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20, 2019

“폭풍 속에서” (In the storm)

Preacher:
Series:
Passage: 베드로전서 (1 Peter) 4:12,13
Service Type:

“폭풍 속에서”

(In the storm)

1-20-19

본문말씀: 벧전 (1 Peter) 4:12,13

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Dear friends, do not be surprised at the painful trial you are suffering, as though something strange were happening to you.)

13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 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But rejoice that you participate in the sufferings of Christ, so that you may be overjoyed when His glory is revealed.)

 

[설교 요약]

오늘 본문 말씀이 포함된 <베드로전서>는 사도 베드로가 소아시아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 입니다. <베드로전서>에서 초대교회 성도들이 겪고 있는 극심한 고난을 그들이 그리스도께 받은 구원에 대한 확신 가운데 이겨 나갈수 있도록 사도 베드로가 격려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당하는 고난과 고통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얼핏보기에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이곳 미국이나 조국 한국 등, 여러 자유주의 국가에서는 더이상 초대교회 성도들이 겪었던 그런 고난과 핍박은 더 이상 존재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런것 일까요? 사도바울의 조언과 같이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딤후 3:12) 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이제 그러면 어떻게 우리 성도들은 고난을 이겨나갈수 있을까요?” (How do we overcome the sufferings?)

첫째, “고난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으로 여기지 말아야” (To be not surprised at the painful suffering, as though something strange) 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v.12) 성도들이 어떤 형태의 고난이라 할찌라도 그것을 경험하게 될때, 이것이 뭔가 잘못된 것처럼, 나에게는 이런 일이 생겨서는 않 되는것 처럼 여겨서는 않된다는 것 입니다. <시. 119편>에서 시편기자는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v.67) 라고 고백 합니다. 그는 이 고난이 비록 힘들고 나를 고통스럽게 할찌라도 그 고난은 진실로 내게 유익이라는 것 입니다.

둘째, “현재 나의 불시험은 무엇인지를 인식해야 (To figure out my painful sufferings in this time) 합니다: 우리 각자에게 있어서 그 고난은 실제로 무엇일까요? 이 고난은 단순히 외부적으로 눈에 보이는 누군가로 부터의 받는 핍박 뿐만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 이 고난은 내 자신 속에서 하나님을 참되게 믿고자 하는 선한 마음과 이것을 거부하는 육신에 속한 마음이 충돌하는 영적 싸움이자, 내적 갈등과 고통까지도 고난임을 우리는 이해해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 각자가 지금 겪고 있는 고난은 무엇입니까?

셋째, “이 고난의 축복을 깨닫아야” (To recognize the blessings of our sufferings) 합니다: 왜 성도가 당하는 고난은 이런 유익과 축복의 결과를 낳게 하는 것 일까요? 그것은 ‘우리 주 예수께서 먼저 고난을 받으셨기 때문’이라는 것 입니다.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 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v.13) 고 베드로는 우리의 고난과 그리스도의 고난을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자신의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허락하신 유익과 축복을 이해하고 또한 삶으로 누리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현재 여러분의 고난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이해해 가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고난을 통해 여러분 자신이 얼마나 아름다운 하나님의 자녀로 성숙 되어질 것인지를 확신하고 있습니까? 이 고난의 풀무불을 통하여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지지 않을 정금과 같은 충성된 주님의 제자로 살아 가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 합니다.

 

[설교 전문]

저는 오늘 성도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함께 묵상해 보기 원합니다. 만약 성도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사함 얻고 구원 받았다면, 그 구원 받았다는 의미가 내가 아무렇게나 살아도 상관없다는 뜻이 아닐 것 입니다. 따라서 오늘 말씀을 통해서 특별히 ‘고난이라는 폭풍 속에서 우리 성도들은 어떻게 승리하며 열매맺는 삶을 살수 있을것인지?’를 묵상해 보기 원합니다. 이를 통해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그리스도의 친 백성’ (디도서 2:14) 으로 살아가고자 결단하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포함된 <베드로전.후서>는 베드로가 초대교회 당시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등 소아시아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 입니다. 베드로전후서의 <주제>는 무엇일까요? <베드로전서>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겪고 있는 극심한 고난을 그들이 그리스도께 받은 구원에 대한 확신 가운데 이겨 나갈수 있도록 사도 베드로가 격려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후서>에서는 그당시 교회 안에 나타난 거짓교사들과 이단사상을 경계하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특별히, 베드로전서는 <주후 64경> 로마시에서 발생한 방화사건을 네로황제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누명을 뒤집어 씌워 심각한 박해를 하기 시작한 무렵에 쓰여졌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이 편지를 통해 그 극심한 고난 가운데 있는 성도들을 위로하고 소망을 주는 것 입니다. 무엇보다도, 사도는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이런 극심한 시련, 즉 ‘불시험’(fiery trial) 을 당할때 당황하거나 이상스럽게 여기지말고, 도리어 확신 가운데 기뻐하고 즐거워 하라는 것 입니다. 왜냐하면, 이 고난을 통해 우리 모든 성도들은 우리를 위해 먼저 고난 받으신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은혜와 영광을 누리기 되기 때문이라는 것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당하는 고난과 고통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누구도 고통과 아픔을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고난은 힘든 것이요, 아픈 것 입니다. 솔직히 오늘날 우리 크리스챤들이 겪는 고난은 일부 공산국가나 모슬렘국가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을 제외 하고는 대부분 초대교회 성도들이 겪었던 극심한 고난을 당한다고 보기 힘듭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이유로 당하는 극심한 핍박과 순교당하는 고난 말 입니다.

얼핏보기에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이곳 미국이나 조국 한국 등, 여러 자유주의 국가에서는 더이상 초대교회 성도들이 겪었던 그런 고난과 핍박은 더 이상 존재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런것 일까요? 지금 현재 이곳 미국땅에서 살아가는 여러분과 저에게는 고난이 없는 것일까요? 저는 이 ‘고난’에 대해 묵상하면 할수록,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 겪는 고난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핍박 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고난이 있음을 점점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내가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에 살아간다고 핍박이 없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 입니다. 어쩌면 우리 성도를 공격하고 걸려 넘어지게 하는 악한 영, 사단마귀의 공격은 외적으로 볼때 이런 자유롭고 풍요로운 환경 가운데서 훨씬 더 치밀하고 교활하게 우리를 강하게 공격해 오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저는 영적으로 깨닫게 됩니다. 사도바울의 조언과 같이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딤후 3:12) 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내가 종교적 자유가 보장된 국가에서 살고 있다고 해서, 내가 믿는 성도의 가정에서 살아간다고 해서, 나에게는 고난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엄청난 착각인 것 입니다.

이제 그러면 어떻게 우리 성도들은 고난을 이겨나갈수 있는지?” (How do we overcome the sufferings?) 하는 점을 오늘 말씀을 중심으로 살펴봄으로서 마지막때를 살아가는 주님의 제자로서 고난과 싸워 승리할수 있기를 기대 합니다;

첫째, “고난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으로 여기지 말아야” (To be not surprised at the painful suffering, as though something strange) 합니다: 오늘 사도 베드로가 고난 가운데 있는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주는 첫번째 가르침은 ‘고난 당함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는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이 말이 당연하다고 생각할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각자가 그리스도인이면서도 현재 자신이 겪는 고난과 고통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정직히 물어 본다면 베드로가 우리에게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해할수 있는 것 입니다. 다시말해, ‘나는 내가 겪고 있는 고난을 당연하고도 필요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가?’ 아니면 ‘이상한 일 당하는 것으로 여긴고 있는가?’ 하는 것 입니다. “왜 나에게 이런 고난이 찾아오는 것일까?” “왜 하나님은 나를 이런 고통 가운데 두시는 것일까? 내가 하나님 잘 믿고 있는데 말이야…”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이 고난에 대해 이렇게 많은 질문들 가운데 자신은 지금 ‘이상한 일 당하는 있다’고 생각하는 성도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는 것 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v.12) 사도 베드로는 우리 성도들이 어떤 형태의 고난이라 할찌라도 그것을 경험하게 될때, 이것이 뭔가 잘못된 것처럼, 나에게는 이런 일이 생겨서는 않되는 것처럼 여겨서는 않된다는 것 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여겨야 할까요? 여기에 대해서 지난주 큐티말씀으로 묵상했던 <시. 119편>에서 시편기자는 성도가 고난에 대해 가져야할 자세가 무엇인지를 이렇게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v.67) 그리고,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v.71) 라고. 시편기자는 이 고난이 비록 힘들고 나를 고통스럽게 할찌라도 그 고난은 진실로 내게 유익이라는 것 입니다. 왜냐하면 이 고난을 통해 내가 그릇된 길에서 돌이켜 주의 말씀을 지키게 되었고, 주님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기 때문 입니다. 이것이 시편기자 뿐 아니라, 모든 성도가 이 고난에 대하는 태도가 되어야 함을 성경은 힘주어 가르쳐 주고 있는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이 고난에 대해 여전히 불만스러워하고 이상한 일 당하는것으로 여기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고난 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임을 확신하며 그 고난을 맞이하고 있습니까?

둘째, “현재 나의 불시험은 무엇인지를 인식해야 (To figure out my painful sufferings in this time) 합니다: 성도가 고난을 대하는 첫번째 태도가 이상한 일 당하는 것으로 여기지 말고, 당연한 것으로 여길뿐 아니라 그것이 나를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지켜나가게 하는 도구라고 인식하는 것이라면, 그 다음 질문에 보아야 하는 것은 이것 입니다. ‘우리 각자에게 있어서 그 고난은 실제로 무엇인가?’ 하는 것 입니다. 이 질문은 매우 구체적으로, 그리고 매우 개인적으로 스스로에게 물어 보아야만 대답할수 있는 질문 입니다. 그 누구도 내가 당하는 고난의 내용을 모두 설명해 줄수는 없습니다. 앞에서 말씀 드렸드시, 이 고난은 단순히 외부적으로 눈에 보이는 누군가로 부터의 받는 핍박 뿐만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 이 고난은 내 자신 속에서 하나님을 참되게 믿고자 하는 선한 마음과 이것을 거부하는 육신에 속한 마음이 충돌하는 영적 싸움이자, 내적 갈등과 고통까지도 고난임을 우리는 이해해야만 합니다. 주께서 도전하셨드시, 누구든지 주님의 제자로 살고자 한다면 ‘자신을 부인하고 날마다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아야’하는 것 입니다. 이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고난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내 육신의 자아를 십자가에 목박음으로 댓가지불해야 하는 아픔과 고통인 것 입니다.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 각자가 지금 겪고 있는 고난은 무엇입니까? 이것을 분명히 인식하지 못한다면, 오늘 설교말씀에서 여러분에게 주어지는 유익은 별로 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것이 빠졌기 때문 입니다. 남의 고난만 생각하고, 내 고난은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 입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 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고후. 4:8,9) 라고 사도바울은 자신을 포함한 초대성도들의 세상이 감당치 못할 믿음의 삶을 선포하고 있는 것 입니다. 그가 강조하는 바는 그 어떤 극심한 고난과 핍박은 결코 우리 크리스챤을 좌절시키지 못한다는 것 입니다. 왜요? 왜냐하면 그 고난은 나를 거꾸러 뜨리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나를 단련시키고 하나님이 빗으시는 정금과 같은 믿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게 하기 때문 입니다. 성도 여러분이 지금 당하는 그 고난은 무엇 입니까?여러분은 이것이 불평과 불만과 스트레스의 제목이 아니라, 나를 위해 허락하신 은혜의 고난임을 이해하십니까?

셋째, “이 고난의 축복을 깨닫아야” (To recognize the blessings of our sufferings)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성도가 당하는 고난이 왜 우리를 실패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우리를 정금과 같은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수 있게 하는 것일까요? 왜 성도가 당하는 고난은 이런 유익과 축복의 결과를 낳게 하는 것 일까요? 물론, 왜 고난이 이토록 성도들에게 유익한지에 대해 수없이 많은 성경의 증거가 있겠지만, 베드로사도를 포함한 모든 주님의 제자들은 한결같이 한가지 사실을 우리에게 힘주어 증언하고 있는 것 입니다. 그것은 ‘우리 주 예수께서 먼저 고난을 받으셨기 때문’이라는 것 입니다. 우리가 영생의 소망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이 모든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은 오직 우리를 위해 먼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고난의 삶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 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고난은 삶은 그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서 완성 되었기 때문 입니다.

따라서, 베드로는 우리가 고난 당할때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도리어 기뻐하고 즐거워 해야 한다고 성도들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이 고난은 결국 우리를 위해서 그의 보배로우신 피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영광스러운 영적 결과를 가져오게 되기 때문 입니다.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 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v.13) 고 베드로는 우리의 고난과 그리스도의 고난을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은 또한 사도바울이 그의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찌니” (딤후. 2:3) 라고 담대하게 도전하는 이유인 것 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마지막 날 우리가 주님 앞에 서는 날, 이 고난을 통해 우리가 주님의 고난에 참예함을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도 누리는 은혜를 누리게 되기 때문 입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것 이니라” (롬. 8:17) 고 선언한 이유일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자신의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허락하신 유익과 축복을 이해하고 또한 삶으로 누리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베드로는 소아시아에 흩어진 성도들에게 편지 하면서 그들이 당하는 불과 같은 고난에 대해 결코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도전 합니다. 왜냐면 이 고난은 성도들이 결코 피할수도 없을뿐 아니라, 피해서도 않되는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 입니다. 이 고난의 풀무불을 통해 성도들은 정금과 같이 아름답게 빗어지기 때문 입니다. 여러분은 현재 여러분의 고난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이해해 가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고난이 얼마나 유익하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자녀로 성장케 할것을 확신하고 있습니까? 말로만이 아니라, 머리로만이 아니라, 이 고난의 폭풍 속에서 주를 믿는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충만하신 은혜로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그리스도이 좋은 군사되기를 소원 합니다. 이 고난의 풀무불을 통하여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지지 않을 정금과 같은 순결하고 충성된 주님의 제자로 살아 가시기를 간절히 축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