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 21, 2021

“감사함으로 아뢰라” (Present Your Requests With Thanksgiving)

Preacher:
Series:
Passage: 빌립보서 (Phillippians) 4:6~7
Service Type:

“감사함으로 아뢰라”

(Present Your Requests With Thanksgiving)

11-21-21

본문말씀: 빌립보서 (Phillippians) 4:6~7

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Do not be anxious about anything, but in everything, by prayer and petition, with thanksgiving, present your requests to God.)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And the peace of God, which transcends all understanding, will guard your hearts and your minds in Christ Jesus.)

[설교 요약]

            저는 이 시간 성도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께 ‘추수감사예배’를 올려 드리며, 성경에 드러난 감사의 의미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추수감사절’의 유래는 영국왕의 종교적 박해를 피해 400여년전 ‘메이 플라워’ 호를 타고 건너온 청교도인들이 그 해의 혹독한 겨울과 한 여름의 더위를 이겨내며 풍성한 열매를 거두어 첫수확을 기쁨으로 하나님께 드린 것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시편기자의 고백과 같이 “울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시. 126:6)는 기쁨의 제단을 하나님께 쌓았던 것입니다.

시편말씀에 보면 감사에 담긴 놀라운 의미가 나타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로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시. 50:23)라고. 이것은 곧 하나님께서 성도의 감사를 얼마나 가치롭고 중요한 신앙의 열매로 여기시는 지를 단적으로 밝히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감사’에 담긴 본질적인 믿음의 원리를 우리들에게 도전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v.6) 여기서 사도는 ‘하나님께서 너희의 간구에 응답하셨음으로 감사하라’고 말하지 않고, 먼저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고 도전합니다. 이것은 역설적인 믿음입니다. 왜냐하면, 사도는 성도들에게 ‘조건이 만족되었음으로 감사하라’고 말하지 않고 ‘먼저 감사함으로 구하라’고 도전합니다.

그 이유는 참된 성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선하심과 그분의 신실하신 약속’을 신뢰하기 때문에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아무것도 염려하자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은 ‘모든 지각에 뛰어난 자신의 평화’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성도가 언제나 감사의 제사를 드려야 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이것을 다시 한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성경에 나온 ‘감사’의 의미?>

  • 감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시편 50:23)
  • 감사는 조건이 아닙니다 (빌립보서 4:6~7)
  • 감사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7; 시편 56:3)

바라기는 날마다 감사함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감으로,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화를 모든 상황 가운데서 누려 나가시는 축복된 성도 여러분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설교 전문]

            이제 2021년 ‘추수감사절’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이 시간 성도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께 ‘추수감사예배’를 올려 드리며, 이 ‘감사예배’가 때가 되었음으로 또 한번 드리는 형식적인 예배가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반대로, 우리 각자가 마음의 중심을 담아 기쁨과 감격으로 올 한 해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의 제사로 올려 드리는 이 시간되기 소망합니다.

성도 여러분 대부분 잘 알고 계시듯이 미국에서 드리는 ‘추수감사절’의 유래는 영국에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 이곳 미대륙으로 건너온 청교도인들이 첫 가을의 추수한 수확물을 하나님께 감사의 열매로 올려 드린 것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영국의 헨리왕과 제임스 1세왕의 종교박해를 피해 대서양을 건너 102명의 청교도인들이 1620년 8월 5일에 ‘메이 플라워’ 호를 타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영국 남해안 ‘플리머스’ 항구를 출발해 이곳 대륙으로 향했던 것입니다. 이후 수개월의 천신만고 끝에 그해 11월 11일에 청교도를 실은 <메이 플라워 호>는 마침내 미국 동북부 메사추세츠 해안에 가까스로 도착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신대륙에 도착한 것이 끝이 아니라, 험난한 삶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매섭게 몰아치는 강풍과 눈보라치는 혹독한 추위, 질병과 굶주림, 들짐승의 위협과 추위를 피할 주거시설이 전부한 황량한 환경 조건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그해의 혹독한 겨울을 넘기며 102명의 청교도인들은 절반이상이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따스한 봄이 찾아왔을 때 간신히 생존한 50명의 청교도인들은 땅을 갈고 씨를 뿌렸고, 드디어 가을을 맞아 이들은 기대 이상의 풍성한 수확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추수의 열매들을 하나님께 올려 드리며 기쁨의 감격으로 올려 드렸던 것입니다. 시편 기자의 고백과 같이 “울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시. 126:6)는 슬픔대신 기쁨의 눈물로 하나님께 단을 쌓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수확의 기쁨 가운데 청교도를 이 첫 추수감사예배를 올려 드리며, 이웃 인디언들을 초청했을 때, 90여명의 원주민 인디언들이 그들이 구운 ‘칠면조’와 ‘호박구이’를 구워 왔는데, 이 음식이 또한 유래가 되어 전통적으로 ‘추수감사절’에는 칠면조와 펌킨파이를 먹게 된 것입니다.

사실, 저는 우리 아포슬교회가 개척된 이래 이제 11번째의 추수감사절을 맞으면서 과연 추수감사절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묵상해 보았습니다. 물론, 방금 함께 나누었듯이 추수감사절의 유래를 되돌아보는 것도 중요한 것이고, 또한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간에 올 한해동안 우리 각자가 열심히 노력했고 힘써 달려왔던 걸음 걸음이 바로 하나님의 동행 하심이요, 그 분의 은혜의 결과임을 우리는 인정하며 감사하고 있는가 하는 것도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들을 묵상해 가는 가운데, 저에게 강한 도전과 깨닫음으로 다가온 것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 성도가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기쁨의 열매를 올려 드리는 영적 제사 (예배)의 삶은 단지 추수감사절 시즌에만 행하는 연례행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이 감사의 예배는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마치 우리가 숨을 쉴 때마다 공기를 들이 마시듯이 영적 호흡으로서 우리는 감사의 예배를 날마다 순간마다 하나님께 올려 드려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어떤 것보다도 우리 성도들의 중심으로 드리는 감사의 제사를 기뻐하시고 흠양 하신다고 선언하시기 때문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로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시. 50:23)라고 하나님은 그 어떤 것보다 우리의 중심으로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자가 자신을 영화롭게 한다고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저는 오늘 추수감사 예배를 하나님 아버지께 올려 드리면서, 제가 성도 여러분과 함께 묵상하고 깨닫아 나가고자 하는 것은 바로 ‘감사의 삶’입니다. 일년에 한 두번 어떤 특정한 절기에 드리는 것이 ‘감사의 예배’가 아니라, 1년 12달, 365일 언제나 기쁨으로 드려야 하는 것이 ‘감사의 제사’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빌립보 4장>의 본문말씀은 언제나 영적 삶의 기초가 어디에서 시작되는 지에 대해서 우리에게 도전을 줍니다. 사도는 선언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v.6)라고.

오늘 말씀은 성도가 감사해야 할 상황은 무엇인지를 매우 역설적으로 설명하고 있음을 봅니다. 사실 우리가 감사하는 상황을 생각해 본다면 그 점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누군가에게 감사한다면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그가 도움을 주었다든지, 친절을 베풀었다든지, 혹은 무언가 내가 감사를 표할 무언가를 상대방이 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런데 이러한 논리가 신앙에도 대부분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내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도 먼저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떤 감사할 조건을 베푸셨는지에 대한 반응으로 우리 크리스챤 조차도 여긴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의 하나님을 향한 감사는 이와 같은 조건적인 반응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오늘 말씀이 역설적이라고 표현한 이유입니다.

사도는 무엇이라고 우리들을 향해 도전합니까? 그는 우리를 향해 ‘먼저 너희 구할 것을 기도와 간구함으로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아뢰라’고 도전합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너에게 어떻게 해주시는 지를 보고나서, 감사하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이것이 가능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시며, 그 능력이 무한하신 하나님이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런 하나님에 대한 신뢰는 바로 우리의 믿음을 떠받치고 있는 가장 본질적인 요소인 것입니다. 질문은 과연 여러분과 저에겐 이런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점이 오늘 사도가 우리에게 도전하는 점임을 믿습니다. 사도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 (v.6a)고 선언합니다.

우리가 이 지점에서 한번 곰곰히 생각해 볼 점은 무엇 때문에 우리가 불안해하고 염려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라든가,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간에 내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삶의 무게로 인하여 불안해하고 염려한다면, 하나님과 우리 자신과는 어떤 관계인지를 우리는 곰곰히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성도들을 향해 이렇게 권면합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게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벧전. 5:7~9)라고. ‘너희 염려를 모두 주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께서 여러분과 저를 돌보시고 책임지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존 파이프목사는 이점에 있어서 우리에게 중요한 영적 교훈을 줍니다. 그는 <시편 56편>의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 (시. 56:3)는 말씀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우리를 도전합니다. ‘성경은 진정한 성도들은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다 라고 말씀하지 않는다. 그 대신, 성경은 우리들에게 진실한 성도들은 두려움이 몰려올 때에 그 두려움과 싸운다는 것이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즉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우는 사자처럼 몰려드는 두려움과 맞서 싸운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경험을 비춰보든지, 혹은 성경의 말씀을 비춰보든지 우리 모두는 우는 사자처럼 문득 문득 찾아오는 두려움과 염려의 공격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여서 그것과 담대하게 싸워 이길 수는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한결 같은 약속이심과 동시에 오늘 말씀을 통해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격려하는 핵심임을 믿습니다.

이제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기 전에 한가지 확인해야할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만약 여러분이 어떤 심각한 고난과 고통의 한가운데에서 하나님께 기도와 간구로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었다면, 그 응답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고 사도는 지금 말하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v.7)라고. 사도는 ‘네가 염려하지 않고,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간구하면, 하나님께서 너의 바라는 데로 응답하여 주실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단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너에게 평화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의 마음과 생각, 즉 우리의 존재전체를 지켜주는 하나님의 평화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내 스스로 힘겹게 만들어가다가 또 실패하는 평화가 아니라, 우리 인간의 지혜와 깨닫음을 초월한 하나님의 평화가 우리를 지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하나님의 평화, 세상이 줄수도 없고, 세상이 빼앗을 수도 없는 하나님의 평화를 소유하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은혜 가운데 충만하게 누려 나가십니까? 우리 주님은 그를 믿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 16:33)고. 이 세상은 우리 성도들을 힘들게 하고 때로는 환난의 용광로로 몰아갈지라도, 우리가 결코 두려워하거나 실패하지 않는 것은 여러분과 저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평화를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빼앗기지 않고 충만하게 누리게 될 것이라 주님은 약속하십니다. 왜냐하면, 주께서 이미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약속의 성령을 통해 우리를 기쁨으로 충만케 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추수감사예배를 성도 여러분과 함께 드리면서 ‘감사하는 자녀들에게 더욱 풍성한 감사를 할수 있는 은혜’를 베푸실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을 찬양합니다. 그로 말미암아, 감사함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날마다 나아감으로,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화를 모든 상황 가운데서 누려 나가시는 축복된 성도 여러분의 삶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