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12, 2018

“이 돌이 무슨 뜻이냐 하거든” (When they ask you ‘What do these stones mean?’)

Preacher:
Passage: 여호수아서 (Joshua) 4:21~24
Service Type:

“이 돌은 무슨 뜻이냐 하거든”

(When they ask ‘what do these stones mean?’)

8-12-18

본문말씀: 여호수아 (Joshua) 4:21~24

21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일러 가로되 후일에 너희 자손이 그 아비에게 묻기를 이 돌은 무슨 뜻이냐 하거든

22 너희는 자손에게 알게 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밟고 이 요단을 건넜음이라

23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앞에 마르게 하사 너희로 건너게 하신 것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 우리로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

24 이는 땅의 모든 백성으로 여호와의 손이 능하심을 알게 하며 너희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토록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

<서 론>

저는 오늘 여호수아서 말씀을 통해 성도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와 진리를 나누길 원합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요단강에서 돌열둘을 취하여 세우라고 명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그들의 후손이 “이 돌은 무슨 뜻 입니까?” (v.21) 라고 묻거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단 강물을 마르게 하사 ~ 땅의 모든 백성으로 여호와의 손이 능하심을 알게 하며 너희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토록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v.23,24) 고 말하라 명령 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나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날마다 고백하고, 땅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알게 하며, 그리함으로 여호와 나의 하나님을 영원토록 경외하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소원 합니다.

<본 론>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 모세를 이어 가나안 땅으로 그들을 이끌어 갈 지도자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요단강 가운데서 돌 열둘을 취하여 길갈에 세우라고 명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드시, 하나님은 출애굽할때 ‘홍해 바다를 둘로 가르시고, 그 바닥을 마르게 하셔서 온 이스라엘을 지나게 하셨드시, 이제 요단 물을 마르게 하셔서 그들을 건너가게 하셨다’ 는 것 입니다. 이것을 기념하라는 것 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요단강물을 가르시고 그 바닥을 마르게 하셔서 요단을 건너게 하셨음을 기념 하라는 것 입니다. 바로 요단강 가운데의 마른 강바닥에서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상징하는 열두개의 돌을 취하여 길갈에 세우라는 것 입니다. 무슨 이유 입니까? 그것은 ‘(이는) 땅의 모든 백성으로 여호와의 손이 능하심을 알게 하며, 이스라엘 백성들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토록 경외하게 하려 하심’ (v.24) 이라는 것 입니다.

저는 지난시간, <히브리서 11:8~10>의 본문말씀을 통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순종하여 장래기업으로 나아갈때 갈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음’ 을 함께 살펴 보았습니다. 이를 통해 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는지, 그리고 받았다면 내가 비록 갈바를 알지 못할찌라도 순종하여 첫발을 내 디뎠는지?’에 대해 각자 되돌아 보았습니다. 이것을 통해 비록 우리 신자의 삶의 딜레마는 ‘갈바를 알지 못한다’ 는 것이지만, 믿음으로 순종함으로 먼저 ‘첫발을 내 디뎠을때’ 아브라함이 경험한것 처럼 우리 각자의 삶에 있어서도 놀라운 기적과 은혜를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 가운데 허락하실 것임을 살펴 보았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삶을 통해 깨닫고 배우게 되는 가장 중요한 믿음의 비밀의 하나임을 살펴 보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은 이런 관점에서 볼때, 믿음을 통해 순종하여 첫발을 내디딜때 어떤 놀라운 기적의 역사들이 일어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 입니다. (수. 3장)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통해 명하신 뜻을 함께 살펴보기 원합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돌 열둘을 취하여 세우라고 하셨을까요?” (Why did God command Israelites to take up twelve stones from Jordan, and to set up them at Gilgal?);

첫째, ‘우리 인간의 심각한 건망증’ 때문 (Because God knows that we all are seriously forgetful): 탁월한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인류역사를 통해서 우리가 배울수 있는 큰 교훈은 ‘인간은 역사를 통해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라고 말 입니다. 저는 여러번 우리 인간의 본성속에 있는 좋지 않은 기질에 대해 나눈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는 남이 나에게 베푼 아홉가지 은혜는 어느순간 모두 잊어버리고, 그가 나에게 섭섭하게 대한 한가지를 삭히지 못하고 끝까지 기억하고 있다는 것> 입니다. 그렇치 않습니까? 여러분과 제가 그렇게 하고자 특별히 노력한 것도 아닌데, 형제가 나에게 행한 선한 행위는 어느 순간 놀라울 정도로 다 잊어 버리고, 어쩌다가 별 뜻없이 한 한가지 섭섭한 것만 기억하는 것 입니다. 왜 일까요? 이것이 우리의 본성인 것 입니다. 죄가 거하는 육신에 속한 우리의 본성 때문 인것 입니다. “나는 이제 예수님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인데요!?” 라고 만약 성도 여러분 중에서 제게 반문하는 분이 있다면, 제가 드릴 대답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조차도 이런 죄에 속한 본성에서 완전히 자유하지 못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겸손히 인정해야 합니다” 라고 저는 말씀 드릴것 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특별히 그의 은혜로 구별하여 택한 이스라엘민족에게 요단강에서 취하여 길갈에 세운 12돌을 통해 하나님께서 두신 뜻도 바로 이것이라는 것 입니다. 이것이 무엇 입니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민족도 아니고, 특별히 구별하여 세운 왕 같은 제사장 나라로 세운 이스라엘 민족이지만, 그들 또한 잊어버린다는 것 입니다. 아니, 얼마나 잘 잊어버리고, 완전히 잊어 버리고, 도리어 하나님께 불평하고 불만하고 감사치 않은지 놀라울 정도라는 것 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너무도 잘 아셨기에 이스라엘민족들이 잊어 버릴적 마다, 불만과 불신앙 가운데서 힘들어 할적마다 이 돌들을 보고 기억하라고 명하신 것 입니다.

제가 성도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 보기 원하는 것은 ‘하나님은 누가 자신을 영화롭게 하는자라고 말씀하시는지?’ 하는 점 입니다. 우리가 잘 이해하드시,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것은 바로 ‘우리 인간이 하나님으로 부터 지으신 참된 목적에 걸맞는 삶’이라고 것 입니다. 어디에 그런 말이 있습니까? 그것은 ‘웨스트민스트 소요리 문답’ 에서 첫번째 질문과 대답에서 볼수 있는 것 입니다; [질문]‘인간의 근본 (=첫째가는) 목적은 무엇인가?’ & [대답] ‘오직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를 영원히 즐거워 하느니라’ (To glorify God and to enjoy Him forever)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 우리 인간이 그분께 지음바 목적에 걸맞게 살아가는 바른 삶이라는 것 입니다. 누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일까요? 시편기자는 이렇게 하나님께서 ‘누가 자신을 영화롭게 하는자인지?’에 대해서 분명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시편/ Psalms 50:23) 라고. 바로 감사로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라는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감사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지금 여러분과 제가 얼만큼 감사에 충만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있다고 자신있게 고백할수 있을찌는 우리 각자의 대답이 다를수 있지만, 그러나 우리 마음 가운데 그를 영화롭게 하고자 하는 열망이 분명 있을것임을 저는 믿습니다. 행위 이전에 그분을 영화롭게 해 드리고자 하는 마음이 내 속에 없다면 내가 과연 구원 받은자인지 우리는 각자를 심각하게 되돌아 봐야 하는 것 입니다. 어떻게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로 제사하는 삶을 살수 있을까요? 그것은 ‘기억하는 것’ 입니다. 그분의 강한 손을 기억하는 것 입니다. 나에게 베푸신 긍휼과 선하신 은혜를 기억하는 것 입니다. 이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내가 구원받았다고, 예수 믿었다고 자동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날마다 주의 말씀을 묵상하고, 내 생활속에서 이른비와 늦은비 처럼 부어주신 그의 은혜를 성령께서 우리의 잠자는 영의 눈을 밝혀 주실때, 우리는 주의 사랑을 기억하게 되는 것 입니다. 그의 은혜와 긍휼하심을 깨닫고 고백하게 되는 것 입니다. 여러분은 이 영적 건망증 가운데 있습니까? 아니면 날마다 12돌을 쌓음으로서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까?

둘째, ‘땅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게 하고자 함’ 때문 (Because God wants let all the people of the earth know Him by the stones) (v.24a): 이제 땅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기 원하시는 것이 길갈에 세울 12돌을 통한 그분의 뜻이라면, 그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그 하나님은 ‘그의 오른손과 팔과 얼굴의 빛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시. 44:3) 하나님이시요,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와 진실이 무궁하신’ (출. 34:6) 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자손들 뿐 아니라, 온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런 권능과 영광과 선하심을 이해하고, 맛보아 알아가도록 하시기 위해 길갈에 12돌을 취하여 세우라고 명하시는 것 입니다. 이 명령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좀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확인해야 할 <2가지 점>가 있습니다; 그것은 ‘요단강 바닥의 12돌’ 그리고 ‘길갈’ 입니다. 첫째, 하나님은 왜 요단강 바닥에서 돌 12개를 취하라고 명하신 것일까요?무엇보다 요단강 바닥의 돌은 그들이 스스로는 취할수 없었음을 기억케 할 것 입니다. 요단강은 대략 4~5m 깊이에, 30m 정도의 넓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취할수 있었던 요단강 바닥의 돌을 취하되 그 숫자를 12개로 하라는 것 입니다. 왜입니까? 이것은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상징하는 것 입니다. 모든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12지파가 하나님의 권능의 손으로 모두 요단강의 마른 땅을 발로 밟아 건넜기 때문 입니다. 그리고 둘째, ‘길갈’ 은 무엇 입니까? 길갈은 ‘굴러갔다’ 는 의미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서 애굽의 수치를 굴러가게 하셨다> (수. 5:9) 는 뜻 입니다. 요단강을 건넌 이스라엘 민족들이 이제 가나안 정복을 눈앞에 두고 지리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중요한 상황을 수행한 곳이 바로 ‘길갈’이라는 땅이었음을 우리는 계속되는 ‘여호수아 말씀’ (수. 5~10장) 에서 볼수 있는 것 입니다. 그들은 길갈에서 가나안 정벌에 앞서 ‘할례’를 받았고 (수 5:2,3), 유월절을 지켰으며 (5:10), 하나님의 군대 장관이 여호수아를 찾아왔으며 (5:13~15), 아모리 사람들과 전쟁한 곳이기도 합니다 (10:6~43).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은 12돌을 세우라고 명하시는 것 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회복하고, 주님과의 첫사랑을 회복하는 길갈, ‘부끄러움과 수치를 굴러가게한 길갈’에 12돌을 세워 그들을 구원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기억하라는 것 입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길갈에서 나의 모든 부끄러움과 수치가 굴러 갔다’는 것은 실제 내 삶에서 어떻게 나타나게 된것인가를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가가 하나님의 명령속에 있는 <두번째> 뜻 입니다. 그것은 말로하는 것이 아니다는 것 입니다. 내가 길갈에서 12돌을 세웠다면, 나의 수치가 그의 능하신 손으로 굴러가 두번다시 되돌아 오지 않았다면, 이제 그의 선하심과 긍휼하심을 선포하라는 것 입니다. 증거 하라는 것 입니다. 이제 땅의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깨닫아 알도록 삶으로 드러 내라는 것 입니다. 하나님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이렇게 우리를 격려 하십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 하였음이니라” (사. 60:1) 이라고. 우리 주님도 또한 이렇게 우리에게 도전 하십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 5:16)고. 성도 여러분은 지금 여러분의 빛을 일어나 비췸으로 이 땅에 함께 살아가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선하심을 증거하는 빛과 소금의 삶의 살아가고 있습니까?

셋째, ‘여호와 하나님을 영원토록 경외하게 하심’ 때문 (Because God plans to bless us to fear Him forever) (24b):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의 선하심과 권능을 기억케 하심으로 밖으로는 우리 각자가 ‘그분의 빛의 증인’이 되게 하시고 안으로는 ‘그분의 자녀’가 되는 축복을 허락하신 것 입니다. ‘하나님을 영원토록 경외하게 하심’이라는 것은 바로 그의 뜻데로 살아가는 자녀가 누릴 축복이 얼마나 큰것인지를 보여주시는 가장 확실한 성경적 표현임을 우리는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구원받은 자에게 베푸신 자비와 은혜를 우리가 잊지 않고 기억한다는 것은 온 땅의 사람들에게 그분을 알림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뿐 아니라, 우리 인간의 참된 축복을 누리게 되는 통로가 됨’을 오늘 말씀은 다시한번 깨닫게 하는 것 입니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가 누릴 축복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치고 저희를 건지시는도다” (시. 34:7), “여호아를 경외함이 곧 지혜의 근본이라 그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좋은 지각이 있나니 여호와를 찬송함이 영원히 있으리로다” (시. 111:10),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있음이여” (시. 130:4). 그리고 <잠언의 기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잠.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잠. 9:10) 고 ‘여호와 하나님 우리 아버지를 경외하는 자’가 누릴 복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누릴 은혜를 수없이 증거하고 약속하고 있는 것 입니다. 바로 하나님 자신이 말 입니다. 결론은 무엇입니까? 우리 각자의 길갈 땅에 12돌을 세움으로 그의 선하심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증거할때, 하나님은 우리를 그의 진정한 자녀로 성장케 하신다고 약속하시는 것 입니다. 그를 영원토록 경외하도록 우리를 인도하시다는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이 하나님을 신뢰 하십니까? 이 선하신 하나님을 고백하고 증거함으로 점점더 그를 영원토록 경외하는 축복된 자녀의 삶으로 들어가고 있습니까?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이제 약속의 땅 가나안땅을 눈앞에 두고 있는 그의 자녀 이스라엘에게 요단강 바닥에서 12개의 돌을 취하여 길갈에서 세우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만약 너희의 후손이 ‘이 돌은 무슨 뜻인가요?’ 라고 묻는다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마르게 하셔서 건너게 하셨다’ 고 대답하라는 것 입니다. 이것은 무슨 뜻 입니까? 그것은 기억하는 것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베푸신 그 셀수 없이 많은 그 구원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는 것 입니다. 기억한다는 것은 땅에 있는 자들에게 빛을 발한다는 것 입니다. 그의 선하심을 증거하고 선포한다는 것 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 한사람 한사람에게 두신 ‘그를 영원히 경외케 하심’으로 계획하신 모든 충만한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 입니다. 이것은 예수 믿었다고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삶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태어났다고 자동적으로 자라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길갈에 12돌을 취하여 세워야만 하는 것 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능하심을 기억하고 고백함으로 점점 더 그를 경외하는 충만한 삶을 살아감으로 가능한 것 입니다. 이런 충만한 성도 여러분의 삶이 되시길 축원 합니다. 아멘.

Topic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