자유’ 에 집중되어 있지않나 생각 합니다.먼저, [표준국어 대사전] 은 ‘진리’를 “참된 이치 또는 참된 도리” 라고 정의하고 있고, ‘자유’를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수 있는 상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유’ 가 <법률적 의미>에서는 “법률의 범위 안에서 남에게 구속되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행위” (방종 x) 라고 정의한 것이 또한 인상적 입니다.

거기에 반해, [웨스트민스트 신학용어사전] 에서는 ‘진리’를 “진실 (reality) 혹은 진짜 (genuine) 와 관련된 것” 이라고 짧게 정의하고 나서, 구약에서는 ‘지극한 하나님의 말씀’ (신. 32:4);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진리’ (요. 14:6)” 라는 것 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성경 안에서 하나님의 계시의 진리를 이해하기를 추구한다” 라고 추가적으로 설명 합니다. 또한 “‘자유’를 non-Christian 에게 있어서는 “그들 자신의 행동이나 상황을 어떤 외부적인 강제나 억압없이 선택할수 있는 상태” 라고 정의하고, Christian 에게 있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도우심으로 성령을 통해 모든 죄(의 형태)의 힘으로 부터 자유하게 된 상태” (요. 8:36; 롬. 6:18,22; 갈. 5:1) 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전적인 뜻을 이해하는데도 그 단어를 어떠한 가치관과 상황속에서 이해하느냐에 따라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발견할수 있는 것 입니다.

따라서, 이제 오늘 말씀을 살펴보면서 먼저 이해해야 하는 것은 같은 단어를 가지고 대화한다 할찌라도 서로 다른 말을 할수 있다는 사실 입니다. 제가 강조하고 분명히 하기 원하는 것은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v.32) 는 오늘 주께서 하신 말씀의 정확한 뜻과 진실을 이해하기 원한다면, 그 말을 하신 예수님이 왜 그런 말씀을 하신것인지를 주의해서 잘 살펴 보지 않으면 전혀 엉뚱한 해석을 할수 있음을 우리는 이해해야 한다는 것 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떠나시기 며칠전에 불안에 떨고 있는 그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평안’(peace)을 약속 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 14:27) 주님은 제자들에게 주님 자신이 주는 평안은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고 또 누리고 있다고 말하는 평안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 입니다. 세상의 가치관이나 인간의 상식적인 차원에서 주님이 주시고자 하는 평안을 이해해서는 않된다는 것 입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며,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소망스럽고 가치가 있다는 것 입니다. 그럼으로 저는 주께서 그를 믿는 그의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진리와 자유’를 그분의 뜻과 의도하심으로 살펴 보기 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말씀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조금 앞에 있는 <요한복음 6장> 에서 보면, 우리가 잘 아는 예수님의 유명한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광야에서 5,000명을 먹이신 사건이 나옵니다. 왜 예수님은 <물고기 2마리와 보리떡 5개>로 남자성인만 해도 5,000명, 그러니까 여인들과 아이들까지 합친다면 1만명은 족히 넘을 그 많은 자들을 먹이시는 기적을 보이신 것 일까요? 첫째, 광야에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말씀을 듣기 위해 나아온 수많은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이 컸을 것 입니다. 사랑과 자비가 풍성하신 주님이기 때문 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기적을 통해 주께서 주시고자 하는 메세지가 있다는 것 입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주님 자신이 참된 떡, 곧 하늘에서 내려온 떡, ‘생명의 떡’ (the bread of life) 이라는 사실 입니다. 세상의 떡은 아무리 배부르게 먹어도 하루가 지나면 다 소화되어 배 밖으로 나가 또다시 먹지 않으면 않되지만, 하늘로서 내려온 생명의 떡되신 주님 자신을 먹게 될때 다시 배고프지도 목마르지도 않게 (요. 6:35) 될것이라 주님은 선언하시는 것 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주께서 자신을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라 함으로 서로 수근거리길 ‘저자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닌가?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자기가 지금 어떻게 하늘로서 내려 왔다고 하느냐?’ (요.6:42) 고 주님의 말씀을 비꼬고 그분을 무시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분명히 다시 말씀 하셨습니다; “나는 곧 생명의 떡이로다.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요. 6:47~51) 고 말 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은 “서로 다투면서 가로되 ‘이 사람이 어떻게 능히 자기의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요. 6:52) 고 대꾸 했습니다. 그들은 육신적으로 밖에는 주님의 말씀을 이해 할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더욱 구체적으로 그들에게 이렇게 도전하십니다; “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요. 6:53) 라고. 그리고, 이 말을 들은 많은 자들이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구 알아 들을수 있겠는가?”(요. 6:60) 라고 헷갈려 했고, “주님을 떠나게 되었고 그분을 더이상 따르지 않게 되었다” (요. 6:66) 고 사도요한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요한복음 7 & 8장> 에서 예수님의 형제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그분을 그리스도로 믿지 않는다는 사실을 요한은 밝히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런 이스라엘민족들의 불신을 고발하시고 나서 오늘 본문 바로 앞 <요. 8:28> 에서 “ ~ 너희는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심은 스스로 결정하심이 아니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온것이요, 그의 모든 삶은 하나님 아버지의 가르치심과 뜻에 순종하심이라는 것 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듣고 많은 사람이 믿었다” (v.30)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이 시작하면서 “그러므로” (v.30) 라고 시작하는 이유 입니다. 이 ‘그러므로’는 <예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내신 인자, 곧 메시아,그리스도임과 그분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데로 행하심으로 하나님은 언제나 그분과 함께 하심을 그들 중에 깨닫고 믿게 되었음으로> 라는 뜻 입니다. 그들이 주님을 이제 믿게 되어서 ‘그럼으로!’ 라는 뜻 입니다. 주님은 자신을 믿는 유대인들에게 이제 중요한 ‘영적 상태’, 즉 <영적 특권> 을 밝혀 주시는 것 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주님의 말씀에 거하면 참 그분의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게 됨으로 그 진리를 통하여 자유케 된다’ 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과연 누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수 있는가?” 에 대한 좋은 답을 얻을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에 거하는 자” (person who are holding to His teaching) 라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좀더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의 말씀에 거한다> 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그것은 첫째, <그분의 말씀을 믿는 것> 입니다; ‘그분이 약속하신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마.16:16) 과, ‘길과 진리와 생명되심' (요. 14:6) 과, ‘하나님의 생명의 떡이시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의 물되심’ (요. 4:14 & 6:48) 이라는 것 입니다. 둘째,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 입니다; 그 순종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무엇보다도 주님은 ‘나를 따르라’ (마. 4:19,20; 9:9; 눅. 5:11) 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따르는 자들을 향해 ‘서로 사랑하라’ (요. 13:34) 고 새계명을 주셨습니다. 또한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을 것’ (눅. 9:23) 을 명하셨습니다. 종합하면, 주님은 자신의 말씀을 믿는 자들에게 말로만이 아니라 ‘행함으로 자신을 따르는 순종’을 요구 하시는 것 입니다. 바로,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말씀’ 과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순종으로 행함으로써 말 입니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의 말씀안에 거한다는 뜻이라는 것 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자신의 말에 거하는 자를 ‘참된 자신의 제자들’ (His real disciples) 이라고 인정하여 주시는 것 입니다.

그리고, 이런 참된 제자들에게 진리를 깨닫게 되는 특권을 허락하시고, 더 나아가 그 진리를 통해 자유함에 이르는 놀라운 은혜를 누리게 됨을 약속하고 있는 것 입니다. 여기서 “주께서 말씀하신 진리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1)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진리 입니다; 주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에서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요. 17:17), 또한 2) <주님 자신>이 진리 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 (요. 14:6) 라고 자신이 바로 진리이심을 밝히셨습니다. 그리고 3) <주의 영, 성령님>이 진리 입니다; 주님은 이제 제자들에게 자신이 떠날것과 성령을 보내주실 것을 약속 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요. 14:16,17a) 바로 진리의 영, 성령을 약속하신 것 입니다. 따라서, 주께서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그들이 깨닫게 될 진리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 이요, ‘영원한 말씀이신 주님 자신’ 그리고 ‘진리의 영, 성령님’ 이심을 알수 있는 것 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의 말씀에 거하게 될때, 성삼위 하나님, 성부 하나님의 말씀을 성자 하나님의 생명 안에서 성령님의 은혜로 깨닫아 나가게 된다는 것 입니다. 이것이 진리를 안다는 뜻이라는 것 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주께서 약속하신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는 뜻?’이 무엇인지 살펴 보겠습니다. 먼저, 이 상태는 우선적으로 <주님이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신 조건>에서 이해할수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 입니까? 그것은 첫째, ‘내가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 거할때’ 시작된다는 것이요, 둘째, ‘그의 말씀을 통하여 진리를 깨닫게 될때’ 그 진리를 통해 자유함에 이르게 된다는 뜻 입니다.

여기서 예수께서 약속하신 ‘자유하는 삶’이 그의 말씀에 거함으로 진정한 그의 제자가 될때 깨닫게 되는 진리를 통해서 주어지는 것이라면, 그 “자유는 구체적으로 어떤것일까요?”; 저는 오늘 말씀을 시작하면서 우리 주님께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평안>를 약속 하셨음을 언급 했습니다 (요. 14:27). 주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진리를 통해 약속하신 자유함은 바로 <주님 자신의 평화> (The peace of Christ) 일 것 입니다. 사도바울은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고후. 3:17) 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바로 주는 영이시며, 주의 영이 계신 곳에 자유함이 있는 이유는 그분의 평화 때문 입니다.세상의 그 어떤 것도 빼앗을수도 줄수도 없는 바로 우리 주님의 평화인 것 입니다. 또한 그것은 <성령의 충만>일 것 입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엡. 5:18) 고 도전하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그 이유는 <성령의 충만을 받게될때,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고 주의 뜻을 이해 함으로서 지혜로운 자의 삶을 살게 되기 때문이요, 이것이 세월을 아낀다는 뜻이기 때문이라고> 구체적으로 영적 해석을 하고 있는 것 입니다 (엡. 5:15~17). 그리고 성령충만한 삶이란 그동안 여러번의 설교로 살펴보았드시, 우리 주님의 제자들을 감사와 기쁨과 평화 가운데 자유자의 삶으로 열매맺게 하는 삶임을 알수 있었습니다. 이 성령충만을 통해서 우리는 사도바울이 고백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비밀’ (고전. 1:18~31)을 점점 더 깨닫아 나가게 되고, ‘어떤 처지와 형편 가운데서도 자족하는 비결’ (빌. 4:11~13) 을 배우게 되는 것 입니다. 주님의 참제자에게 허락하신 놀라운 은혜요, 능력의 삶을 가져오는 자유함인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성령께서 주시는 이 충만한 자유를 누려 나가십니까?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 거하고 있습니까? 날마다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하심에 순종해 나감으로 그분의 말씀안에 거 하고 있습니까? 그리하여, 주께서 약속하신 참제자로서 진리를 점점 더 이해해 나가고 그 만큼 자유함의 은총을 누리고 있습니까? 성도 여러분,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고후. 3:17) 고 선언한 사도바울의 선언을 믿으십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말씀이 진리일뿐 아니라, 우리 주님은 진리가 되시며, 그분께서 보내신 주의 영 성령님은 진리이심을 믿으십니까? 이것을 믿으신다면,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땅에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진리의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통해 한없는 자유의 바다를 헤엄치게 되는 은혜를 경험하게 될것 입니다. 머지않아 우리 주님을 다시 만날때까지 말입니다. 이런 주의 참제자가 되어 진리 가운데 우리를 얽메는 모든 것에서 벗어 버리고 진정한 자유자로 살아가는 은총이 성도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시길 간절히 소원 합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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