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 10, 2019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Until the Day of Christ Jesus)

Preacher:
Passage: 빌립보서 (Phillippians) 1:6~7
Service Type: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Until the Day of Christ Jesus)

11-10-19

본문말씀: 빌립보서 (Phillippians) 1:6~7

6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 하노라 (Being confident of this, that He who began a good work in you will carry it on to completion until the day of Christ Jesus)

7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나와 함께 은혜에 참예한 자가 됨이라 (It is right for me to feel this way about all of you, since I have you in my heart; for whether I am in chains or defending and confirming the gospel, all of you share in God’s grace with me)

 

[설교 요약]

우리는 지난주 빌립보서 강해설교를 시작하면서 빌립보서의 서론에 해당하는 개괄적인 내용을 살펴 보았습니다. 오늘 말씀은 사도가 빌립보 성도들에게 편지를 시작하면서 그들을 칭찬하고 또한 그들을 위해 간구하는 내용에 해당하는 말씀 입니다. 사도가 성도들을 생각하면서 기뻐하며 칭찬하는 이유는 그들이 ‘복음 안에서 함께 교제함’을 인함 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칭찬과 함께 성도들을 향해 이렇게 확신에 차서 선언합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 하노라” (v.6)고.

오늘 설교말씀에서 ‘그리스도의 날’ (the Day of Christ)이라고 사도 바울이 표현했던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1차적으로 마지막 를 뜻 합니다. 바로 ‘주님의 재림의 때’ (The Day of His Second Coming) 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그리스도의 날’ (The day of Christ)은 복된 소망과 영광의 을 뜻 합니다. 이것은 구약의 ‘여호와의 날’ (The day of the Lord)이 ‘두려움과 진노의 날’임과 대조적으로, 신약에서 사도 바울의 서신에서 ‘복된 소망과 영광’ (딛.2:13)을 누릴 날로 묘사 됩니다. 그리스도의 몸이자, 신부되는 교회가 영광가운데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되는 날인 것 입니다. 따라서, 사도는 우리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우리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그 일을 완성해 나갈것을 확신하는 것 입니다.

이제 우리가 깊이 생각해볼 질문은 이것 입니다. ‘나는 진정으로 착한 일을 행하기를 원하는가요?’ 그리고 ‘그 일을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룰것을 확신하는가요?’ 라고 말 입니다. 사도바울은 디도에게 이렇게 편지 합니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 이니라” (.2:14)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죄와 사망에서 건져내어 구원을 허락하신 이유는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친 백성을 삼고자 하심’이라는 것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의 뜻을 좇아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온 마음과 뜻을 다해 열심을 다해 달려 감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날에 ‘잘했다’ 칭찬받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소원 합니다.

 

[설교 본문]

               우리는 지난주 빌립보서 강해설교를 시작하면서 빌립보서의 서론에 해당하는 개괄적인 내용을 살펴 보았습니다. 빌립보서의 주제와 본문과 관련된 여러가지 배경설명에 대해 함께 나눴습니다. 그리고 본서의 주제가 되는 ‘기쁨’에 대해 살펴보면서 ‘왜 사도 바울이 그렇게 강조하여 기쁨을 고백할 뿐 아니라 또한 빌립보 성도들에게 그 기쁨을 강권하는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복음의 진보’를 누렸기 때문이고, ‘그리스도를 소유’했으며, 그로 인해 ‘자족’ 할수 있었기 때문임을 사도바울이 밝히고 있는 것 입니다.

오늘 말씀은 사도가 빌립보 성도들에게 편지를 시작하면서 그들을 칭찬하고 또한 그들을 위해 간구하는 내용에 해당하는 말씀 입니다. 그가 그 무엇보다도 성도들을 생각하면서 기뻐하며 칭찬하는 것은 그들이 ‘복음 안에서 함께 교제함’을 인함 이었습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 (=복음을 전하는 일에 함께 참여함)이라” (v.3~5) 고 바울은 오늘 본문말씀 바로 앞절에서 그들을 향한 자신의 기쁨과 칭찬의 이유를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이렇게 확신에 차서 선언합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 하노라” (v.6)고.

그렇다면, 먼저 여기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 (He who began a good work)는 누구를 뜻하는 것일까요? 물론 그분은 ‘하나님 아버지’십니다. 맞습니다! 우리 모든 거듭난 성도의 삶의 시작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만 가능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것 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피를 통해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 아버지께로 부터만 생명의 삶은 시작되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사도바울이 언급한 ‘착한 일’ (a good work)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선 오늘 본문 다음에 이어지는 말씀 속에서 그 뜻을 이해 할수 있을 것 입니다. <빌.1:9-11>에서 사도바울은 무엇이 우리 성도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시작하시는 착한 일인가?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빌립보 성도들에게 지식과 총명 가운데 그들의 사랑이 점점 더 풍성하게 하셔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진실하고 허물함이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게 하는 것> 입니다. 이것을 <빌.1:11>로 이렇게 요약 할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그들속에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는 )’ (v.11) 이 ‘착한 일’이라는 것 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이 착한 일을 사모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내 계획 내 꿈과 야망을 성취하고자 열심을 내고 있습니까?

이제 저는 오늘 설교말씀에서 성도 여러분과 함께 ‘그리스도의 날’ (the Day of Christ)이라고 사도 바울이 표현했던 의미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길 원합니다. 무엇이 ‘그리스도의 날’이라는 뜻일까요? 1차적으로 ‘그리스도의 날’은 마지막 일 것 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4복음서에서 여러 번 말씀하신 자신의 ‘재림의 때’ (The Day of His Second Coming) 입니다.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셔서 우리 성도의 거처를 예비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의로운 재판장 되셔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이 땅에 다시 오시는 날인 것 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그리스도의 날’ (The day of Christ)은 ‘여호와의 날’ (The day of the Lord)과 대조적인 의미로 성경 여러 곳에서 사용되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여호와의 날’은 구약성경에서 여러 선지자들에 의해 선포된 날입니다. 이 ‘여호와의 날’은 간단히 말하면 ‘심판의 날’ (the day of judgement) 입니다. 바로 ‘악인을 향해 예비된 여호와의 진노의 날’인 것입니다 (사.13:6) (욜.2:31) (겔.13:5) (습.1:14).

따라서 ‘여호와의 날’은 크고 두려운 심판의 날이요, 악인들에게 예비된 진노하심의 날인 것입니다. 거기에 반해, ‘그리스도의 날’은 신약성경에서 특별히 사도 바울의 서신서에서 특징적인 용어로 사용된 복된 소망과 영광의 (딛.2:13)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복되고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날은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의 몸’ (The body of Christ) 으로 대표되는 ‘교회’ (The Church) 를 위해 예비된 날인 것 입니다 (고전.1:18/ 고후.1:14/ 빌.1:6,10;2:16/ 딤후.4:8). 그럼으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각 지체된 우리 성도들은 그 몸의 소망과 영광으로 인해 함께 그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 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신부되는 교회가 신랑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진정한 연합을 하는 복된 날이 되기 때문 입니다. 따라서, 구약의 ‘여호와의 날’이 ‘심판과 진노’로 상징되는 부정적인 날임에 비해, ‘그리스도의 날’은 ‘소망과 영광’으로 상징되는 매우 긍적적인 날인 것 입니다.

이것이 대략적인 사도바울 서신서에서 ‘그리스도의 날’이 의미하는 뜻이 되는 것 입니다. 그럼으로 사도는 사랑하는 빌립보 성도들을 향한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께 올려 드리면서 ‘영광스럽고 소망스런 그리스도의 날까지 그분의 신부요, 몸된 교회를 통해 성도들이 모두 함께 하나님이 시작하신 착한 일을 끝까지 완성해 나가길’ 구하는 것 입니다. 그리고 앞에서 살펴 봤드시 이 착한 일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그들 속에 가득히 맺혀서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는 것’ 입니다. 그래서 많은 신학자들은 이 ‘착한 일’을 그리스도인의 성화’ (the sanctification of Christians) 이라고 말하기도 하는 것 입니다. 왜냐하면 성도의 성화는 그리스도를 만나는 마지막 날까지 푯대를 향하여 날마다 추구해야 하는 삶이기 때문일 것 입니다.

제가 오늘 설교 메시지를 통해 성도 여러분들과 함께 ‘무엇이 착한 일인가?’ ‘무엇이 그리스도의 날인가?’를 살펴보는 것이 우리가 진지하게 관심가지고 깨닫아야 할 주제가 되겠지만, 저는 성도 여러분 각자에게 이렇게 질문하기를 원합니다. 성도 여러분은 진정으로 ‘착한 일을 행하기를 원하는가요?’ 그리고 ‘그 일을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룰것을 확신하는가요?’하는 것 입니다. 사도바울은 영적 아들, 디도에게 편지하면서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십자가 위에서 내어 주셔서 우리를 그분의 보배로운 피로 값주고 사셨는지?’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음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 이니라” (.2:14)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죄와 사망에서 건져내어 구원을 허락하신 이유는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친 백성을 삼고자 하심’이라는 것 입니다. 여기서 ‘선한 일’이 오늘 본문의 ‘착한 일’과 영어로는 동일한 ‘good works’ 가 되는 것 입니다. 주님은 우리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우리 거듭난 성도 한사람 한사람이 열심을 다해 살아가는 당신의 백성, 즉 제자가 되게 하시고자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지난주에 큐티말씀으로 <시편 139편>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이 시편은 다윗의 시편인데 그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놀라운 돌보심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아버지는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아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 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 하나님의 영을 떠나 그 어느 곳으로 피할수 없기 때문’ 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은 ‘나를 어머니의 태에서 부터 지으셨으며, 더욱이 내 형체가 이루어지기도 전에 하나님의 눈은 나를 보시고 주의 생명책에 기록하셨기 때문’ 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 찬송의 시를 마무리하며 이런 간구를 올립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139:23~24)라고.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이것은 물론 하나님께서 자신을 살펴 보셔서 그 속에 악한 것이 있다면 그 은혜로 그것을 물리치게 도와 주시기를 구하는 것 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다윗은 하나님께 결단하고 있는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마음을 살피시고 시험해 보실찌라도 내 속에 악한 생각과 헛된 행위를 행치 않토록 결단 하겠습니다. 내가 주를 미워하는 자들을 미워하며 주를 치러 일어나는 자들은 ~ 나의 원수들 입니다” (.139:21~22) 라고 선언 합니다. 이것이 착한 일에 열심을 내는 성도의 모습인 것 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는 감격한다고 하면서, 자신의 삶을 통해 그분이 기뻐하시는 착한 일을 행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면 이것은 구원받은 성도의 심각한 영적 상태임을 우리는 깨닫아야 하는 것 입니다. 바라기는 여러분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의 뜻을 좇아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열심을 다해 달려 나가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기대 합니다. 그 착한 일을 온 마음과 뜻을 다해 열심을 다해 달려감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날에 ‘잘했다’ 칭찬받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