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 24, 2019

“감사로 제사를” (Sacrifice by the Thank Offering)

Preacher:
Passage: 시편 (Psalms) 50:14~15, 23
Service Type:

“감사로 제사를”

(Sacrifice by the Thank Offering)

11-24-19

본문말씀: 시편 (Psalms) 50:14~15,23

14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Sacrifice thank offerings to God, fulfill your vows to the Most High,)

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and call upon me in the day of trouble; I will deliver you, and you will honor me.)

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He who sacrifices thank offerings honors me, and he prepares the way so that I may show him the salvation of God)

 

[설교 요약]

       성경말씀에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v.23)라고 하나님은 말씀 하십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절 예배>로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바라기는 진정한 감사로 하나님께 올려 드림으로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소망합니다.

그렇다면, 왜 감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제사인 것일까요?” (Why our thanksgiving make sacrifice offerings to honor God?) 성도의 감사가 이토록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화롭게 하는 이유는,

      첫째, 하나님은 <중심의 제사> 를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Because God receives sacrifice offering from our hearts): 왜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의 감사로 드리는 예배를 그토록 기뻐 하실까요? 그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향한 감사는 ‘중심으로 드리는 제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의 아벨은 그 중심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서“ ~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음)”(히.11:4)니다.

      둘째, 하나님은 <감사의 동기> 를 아시기 때문입니다 (Because God knows our motivations of thanksgiving): 하나님은 단순히 우리의 말잔치 (lip service)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의 동기를 아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선지자를 통해 그의 명령을 거역한 사울왕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 하심 같이 좋아 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15:22)라고. 우리의 감사가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사가 되는 이유는 감사 가운데 숨쉬고 있는 믿음의 동기를 하나님은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감사의 열매> 를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Because God satisfies our fruits of the thanksgiving):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에게 더 풍성한 감사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그 열매는 점점 더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며,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충만케 되는 것입니다. 결국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날마다 중심으로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림으로 그를 영화롭게 하며 감사의 열매를 풍성히 거두는 축복된 성도 여러분의 삶 모두 되시길 축원합니다.

 

[설교 전문]

       성경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가 그분를 영화롭게 할수 있는지?’를 오늘 본문말씀 보다 더 분명히 밝힌 말씀을 저는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v.23)라고 말입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절 예배>로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바라기는 이 예배에 참석한 성도 여러분 모두 진정한 감사로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합당한 예배를 오늘 이시간 뿐 아니라, 평생을 통해 올려 드림으로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소망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데로 추수감사절의 유래는 영국에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 북미대륙으로 건너온 ‘청교도인들’(Pilgrims)에서부터 유래합니다. 역사적으로 볼때, 경건한 청교도인들은 영국의 헨리 8세와 제임스 1세때 이어지는 종교 박해를 피해 1600년대 초기부터 신앙의 자유를 찾아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 미국으로 건너왔습니다. 그 중에서 102명 (남 78명 & 여 24명)의 청교도인들을 태운 메이플라워호가 63일만인 1620년 11월 11일 메사추세츠에 도착한 것이 직접적인 유래가 되었습니다.

힘들게 미대륙에 도착한 이후에 이들은 형언하기 힘들 시기를 넘겨야만 했습니다. 그해 따라 혹독한 강풍과 눈보라를 동반한 겨울추위, 질병과 식량부족, 원주민의 냉대, 그리고 주거시설조차 열악한 상황 속에서 그해 겨울을 나면서 안타깝게도 절반 이상이 생명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따뜻한 봄을 맞아 살아남은 청교도인들이 땅을 개간하고 원주민 인디언들이 그들을 도와 몇 종류의 씨앗을 가져다 주었고 재배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들은 여러 힘든 시간을 겪으며 그해 가을에 옥수수, 호박, 감자 등의 헷 곡식을 거두게 되었고 이것을 기쁨과 감격으로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이때 함께 초대한 인디언들은 칠면조 고기와 호박파이를 구워 와서 함께 먹으며 친교를 나누게 되었는데, 이것이 유래가 되어 추수감사절 때마다 미국인들은 칠면조와 호박파이를 먹는다고 합니다.

저는 사실 그동안 오늘 본문의 <시편 50편>말씀을 기회 있을때 마다 몇차례 나눈바 있습니다. 특별히 한 해를 시작하는 ‘신년 첫 주일예배’를 드리면서 이 말씀을 나눈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면서 우리 각자가 우선적으로 묵상하고 적용해야 할 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이라고 저는 믿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추수감사절 예배를 성도 여러분과 드리면서 다시한번 시편 50편을 통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릴수 있는 복된 삶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기 원합니다.

저는 지난 신년첫 설교에서 오늘 본문말씀의 저자가 아삽임을 살펴 보았습니다. 그는 다윗시대의 유명한 찬양대 지휘자로서 오늘 본문 이외에도 <시편 73~83편>이 이르는 찬양의 시를 성령의 충만한 영감을 통해 지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이 포함된 <시편 50편>을 내용적인 면에서 살펴본다면, 크게 두부분으로 나눠볼수 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첫째는 <6~13절>인데 ‘하나님께서는 형식적인 제사를 드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꾸짖으신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16~21절>로서 ‘불순종함으로 악을 행하는 백성들을 경고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한 제사요, 참된 순종을 통하여 그 행위를 옳다고 인정함을 받는 삶일까요? 그것은 신령과 진정으로 마음 중심으로 드리는 삶이요, 이것이 바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것’ (14~15,23절) 입니다. 하나님은 그분께 감사하는 자가 자신을 영화롭게 한다고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 보다 더 영광스런 칭찬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질문해 보아야 하는 것은 왜 감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제사인 것일까요?” (Why our thanksgiving make sacrifice offerings to honor God?) 라는 것입니다. 이 질문을 통해 왜 그토록 하나님은 우리의 감사를 기뻐 받으시는 것인지를 우리는 깨닫고 날마다 확신 가운데 감사로 그를 영화롭게 하는 복된 삶을 살수 있을 것입니다. 성도의 감사가 이토록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화롭게 하는 이유는,

      첫째, 하나님은 <중심의 제사> 를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Because God receives sacrifice offering from our hearts): 왜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의 감사로 드리는 예배를 그토록 기뻐 하실까요? 그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향한 감사는 ‘중심으로 드리는 제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중심으로 드리는 제사’라는 뜻 입니까’? 그것은 ‘마음의 중심으로 하나님께 예배한다’는 뜻입니다. <창세기4장>에 보면 아벨이 하나님께 어떤 제사를 드린지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창.4:4) 라고. 이 말씀에 대해 히브리서 기자는 그 의미를 영적으로 해석해 주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히.11:4)고.

중심으로, 즉 마음의 중심으로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는 것은 진실함과 겸손함으로 드렸다는 뜻이요, 카인의 제사와 같이 형식적이고 습관적으로 드리는 중심이 빠진 제사가 아니다는 뜻입니다. 저는 어저께 QT말씀을 묵상하면서 많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우리 주님은 에베소 성도성도들을 향해 이렇게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계.2:4)고. 사실 소아시아의 에베소교회는 사도바울과 함께 선교에 앞장서고 복음을 위해 인내하고 수고한 교회였습니다. 주님도 이것을 안다고 칭찬하셨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어느 순간엔가 에베소성도들은 주님과 맺은 첫사랑을 버렸던 것입니다. 그 대신 그 자리에 교회에서 열심으로 봉사하고, 관록을 앞세우고, 사람들 눈에 부러운 그 어떤 것으로 대처했는지 모릅니다. 이것은 저에게도 큰 도전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주님과의 첫사랑을 저버리지는 않았습니까? 이것은 결코 중심의 제사가 아닌것 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감사의 동기> 를 아시기 때문입니다 (Because God knows our motivations of thanksgiving): 시편을 포함한 모든 성경은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무작정 성경을 믿으라고 요구하기 이전에 ‘생각해 보라’고 격려하고 도전함을 우리는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성도들은 무엇을 생각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첫째, ‘하나님의 살아 계심’입니다. 이 하나님은 영원전부터 영원토록 살아 계시는 거룩하고 존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깊이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위대하심’입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살아 계실뿐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운행케 하시는 전능하시고 전지하신 권능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의 손까락으로 하늘을 펴시고, 그의 입김으로 그 코에 생명을 불어 넣으시고, 천지만물을 아름답게 운행 시키시는 권능의 하나님이십니다. 셋째, ‘하나님의 내게 행하신 크신 은혜’입니다. 성경의 결론은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한 권능의 하나님이라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그 권능과 사랑으로 나에게 찾아오셔서 자비와 사랑으로서 넘치는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 입니다. 이것이 언제나 성경의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경배의 주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우리의 말잔치 (lip service)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의 중심을 꿰뚫어 보시고 우리의 동기를 아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이 아말렉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난 다음,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살찌고 기름진 짐승은 살려 두었을때 사무엘 선지자가 그 이유를 묻었습니다. 그때 사울왕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변명을 늘어 놓았습니다. 살찌고 좋은 양과 소를 잡아서 여호와께 제사하고자 남겨 두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서 말입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 하심 같이 좋아 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15:22)라고. 감사가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사가 되는 이유는 우리의 동기를 하나님이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어느 가난한 과부가 드린 동전 한닢을 칭찬하신 예수님의 이유는 바로 그녀의 동기를 보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영과 진리의 예배’(요.4:23~24)요, 사도바울이 격려한 ‘산제사의 예배’(롬.12:1)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날마다 임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은혜를 깨닫고 있습니까? 그 깨닫은 은혜로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께 산제사를 드리고자 하는 참된 동기로 말미암아 감사로 예배 드리고 있습니까?

      셋째, 하나님은 <감사의 열매> 를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Because God satisfies our fruits of the thanksgiving): 이제 저는 성도 여러분에게 마지막으로 이렇게 질문하기 원합니다. ‘여러분은 감사하고 있습니까?’’지금 어떤 감사의 제목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고 있습니까?’라고. 저는 압니다. 감사는 ‘내가 얼마나 성경공부를 많이 하고 깊은 성경교리를 많이 이해했느냐?’이전에 지금까지 나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겸손과 사랑 가운데 믿음의 눈을 조금씩 열어 바라보는 행위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시.50:23)고. 하나님은 그 어떤 숫양의 기름진 제사보다도 우리의 중심의 제사를, 우리의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의 확신과 즐거움 가운데 그 한량없는 은혜에 감격하는 감사를 기뻐 받으시는 것입니다. 이 감사의 예배를 통해 영광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감사하는 자는 그 감사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 열매는 점점 더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며,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충만케 되는 것입니다. 결국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사도바울은 마지막 때가 되어지면 사람들이 육신적인 정욕에 사로잡히고 감사치 않게 된다고 예언했습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디모데후서 3:1~2)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는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이 결실의 계절에 맺게 되는 충성한 과일처럼 말입니다. 날마다 순간마다 하나님의 이 은혜를 망각하고 무시하지 않고, 중심으로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원합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에 걸맞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를 영원히 즐거워하는’ 축복된 성도 여러분의 삶 모두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