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13, 2019

“믿음이란” (What is faith?)

Preacher:
Series:
Passage: 로마서 (Romans) 4:17,18
Service Type:

“믿음이란”

(What is faith?)

1-13-19

본문말씀: 로마서 (Romans) 4: 17,18

17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As it is written: “I have made you a father of many nations.” He is our father in the sight of God, in whom he believed – the God who gives life to the dead and calls things that are not as though they were.)

18 아브라함이 바랄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Against all hope, Abraham in hope believed and so became the father of many nations, just as it had been said to him, “So shall your offspring be.”)

 

[설교 요약]

크리스챤에게 있어서 ‘믿음’이라는 말만큼 자주 듣고, 자주 사용하는 단어도 없을것 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고 깨우쳐 주시는 ‘믿음’에 대한 옳바른 이해와 그 믿음을 삶으로 적용할수 있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기대 합니다.

이 ‘믿음이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말씀을 시작함에 있어서 저는 먼저 ‘무엇이 믿음이 아닌가?’를 살펴보는 것이 유익하다고 생각 합니다.

첫째, 믿음은 <지적 동의>가 아닙니다. 오늘날 단순히 예수님을 단지 지적으로 인정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둘째, 믿음은 <맹목적인 신앙>도 아닙니다. 맹목적인 신앙은 거짓된 가르침으로 인해 점점 세뇌가 되는 것 입니다. 이것만큼 위험한 신앙도 없을 것 입니다. 셋째, 믿음은 <내 노력과 신념> 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자기 기준과 가치관으로 판단하고 받아들이는 교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과연 무엇이 성경에서 가르치는 믿음인가?’를 살펴볼 차례 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인 <롬.4:17,18>에서 사도바울은 우리 모든 믿는 자의 영적 조상인 아브라함을 분명한 ‘믿는 자의 예’로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사도바울이 밝히고 있는 아브라함의 믿음은 어떤것 일까요?” (What is the faith of Abraham to God?);

첫째, ‘아브라함은 약속하신 하나님을 신뢰’ 했습니다 (Abraham trusted God who promised):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v.17).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99세, 그리고 아내 사라는 89세라는 나이에 그들에게  자식을 주시겠다고 약속 하셨고,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믿었다는 것 입니다. 어떻게 아브라함은 이런 불가능해 보이는 약속을 믿을수 있었을까요? 왜냐하면 약속하신 그 하나님은 아브라함 자신 뿐 아니라, 세상만물의 존재하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 이심이시요, 죽은자를 살리시는 권능의 하나님 이심을 한점의 의심없이 믿었기 때문 입니다.

둘째,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소망’ 했습니다 (Abraham desired the promise of God):  <창. 12장>에서 하나님은 그에게 이렇게 먼저 약속 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창. 12:2) 라고. 아브라함은 그 약속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소망 했기에 그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갔고, 단을 쌓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믿음은 단순히 지적동의가 아니라 우리의 모든 열망을 통해 간절히 그 약속이 이뤄지기를 소망하는 것 입니다.

셋째, ‘아브라함은 그 약속하신 하나님께 순종’ 했습니다 (Abraham obeyed to God, who promised him): <창세기 22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코자 100세 되어 얻은 이삭을 바치라고 했을때, 그가 그 명령에 순종했던 것을 보게 됩니다. 아브라함에서 볼수 있는 믿음은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순종으로 나아갔던 것임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믿음은 결국 말씀하신 하나님을 믿지 못한다는 강력한 증거가 되는 것 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우리의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전인격적인 믿음이라야 합니다. 우리의 <지.정.의> 가 모두 연결된 인격적 믿음 입니다. 성도 여러분의 인격 전체로,‘지성과 감성과 의지’가 남김없이 사용됨으로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심직한 거룩한 산제사로 드려질수 있는 믿음의 삶 살아 가시길 기대 합니다.

 

[설교 본문]

저는 오늘 성도 여러분과 함께 ‘믿음이란 무엇인가?’ 라는 주제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사실 크리스챤에게 있어서 ‘믿음’이라는 말만큼 자주 듣고, 자주 사용하는 단어도 없을것 입니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해서, 우리 크리스챤들 만큼 이 믿음에 대해서 오해하고 잘못 사용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금할수 없습니다. 너무도 믿음이 각자의 생각과 가치관에 따라 혼돈스럽게 사용되고 적용되기 때문일 것 입니다. 바라기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나의 생각이나, 세상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고 깨우쳐 주시는 믿음이란 무엇인가를 살펴 봄으로서 ‘믿음’에 대한 옳바른 성경적 이해와 그 믿음을 삶으로 적용할수 있는 신실한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기대 합니다.

이 ‘믿음이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말씀을 시작함에 있어서 저는 먼저 ‘무엇이 믿음이 아닌가?’를 살펴보는 것이 유익하다고 생각 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방금 언급했드시 우리 크리스챤은 성경에서 가르치지 않는 ‘인간의 주관적이고, 자기 판단의 것’들을 믿음이라고 믿는 경우가 너무도 많기 때문 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믿음이 아닐까요?’

첫째, 믿음은 <지적 동의>가 아닙니다. 영국의 샌드만 (sandeman) 이라는 사람은 <롬. 10:9> “네가 만약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라는 말씀에 대해 잘못된 해석을 했습니다. ‘만일 네가 마음으로 주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 입니다. 그리고 ‘내가 어떤 감정이나 느낌을 느끼지 못해도 상관 없다’ 는 것 입니다. 입으로 시인만 하고 믿으면 된다는 것 입니다. 오늘날 단순히 예수님을 단지 지적으로 인정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둘째, 믿음은 <맹목적인 신앙>도 아닙니다. 명목적인 신앙은 처음부터 그런것이 아니라, 거짓된 가르침으로 인해 점점 더 세뇌가 되는 것 입니다. 이것만큼 위험한 신앙도 없을 것 입니다. 셋째, 믿음은 <내 노력과 신념> 또한 아닙니다. 말을 해 보면, ‘하나님은 이러 이러하셔야 돼’ 라고 말하는 성도들을 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자기 기준과 가치관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 있습니다. 이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무엇이 성경에서 가르치는 믿음이 아닌지?’를 살펴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과연 무엇이 성경에서 가르치는 믿음인가?’를 살펴볼 차례 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인 <롬.4:17,18>에서 사도바울은 우리 모든 믿는 자의 영적 조상인 아브라함을 ‘믿는 자의 예’로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한가지 중대한 사실은 ‘믿는 자의 오직 한가지 예’로서 아브라함을 설명하고 있다는 사실 입니다. 물론, 믿음장, <히브리서 11장>에는 아브라함 뿐 아니라 여러 믿음의 선진들을 한명 한명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과연 믿음이 무엇인가?’라는 매우 중대한 믿음의 개념을 로마서에서 규정함에 있어서 ‘아브라함’ 만을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 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를 모든 믿는 자의 조상으로 그를 택하셨다는 사실이고, 그의 삶을 통해 무엇이 믿음인지? 무엇이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인지? 를 하나님께서 분명히 밝혀 보여 주시고 있다는 것 입니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바 되었느니라” (롬.4:3; 창. 15:6) 는 것 입니다. 사도바울은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을수 있는지? 다시말해, 의롭다 인정함을 받고, 죄없다는 인정함 받는 의인으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수 있는지를 닥터가 핀으로 세밀하게 수술을 집행하듯 정확하게 ‘의롭다 함을 받을수 있는 길’ 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것이 곧 ‘믿음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첫걸음’임을 사도바울은 이해하기를 원하는 것 입니다.

[웨스터민스트 신학사전]을 찾아보면, <믿음> (faith)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신앙에 있어서,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 하나님을 향한 믿음 (belief), 신뢰 (trust), 그리고 순종 (obedience)으로써, 이 믿음은 구원 (엡. 2:8) 혹은 영원한 생명 (요. 6:40)을 얻는 수단이다.”  저는 웨스터민스트 신학사전에서 설명하고 있는 믿음의 정의를 기초로 해서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사도바울이 밝히고 있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 살펴보기 원합니다. 과연 아브라함의 믿음은 어떤것 일까요?” (What is the faith of Abraham to God?);

첫째, ‘아브라함은 약속하신 하나님을 신뢰’ 했습니다 (Abraham trusted God who promised):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v.17) 라고 사도바울은 선언 합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이 신뢰했다>는 것은 어떻게 그 약속이 이루어 질것인가에 대해서 하나의 확률적인 이해나, 혹은 상식적인 선에서 이해를 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드시, 하나님은 아브라함 자신은 99세, 그리고 아내 사라는 89세라는 나이에 그들 부부를 통해서 자식을 주시겠다고 약속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믿었다는 것 입니다. 이 약속이 만약 ‘하나님’이 하신 약속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것보다 더 황당하고 말도 않되는 엉터리 약속도 없을 것 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믿었다고 성경은 기록 (창. 15:6)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아브라함이 이런 황당하고, 불가능해 보이는 약속을 믿을수 있었을까요? 이유는 오직 하나 입니다. 약속하신 분을 믿었기 때문 입니다. 그에게 약속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 입니다. 약속하신 그 하나님은 아브라함 자신 뿐 아니라, 세상만물과 존재하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 이심을 믿었기에 그분의 약속 또한 한점의 의심없이 그분의 신실하심과 권능으로 반드시 행하실것을 믿는 것 입니다. 이것은 어떤 확률적 싸움도 아니요, 이성적인 사고의 결과도 아닙니다. 더 나아가, 이 믿음은 아브라함이 이성이 마비된 맹신자라는 뜻은 더더욱 아닐것 입니다. 그러나, 그가 믿은 것은 우리 인간의 이성을 초월하여 역사하시는 지혜와 초자연적인 무한한 능력의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믿음인 것 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아브라함의 신뢰인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께 대한 이런 절대적인 신뢰하는 믿음이 있습니까?

둘째,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소망’ 했습니다 (Abraham desired the promise of God): 이제 2번째로 하나님께서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 아브라함을 통해 허락하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내용은 <그 약속하심에 대한 소망>일 것 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온전히 신뢰했을 뿐 아니라, 신뢰 했기에 그 약속이 이뤄지기를 소망하고 열망했던 것 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100세 되어 아들을 갖게 될것 (창. 17:15,16) 이라는 약속을 하시기 이미 이전에, <창. 12장>을 시작하면서 주신 약속이 있습니다. 바로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창. 12:2) 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약속을 향한 그의 소망이 어떻게 나타나 있습니까? 그것은 그 약속을 의지하여 그가 약속의 땅으로 떠났다는 사실에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창. 12:4,5).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약속하시고 그를 복의 근원자로 축복하실때 마다 그곳에 단을 쌓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창. 12:7,8; 13:14~18; 15:9~17). 하나님께 단을 쌓았다는 것은 그에게 하신 약속이 받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고 간절히 구한다는 마음이 그 제사속에 담겨 있음을 우리는 봅니다. 오늘 본문 <18절>말씀에서 사도바울은 아브라함이 도저히 이루어질 것이라고 바랄수 없는 상황 가운데서 바라고 믿을수 있었던 것은,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고 하시고 “(네가)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될것이다” 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이라는 것 입니다. 그 약속을 간절히 소망한 것 입니다. 따라서, 믿음은 단순히 하나님의 약속을 머리로 이해 했다는 뜻이 아니라, 그 약속을 곰곰히 되새겨 봄으로서 내 삶 속에서 그것을 영접하는 것 입니다.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 약속을 간절히 소망하는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이런 약속을 자신의 삶속에서 적용해 보고 있습니까? 그로 말미암아 인간의 눈으로는, 세상의 눈으로는 바랄수 없는 그 약속을 바라보고 내 삶 속에서 분명히 이루어지기를 소망하고 간구 하고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주신 비젼의 눈으로 말입니다.

셋째, ‘아브라함은 그 약속하신 하나님께 순종’ 했습니다 (Abraham obeyed to God, who promised him): 맞습니다! 아브라함은 그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약속을 소망 했을 뿐 아니라, 그분께 철저히 순종 했읍니다. 그렇다면, 성경 어디에서 그의 하나님을 향한 순종을 볼수 있습니까? 사실 여기에 해당하는 성경구절은 어쩌면 아브라함이 그 약속을 받은 이후에 그의 모든 삶의 모습 속에서 찾을수 있을 것 입니다. 예를 들어, <창.12장>에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창. 12:1) 고 명령하셨을 때 그가 순종한 것에서 부터 시작될 것 입니다. 그러나, 그의 하나님을 향한 수없이 많은 순종 가운데에서도 그 어떤 것 보다도, <창. 22장>에서 ‘하나님께서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하심에 순종하는 것’에서 우리는 가장 선명하게 볼수 있읍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창. 22:2) 고 아브라함에게 명령하신 것 입니다. 왜 하나님은 이런 엄청난 명령을 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을 바로 앞절 <창. 22:1>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 라고 말 입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십니다. 바로 우리의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믿음의 순종을 보시는 것 입니다. 이것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을 통해서, 헌신과 순종함을 통해 행하는 것 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명령하셨고, 우리가 잘 아는데로 아브라함은 그 명령에 온전히 순종했습니다.

제가 여러번 언급했드시, 어떻게 아브라함은 그가 100세 되어 가진 이삭을 하나님께 드릴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그가 비정한 아버지도, 잔인한 아버지도, 맹신자도 아니요, 바로 이 약속의 아들 이삭을 통해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약속을 절대적으로 확신했기 때문이라는 것 입니다. 다시말해, 만약 자신이 이삭을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것 (히. 11:17~19) 이라는 믿음 때문 입니다. 그 아들은 수없이 많은 후손을 보게될 약속의 아들이기 때문 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이 가진 삶과 죽음을 초월한 약속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요, 하나님을 향한 ‘부활신앙’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하심에 온전히 순종했을때, 하나님은 그를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지지 않을 삶과 죽음을 초월한 부활신앙으로 그를 단련시키시고, 모든 민족의 아비로 굳건하게 세우신 것 입니다. 믿음의 조상으로 말 입니다. 하나님은 동일한 은혜로 여러분과 저를 연단하시고, 순종으로 나아오기를 기뻐하심을 믿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이런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순종의 믿음이 있습니까?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저는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우리가 믿는 이 믿음은 그 어떤 것보다도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임을 우리가 놓치지 않기를 원합니다. 이 말은 우리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인격적인 믿음이라야 하는 것 입니다. 인격적이란 ‘지.정.의’를 모두 포함하는 것 입니다. 우리의 지적 능력과 우리의 감정 그리고 우리의 자유의지 모두를 말 입니다. 믿음은 단순한 지적 인정만도 아니요, 감정적인 느낌만도 아니고, 나의 의지와 노력만도 아닙니다. 살아계시고 선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향해,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내 모든 지성과 감성과 의지가 남김없이 사용되고 산제사로 드려질수 있게 하는 것이 믿음일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의 삶 속에서 날마다 성령의 충만한 도우심 가운데 “~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며)” (롬. 12:2) 그 뜻을 행하여 살아가는 승리하는 믿음의 사람들 모두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