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y 29, 2018

“부활의 삶” (Life of Resurrection)

Preacher:
Series:
Passage: 고린도전서 (1 Corinthians) 15:12,13,19,20
Service Type:

“부활의 삶”

(Life of resurrection)

7-29-18

본문말씀: 고린도전서 15:12,13,19~22

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 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서 론>

만일 누군가가 성도 여러분에게 ‘크리스챤은 누구인가?’ 라고 질문 한다면,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대답 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을 믿어 그분을 주인으로 모신 자’, ‘죄로부터 구원받고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자’,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시민으로 사는 자’ 라고 대답할수도 있을 것 입니다. 모두 옳은 답일 것 입니다. 그러나, 그것 못지않게 크리스챤의 중요한 정의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부활의 삶을 살아 가는 자’ 라고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다시 사는 삶을 살게 된다는 뜻 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또 하나의 신학적인 지식을 이해하는 것에 그치는 힘없는 크리스챤의 삶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의 능력을 날마다 누리며 살아 있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기대 합니다.

<본 론>

오늘 본문말씀이 속해 있는 <고린도전서 15장> 은 흔히 ‘부활장’ 이라고 불립니다. 주석가, ‘메튜헨리’는 <고전. 15>을 다음과 같이 분석 했습니다; <1~11절/ ‘그리스도의 부활’>, <12~19절/ ‘죽은자의 부활’>, <20~34절/ ‘부활의 순서와 상태’>, <35~50절/ ‘부활의 몸’>, <51~57절/ ‘사망을 이긴 부활’>, <58절/ ‘항상 주의 일에 힘쓴 것을 권고함’> 라고 15장을 분석하여 문단 나눴습니다.

부활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자칫 흘려 넘길수 있는 주제일수 있지만 부활만큼 우리 그리스도인에게서 중요한 주제는 또 없을 것 입니다. 왜 부활이 이처럼 중요한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이 우리 크리스찬에겐 우리 구원과 영생의 사활을 걸만큼 핵심적인 <믿음의 근거>이기 때문인 것 입니다. 사도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부활이 우리 성도들의 삶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고전. 15장>에서 이렇게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v.14,17) 라고. 사도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 났다는 사실, 즉 그리스도의 부활의 심각성을 말하면서, ‘만일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전하는 복음도 헛것이고, 우리 믿음도 헛것이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게 된다’ 는 것 입니다. 저는 오늘 <부활장 15장>을 통하여 사도바울 뿐 아니라 모든 신실한 초대교대 성도가 고백했던 그리스도의 부활의 중심성과 확신이 우리 성도들의 삶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살펴보는 시간 되길 원합니다. 이 말은 부활의 믿음이 우리 신자의 삶의 중심이 될수 밖에 없다는 뜻 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 부활의 믿음이 신자의 삶에 중심이 되는 것일까요?” (Why should the faith of the resurrection be a center of our Christians’ lives?) 그것은,

첫째, ‘부활의 사실성’ 에 근거하기 때문 (Because it depends on the truth of the resurrection of Christ) 입니다; 여기서 ‘부활의 사실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가르킵니다. 물론 성경에서 선포하는 부활의 논리는 ‘만약 그리스도께서 부활 하셨다면, 그를 주로 믿고 또한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자들은 반드시 그 또한 부활한다’ 라고 선언함을 우리는 잘 이해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성경에서 ‘부활의 사실성 (=진실성)’을 언급할때 그것은 언제나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을 근거로 말하고 있는 것 입니다. 그런데, 혹시 성도 여러분 중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하심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실수 있다는 것은 잘 알겠는데, 왜 그 사실을 강조하고 계속 선포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고 말하고 싶은분은 없습니까? 저는 무엇보다도 부활신앙을 살펴 봄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부활은 계속해서 강조되고 선포될수 밖에 없음을 지적하지 않을수 없다는 것 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부활의 가장 큰 특징의 하나이기 때문 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하면, 만약 여러분이 계속해서 주님의 부활의 역사성과 심각성을 고백하지 않고, 선포하고 있지 않다면, 여러분은 역설적으로 그 침묵과 무관심을 통해 ‘주의 부활’의 중요성을 부인하는 것이 되기 때문 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 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v.12) 라고 사도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사실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에 “ ~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v.20) 라고 그는 선언하는 것 입니다. 성경과 기독교 2000년 역사가 우리에게 계속해서 가르쳐 주는 교훈은 진정한 주의 제자, 그의 증인들은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언제나 우리 주님의 부활을 증거 했고, 그 부활을 자랑했고, 그 부활을 강조하고 계속적으로 선포했다는 사실 입니다.

왜 그럴까요? 왜냐하면, 만약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그분의 십자가의 죽으심의 가치와 능력이 증명되지 않기 때문 입니다. 만약 그가 다시 살아나지 못했다면, 그분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숭고하고 고귀할수는 있지만, 그의 피로 세상 모든 사람을 살리셨다는 구원의 핵심진리는 거짓말이 되는 것 입니다. 그분은 살아나지 못했기 때문에 죄와 죽음을 이기지 못했고,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갇혀 있게 되는 것이기 때문 입니다. 따라서, 바울의 결론과 같이 주님의 부활이 없을때 ‘우리 크리스챤의 부활도 죄 사함도 없기에 ‘나사렛 예수를 주’ 라고 고백함으로 모든 고난과 고통을 감내하고 살아가는 우리 크리스챤의 삶은 결국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이 되는 것이요, 도리어 우리 성도들은 세상 가운데서 가장 불쌍한 자가 된다’ 는 것 입니다. 지난번에 살펴 보았드시, 사도바울은 <롬. 10:9> 에서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나사렛 예수를 주로 시인’ 할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것이 ‘구원에 이르는 믿음’ 이라고 바울은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주를 살리신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것이 우리 신자들의 ‘구원신앙’의 핵심이라는 것 입니다. 그리고, 그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한 ‘지적 긍정’만을 뜻하는 것이 아나라, 이 부활을 계속 기억하고, 기념하고, 강조하는 것 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나의 자랑이기 때문이요, 그것이 내 믿음의 기초요, 내 삶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 입니다. 따라서, 이런 크리스챤에게 있어서 ‘주님의 부활’은 일년에 한번 ‘부활절 행사’때 사용하는 종교적인 단어도 아니며, 마음의 감동과 확신없이 그저 무덤덤하게 내 뱉는 어떤 신학적 용어가 결코 될수 없는 것 입니다. 여러분에게 ‘주님의 부활’은 어떤 의미 입니까?

둘째, ‘부활의 능력’에 근거하기 때문 (Because it depends on the power of the resurrection) 입니다; 무엇이 부활의 능력 입니까?성경은 “ ~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 ~” (롬. 10:9),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살리시는 창조자 하나님의 영광된 능력이 부활능력> 입니다. 이 능력은 그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구원의 능력으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 입니까?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은 ‘인간의 영원한 원수, 죄와 사망의 영향력에서 해방시키시고, 사단의 능력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의 능력으로 부숴트리고 완전히 승리케 하셨음을 확증하는 것이 이 부활의 능력인 것 입니다. 우리 구원받은 성도들이 비록 우리의 머리와 우리의 가슴으로 이 놀라운 부활의 능력을 다 이해할수는 없을찌라도, 이 능력은 마치 우리 몸속에 있는 피가 수없이 퍼져있는 혈관을 통해 몸속으로 공급됨으로서 우리를 살리듯이 이 부활의 능력은 우리를 영적으로 살릴뿐 아니라 죄와 사망을 이기고 반드시 승리하게 하심을 증거해 주는 것 입니다.

그러나, 모든 믿음의 삶이 그러하듯 이 ‘부활의 능력’에 있어서도 내가 이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내 삶에 적용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 입니다. 다시말해서,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이 너무도 크고 놀랍다고, 모든 죄와 사단의 권세를 이긴다!’ 라고 말해 놓고서는 되돌아서서 과거와 달라진것이 없이 여전히 ‘염려하고, 짜증내고, 성질 부리고…’ 육신의 소욕데로 살아간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말 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가 진정 주의 부활의 능력이 모든 죄와 사망을 이기셨음을 믿고 신뢰 한다면 이제 그 능력을 나에게 적용해야 합니다. 그 능력으로 믿음을 통해 열매를 맺고 승리해야 하는 것 입니다. 사도바울은 부활장, 고전 15장을 쓰면서 무엇이라고 고린도성도를 격려하고 도전 합니까?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 (v.34a) 고 도전하며,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v.58) 고 그들을 격려하며 믿음장을 마감하는 것 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말로만 큰소리치는 것을 뜻하지 않을 것 입니다. 이제 우리 크리스챤이 결코 놓쳐서는 않되는 것은 믿음을 적용해야 하는 것 입니다. 내가 승리하는 크리스챤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그 대속 죽음으로 승리하시고 그 부활로 확증하심을 믿음으로써 그의 승리를 이제 내것으로 적용하는 것 입니다. 어떻게요?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충만한 능력으로 말 입니다. 이것이 그동안 <롬. 8장> 을 통해서 여러번 살펴본 성령충만한 삶으로 승리한 성도의 모습 입니다. 내 힘과 노력이 아니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켜주신 성령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말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지금 이 성령님의 힘으로 부활의 능력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셋째, ‘부활의 소망’에 근거하기 때문 (Because it depends on the hope of the resurrection)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자신이 하는 어떤 일을 문득 생각하다가 왠지 허망하고 가치 없다고 느낀적은 없습니까? 더 이상 이 일을 계속한다는 것이 가치없고 의미 없다는 생각 말 입니다. 이그것이 어떤 것이든 상관없이 이런 판단이 들게 될때 우리는 더 이상 그 일을 계속해 나갈수 없게 되는 것 입니다. 그 말은 조만간 우리는 그 일을 그만두게 되는 것 입니다. 더 이상 그 일을 한다는 것은 시간 낭비이기 때문 입니다. 왜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은 소망스러운 것 일까요? 왜 우리 성도들에게 어떤 상황과 형편 가운데서도 믿음이 무의미하거나 허망한 것이 아님을 확신 시키고, 알수 없는 미래를 바라보며 반드시 영원한 생명과 영광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 할것을 소망하는 근거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 하시기 때문 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믿는 충성된 자를 통하여 우리가 현재가 아니라 장차 누릴 영광을 바라보고 소망하라고 말씀 하시기 때문 입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v.19) 고 사도 바울은 고백 합니다. 왜 입니까? 그것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에서 부활 했을뿐 아니라, 그 때가 언제인지는 알수 없을찌라도 우리 모든 성도들이 주께서 다시 재림하실때 함께 의로운 심판을 위해 부활하여 영원토록 주와 왕노릇하며 영광을 누릴 은혜를 소망하기 때문 입니다. 이것은 어떤 인간이 만든 소설도 아니며, 어떤 정신병자의 환상도 아닙니다. 비록 구원받지 못한자는 이해할수도 깨닫을수도 없을찌라도 거듭난 성도들은 모두 이해하고 소망하는 신자의 미래의 상태인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그의 충성된 종들을 감동 시키셔서 말씀하신 소망스런 약속인 것 입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 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에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 (살전. 4:16~18) 라고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위로의 메세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때에 우리 성도들이 다시 살아나서 그분과 누릴 영광의 삶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미래의 사실이 위로가 되십니까?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 사실이 말할수 없는 위로와 소망이 되었습니다. 이 미래의 대한 위로와 소망이 그들을 그 어떤 불의 위협과 극악한 죽음의 위협 앞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충성과 믿음의 순결을 포기하지 않고 믿음으로 승리하게 한 것 입니다. 바로 부활의 믿음으로 말 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어떤 믿음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제 말은 여러분이 어떤 성경에 대한 지식이나, 신학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느냐? 를 묻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어떤 열매를 맺는지를 묻고 있는 것 입니다. 여러분이 믿는 그 믿음을 통해 삶속에서 선한 열매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는 뭔가 잘못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음을 우리는 감지해야 하기 때문 입니다. 이것은 완전하게 살자는 뜻은 아닙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누구도 완전한 삶을 살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믿고 깨닫은 만큼 순종함으로 삶속에서 열매 맺게 된다>는 것이 영적 원리임을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고,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의 은혜로만 주실수 있는 신자의 능력의 삶이요, 승리의 삶이요, 부활의 삶이라고 성경은 약속해 주기 때문 입니다. 그리고 그 열매맺는 삶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은 언제나 신자의 믿음을 바쳐주는 근거라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통해 깨닫게 해주시는 것 입니다. 이 성령의 증거하심과 그의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을 통해 주님 만나는 날까지 열매맺고 승리하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