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y 26, 2020

“거치는 반석” (A Rock that makes them fall down)

Preacher:
Passage: 베드로전서 (1 Peter) 2:6~8
Service Type:

“거치는 반석”

(A Rock that makes them fall down)

7-26-20

본문말씀: 베드로전서 (1 Peter) 2:6~8

6 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For in Scripture it says: “See, I lay a stone in Zion, a chose and precious cornerstone, and the one who trusts in Him will never be put to shame.”)

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Now to you who believe, this stone is precious. But to those who do not believe, “The stone the builders rejected has become the capstone,”)

8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리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and, “A stone that causes men to stumble and a rock that makes them fall.” They stumble because they disobey the message – which is also what they were destined for.)

[설교 요약]

오늘 본문에서 사도 베드로는 소아시아에 흩어져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모퉁이 돌’ (Corner Stone)되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신령한 집을 지으라고 격려합니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2장>에서 다윗 (시.118:22)과 이사야 (사.8:13~14; 28:16)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 다윗: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는 여호와의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시.118:22)
  • 이사야: “~ 내가 시온에 주춧돌을 놓는다. ~ 이 귀한 돌을 모퉁이에 놓아서, 기초를 튼튼히 세울 것이니 ~’” (사.28:16) “~ 그러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거치는 돌, 걸리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 (사.8:14)

이러한 베드로가 묘산한 든든한 바위되신 예수님에 대한 영적 교훈을 통해 우리 각자가 적용할 점이 무엇일까요? 바로 어떻게 예수님은 우리의 모퉁이 돌이 되실 수 있을까요?” (How does Jesus become ‘Corner Stone’ for us?)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첫째, ‘신령한 젖을 사모함으로써’ (Jesus may our Corner Stone through our desiring the sincere milk of the Word) 입니다: 베드로는 “~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벧전. 2:2) 고 말합니다. 즉 ‘신령한 말씀의 젖’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행함으로써’ (Jesus may our Corner Stone through not only hearing His words but also putting them into practice) 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마. 7:24)라고 도전하십니다. 단순히 주님의 말씀을 들을 뿐 아니라, 그 말씀데로 행하는 자가 무너지지 않는 튼튼한 집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로써’ (Jesus may our Corner Stone through the saving grace of God) 입니다: 이사야는 고백합니다.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찌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 (사. 10:22)라고. 예수 그리스도를 모퉁이 돌 삼아 신령한 집을 지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나의 행위나 노력이 아닙니다 (엡.2:8).

하나님이 구원의 은혜로 허락하신 반석되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무너지지 않는 신령한 집을 짓는 성도 모두 되시길 기대합니다.

 

[설교 전문]

성도 여러분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우리는 예수님께서 나를 구원하신 주님이라고 고백하지만 예수님이 실제 여러분의 삶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요? 그 분으로 인하여 어떤 삶의 변화를 경험하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사도 베드로는 소아시아에 흩어져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위’ 혹은 ‘반석’이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어떤 자에게는 건축자가 필요 없다고 버린 돌, 즉 부딪히는 돌과 거친 반석이 되는가 하면, 또 어떤 자에게는 보배롭고 요긴한 건축자의 ‘모퉁이 돌’ (the corner stone)이 되시며, 영원한 ‘산 돌’ (the living stone) 되신다고.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온전한 믿음으로 그분을 새롭게 발견하고, 보배로운 기초석 되신 그 분 위에서 함께 견고한 집을 지어 나가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기대합니다.

성경에서 보면 ‘돌’ 혹은 ‘바위’를 통해 비유와 상징적으로 묘사한 말씀이 여럿 있습니다. 예를 든다면, ‘돌 혹은 바위’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로서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대한 불신으로 인하여 <딱딱하게 굳은 마음>을 표현할 때 ‘돌 같은 마음’ 이라고 선지자 에스겔은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통하여 우리의 굳은 마음을 제하시고 약속의 성령을 통해 부드럽고 순전한 마음을 주실 것을 이렇게 약속하신 것입니다.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내 율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겔.11:19~20) 라고.

그리고 ‘돌 혹은 바위’에 대한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됨을 봅니다. 오늘 본문이 그것에 대한 가장 영광스런 표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바위는 곧 예수 그리스도를 묘사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벧전. 2장>에서 구약의 <이사야 28:16> 말씀을 인용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시온에 주춧돌을 놓는다. 얼마나 견고한지 시험하여 본 돌이다. 이 귀한 돌을 모퉁이에 놓아서, 기초를 튼튼히 세울 것이니, 이것을 의지하는 사람은 불안하지 않을 것이다’” (사. 28:16/ 표준새번역) 라고.

그런데 사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전에는 3년반동안 그분을 따라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시온에 심으신 귀하고 견고한 돌이 바로 주님이심을 온전히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베드로는 이 보배롭고 견고한 ‘모퉁이 돌/기초석’이 예수 그리스도 되심을 점점 더 확고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오늘 본문 앞절 <4절>에서 하나님께서 시온에 심으신 기초 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어떻게 행하셨는지를 이렇게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 (v.4~5)고.

여기서 베드로가 진정으로 강조하여 흩어져 있는 성도들에게 꼭 전해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요?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지만 3일만에 하나님 아버지의 권능으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는 ‘산 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산 돌’ (The Living Stone) 입니까? 산 돌이라 함은 ‘생명을 주는 돌’이라는 뜻으로써, <그 위에 집을 지을 때 무너지지 않고 튼튼히 서는 영원한 생명의 집을 지을 수 있는 돌>이라는 뜻으로 사도 베드로는 구약성경의 말씀을 인용하여 우리에게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6절>에서 다시 밝히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시온에 두신 산 돌, 즉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사도는 묘한 대조법을 통해서 이 산 돌이 그를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에게 어떻게 전혀 다르게 적용되는지를 극명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먼저 ‘믿지 않는 자’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어떤 존재인가요? 여기에서 베드로는 신구약에 기록된 3명을 통해 이 사실을 입체적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는 <첫째>로 ‘다윗’이 지은 것으로 전해지는 <시편 118:22>에서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는 여호와의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라고. 예수님 당시, 종교지도자들, 즉 대제사장과 바리새인과 장로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배척했던 것을 우리는 복음서를 통해 잘 목격할 수 있습니다. 그 당시 건축자와 같았던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거부하고 십자가에 목 박았던 것입니다. 이것을 다윗은 스스로도 다 이해하지 못하는 가운데 자신의 후손 가운데 오실 ‘그리스도가 건축자들에 의해 버려진 돌이 될 것’이라 예언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잠시 살펴본 데로 베드로는 먼저 <이사야 28:16>을 인용하여 오늘 본문 <v. 6>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v.6) 라고. 그리고나서, <이사야 8:13,14> 말씀을 다시 인용합니다.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리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v.8)고. 놀라운 사실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부딪히는 돌과 걸려 넘어지는 바위가 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믿지 않는 자들에게 있어서 ‘십자가에 목 박히신 주님은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 되고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 되었던 것입니다 (고전. 1:23).

그리고 <셋째>로 ‘예수님’께서 직접 자신이 다윗과 이사야가 예언한 ‘돌’ 혹은 ‘반석’이 자신이심을 이렇게 선포하셨습니다. 주님은 <누가복음>에서 다윗의 <시편 118편>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함이 어찜이뇨,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로 가루를 만들어 흩으리라” (눅. 20:17~18)라고. 주께서 선포하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로 가루를 만들어 흩으리라’는 말씀은 사실 매우 두려운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때로 두렵고 엄중한 말씀을 하실 때가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겁주기 위해서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이것이 주님을 믿지 않는 자가 당한 최후가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 요한이 밝힌데로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 3:36)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믿는 자’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어떤 존재입니까? 예수님은 우리 ‘모든 구원받은 성도들이 함께 살아 있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지어져 가는 건물의 모퉁이 돌’ 되시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종교지도자들과 같이 건축자들이 버린 예수, 자신이 누구보다 지혜롭고 똑똑하다고 하는 자들이 무시하고 거부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성도들에게는 보배롭고 튼튼한 기초석이 되시며, 생명의 돌 되시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과연 어떤 존재입니까?

이러한 베드로의 든든한 바위되신 예수님에 대한 영적 교훈을 통해 우리 각자가 적용할 점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면서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기 원합니다. 어떻게 예수님이 우리의 모퉁이 돌이 되실 수 있을까요?” (How does Jesus become ‘Corner Stone’ for us?) 그것은

첫째, ‘신령한 젖을 사모함으로써’ (Jesus may our Corner Stone through our desiring the sincere milk of the Word) 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벧전. 2장>을 시작하면서 이렇게 성도들을 격려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하려 함이라” (벧전. 2:1~2) 여기서 ‘신령한 젖’이 무엇일까요? 이것을 <KJV> 영어성경에서 보면 “the sincere milk of the Word)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신령한 말씀의 젖’이라는 뜻입니다. 사도가 논리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지금까지 살펴본 것과 같이, 우리가 보배로운 모퉁이 돌 되신 예수님으로 인해 함께 세워져 나가기를 소망한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신령한 말씀의 젖을 간절히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로 말미암아 우리는 완전한 구원에 이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금방 태어난 어린 아기를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내가 생명을 가진 아기로 태어났다면 응당 엄마의 젖을 간절히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배가 고픈 아기는, 젖이 필요한 아기는 죽을 힘을 다해 젖을 달라고 울어 대는 것입니다. 아기는 배가 고픈데 점잖게 참거나 줄때까지 말없이 기다릴 수 없는 것입니다. 죽을 듯이 울며 엄마의 젖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 각자가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영적 진리 한가지는 ‘만약 내가 영적으로 태어났다면 분명히 말씀의 젖을 사모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신령한 음식’ 즉 ‘하나님의 말씀의 음식’에 대한 강한 애정과 사모함은 그 사람이 거듭난 것에 대한 강력한 증거>라고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은 고백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말씀을 많이 아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말씀을 사모하느냐? 얼마나 말씀을 사랑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말씀을 사모합니까?

둘째,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행함으로써’ (Jesus may our Corner Stone through not only hearing His words but also putting them into practice) 입니다: 복음서에서 보면, 예수님께서 ‘산상수훈’ (Sermon on the Mountain)의 마지막 말씀으로 그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마. 7:24~25)라고. 오늘 말씀의 주제가 되는 ‘반석’ 즉 ‘집을 지을 때 튼튼한 기초 돌’에 대해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님은 자신이 바로 구약에서 예언한 든든한 반석 되심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를 믿는 자에게 분명히 도전하는 한 가지 사실은 그 반석되신 예수님 위에 믿음의 집을 세워 나간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가를 이렇게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무엇입니까? 반석 되신 예수님 위에 집을 짓는다는 것은 그 분의 말씀을 듣는 것 뿐 아니라 그 깨닫은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비로소 비가 오리고 홍수가 나도 집이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혹시 우리는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는 않는 삶을 살지는 않습니까? 바로 모래 위에 지은 집처럼 말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로써’ (Jesus may our Corner Stone through the saving grace of God) 이루어집니다: 요즘 이사야 말씀을 큐티하면서 저는 많은 은혜를 받습니다. 지난 주중에 묵상했던 말씀이 오늘 본문과 연관된 <이사야 8장>의 말씀이었는데,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믿는 자들에게는 ‘거룩한 피할 곳’이 되시지만, ‘이스라엘의 두 집’ 즉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대다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않고 경외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거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는 바위’가 될 것이라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사. 8:13~14).

그리고 어저께 큐티말씀 가운데, <사. 10:20~23>에서 이사야는 이렇게 예언합니다. “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뢰치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여호와를 진실히 의뢰하리니,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사. 10:20~21)고. 여기서 구원받은 백성의 중요한 개념인 ‘남은 자’ (the remnant)를 언급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로마서 9:27>에서 인용한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찌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훼멸이 작정되었음이라” (사. 10:22)는 그 유명한 남은 자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선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그의 택한 자녀에게 허락하신 구원의 선물임을 믿습니다. 우리의 구원이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을 믿지 않음으로 그 거친 바위에 넘어지고 자빠지는 불행한 인생이 아니라, 주님을 신뢰함으로 그 반석위에 든든히 서는 복된 여러분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의 크신 구원의 은혜를 통하여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된 것입니다. 내 행위와 노력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이 구원의 은혜가 있었기에 우리는 거듭남을 통해 인격적으로 신령한 말씀의 젖을 간절히 사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기만 하는 자가 아니라, 그 말씀대로 행하는 성숙된 주님의 제자로 성장함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으로 함께 지어져 가는 축복된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