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y 12, 2020

“주의 이름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II) (How Majestic is Your Name!)

Preacher:
Passage: 시편 (Psalms) 8:1~4
Service Type:

“주의 이름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II)

(How Majestic is Your Name!)

7-12-20

본문말씀: 시편 (Psalms) 8:1~4

1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 (O Lord, our Lord, how majestic is your name in all the earth! You have set your glory above the heavens)

2 주의 대적을 인하여 어린 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말미암아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와 보수자로 잠잠케 하려 하심이니라 (From the lips of children and infants you have ordained praise because of your enemies, to silence the foe and the avenger.)

3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When I consider your heavens, the work of your fingers the moon and the stars, which you have set in place,)

4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what is man that you are mindful of him, the son of man that you care for him?)

 

[설교 요약]

우리는 지난 주에 “어느 곳이나 계신 하나님”, “약속하신 바를 반드시 성취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거룩하신 하나님”에 이어서, 이번 주 마지막으로 “사랑이신 하나님”에 대해 묵상하겠습니다. 먼저 ‘다윗’은 오늘 본문말씀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2가지>의 놀라운 사실을 감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 첫째 <하나님은 경이롭게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신다!> 는 것입니다 (v.1)
  • 둘째 <하나님은 가장 연약한 자를 통해 권능을 선포다!>는 것입니다 (v.2)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사실은 다윗이 하나님의 놀라우신 존재하심을 선포하고 나서, 곧바로 이렇게 질문한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과연 우리 인간은 누구인가?” (Who is man?)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일까요? <4절>에서 ‘사람’이라는 히브리 원어의 뜻은 <주를 잊어버리고 ~ 사악하고 연약하며 비참한 피조물로서의 인간> 을 의미합니다. 그럼으로 다윗은 사실상 ‘왜 하나님은 이토록 당신을 잊어버리고 사악한 죄에 물든 우리 인간을 돌보십니까?’라고 질문하는 것입니다. 그 대답은 오직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는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3:16) 라고 하나님의 사랑을 성경은 선포하고 있습니다. 또한 <4절>의 ‘사람 혹은 인자’은 누구를 뜻할까요? 그 사람은

  • 첫째 [일반적으로 인류]를 가르킵니다
  • 둘째 [특별한 의미로 예수 그리스도]를 뜻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으시고 영광으로 관 쓰심으로 <시편 8편>을 성취하심을 설명합니다 (히. 2:9). 그리고 주님 자신도 오늘 본문 (v.2)을 인용하셔서 (마. 21:16) 그 영광 받는 ‘인자’가 자신임을 밝히셨습니다. 바로 ‘인자’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 그를 믿는 우리는 죄사함과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 깊이와 넓이를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는 십자가의 비밀이요, 복음의 비밀인 것입니다.

 

[설교 전문]

            우리는 지난 주에 이어 계속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 즉 ‘하나님이 누구신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하나님은 “어느 곳이나 계신 하나님”이시요, “약속하신 바를 반드시 성취하시는 하나님”이시며, 또한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라고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마지막으로 “사랑이신 하나님”이라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의 가장 본질적인 성품에 대해 묵상해 보기 원합니다. 그리고, 이 “사랑이신 하나님”에 대한 성찰로부터 복음의 핵심과 신앙의 출발을 확인해 나가기 원합니다.

오늘 본문말씀, <시편 8편>은 ‘다윗’이 지은 시편입니다. 다윗은 오늘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을 통해 <2가지>의 놀라운 사실을 감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 <하나님은 얼마나 경이롭게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시는가?!> (v.1)하는 것이고, 둘째 <하나님은 그의 피조물 중 가장 연약한 존재를 통해 얼마나 힘 있게 그의 영광을 선포하시는가?!> (v.2) 하는 것입니다.

먼저 <1절>에서 다윗은 모든 겸손과 경외감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온 땅과 하늘 위에 펼치신 그분 자신의 아름다운 이름과 영광’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시인이나 예술가는 아니라 할찌라도 풀 한 포기나 작은 꽃 한송이를 자세히 바라봤을 때 그 속에 깃든 아름다운 생명력이 얼마나 큰지를 직감적으로 깨닫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마. 6:29)고 말씀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온 세상 가운데 자연 만물의 아름다움과 놀라운 생명력은 창조주 하나님의 아름다우신 이름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주의 영광은 하늘 위에서 더 찬란하게 비췹니다. 수없이 빛나는 별들과 금가루를 뿌려 놓은 듯한 은하계와 그 은하계 정도의 거대한 성군들이 또한 수없이 펼쳐진 온 우주의 광활한 천체들은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영광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2절>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피조물 중 가장 연약한 존재들’, 즉 ‘어린 아이와 젖먹이’를 통하여 여화와 하나님은 그의 놀라운 권능을 나타내시고 영광을 선포하신다고 노래합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우리 인간은 처음 세상에 나올 때 모든 생물 중에서 가장 무력한 상태로 시작합니다. 엄마의 배에서 태어난 젖먹이 아기가 겨우 아장 아장 걷기를 시작하는데도 대략 1년가량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걷기 시작한 어린 아이가 제대로 된 성인으로 자라기 위해서는 또한 20년가량을 더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이런 연약한 어린 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말미암아 권능을 세우신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가장 연약한 젖먹이와 어린 아이에 대한 하나님의 각별한 보호와 배려임과 동시에,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능력을 세우시며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은 이런…) 이것을 주석가 <매튜헨리>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이 낮은 세상을 통치 하심에 있어서 하나님은 어린 아이와 젖먹이들을 사용하신다. 이것은 섭리의 왕국에 있는 그분의 영광을 나타낸다. 이것은 또한 은혜의 왕국, 메시야의 왕국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다. 그것은 여기에서 본래 학문이 없는 범인으로서 (행. 4:13) 비천하고 보잘 것 없는 자처럼 보인 사도들에 의하여 예언[되었다.] 우리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어린 아이들이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하고 외친 것을 안다 (마. 21:14~16).  때때로 하나님의 은혜는 어린 아이들 속에서 놀랍게 나타난다. 하나님의 능력은 금방 젖을 떼고 품에서 떨어진 어린 아이와 같이 연약하고 보잘것 없는 자들, 즉 성공할 것 같아 보이지 않는 미미한 자에 의해 하나님의 교회에 큰 일을 행하신다” 라는 매튜헨리는 오늘 본문을 탁월하게 영적 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 분문말씀을 포함한 <시편 8편>에서 함께 살펴보았듯이 다윗이 심히 경이롭게 여기는 ‘하나님의 아름다우신 이름’과 ‘매우 연약한 자를 통해 행하신 그분의 권능’을 통해 우리가 스스로에게 물어 보아야 할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과연 우리 인간은 누구인가?” (Who is man?) 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이 질문에 대해 어떻게 대답하기를 원합니까? 오늘 본문을 포함한 <시편 8편>말씀에서 우리 크리스챤이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과연 우리 인간은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다음에 <시편 8:3~4>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v.3~4)라고. 하나님의 권능의 손으로 빗여 만드신 하늘과 그 가운데 있는 달과 별들을 바라보며 묵상하게 될 때, 비로소 우리 인간이 누구인지를 더욱 더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누구라는 것입니까? 다윗은 무엇보다도 먼저 이것을 질문의 형태로, 아니 감탄과 놀라움의 질문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라고 말입니다.

이것을 ‘표준새번역’에서는 이렇게 번역합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이렇게 생각하여 주시며,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이렇게까지 돌보아 주십니까?” (What is man that you are mindful of him, the son of man that you care for him?) (NIV)라고 말입니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너무도 소중하게 여기시고 돌보아 주심을 다윗은 영의 충만함 가운데 깨닫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토록 하나님의 관심과 돌보심을 받는 우리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요? 우리 인간은 그렇게 하나님의 과분한 사랑의 돌보심을 받을 자격이 충분한 자들인가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다윗이 <v.4절>에서 “사람이 무엇이관대” 라고 말했을 때, 그 <사람> (man)이라는 단어는 ‘히브리 원어’로 <에나쉬>로서 <주를 잊어버리고 주께 대한 의무를 잊어버릴 정도로 사악하고 연약하며 비참한 피조물로서의 인간> 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에 대한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악에서 떠난 영적으로 강건한 인간이 아니라, 그분을 잊어버리고 그분에게서 떠나 죄로 깊이 물들고 비참한 상태에 빠진 인간을 돌보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단순히 불쌍히 여기시고 돌보는 정도가 아니라 깊이 사랑하시고 그분의 가장 소중히 여기시는 것조차 아낌없이 다 포기하시는 것입니다.

만약 제가 여기까지 말씀드리면 여러분들 중에 ‘그건 너무 감상적이고 지나친 표현 아닙니까? 하나님이 우리 인간의 죄를 다 용서하시는 은혜는 알겠는데, 우리 인간을 위해 그분의 가장 소중한 것도 모두 포기하셨다는 것은 지나친 표현 아닌가요?!’ 라고 하는 분은 없습니까? 저도 물론 성도 여러분의 겸손한 마음은 이해합니다만, 그러나 ‘죄에 빠진 사악한 우리 인간을 살리기 위해 하나님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 아니 자신의 전부를 마치셨다’고 성경은 분명히 선언함을 저는 믿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독생자, 자신과 본질상 하나이시요, 자신의 전부와 같은 성자 하나님이신 독생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 주심으로 우리를 살리셨다는 뜻 입니다. 그것이 정확하게 <요한복음 3:16>의 핵심이 아닐까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는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3:16)라고.

그렇다면, 이제 저는 좀더 <v.4절> 이후에 나타난 ‘사람’의 뜻을 성도 여러분과 살펴보고자 합니다. 여기서 다윗이 말한 ‘사람 혹은 인자’는 <첫째> [일반적으로 인류]를 가르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간에게 큰 관심을 두시고 많은 자비로 함께 하시기 때문이요, 더 나아가 우리 인간은 모든 만물보다 우월함을 확신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압니다.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v.5)라고 다윗은 우리의 지위를 영의 충만함으로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의 <개역한글판> 성경에는 ‘천사’에 관주로 ‘하나님’으로 번역될 수 있다고 표시되어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지위는 ‘천사’ 혹은 ‘하나님’ 보다 조금 못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존재에 대한 얼마나 엄청난 의미를 뜻하는지는 여러분도 이해하실 것입니다. 그럼으로 하나님은 이렇게 엄청나게 창조하신 존재를 통하여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고 다스리게 하셨다고 다윗은 <v. 6~8>에서우리 존재를 하나님의 뜻 안에서 발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첫 인간부부를 지으시고 그들을 축복하시며 하셨던 말씀을 기억합니다. “~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 1:28) 고 말입니다.

그리고 다윗이 고백한 ‘사람 혹은 인자’는, <둘째>로 특별한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주’되심을 <히. 2장>에서 증거하면서 바로 <시편 8편 4~6절>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나서,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간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히. 2:9) 고. 하나님은 다윗을 통하여 성령의 감동으로 1,000여년 후에 그의 후손 가운데 오실 구원자 그리스도를 예언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독생하신 아들을 통해 이루실 약속의 성취는 오늘 본문말씀 가운데서도 놀랍게 성취된 것입니다.

앞서 ‘매튜헨리’의 주석에서도 살펴보았지만, 우리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한 대속의 죽음을 앞두고 유월절을 제자들과 지키시고자 예루살렘에 입성하셔서 성전에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마. 21:15) 라고 아이들이 소리지를 때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그것에 못 마땅하고 화를 내는 것에 대해 또한 오늘 본문말씀을 인용하신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마. 21:16)라고. 주님은 오늘 본문말씀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통해 자신의 메시야 되심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것은 지극히 어리고 연약한 자를 통하여 자신의 메시야 되심을 선포할 것이라는 약속의 성취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저는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다시 ‘우리 인간은 누구인지?’라는 질문으로 돌아가기 원합니다. 우리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일까요? 우리 인간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거룩한 형상과 자신의 모양대로 만드신 (창. 1:26~27) ‘만물의 영장’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향하여 허락하신 자연 만물을 다스리고 지키게 하시는 실로 엄청난 영광의 직분을 인간을 처음 창조하셨을 때 뿐 아니라, 첫 인간부부가 하나님을 거역함으로 모든 후손들이 죄로 말미암아 더럽혀진 사악한 인간, ‘에나쉬’의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동일하게 ‘그분의 손으로 만드신 만물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두는 영광스러운 미래’를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 땅에 보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 가운데 있는 그의 자녀를 너무도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하셔서 우리를 살렸기 때문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얻고 영생을 얻게 됨으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영광된 자녀의 권세를 그리스도와 함께 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요, ‘사랑의 하나님’의 중심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아름다운 하늘과 빛나는 달과 별들을 바라보면서 무엇을 느낍니까? 이것이 놀라운 창조주 하나님의 솜씨임을 깨닫습니까? 그뿐 아니라 택하신 그의 자녀들에게 그 자연만물을 다스리게 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그분의 사랑안에서 성취됨을 우리는 깨닫습니다. 바로 죄로 말미암아 죽었던 우리를 그의 아들을 통해 구원하시고 영광의 권세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회복시키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복음의 비밀을 통해서 입니다. “십자가의 진리가 멸망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고전. 1:18/ 현대인의 성경)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 안에 감추어진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바라기는 성도 여러분의 남은 평생의 삶을 통하여 사랑이신 하나님의 십자가의 진리를 날마다 깨닫아 나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사랑을 성령을 통하여 날마다 누려 나가는 복된 하나님의 자녀된 삶을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