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1, 2021

“하나님을 아는 지식” (I) (Knowing God)

Preacher:
Passage: 호세아 (Hosea) 4:6
Service Type:

“하나님을 아는 지식” (I)

(Knowing God)

8-1-21

본문말씀: 호세아 (Hosea) 4:6

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My people are destroyed from lack of knowledge. Because you have rejected knowledge, I also reject you as my priests; because you have ignored the law of your God, I also will ignore your children.)

[설교 요약]

만약 성도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는 그분의 자녀가 되었다면, 여러분의 삶의 최종적인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더욱 더 충만하게 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호세아를 통해 선언하십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v.6a)라고. 그렇다면 무슨 지식이 없어서 하나님의 백성이 망한다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율법의 말씀에 대한 지식’이요, 곧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은 왜 우리 크리스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나야 되는 지에 대한 중요한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사실, 광활한 우주와 존재하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우리의 머리로 깨닫는다는 것은 불가능 할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자신을 숨기지 않으시고 스스로를 드러내셨습니다. 바로 성경을 통해서 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성경말씀을 통해 ‘모든 우주의 기원과 생명의 비밀’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반면에, 성경은 특별히 우리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살아 있는 지식을 얻음으로 그분과 더 깊은 신뢰와 교제를 누리게 됩니다. 그 지식에서 자라기 위한 몇가지 질문을 통해 그것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지으셨다는 의미는?: 하나님은 창세기를 시작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 (창. 1:26)라고. 그분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영광스럽게 만드셨다는 것은 대표적으로 ‘자유의지’ (free-will)을 주셨다는 뜻입니다.
  • 하나님은 왜 선악과 열매를 주셨는가?: 하나님께서 첫 인간을 그분의 형상을 따라 창조했음에도 그들은 하나님을 거역했습니다. 금지한 선악과 열매를 따먹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선악과 열매가 없었다면 인간은 범죄하지 않았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선악과 열매는 하나님을 믿고 그분께 순종하는 최소한의 도구인 것입니다.
  • 인간의 타락은 하나님의 창조사역의 실패를 의미하는가?: 인간의 타락이 하나님의 창조의 실패가 아닌 것은 하나님은 이미 그 사실을 아실 뿐 아니라, 천지가 창조되기도 전에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자녀를 구원코자 계획하셨고(엡. 1:4~5), 2천여년 전에 그 구원을 성취시키셨기 때문입니다.
  • 왜 예수님이어야 하는가?: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는 이유는 우리 인간의 창조가치가 천사를 비롯한 그 어떤 피조물로도 대신 아담의 그 죄를 대신 할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이유는 우리를 예수님짜리로 재창조 하셨기 때문입니다 (갈. 2:20).

이렇게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그분의 영광스러우심으로 우리를 재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찬양합니다. 아멘.

 

[설교 전문]

 19세기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학의 문을 연 것으로 평가되는 지그문트 프로이드는 그의 책 ‘환영의 미래’ (The Future of Illusion)에서 그의 무신론적인 관점을 피력했습니다. 즉 ‘인간이 신을 만든 것이 종교’라고 말하면서, 인간이 신을 만든 3가지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첫째, ‘자연에 대한 두려움’ 입니다. 예측 불가능하고, 비인격적이고 냉혹한 자연의 재앙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인간관계에서 오는 두려움’입니다. 인간 상호간에서 오는 불평등과 차별에 의한 상처와 아픔으로 인해 이것을 의롭게 심판해줄 신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인간의 죽음과 소멸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영원히 소멸되지 않는 신의 나라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가정에서 자랐지만, 무신론자였던 프로이드의 종교에 대한 왜곡된 인식인 것입니다.

만약 성도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는 그분의 자녀가 되었다면, 여러분의 삶의 최종적인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죄사함 받음으로 영생을 얻는 것이 전부가 아닐 것입니다. ‘죄사함 받아 영생 얻는다’는 뜻은 거듭남을 통해 구원받은 자의 ‘영적 출생’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의 삶의 목적은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더욱 더 충만하게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는 만큼 그 뜻을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간다는 의미요, 이렇게 자라가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삶’으로 더욱 더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간다는 뜻일까요?” 저는 성도 여러분과 함께 이번 주와 다음 주, 2번에 걸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라는 제목으로 어떻게 이 지식에서 자라갈 것인지를 함께 말씀을 통해 나누고자 합니다. 바라기는 말씀 가운데 우리를 창조하실 뿐 아니라 그의 독생하신 아들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셔서 복된 자녀로 살게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아는 지식에서 풍성하게 자라가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호세아를 통해 선언하십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v.6)라고. 하나님은 그의 백성 이스라엘이 무슨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율법의 말씀에 대한 지식’이요, 곧 ‘하나님을 아는 지식’임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불신자, 곧 이방민족 뿐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을 때 망하게 된다고 하나님은 그의 종을 통하여 준엄하게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크리스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나야 되는 중요한 이유인 것입니다.

먼저 한가지 점을 먼저 성도 여러분과 구별함으로 말씀을 시작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안다’는 말과 ‘하나님에 관해서 안다’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에 관해서 안다’ (knowing about God)는 뜻은 ‘하나님에 관해서 이론적으로 혹은 지식적으로 아는 것’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신학적이고 성경적인 여러 지식을 통해 하나님을 안다는 뜻입니다. 거기에 비해 ‘하나님을 안다’ (knowing God)는 의미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통하여 하나님을 체험적으로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안다’는 <헬라어>는 ‘기노스코’이고, <히브리어>는 ‘야다’입니다. 이 ‘안다’는 단어의 뜻은 단순한 지식적인 앎이 아니라,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친밀한 관계로 맺어진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교리적인 지식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교제를 통한 친밀한 관계로 깊어짐으로써 그분을 체험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간단하게 먼저 하나님의 대표적인 특성을 생각해 보자면, ‘영원성’과 ‘불변성’, ‘그분의 유일하심’ 그리고 그분의 ‘공의’ 와 ‘사랑’을 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창조물에게 적용되는 법칙이 공의 입니다. 즉 죄를 허용치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라 그분의 사랑 (=용서, 은혜)을 통해 자신의 선하심과 위대하심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사실 설교주제에 있어서 ‘하나님은 누구신가?’라는 주제만큼 방대하고 힘든 주제도 더 없을 것입니다. 제가 ‘하나님은 누구신지?’에 대한 메세지에 있어서 ‘힘든 주제’라고 말씀드리는 이유는 ‘하나님이 알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분’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 분은 자신을 분명히 밝히고 드러내시지만, 우리 <인간의 유한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무한함>을 다 담을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제가 지난번에 하나님의 창조의 무한하신 능력에 대해 설교하면서 광활한 우주에 펼쳐진 은하수를 비롯한 수 없는 운하계의 끝없음을 나눈 바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속해 있는 나선형 모양의 은하계는 그 직경이 10만 광년 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광속’ (the speed of light) 이라 함은 ‘빛의 속도’의 기본 단위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잘 아시듯이 빛의 속도는 ‘1초에 지구를 7바퀴 반’을 도는 엄청난 속도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빛의 속도로 달려도 ‘10’만년을 가야 겨우 나선형 모양의 우리 은하계의 한쪽 끝에서 다른쪽 끝까지 다다를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우리 은하계 안에는 태양과 같은 별이 무려 4,000억개 존재하고, 또 이와 같은 어마어마한 은하계가 1000억개 존재한다고 천문학자들은 추정합니다. 실로 상상을 초월하는 스케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지으신 이 우주만물을 우리의 머리로 모두 상상하는 것 자체 만으로도 한계에 다다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떤 과학자들이 주장하듯이 우주의 기원이 ‘대폭발’ (The Big-Bang theory)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할 것인지? 혹은 ‘정상 우주론’ (steady state cosmology) 또는 ‘인플레이션이론’ 과 같은 이론 등으로 주장할 것인지? 그리고 만약 우리가 빛의 속도로 끝없이 달려가 우주의 가장 마지막에 다다른다면 그 끝에는 무엇이 있다는 것인지? 이와 같이 우리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상상’과 ‘이론’임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도저히 무한하신 전능의 하나님을 우리의 머리로 다 담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창조물조차도 우리가 다 파악해 나가기가 불가능하다면, 어떻게 그것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좋은 소식’ (the good news)가 있음을 저는 믿습니다.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향해 적극적으로 자신을 드러 내셨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스스로 침묵하시고 숨으신다면 그 어떤 인간도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고 깨닫을 수 없겠지만, 하나님은 정반대로 자신을 우리에게 드러내 보이시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왜 우리 인간을 창조하셨는지?’ ‘그분과 우리의 관계는 어떤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사는 것이 우리 인간의 참된 행복과 축복인지?’를 하나님은 숨김없이 선포하신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밝히 드러내 말씀하시는 것이 바로 ‘성경’ (Bible)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성경말씀을 통해 자신의 영광과 선하심을, 그리고 그의 권능과 자비하심을 숨김없이 드러내 보이시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성경말씀을 통해 ‘모든 우주의 기원과 생명의 비밀’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반면에, 성경은 특별히 우리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앞에서도 설명 드렸듯이, ‘우리 인간이 어떻게 시작 (=창조)되었는지?’ ‘우리 인간의 삶의 목적은 무엇인지?’ ‘어떻게 죄와 죽음이 찾아온 것인지?’ ‘어떻게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깨어졌으며, 어떻게 그 관계가 회복될 수 있는 것인지?’를 하나님은 숨김없이 매우 자상하게 말씀하시는 것이 <성경>인 것입니다. 그럼으로 성경은 우리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요, 이 말씀을 통해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신 영광과 그분의 선하신 긍휼과 은혜를 날마다 깨닫아 갈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과연 누구신지를 알아감으로 그분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는 것입니다. 오직 성경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 보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이런 선하신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남으로 그분과의 친밀한 인격적 교제가 가능한 것입니다.

이제 그렇다면, 좀더 구체적으로 성경을 통하여 알아야 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의 첫 책인 <창세기>의 첫 시작인 <창. 1:1>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선언합니다. 성경의 첫 시작 말씀은 ‘하나님이 왜 하나님이신지?’에 대한 어떤 증명이나 주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의 첫 시작은 창조자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무에서 유를, 즉 하늘과 땅을 무 가운데서 창조하셨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창. 1:25>에 이르기까지 <첫째날>에서 <여섯날>에 걸쳐서 빛과 어둠, 궁창과 바다, 해와 달과 별, 그리고 나무와 채소와 바다의 물고기와 육지의 각종 짐승을 만드셨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창조물 가운데서 인간을 제외한 모든 피조물의 창조사역을 단지 <25절>로 요약하여 간결하면서도 상징적으로 성경은 진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앞에서도 잠시 나누었지만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광활한 우주의 천체들에 대한 창조역사에 대해서 성경에서 좀더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 이유는 첫째, 그 우주에 관한 창조역사를 다 다루기에는 그 어떤 책의 분량으로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요, 둘째로 더 중요한 이유는 ‘성경은 우리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집중해서 다룬 책이기 때문입니다. 온 우주와 자연만물의 피조물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성경은 바로 ‘우리 인간과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과의 각별한 관계를 집중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책’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하나님의 우리 인간에 대한 이 각별하신 사랑과 은총이 그분께서 우리 인간을 어떻게 창조하셨는지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 1:26)라고.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in our image, in our likeness) 사람을 창조하실 것을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각별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그분의 모양을 따라 지음 받은 복된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분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지음 받았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 무엇보다도 다른 피조물과 구별되는 ‘자유의지’ (free-will)에 그 핵심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그분의 형상을 닮은 특별한 존재로 만드신 것입니다. 이렇게 처음으로 지음 받은 인간이 첫 인간 부부인 아담과 하와인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첫 인간부부는 행복의 동산인 에덴동산에서 허락하신 모든 풍성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오직 한가지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 열매를 따먹음으로써 하나님을 반역하여 그분과의 관계가 깨어짐으로 죄를 저지르고 하나님께서 경고하신 것처럼 죽게 된 것입니다. 그 이후의 스토리는 여러분이 잘 아시는 데로 아담 뿐 아니라,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한사람도 예외 없이 죄와 죽음을 피할수 없는 불행한 삶을 우리 인류는 겪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한가지 질문은 이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이렇게 만드셨나?’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왜 우리 인간을 죄 짓지 않게 만드실 수 없으셨던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저는 여기에 ‘하나님의 딜레마’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물론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다른 피조물들, 말하자면 소나 개나 말처럼 지어실 수도 있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창. 1:26>에서 보듯이 우리 인간을 그분의 형상과 모양을 닮은 특별한 존재로 만드시기를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특별함은 ‘자유의지’에 잘 대표된다면 하나님은 이 자유의지를 우리 인간의 본질 가운데 주실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을 자신을 가장 닮은 존재로 만들기 원한다면 말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딜레마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자유의지는 참으로 하나님을 닮은 존재의 특성이지만, 그것을 잘못 사용할 때 파멸을 자초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찌되었건, 우리가 아는데로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고, 인간은 결과적으로 그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함으로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을 거역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은 ‘그렇다면 인간의 범죄가 하나님의 창조사역의 실패를 뜻하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앞서 하나님의 특성 (=성품)에서 살펴본 것처럼 우리는 어렵지 않게 <첫 인간 부부의 범죄사건에 대한 하나님께서 이것을 미리 아셨을까 모르셨을까?>에 대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범죄할 것을 아셨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과거 뿐 만 아니라, 현재와 미래까지도 아시는 <전지> (omnipotence)하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대표적인 신적 특성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이미 그가 범죄 (=타락)할 것을 아셨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은 이런 범죄함을 아셨기 때문에 처음부터 우리를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심을 밝히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엡. 1:4~5)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하나님은 아담이 범죄하고 나서 그렇게 계획하신 것이 아니라, 아담을 창조하기 바로 직전도 아니라, 그 어떤 창조물로 존재하지 않는 창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 인간을 그분의 사랑 안에서 택하셔서 자신의 아들과 딸이 되게 하시고자 하는 <마스터플랜> (=놀라운 계획)을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것은 곧 하나님의 인간 창조사역은 결코 실패한 것이 아님을 의미합니다. 도리어 완벽한 창조계획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미 인간의 범죄를 아셨을 뿐 아니라 그 범죄한 인류에 대한 완벽한 구원의 계획을 창세 전부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지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온전한 계획 뿐 아니라, 그 계획을 마침내 그리스도 안에서 실천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죄 사함을 얻고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어 하나님과의 영원한 생명의 관계를 회복하게 되었기 때문 입니다. 그럼으로 여러분과 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그 분을 통하여 죄사함 받고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신.구약 성경을 꿰뚫고 지나가는 <복음의 핵심>이요,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자라나는 말씀의 기초라고 믿습니다. 지난 주에 말씀 드렸듯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남을 통해 결국 ‘그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나는 공동체인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가 존재하는 궁극적인 이유인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한가지 꼭 필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왜 예수님이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안되나?’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여기에는 크게 두가지 이유를 들 수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 인간은 그토록 특별한 창조물’임을 반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서도 살펴본 데로 하나님은 그분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우리를 지으셨고, 그런 우리의 존재가치는 그 어떤 죄를 범한 인간도 하늘의 천사들 조차도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죽을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완전한 인간이자, 완전한 하나님이신 ‘성자 하나님’ (The Son of God) 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그의 보배로운 피로써 갚을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성경은 주장합니다. 그리고 둘째로) 우리 인간은 <예수님 짜리>임을 뜻합니다. 제가 ‘예수님짜리’ 라고 말씀 드리는 의미는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게 될 때, 여러분과 저는 단순히 죄사함 받음으로 첫 사람 아담의 첫 창조의 모습으로 회복되는 것을 넘어서서 예수님의 생명으로 예수님의 영광스러움을 입고 다시 태어났음’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롬. 8:18)라고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우리 크리스챤의 미래의 영광을 선언한 근거가 이것입니다. 이 미래의 영광은 본질적으로 우리 크리스챤의 신분이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났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분의 생명 안에 속에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자신의 개인적인 간증을 통해 너무도 분명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고 말입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첫 사람 아담의 완전한 인간의 상태를 넘어서는 영광된 하나님의 자녀된 신분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바로 예수의 생명으로 우리가 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음 시간에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근거이자 마침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우리가 더 알아가고 그분 안에서 하나 될 수 있을 것인지를 성도 여러분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크리스챤이 진정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우리를 구원하신 사랑과 은혜를 찬양하고 영원토록 감사해야 하는 이유는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생명이 나의 생명이 되고, 그분의 의로움을 나의 의로움이 된다고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고 불러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는 그분의 자녀가 결코 놓일 수 없는 영적 깨닫음이요, 영적 확신인 것입니다.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충만으로 하나님 아버지와 누리게 되는 더 깊은 친밀한 교제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 아버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남으로 그분과 누리는 화목된 관계, 친밀한 사랑의 교제 안으로 깊어지는 성도 여러분의 삶 사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