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6, 2019

“감사로 제사를” (To sacrifice by thank offerings)

Preacher:
Series:
Passage: 시편 (Psalms) 50:14,15,23
Service Type:

“감사로 제사를”

(To sacrifice by thank offerings)

1-6-19

본문말씀: 시편 (Psalms) 50:14,15,23

14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Sacrifice thank offerings to God, fulfill your vows to the Most High,)

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and call upon me in the day of trouble; I will deliver you, and you will honor me.)

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He who sacrifices thank offerings honors me, and he prepares the way so that I may show him the salvation of God.)

 

[설교 요약]

2019년 새해가 시작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한다’고 그를 믿는 자들에게 밝혀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진정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를 소망 합니까? 그렇다면 ‘감사함으로 그분을 예배’하십시요!

오늘 본문이 포함된 <시편 50편>은 아삽이라는 사람의 시 입니다. 아삽은 오늘 <시편 50편>말씀에서 성령의 감동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 합니다. 그 메세지의 요점은 ‘하나님께서 형식적인 제사와 불순종을 꾸짖으시고, 신령과 진정의 참된 제사를 촉구' 하는 것 입니다. 바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것’ (v.14,15,23) 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가 살펴 보기 원하는 것은 이것 입니다. 왜 감사의 제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일까요?’ (How does the thank offerings honor God?) 그것은,

첫째, ‘감사는 내 마음을 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우리의 외모를 살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분 입니다. 아말렉 족속과의 전투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한 사울왕에게 사무엘선지자는 이렇게 촉구합니다.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 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삼상. 15:22) 라고.

감사는 우리의 내면의 마음상태를 가장 잘 드러내는 외적 증거 입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의 눈을 속일수는 없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마음을 보시고 동기를 살피시는 분이기 때문 입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v.14) 여기서 ‘서원을 갚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명하심을 어기지 않고 지킨다’는 더 깊은 순종의 동기가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그 수많은 은혜를 깨닫아감으로서 우러나는 감사인 것 입니다.

둘째, ‘감사는 진정한 믿음으로 가능하기 때문’ 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v.15) 라고. ‘환난날에 나를 부르라’는 하나님의 요구는 하나님은 나를 건져 주시길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 입니다.

그의 택하신 자녀들이 부르짖기를 원하십니다. 왜냐면 그에게 권능과 선하심으로 응답하시길 심히 원하시는 하나님이기 때문 입니다. 이를 통해서 내가 환난과 죄악 가운데서 건짐을 받고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될때, 이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고 하나님은 직접 선언하시는 것 입니다. 진정한 감사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 가능한 것 입니다.

셋째, ‘감사는 말과 행동으로 연결되게하기 때문’ 입니다: 저는 오늘 아삽의 시편 뿐 아니라, 다윗의 여러 시편 말씀을 통해 의인의 삶은 말과 행동이 연결된 삶의 열매로 나타남을 볼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 23절에서 “~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v.23b) 는 말씀의 뜻이 무엇일까요? 이것은 내가 입술로 진실한 감사를 하나님께 올려 드렸다면, 내 행위를 통해 옳다고 증명될수 밖에 없다는 뜻 입니다.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도전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영적 예배니라” (롬. 12:1) 라고. 말로만이 아니라, 자신의 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림으로 영적 예배를 드리는 것 입니다. 바로 오늘 말씀에서 도전 하듯이 삶 전체를 통하여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올려 드리며 그를 영화롭게 하는 것 입니다. 여러분의 남은 평생의 삶동안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사랑의 동기로 날마다 감사의 제사를 아름답게 올려 드릴수 있기를 기대 합니다.

 

[설교 전문]

저는 2019년 새해를 시작하면서 ‘감사로 제사를’ 이라는 제목으로 성도 여러분과 은혜의 시간 가지길 원합니다. 하나님은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한다’고 분명하게 그를 믿는 자들에게 밝혀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진정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를 소망 합니까? 그렇다면 ‘감사함으로 그분을 예배’하십시요!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고, 친히 영광 받으신다고 하나님은 친히 말씀하고 있기 때문 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새롭게 시작되는 2019년 한해 뿐 아니라, 성도 여러분의 남은 평생의 삶동안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진정한 감사의 제사를 올려 드리는 삶을 결단하실수 있기를 소망 합니다.

오늘 본문이 포함된 <시편 50편>은 아삽이라는 사람의 시 입니다. 아삽은 다윗시대의 사람으로서, 오늘날로 본다면 유명한 찬양대 지휘자로서 성령의 충만한 영감을 받아 곡을 썼습니다. 그는 시편 50편과 함께 <시편 73~83편>을 지었습니다.

아삽은 오늘 <시편 50편>말씀에서 성령의 감동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 합니다. 그 메세지의 요점은 크게 2가지인데, 그 첫째는 하나님께서는 [형식적인 제사를 드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꾸짖으신다] 는 것이고 (v.6~13), 둘째는 [불순종함으로 악을 행하는 백성들을 경고 하심]으로써 (v.16~21) 신령과 진정의 참된 제사를 촉구하고 있다는 것 입니다. 바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것’ (v.14,15,23) 입니다. 그렇치 않을때 하나님은 그의 의로우심으로 그 악을 준엄히 심판하실 것 입니다 (v.22).

그러므로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가 살펴 보기 원하는 것은 이것 입니다. 왜 감사의 제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일까요?’ (How does the thank offerings honor God?) 라고 말 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아삽을 통해 선포하고 계신 그 이유를 살펴 보겠습니다. 그것은,

첫째, ‘감사는 내 마음을 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곰곰히 생각해 봤습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의 감사를 그토록 기뻐 받으시는 것일까요? 왜 우리의 감사를 통해 영광 받으시는 것일까요? 저는 우리의 하나님은 우리의 외모를 살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기 때문 일것 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선지자를 통해서 사울왕에게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승리할때 그들의 소유를 모두 진멸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울왕은 그 명령을 어기고 살찌고 건강한 소와 양은 죽이지 않고 남겨 두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한 것 입니다. 이때 사무엘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 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삼상. 15:22) 라고.

하나님께서 우리인간의 감사를 그토록 가치롭게 여겨 주시고 그 감사를 통해 당신께서 영화롭게 되셨다고 오늘 본문에서 두번씩이나 선언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감사가 우리의 내면의 마음상태를 가장 잘 드러내는 외적 증거이기 때문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입술로 하는 감사 (lip service!) 를 어떻게 하나님께서 모르시겠습니까? 사울왕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그 명령을 어긴이유를 그렇듯하게 핑계 대었습니다. 살찐 양과 소를 가지고 하나님께 제사 하고자 했다는 것 입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탐욕 때문인데도 말 입니다. 그러나, 그누구도 하나님의 눈을 속일수는 없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마음을 보시고 동기를 살피시는 분이기 때문 입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v.14) 라고 아삽은 감사로 제사하는 자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서원을 갚는다’는 것은 맹세한 것을 지킨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도 ‘하나님의 명하심을 어기지 않고 지킨다’는 더 깊은 순종의 동기가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따라서 감사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행하신 그 수많은 은혜를 깨닫아감으로서 우러나는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제사라는 것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은혜에 감사함으로 그의 명령을 지켜 나간다는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께 이런 감사의 제사를 드리고자 하는 마음의 동기가 있습니까?

둘째, ‘감사는 진정한 믿음으로 가능하기 때문’ 입니다: 오늘 아삽을 통해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v.15) 라고. ‘환나날에 나를 부르라’는 하나님의 요구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의 선하신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그 명령속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 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나를 건져 주시길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 입니다. 그의 택하신 자녀들이 부르짖기를 원하십니다. 왜냐면 그에게 권능과 선하심으로 응답하시길 심히 원하시는 하나님이기 때문 입니다. 이를 통해서 내가 환난과 죄악 가운데서 건짐을 받고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될때, 이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고 하나님은 직접 선언하시는 것 입니다.

찰스 스펄젼목사는 <감사 십계명>이라는 그의 글에서 이렇게 우리에게 감사의 성도가 되기를 도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별빛에 감사하는 자에게 달빛을 주시고, 달빛에 감사하는 자에게 햇빛을 주시고, 햇빛에 감사하는 자에게 영원히 지지 않는 주님의 은혜의 빛을 주신다 라고. 제가 이시간 성도 여러분에게 질문하기 원하는 한가지는 ‘만약 여러분이 환난 날을 당하게 되었다면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입니까?’ 하는 것 입니다. 환난의 순간에 불평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여러분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와 그의 이름을 부를수 있다면 그것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리고 그분께 나아와 그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응답하여 주시는 은혜를 누렸음을 수많은 성도들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감사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 가능한 것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사는 <내 기도제목>이 이뤄졌기 때문에 드리는 것이 감사가 아니라, 이미 그분의 뜻데로 이뤄 주실것임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 보았기에 드리는 것이 감사인 것 입니다. 따라서 사도바울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 4:6) 고 우리를 격려 합니다. 이미 이뤄진 기도제목에 대해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할 제목에 대해 믿음으로 감사를 드리는 것 입니다. 여러분은 믿음의 눈으로 여러분이 기도하는 모든 것들을 능히 이뤄주실 하나님의 선하심을 감사하고 있습니까?

셋째, ‘감사는 말과 행동으로 연결되게하기 때문’ 입니다: 저는 오늘 아삽의 시편 뿐 아니라, 다윗의 여러 시편 말씀을 통해 성도의 믿음의 상태가 무엇인가를 이해하게 됩니다. 시편에서 아삽과 다윗이 고백했던 의인의 삶은 단순히 구약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행함을 통해서 느끼는 자기만족이 결코 아닐것 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v.23) 고 아삽은 고백 합니다. “~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v.23b) 는 말씀의 뜻이 무엇일까요? 이것은 그의 행위를 통해 구원 받는다, 그의 행위를 통해 의롭게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성도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말과 행동은 결코 분리될수 없다는 것 입니다. 내가 입술로 진실한 감사를 하나님께 올려 드렸다면, 내 행위를 통해 옳다고 증명될수 밖에 없다는 뜻 입니다. 제가 말씀을 시작하면서 언급했드시, 아삽은 <시편 50편 16~21절>에서 말로는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하나의 종교적인 습관에 따라 읖조리면서 행위로는 죄악을 행하는 겉과 속이 다른 이스라엘백성들의 위선적인 모습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믿음은 이런 이중적인 삶이 될수 없다는 것 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그토록 철저하게 율법준수를 통해 스스로 의롭다고 자부했던 유대종교지도자 바리새인들을 꾸짖으셨던 이유였습니다. 주께서 그들을 향해 ‘회칠한 무덤’, ‘독사의 자식들’ 이라고 거침없이 질타하신 이유일 것 입니다. 따라서, 이런 이중적인 종교생활은 나의 믿음생활에 있어서 치명적인 독이 될뿐 아니라, 결코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신령과 진정으로 제사가 될수 없기 때문일 것 입니다.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도전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영적 예배니라” (롬. 12:1) 라고. 말로만이 아니라, 자신의 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림으로 영적 예배를 드리는 것 입니다. 바로 오늘 말씀에서 도전 하듯이 삶 전체를 통하여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올려 드리며 그를 영화롭게 하는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말로만이 아니라 삶을 통해 그 행위를 옳게 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있습니까?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신 구원의 감격으로 인하여 날마다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감사는 단순한 입술의 말로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말과 행동을 통해 내 삶을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합당한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고 있음을 통하여 내영혼 깊은 곳에서 누리는 만족과 기쁨의 가장 적극적인 표현인 것 입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허락하신 구원에 대한 감격 때문 입니다. 이제 희망찬 2019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벌써 오늘로서 새해도 6일째를 맞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지금 어떻게 이 새해를 맞이하고 있습니까? 지난 해처럼, 스트레스와 긴장과 짜증을 반복하며 맞이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오늘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감사’로 맞이하고 있습니까? 바라기는 성도 여러분의 삶이 ‘감사의 제사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복된 삶’살수 있기를 소망 합니다. 2019년 올 한해 뿐 아니라, 여러분의 남은 평생의 삶동안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그를 향한 순전한 사랑의 동기로 열매 맺는 삶 가운데 감사의 제사를 하나님께 아름답게 올려 드릴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