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 3, 2019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I always pray with joy)

Preacher:
Passage: 빌립보서 (Phillippians) 1:3~5
Service Type: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I always pray with joy)

11-3-19

본문말씀: 빌립보서 (Phillippians) 1:3~5

3 내가 너희를 생각할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I thank my God every time I remember you)

4 간구할때 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In all my prayers for all of you, I always pray with joy)

5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because of your partnership in the gospel from the first day until now)

 

[설교 요약]

저는 오늘부터 ‘빌립보서’강해설교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빌립보서의 주제는 ‘기쁨’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기쁨’ 입니다. 바라기는 성도 여러분 모두 빌립보서를 통해 사도바울이 선언한 이 놀라운 기쁨의 비밀을 깨닫을수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은 빌립보서의 ‘서론’에 해당하는 시간 입니다. 빌립보서는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와 더불어 사도 바울의 <옥중서신>의 하나이고, 그 기록시기는 주후 61~63년경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빌립보서의 배경이 되는 빌립보라는 지역은 마게도냐 서부지역의 중심도시이었고, 이 ‘빌립보’라는 지명은 이 지역을 발전시킨 그리스의 필립왕을 기념하여 불리게 된 것 입니다.

먼저 빌립보 지역이 성경에서 가장 먼저 언급된 것은 <사도행전인 16장> 인데, 환상가운데 마게도니야 사람이 나타나 바울에게 “우리를 도우라” (행.16:9)고 강청한 사건을 통해서 빌립보로 가는 계기를 마련하게 됩니다. 그리고 빌립보 초기사역에서 자주장사 루디아를 만나서 전도했고, 옥중 간수와 그집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또한 동역자들과 함께 많은 고난을 당했음을 보게 됩니다.

빌립보서에서 사도바울이 성도들에게 전하고자 원했던 중심 메세지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기뻐해야만 하는가?” 하는  그 이유를 밝히는 것 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기뻐해야 하는것 일까요?” (Why are we should be joyful in every circumstance?) 그것은

첫째, ‘복음의 진보 때문입니다 (Because of advance of the Gospel): 사도바울의 그 큰 고난 가운데서도 기뻐할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당한 고난이 도리어 그리스도의 복음에 진보를 가져옴을 그가 깨닫았기 때문 입니다.

둘째, ‘그리스도를 소유했기 때문입니다 (Because of our gain of Christ): 사도 바울은  “ ~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 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자 ()” (.3:9)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 입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게 될때 (빌.2:5) 그분의 기쁨이 충만하게 되는 것 입니다.

셋째, ‘자족했기 때문입니다 (Because of being content): 사도바울은 빌립보성도를 향한 사랑의 편지를 마감하면서 <빌.4장>에서 그가 어떻게 이런 기쁨의 사람이 될수 있었는지를 그 비결은 바로 ‘자족’함을 통해 가능하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빌립보서를 함께 묵상해 나감으로서 이런 충만한 기쁨의 은혜를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의 충만하신 은혜로 더욱 풍성히 누려 나가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기대 합니다.

 

[설교 전문]

               저는 오늘부터 ‘빌립보서’강해설교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올해 남은 기념절기를 제외하고는 계속해서 빌립보서 설교를 이어나갈 계획으로 있습니다. 빌립보서의 주제는 ‘기쁨’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기쁨’ 입니다. 바라기는 성도 여러분 모두 빌립보서를 통해 사도바울이 선언한 이 놀라운 기쁨의 고백,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기쁨의 비밀을 깨닫을수 있기를 원합니다. 사도바울이 누렸던 그 기쁨, 사도바울 뿐 아니라 빌립보 교회 성도들과 수없이 많은 신실한 성도들이 누렸던 기쁨을 누리길 소원 합니다. 세상이 줄수도 기쁨 세상이 빼앗을수도 없는 참된 기쁨을 이 빌립보서 말씀을 함께 묵상해 감으로 더욱 더 영으로 깨닫아 나가고 삶속에서 누려 나가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오늘은 빌립보서의 ‘서론’에 해당하는 시간 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데로 빌립보서는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와 더불어 사도 바울의 감옥에서 기록한 서신, 즉 <옥중서신>의 하나 입니다. 그리고 이들 옥중서신 중에서도 빌립보서는 가장 마지막으로 주후 61~63년경에 기록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제가 앞에서 잠간 언급 했드시 빌립보서의 <주제>는 ‘기쁨’ (joy)입니다. 사실 빌립보서는 4장으로 구성된 짧은 서신인데 이 가운데 ‘기쁨’이라는 단어가 5회, 그리고 ‘기뻐하라/한다’가 무려 8회나 사용되고 있음을 볼수 있는 것 입니다. 어떤 성경본문 보다도 많이 자기의 기쁨을 고백하고 있을 뿐 아니라 또한 성도들에게 그 기쁨을 격려하고 있는 것 입니다. 따라서 본서는 ‘기쁨의 서신’이라고 불리어 지는 것 입니다.

그런데 빌립보서의 배경이 되는 빌립보 지역을 살펴볼 때, 이 지역은 마게도냐 서부지역의 중심도시였습니다. 이 지명은 마케도니아 즉,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왕이었던 필립 대왕의 이름을 딴것으로서, 그가 이 지역을 개발하고 부흥하는 도시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따라 불리게 된 것 입니다.

이곳이 성경에서 가장 먼저 언급된 것은 사도행전인데, <행.16:12>에서 빌립보가 ‘마게도냐 지방의 첫성’ 이라고 소개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첫성’이라는 의미는 ‘첫째가는’ 혹은 ‘가장 대표적인 성’ 이라는 뜻 입니다. 그런데 <행.16장>에서 사도바울은 무시아에서 비두니아로 가고자 힘썼으나 성령이 이를 허락치 않으셨습니다 (v.7). 그가 드로아로 내려 갔을 때 밤에 환상 가운데 한 마게도냐 사람이 그에게 나타나서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v.9) 고 간청 했습니다. 바울은 이 환상을 본 후에 곧바로 마게도냐 지역으로 가기를 힘썼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환상 가운데 그 마게도냐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을 도우라고 성령님을 통해 인도하신 것임을 그가 영적으로 깨닫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바울은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사모드리게와 네압볼리를 지나서 곧바로 마게도냐 지역의 가장 중심적인 성이었던 빌립보에 이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v.11,12). 그 성에서 시작된 복음전도의 초기사역의 열매가 바로 ‘두아디라성의 자주 장사’였던 루디아라는 여자였습니다. 바울은 첫 마게도냐 지역 선교의 교두보 (전략기지)였던 빌립보 성에서 그 전도의 열매를 맺어나가는 중에 그 성에 있었던 악한 영에 사로잡힌 자들과 우상숭배자들의 시기와 모함으로 인하여 매맞고 옥에 갇히는 고난을 겪어야 했던 것 입니다.

우리가 잘아는데로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서 밤중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양 했을때, 갑자기 큰 지진이 나며 옥문이 열리고 옥에 갇힌 사람들의 사슬이 다 풀리는 기적이 벌어졌던 것 입니다. 간수가 깨어나서 옥문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다 도망한줄 알고, 자결하려 했을 때 바울이 소리질러 그것을 말리고 그들이 다 있음을 알렸습니다. 간수는 무서워 떨며 그 앞에서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16:30) 라고 묻었습니다. 그때 바울은 그 유명한 말씀,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16:31) 고 선포하며,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의 모든 사람들에게 전했고 그 밤에 이들 모두가 침례를 받았던 것 입니다.

이렇게 사도행전에서 자세히 묘사하고 있는 것과 같이 사도 바울과 실라를 통해 복음전도가 시작하게 된 빌립보성은 그 열정만큼이나 큰 고난의 과정을 거쳐야만 했던 것 입니다. 복음 때문에 이유도 없이 그들은 수없이 많은 매를 맞고 잘못도 없이 감옥에 갇혔던 것 입니다. 그러나 사도바울과 동역자들이 뿌린 씨앗은 얼마나 아름답게 그 싹이 나고 열매가 맺혀 갔던 것 입니다. 사도바울은 빌립보서를 통해 빌립보 성도 안에서 이런 풍성하게 맺혀가는 복음의 열매를 심히 기뻐하고 자랑하고 감사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비록 초기 빌립보성의 전도의 열매는 루디아와 간수 그리고 몇사람의 전도가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실망하지 않았고 계속해서 복음과 사랑의 섬김으로 씨를 뿌렸던 것 입니다. 그리하여 빌립보교회는 점차 부흥하게 되었고, 성도들은 사도 바울과 깊은 사랑의 관계를 형성하고 서로를 아끼고 후원하는 관계가 되었음을 사도는 서신서의 마지막 즈음에 인정함을 볼수 있습니다 (빌.4:18). 더욱이 이렇게 복음의 초기시절부터 사도바울의 전도사역에 참예한 교회가 빌립보교회 말고는 아무도 없었음을 그는 밝히고 그들을 무척 자랑스러워 함을 보게 됩니다 (빌.4:15).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사도바울이 진정으로 그들에게 전하고자 원했던 중심 메세지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기뻐해야만 하는가?” 하는  그 이유를 밝히는 것 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기뻐해야 하는것 일까요?” (Why are we should be joyful in every circumstance?) 그것은

첫째, ‘복음의 진보 때문입니다 (Because of advance of the Gospel): 사도바울의 그 큰 고난 가운데서도 기뻐할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당한 고난이 도리어 그리스도의 복음에 진보를 가져옴을 그가 깨닫았기 때문 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고백 합니다.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1:12)고. 사도바울은 분명한 삶의 목표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를 위한 삶’이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는것 조차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 입니다. 그런데 <빌.1장>에서 보면 그 당시 바울과 함께 복음사역에 힘썼던 동역자 중에는 선하지 못한 동기로 열심을 내었던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사도바울과 라이벌의식을 가지고 그를 힘들게 하고자 선교에 열심을 내는 자들도 있었던 것 입니다. 어떤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 저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줄로 생각하여 순전치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v.15,17) 고 말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결론은 무엇 입니까? 그는 선언합니다. 그렇지만 어떻습니까? 참으로 하든지 거짓으로 하든지, 무슨 방법으로 하든지 그리스도가 전파되고 있으니, 나는 일로 기뻐합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앞으로도 기뻐할 입니다” (v.18)라고. 왜냐하면 어떤 동기에서든지 복음에 열심을 낼때 부흥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것 입니다. 자신이 욕먹고 오해받고 매 맞고 감옥가는 것은 아무 관계 없다는 것 입니다. 여러분은 이 복음의 진보가 기쁨의 제목이 되고 있습니까? 내 자존심이 상하고 욕을 먹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더 부흥함에 대한 기쁨이 있습니까?

둘째, ‘그리스도를 소유했기 때문입니다 (Because of our gain of Christ): 만일 사도 바울 한사람 뿐 아니라, 우리 모든 크리스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점점 더 부흥하는 것을 내 삶의 목표로 삼고 그 부흥을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그 어떤 것 보다 기뻐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그 이유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실 뿐 아니라, 나를 온전히 통치해 나가고 계시기 때문 입니다. 이것을 사도바울은 “ ~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자 (한다)” (.3:8)고 고백하고 있는 것 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얻으셨습니까? 그리스도를 소유하시고, 아니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삶을 의롭게 다스려 나가시도록 그분의 통치하심 아래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그리스도를 얻고 그의 다스림 아래 살아갈수 있는 것 일까요? 이것을 영적으로 잘 가르쳐주는 말씀이 <빌.2~3장> 입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 (.2:5) 는 것 입니다. 본질상 하나님과 동등하신 성자 하나님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히려 자신을 비어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셨던 것 입니다. 이런 주님의 마음을 품으라는 것 입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소유했는가 하는 질문은 우리의 평생을 통해 날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푯대를 향해 달려가고자 하는가를 물어보아야 하는 질문이 되는 것 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그리스도의 마음을 더욱 풍성히 품어 나갈 때 우리는 기쁨에 충만하게 될 것 입니다.

셋째, ‘자족했기 때문입니다 (Because of being content): 사도바울은 빌립보성도를 향한 사랑의 편지를 마감하면서 <빌.4장>에서 그가 어떻게 이런 기쁨의 사람이 될수 있었는지를 그 비결을 밝히고 있습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4:11,12)라고. 그것은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있든지, 아니면 궁핍함 가운데 있든지 건강하든지 병약하든지 관계없이 모든 환경 가운데서 한가지 비결을 배웠다는 것 입니다. 이것이 ‘자족할수 있는 능력’인 것 입니다.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스스로 만족할수 있는 능력 입니다. 여러분은 자족하십니까?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자족 하실수 있습니까? 사실 오늘날 우리 크리스챤을 포함한 현대인들의 치명적인 문제점은 만족하지 못하는 점이 아닌가 저는 생각 합니다. 과거와 비교할수 없는 물질적인 풍요, 교육적인 혜택 그리고 자유가 보장된 기회의 사회에서 살아감에도 상대적 박탈감과 마음의 상처와 고독과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합니다. 특별히 오늘날 얼마나 많은 청년들이 정신적이고 영적인 공허감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지 알수 없습니다.  그 중심에는 자족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떄문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수 있느니라” (.4:13)고. 그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만족할수 있는 그 능력, 그것이 모든 것을 할수 있는 참된 능력이라고 그는 선언하는 것 입니다. 우리 함께 빌립보서 말씀을 묵상해 감으로 사도바울이 누렸던 이 넘치는 기쁨을 발견해 나갈수 있기를 원합니다. 사도바울이 빌립보성도들을 생각하며 항상 간구해서 기도했던 것이 바로 ‘기쁨의 삶’임을 저는 믿습니다. 이런 충만한 기쁨의 은혜를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의 충만하신 은혜로 더욱 풍성히 누려 나가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기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