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5, 2018

“갈바를 알지 못하며” (He did not know where he was going)

Preacher:
Passage: 히브리서 (Hebrews) 11:8~10
Service Type:

“갈바를 알지 못하며”

(He did not know where he was going)

8-5-18

본문말씀: 히브리서 (Hebrews) 11:8~10

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쌔 갈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9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것 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10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서 론>

저는 오늘 성도 여러분과 함께 아브라함의 삶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길 원합니다. 히브리서기자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쌔 갈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v.8) 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막연히 생각했던 아브라함의 상황과는 달리 실제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으로 나아갈때 그는 ‘갈바를 알지 못했다’ 고 성경은 지적하고 있는 것 입니다. 이 사실은 한편으로 우리에게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저와 여러분만 갈바를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든 믿는자의 조상인 아브라함 조차도 약속의 땅으로 나아갈때 동일하게 갈바를 알지 못했다는 것이기 때문 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을 좀더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아브라함과 같이 갈바를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순종하여 첫발을 내딛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기대 합니다.

<본 론>

오늘 히브리서 본문말씀은 제가 20여년 전에 처음 미국에 유학공부하러 왔을때 가슴에 품고 왔던 말씀 입니다. 정말이지 갈바를 알지 못하며, 말씀을 붙들고 떠나왔던 시간들이 주마등같이 지나갑니다. 또한, 오늘 저희들은 사랑하는 나태식집사 가정을 파송하면서 동일하게 이 가정이 앞으로 ‘갈바를 알지 못하고 살아가야할 순간들’ 이 많을찌라도 아브라함이 그러했던 것처럼 믿음으로 순종하여 날마다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가정이 될수 있기를 소망 합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잘 이해하기 위해선 <창세기 12장> 말씀을 먼저 살펴보아야 합니다. <창. 12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으로 시작됨을 보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The Lord had said to Abram, “Leave your country, your people and your father’s household and go to the land I will show you”) (창세기 12:1) 고. 여기서 우리 한글에서는 별로 두드러진 차이를 느낄수 없으나, 사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약속하신 땅에 대한 구체적인 지시하심은 과거나 현재가 아니라 미래라는 것 입니다. 즉, 하나님은 그에게 “~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go to the land I will show you) 고 ‘미래시제로 약속하고 있다는 것 입니다. 이것은 무슨 뜻 입니까? 이 말씀의 뜻은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목적지를 어떻게 가야하는지, 그곳의 위치는 어느 곳인지 세계지도와 네이게이션을 주시면서 가는 방법을 일러 주시는 것이 아니라, 먼저 “떠나라”고 명령 하셨다는 것 입니다. 인간적으로 본다면 잘 이해가 되지 않을수도 있는 장면이 아닐수 없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렇게 하신 것 일까요? 하나님께서 그를 곤란에 빠트리려 그러신 것은 결코 아닐것 입니다.

여기서 한가지 이해할수 있는 하나님의 우리를 부르심은 <먼저 약속하시고 또한 명령하신다> 는 것 입니다. 아직 구체적인 그 약속의 땅에 대한 충분한 정보나 떠날때 필요한 장비를 다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말 입니다. 이것은 정확히 오늘날도 믿음으로 살고자 하는 성도들의 딜레마 (=고민) 이기도 할것 입니다. 이것을 단순히 마치 ‘아멘하고, 아무런 생각도 하지말고 무조건 나아가라!!’ 요즘하는 속된 말로 ‘맨땅에 헤딩’ 하는 식으로 ‘가라’ 고 명하셨으니 ‘알아서 해 주시겠지!?’ 하며 무턱데고 맹목적으로 나아가라는 뜻 일까요? 얼핏보면, 제가 한말은 그말이 그말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창세기 12:1>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명령하신 것이나 오늘 히브리 본문말씀에서 아브라함이 갈바를 알지 못하나 떠났다는 것은 결코 무턱데고 떠난다거나 무조건 아멘하고 맹목적인 믿음으로 행동하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파악하는 것이 오늘 본문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가 된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아브라함은 갈바를 알지 못하는 가운데 나아갈수 있었을까요?” (How did Abraham go, even though he did not know where he was going?)

첫째, ‘그를 가라고 명하신 분이 하나님임을 확신’ (Because he was convinced about God who commanded to him to go) 했기 때문 입니다; 아브라함은 무엇보다 그에게 약속의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시는 분은 하나님임을 확신 했습니다. 그가 말씀 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확신 했다는 것이 물론 하나님에 대한 모든 것을 이해하고 확신 했다는 뜻은 아닐것 입니다. 더군다나, <창.12장> 에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약속하시고 명령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성품에 대해서 아브라함은 아직까지도 깨닫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도 많았을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찾아 오셔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시점은 아마도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가장 초기라고 해도 좋을 것 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우리 인간의 믿음은 본질적으로 내가 더 결심하고 노력하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의 눈을 열어 자신을 계시해 주셔야 가능한 것 입니다. 그렇다고, 믿음이 단순히 수동적으로 받기만 하고, 능동적으로 내 스스로 해야할 부분이 없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그 시작은 언제나 우리측에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찾아 오셔야 하고, 우리의 잠자는 영의 눈을 뜨게 해 주셔야 한다는 뜻 입니다.

제가 아브라함이 어떻게 갈바를 알지 못하는 가운데 나아갈수 있었는가를 성도 여러분과 함께 살펴보면서, 무엇보다도 인정하지 않을수 없는 것은 ‘아브라함은 자신에게 약속한 땅에 가라고 명령하신 분은 바로 하나님’ 이심을 확신 했다는 것 입니다. 이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이 하나님은 우리 인간뿐 아니라 모든 존재하는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요,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이신 것 입니다. 그에게 있어서는 어떤 불가능도 있을수 없는 하나님 입니다. 아브라함은 그런 하나님을 확신한다는 뜻 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에서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쌔 ~” (v.8)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부르심을 받았을때에 믿음으로 순종하여 나아갔다는 것 입니다. 신자의 삶에서 왜 믿음이 중요할까요? 믿음의 조상 한사람 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에게 있어서 믿음은 그 기초가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믿음은 언제나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기초요, 열쇠가 되기 때문 입니다. 믿음은 맹신과 다른 것 입니다. 우리의 이성과 판단을 마비시키며 무턱데고 믿는 것이 믿음이 아니기 때문 입니다. 아브라함은 세상의 헛된 신을 맹신한 것이 아니라, 천지의 창조자시요 주인이신 하나님을 확신 가운데 믿은 것 입니다. 그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확신은 점점 더 깊고 견고해 짐을 볼수 있습니다.

<창. 15:6> 에서는 아브라함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부르신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의 몸을 통해 그의 후손을 하늘의 뭇별과 같이 셀수 없이 많게 할것을 약속하셨을때,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믿은 것 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마지막 시험’ 이라 불리는 <창. 22장> 의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바치라’ 는 명령에 순종하는 장면에서 그의 믿음은 크리이막스에 다다름을 봅니다. 어떻게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킬수 있었다고요? 믿음을 통해서 입니다. 그 믿음은 명령하시는 하나님은 이미 약속 하시는 하나님이요, 그에게 100세 되어 주신 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명하신 하나님은 분명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하나님임을 믿은 것 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후손 가운데 오실 구원자 그리스도에 대한 부활신앙을 그가 오시기 수천년전에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믿음을 통해 누리게 된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지금 어떤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현재 여러분이 처한 환경으로 이끄시고 약속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까?

둘째, ‘이 약속의 땅은 하나님의 방법으로만 갈수 있다는 믿음’ (Because he trusted that the God’s way can reach to the promise land) 때문 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이해할수 있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딜레마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도 아니고, 더욱이 약속을 받았다는 사실도 아닐것 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면 이것이 얼마나 하나님의 큰 은혜요, 우리를 향한 축복인지 우리는 잘 알기 때문일 것 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아브라함의 고민이자, 딜레마일까요? 그것은 ‘갈바를 알지 못했다’ 는 것 입니다. 이미 제가 앞에서 설명한데로 하나님은 그를 복의 근원자로 삼으실것을 약속 하시고, 그와 후손들이 복되게 살아갈 소중한 땅을 약속하셨지만, 문제는 그가 어디로 어떻게 가야할것을 아직 말씀하시지는 않았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go to the land I will show you) 고 ‘미래시제로 약속 하신 것 입니다. 문제는 지금 당장 나의 모든 미래를 한눈에 볼 청사진이 없다는 것 입니다. 사실 이런 딜레마는 아브라함 한사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든 성도들이 동일하게 날마다 겪는 현재상황일 것 입니다. 나에게 약속하시고,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반드시 승리하게 하실 하나님 아버지의 변하지 않는 계획과 같이 또한 내가 헤쳐나가야 할 현실의 모든 장애물과 해결책도 미리 모두 말씀해 주시면 좋겠는데 하나님은 그것에 대해서는 여전히 침묵하시는 것을 우리는 날마다 경험 합니다.

아브라함은 갈바를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찾아오셔서 친히 말씀 하시고 가야할 곳을 약속 하셨지만, 지금 당장은 단지 떠나라고 명령 하셨기 때문 입니다. 그는 당장 어디를 가야할지 막막하였을 것 입니다. 어떻게 그 다음 걸음을 옮기며, 마침내 그 목적지에 이럴수 있는지 도무지 알길이 없었을 것 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분명히 이해한것 한가지는 약속하고 명령하신 분이 ‘창조자 하나님’ 이시라면, 그것을 이루시는 분도 또한 그분이시다는 것 입니다. 지금 아브라함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정보수집과 조직을 짜고 예산을 세우는 것 이전에 그에게 명령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그의 선한 방법으로 가장 아름답게 이 일을 이루실것을 신뢰하며 ‘순종하며 첫발을 내딛는 것’ 입니다. 모세는 이렇게 하나님의 선하심을 고백 합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민수기 23:19) 라고 말 입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과 같이 거짓말을 하거나 변덕을 부리는 존재가 아니요, 약속하신 말씀을 어기시는 자가 결코 아님을 아브라함은 신뢰한 것 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순종함으로 첫발을 내디딜때, 비로소 믿음의 역사는 시작되는 것 입니다. 이것은 어느 목사님께서 이렇게 간단하게 우리 신자의 삶의 능력의 비결을 설명한 것을 기억 합니다; “선(先) 순종, 후(後) 체험” 이라고.

사실 저에게도 이것은 매우 어려운 주제임을 고백 합니다. 저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을 확신 하면서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방법을 신뢰하지 못할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님, 왜 이렇게 천천히 진행 하십니까? 왜 좁고 힘든 길로 가게 하십니까? 이길 말고는 없습니까?...” 학생사역을 하며 수없이 많은 질문과 항변을 하나님께 할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포기하고 싶고 내려 놓고 싶은 순간도 적지 않았음을 고백 합니다. 그러나, 오늘 아브라함의 삶을 통해서 배우게 되는 것은 <아브라함은 갈바를 알지 못하며 첫발을 내 디뎠다는 것> 입니다. 바로 <믿음의 순종> 을 통해서 말 입니다. 이것이 언제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뿐 아니라, 모든 그를 믿는 자들에게 요구하시는 자세임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약속하신 하나님은 친히 그의 방법을 통해서만 그 약속의 땅을 밟게 하신다는 믿음을 통한 순종으로서 말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현재 하나님의 어떤 약속을 받으셨습니까? 그렇다면, 그 약속을 붙잡고 순종으로 첫발을 내디뎠습니까?

셋째, ‘그는 하나님의 도성을 끝까지 바라볼수 있었다는 것’ (Because he kept looking for the city of God until his last day) 때문 입니다; 감사하게도 오늘 본문말씀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라함이 진정으로 추구하고 소망한 것이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밝혀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 입니까? 아브라함이 변함없이 바라고 소망한 것은 눈에 보이는 가나안 땅이 전부가 아니라, <하나님이 경영하시고 지으실 성> 이었습니다.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것 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v.9,10) 아브라함은 약속의 아들 이삭과 손자 야곱과 함께 허락하신 가나안 땅의 장막에 거하면서, 그것에 만족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설계하시고 튼튼한 기초 위에 세우실 그의 나라, 그의 성을 소망 했다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의 도성’은 지리적으로 중동 팔레스타인 지역의 가나안땅이나, 혹은 여러분과 제가 살아가는 그 삶의 현장이 전부가 아님을 알수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약속의 땅, 가나안 땅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통치하실 나라의 소중한 씨앗으로 사용하셨음을 우리는 잘 압니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성에서 그리고 그의 성산 시온산에서 존귀와 영광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장차 주어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씨앗이요 상징인 것임을 우리는 또한 압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만족하지 않고 장차 하나님께서 지으시고 경영할 성을 소망 했습니다. 이곳은 곧 하나님의 나라요, 장차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의로서 세상을 심판한 이후에 주를 믿는 성도들과 함께 왕노릇하며 영광 가운데 다스리실 나라인 것 입니다. 이 영광의 나라를 아브라함은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기뻐한 것 입니다. 그런 말이 어디 있습니까? 요한복음에 보면, 유대인들이 예수님과 쟁논을 벌이다가 그들이 “너는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 보다 크냐 ~” (요. 8:53) 라고 주께 따져 물었을때,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것을 즐거워 하다가 보고 기뻐 하였느니라” (요. 8:56) 고 예수님께서 대답 하셨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뿐 아니라, 구약의 수많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약속하신 ‘하나님의 지으시고 경영하실 그의 나라’ 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마침내 시작된 것 입니다. 아브라함은 그것을 믿음의 눈으로 멀리서 바라보고 즐거워 한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바라보고 소망하고 있습니까?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까? 여러분은 그분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갈바를 알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첫발을 내디뎠습니까? 여러분은 우리에게 믿음을 통해 약속하시는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그분은 반드시 그의 방법을 통해서 그 약속을 이루시고, 우리를 그의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도록 이끄심을 믿으십니까? 이것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통하여 성도 여러분과 저에게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중요한 믿음의 교훈임을 저는 믿습니다. 아브라함 한사람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자녀에게 주어진 이 믿음의 딜레마, ‘갈바를 알지 못하는 삶’ 가운데 오직 그를 믿는 순전한 믿음으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향해 첫발을 내딛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소원 합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도성을 바라보며 이 땅에서 거룩한 순례길을 따라 허락하신 복의 근원자로 살아가는 아름다운 인생 모두 될수 있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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