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 17, 2019

“복음의 진보” (The Advance of the Gospel)

Preacher:
Passage: 빌립보서 (Phillippians) 1:12~14
Service Type:

복음의 진보”

(The Advance of the Gospel)

11-17-19

본문말씀: 빌립보서 (Phillippians) 1:12~14

12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Now I want you to know, brothers, that what has happened to me has really served to advance the gospel.)

13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시위대 안과 기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As a result, it has become clear throughout the whole palace guard and to everyone else that I am in chains for Christ.)

14 형제 다수가 나의 매임을 인하여 안에서 신뢰하므로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말하게 되었느니라 (Because of my chains, most of the brothers in the Lord have been encouraged to speak the word of God more courageously and fearlessly.)

 

[설교 요약]

               사도는 오늘 본문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내가 당하는 일이 도리어 복음을 전파하는데 도움이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 주시기 바랍니다” (v.12/ 표준새번역) 라고. 그가 당한 고난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를 가져오게 되었다는 것 입니다. 이것이 사도가 고난을 부끄러워하거나 겁내지 않고 도리어 기뻐하고 자랑스러워 하는 이유인 것 입니다.

이제 중요한 질문 한가지를 해보기 원합니다. 그것은, 어떻게 복음의 진보가 가능할까요?” (How to advance the gospel?) 라는 것 입니다. 그것은

첫째, ‘고난을 통과함으로써입니다 (We may advance the gospel through bearing suffering): 시편기자는 고난 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119:71) 라고 고백 합니다. 우리 크리스챤의 놀라운 삶의 역설은 이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더 나아가서 그의 능력을 누리게 되는 것 입니다.

둘째, ‘담대함으로써입니다 (We may advance the gospel through being courageous):

사도바울이 담대하게 감옥에 갇혔을때, 로마의 시위대 책임자들과 간수 그리고 죄수등에게 복음을 놀랍게 전했고, 이것을 들은 형제들이 더욱 담대하게 그리스도를 힘있게 전하는 개기가 되었습니다. 형제중 다수가 나의 매임을 인하여 안에서 신뢰하므로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말하게 되었느니라” (v.13-14) 이것이 복음의 담대함으로 살아가는 자의 삶의 열매입니다.

셋째, ‘오직 하나님을 의지함으로써입니다 (We may advance the gospel through trusting in God): 사도는 고백합니다.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고후.1:8~9) 라고. 하나님은 이런 고난 가운데 오직 오직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믿음으로 승리하는 은혜를 주시는 것 입니다.

바라기는 오직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담대하게 고난을 통과하여 복음의 진보를 이루어 감으로 충만한 성령의 열매와 기쁨을  날마다 거두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소망합니다.

 

[설교 전문]

성도 여러분 중에 현재 당하는 힘든 일과 말못할 어려움으로 인해 고통 가운데 있는 분은 없습니까? 만약 있다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전의 능력과 은혜를 누리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기대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의 삶 가운데 착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루어지기를 간구하고 나서, 오늘 말씀을 통해 본격적인 자신의 삶을 간증하고 그가 누린 기쁨의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의 기쁨의 이유는 그 무엇보다도 ‘복음의 진보’ 때문이라고 그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기쁨은 바로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이 진보를 통해 가능한 것입니다. 바라기는 오늘 말씀을 통해 생명의 복음이 부흥하는 역사를 여러분의 삶 속에서 경험 함으로서 승리의 기쁨을 날마다 거두어 나가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소망 합니다.

사도는 오늘 본문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내가 당하는 일이 도리어 복음을 전파하는데 도움이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 주시기 바랍니다” (v.12/ 표준새번역) 라고. 그렇다면 무엇이 그가 ‘당한 일’일까요? 그것은 사도바울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당하는 일이요, 그가 당하는 ‘고난과 핍박’ 입니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당한 일이 무엇인지를 <13절>에서 사도는 소개하고 있는 것 입니다. 그것은 그가 ‘그리스도를 위해 포승줄에 묶이고, 감옥에 갇히게 된 것’ 입니다. 물론 이것이 전부가 아님을 우리는 압니다.

사도는 자신과 동역자들이 그동안 당한 일이 무엇이었는지를 때에 따라 소상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 ~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죽을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번 맞았으며, 세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번 파선하는데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고후.11:23~27) 라고, 고린도 성도들에게 간증하고 있는 것 입니다. 왜 입니까? 사도가 그들에게 동정을 바래서 일까요? 아니면 그들에게 어떤 인간적인 도움을 받고자 해서일까요? 아닙니다. 사도는 그들에게 “ ~ 내가 차라리 죽을찌언정누구든지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고전.9:15) 고 선언하면서 그런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힌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바울은 왜 자신이 당한 이런 고난과 핍박을 기회가 생길때 마다 여러 성도들과 나누는 것 일까요? 그 이유는 자신이 당한 고난이 결코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는 사실 입니다. 반대로 이 고난은 도리어 복음의 진보를 가져오게 했기에 그는 그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다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는 이런 그가 당한 고난과 환란 가운데서 도리어 기뻐할수 있었고, 그가 당한 일을 영광으로 여겼던 것 입니다. 왜냐하면 이 고난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요, 이 고난은 장차 그리스도와 누릴 영광과 족히 비교할수 없는 것임을 그가 확신 (=이해)했기 때문 입니다. 그럼으로 그는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자신이 감옥에 갇히게 된 사실을 부끄러워 하지 말고, 도리어 자랑스러워 하고 더 나아가 함께 고난 받기를 주저하지 말라고 이렇게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딤후.1:8)고 말입니다.

이제 저는 성도 여러분과 함께 중요한 질문 한가지를 해보기 원합니다. 그것은, 어떻게 복음의 진보가 가능할까요?” (How to advance the gospel?) 라는 것 입니다. 그것은

첫째, ‘고난을 통과함으로써입니다 (We may advance the gospel through bearing suffering): 저는 지난번에 한국에서 기독교 복음의 전파를 위해 힘쓰는 이정훈 교수님을 우연히 지면을 통해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어떻게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간증을 감동적으로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정훈 교수님은 자신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풍부한 토양이 된 한가지 경험에 대해 밝혔습니다. 그것은 그분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전에 반기독교 법률학자로서 기독교를 핍박하기 위하여 기독교회사를 공부 했었는데, 기독교회사를 살피는 중 그가 엄청나게 충격적이고 두려웠던 사건을 만났다는 것 입니다. 그것은 ‘기독교 순교자’에 관한 기록에 관한 것 이었습니다. 이 교수님은 이 순교자들의 충격적인 기록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랬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사실이라면 기독교의 생명력은 그 어떤 인간적인 방법으로 꺽을수 없는 것임을 그는 직감했기 때문 입니다.  초대교부 중에서 가장 먼저 성경의 진리로부터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깨닫은 교부 신학자 ‘터툴리안’ (Tertullian)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다” (The blood of the martyrs is the seed of the church) 라고.

그러면 ‘고난을 통과’하는 것이 복음의 진보를 가져오는 것이라면, 무엇이 고난을 통과한다는 뜻일까요? 그것은 고난을 더 이상 두려워하거나 피하려 할것이 아니라, 고난을 직면하고 그 고난과 맞서서 싸워 나간다는 뜻이 아닐까요? 그 풀무불과 같은 고통의 시간을 인내하면서 믿음으로 이겨 나간다는 뜻이 아닐까요? 시편기자는 이렇게 선언 합니다. 고난 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119:71) 우리 성도가 고난 가운데 배우는 것은 단순히 힘든 것을 참고 이겨 나간다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그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율례를,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고 그가 주시는 능력을 누리게 됨을 뜻하는 것 입니다.  바울은 자신과 동역자들이 당한 고난의 의미를 이렇게 고백 합니다. 우리가 환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이요 ~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고후.1:6)고. 성도 여러분은 지금 겪는 고난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습니까? 이 고난을 통해 도리어 여러분을 위로 하시고, 여러분과 함께 한 자들에게 복음을 통해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으십니까?

둘째, ‘담대함으로써입니다 (We may advance the gospel through being courageous): 어떻게 복음의 진보가 가능할까? 에 대해 사도는 또한 담대한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함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미 앞에서 살펴 봤드시 사도는 그가 당하는 어떤 고난도 피하지도 부끄러워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가 당하는 고난을 자랑하고 기뻐했습니다. 그 고난이 복음의 진보를 가져옴을 그는 확신했기 때문 입니다. 그렇다면, 한가지 확인하고 넘어갈 것은 무엇이 복음인가?’하는 것 입니다. <복음>은 헬라어 원어의 ‘유앙겔리온’에 해당하는 단어로서 ‘기쁜소식’ (The Good News)이라는 뜻 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기쁜소식 입니까?’ 가장 간결하게 그 정의를 웨스트민스터사전에서 찾아보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구원 하신것을 예정하심에 대한 메시지 (=소식)> 이라고 요약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를 믿는 모든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계획하신 이 기쁜 소식,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사도바울 자신이 고난 받기를 주저하지 않고 매임바 되고 감옥에 갇힌바 되었을때 놀라운 사건들이 벌어지게 되었음을 그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시위대 안과 기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형제 다수가 나의 매임을 인하여 안에서 신뢰하므로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말하게 되었느니라” (v.13-14)라고. 사도바울이 포승줄에 묶이고 감옥에 갇혔음에도 굴하지 않고 오히려 담대히 그 감옥안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증거했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던 것 입니다. 자유의 몸으로는 만날수 없었던 그 당시 로마제국의 중요한 시위대 책임자들과 간수와 죄수등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집중적으로 전할수 있는 훌륭한 기회가 주어진 것 입니다. 특별히 바울은 함께 자기를 지키는 군사와 간수들에게 집중적으로 복음전도를 마음껏 행하는 기회를 가진 것 입니다. 이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케 하고 복음이 퍼져가는 역사가 벌어졌습니다. 이 소식을 듣은 여러 성도들이 복음의 놀라운 능력을 믿고 겁없이 더욱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굳게 서서 담대하게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셋째, ‘오직 하나님을 의지함으로써입니다 (We may advance the gospel through trusting in God): 저는 텍사스 ‘스톤브라이어’교회의 ‘ 스윈돌’목사가 그가 총장으로 시무했던 달라스 신학교의 신학생들에게 각별한 사랑을 담아 전했던 메시지가 기억 납니다. 그는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쓰임 받기를 소망하는 후배들에게 이런 몇가지 충고를 했습니다. 첫째, ‘저는 당신이 일찍 성공하지 않기를 희망 합니다’. 대신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 부딪혀 감으로 하나님께 무릎 꿇는 삶으로 나아갈수 있기를 희망 합니다. 둘째, ‘저는 당신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무명의 시기를 경험할수 있기를 희망 합니다’.  특별히 여러분이 뛰어난 재능을 가진 유능한 청년들이라면 입니다. 셋째, ‘저는 당신의 육신을 신뢰함으로 다다르고자 하는 어떤 골을 쟁취하는데 실패할길 희망 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어떤 훌륭한 성취의 경험과 비교할 없는 값진 교훈을 실패를 통해 얻게 되기 때문 입니다

저는 생각해 봅니다. 척스윈돌 목사가 그의 사랑하는 후배들에게 진정으로 전하고자 했던 중심메시지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그 선하신 이끄심은 ‘실패’와 ‘불행’을 경험케 하심이라는 것 입니다. 척목사는 이렇게 그의 메세지를 마감 합니다. 아프고 값진 경험을 통하여 당신은 오직 충만한 확신과 겸손 가운데 되돌릴 없는 과거의 실수에서 이끌어 주시고, 알수없는 미래 가운데로 선실 하게 이끌어 주시는 , 하나님 아버지께로 나아갈 있는 것입니다 라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자신의 실패와 불행을 통해 좌절하고 절망하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이 고난의 값진 경험을 통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점점 더 신뢰하며 오직 그분 만을 의지해 가고 있습니까?

사도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고후.1:8~9) 우리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때로는 심한 고난 가운데 살 소망까지 끊어지는 아픔이 있다 할찌라도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망하게 하고 죽이게 하시는 것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도리어 우리를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시는 하나님의 측량할 길 없는 은혜와 뜻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고통의 순간을 경험하고 있습니까? 바라기는 이 고난의 순간을 통하여 오직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담대하게 고난을 통과하여 복음의 진보를 이루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기대 합니다. 그리하여 복음 안에서 기쁨과 성령의 충만한 열매를 날마다 거두는 여러분 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