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y 8, 2018

“고난을 받으라” (Join with me in suffering)

Preacher:
Series:
Passage: 디모데후서 (2 Timothy) 3:12~14
Service Type:

“고난을 받으라”

(Join with me in suffering)

7-8-18

본문말씀: 디모데후서 (2 Timothy) 3:12~14

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In fact, everyone who wants to live a godly life in Christ Jesus will be persecuted,)

13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while evil men and impostors will go from bad to worse, deceiving and being deceived.)

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But as for you, continue in what you have learned and convinced of ,)

<서 론>

지난주 우리는 각자 큐티말씀으로 디모데후서 말씀을 묵상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그의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한 디모데후서에서 전체가 4장이라는 비교적 짧은 말씀 안에 일곱번 가량이나 “고난 (혹은 핍박)을 받으라” (1:8,12; 2:3,9; 3:11,12; 4:5) 는 말씀이 나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뜻데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왜 고난을 받아야만 하는지, 왜 고난은 불행이나 실패나 하나님의 무관심이 아니라 참된 성도를 단련시키고 승리의 통로인지를 다시한번 깨닫고 기쁨과 확신 가운데 고난에 함께 동참하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기대 합니다.

<본 론>

디모데전후서는 우리가 아는데로 사도바울의 골로새서, 빌레몬서, 빌립보서와 함께 그의 옥중서신 (=감옥에서 쓴 편지) 입니다. 그중에서도 오늘 본문이 포함된 디모데후서는 그의 가장 마지막 서신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알수 없지만, 임박한 자신의 마지막 죽음을 준비하며 쓴 글이 이 <디모데후서> 인것 입니다. 그는 <디모데후서 4장>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또한 소망하고 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딤후. 4:7,8) 라고. 마치 큰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의 승리의 개가를 듣는 듯 합니다. 아니, 사도바울은 진정으로 탁월한 영적 장군 이었습니다. 그는 이제 감옥에서 머지 않아 순교 할것을 알고, 자신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고 하늘을 우러러 주저함 없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멋지고 충성된 모습인지 알수 없습니다.

저는 오늘 사도바울의 마지막 서신, 특별히 그의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그의 유언과도 같은 짧지만 아비의 사랑과 모든 영적 진리를 가득담은 영적 가르침을 통하여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이 결코 놓쳐서는 않되는 영적 교훈을 함께 나눌수 있기 원합니다. 제가 이 시간을 통해 함께 이해하기 원하는 것은 이것 입니다. ‘과연 사도바울의 가르침은 무엇일까요?라는 것 입니다. 그것은

첫째,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고난을 받는다’ 는 것 입니다 (v.12): 만약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과연 어떤 삶이 여러분 앞에 펼쳐져 있다고 믿으십니까? 저는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제가 청년시절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하고 그동안 얼마나 제 자신도 잘못된 신앙관으로 인해 혼란스러움과 갈등이 있었는지를 되돌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고난’ 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있었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드러내고 표현은 하지 않을찌라도 내가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모든 것이 잘되고 형통할것이라는 생각 말 입니다. 저의 말을 오해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잘되고 형통할 것’ 이라는 기대가 잘못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문제는 ‘모든 것이 잘되고 형통하다’ 는 말과 ‘내 삶에는 결코 고난 (=고통)이 없다’ 는 말을 우리 크리스챤들이 동일한 것으로 오해 한다는 것 입니다. 성경은 결코 하나님의 자녀가 어떤 고난도 겪지 않을 것을 약속하지 않고 있음을 우리는 직시해야만 하는 것 입니다. 지난주 살펴 보았던 다윗의 삶에서 그는 이런 중요한 고백을 함을 기억할 것 입니다;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 (자)” (시. 34:19) 라는 것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우신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부터 죄없다고, 의롭다고 인정함을 받는 우리 크리스챤들은 고난이 없는 삶을 사는 자들이 아니라 도리어 많은 고난 가운데 살아가는 자들인 것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염려하고 불안해 하지 않을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일부 고난이 아니라 모든 고난에서 건져주신다고 약속하셨다는 사실 입니다.

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것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신실한 성도들에게 고난은 피할수 없는 것 일까요? 이 고난을 피할수 없는 이유를 ‘영적 훈련’ 과 ‘댓가지불’ 이라는 것이 그 중심이 될것 입니다. 영적 훈련이라는 것은 참된 크리스챤이 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그의 자녀를 때로는 불로 연단하시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게도 하신다는 것 입니다. 그리고, 댓가지불이라는 것은 ‘세상은, 그리고 세상의 공중권세 잡은 자 사단 마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미워함’ 을 알고, 그로인한 핍박을 감수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 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은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요. 15:18) 고 밝히셨습니다. 그것이 영적 훈련이 되었건, 아니면 댓가지불이 되었건 ‘고난’은 결코 반가운 존재는 아니라 할찌라도, 이 고난을 통해 우리가 누리게 될 영광을 바라볼수 있다면 우리는 사도바울의 고백과 같이 넉넉히 이길수 있는 것 입니다. “우리가 그(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 (롬. 8:17) 이기 때문 입니다.

둘째, ‘세상은 더욱 악해지고 타락하게 된다’ 는 것 입니다 (v.13): 오늘날 세상의 지성인들의 주장을 들으면 머지않아 세상은 곧 뉴토피아가 올것같은 착각을 느끼게 됩니다. 점점 더 교육의 질이 높아지고, 철학과 문화와 테크롤로지의 발전으로 인간세상은 점점 더 살기좋고 이상적인 사회가 올것 같이 말 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결코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이 염세적이거난 부정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본질을 정확히 꿰뚫어 보기 때문 입니다. 바울은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v.13) 라고 선언 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 마지막의 악해지는 상황을 <딤후. 3장> 에서 이렇게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 ~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딤후. 3:1~5) 고 말 입니다. 세상은 더욱 악해진다는 것 입니다. 이것은 여러분 대부분이 잘 알고 있는 사실일것 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놓쳐서는 않되는 한가지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딤후. 3:5b) 는 것 입니다. 내가 말로만이 아니라, 진정으로 하나님 사랑하기를 세상 보다 더 하는지를 되돌아 보라는 것 입니다. 저는 요즘 성 어거스틴의 ‘하나님의 도성’ 이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성어거스틴이 그의 방대한 분량의 책에서 끝까지 놓치지 않고 크리스챤 독자들에게 묻고 도전하고 있는 것은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나는 세상에 속한 시민인가? 아니면 하나님 나라에 속한 시민인가?’ 라는 것 입니다. 사실, 요즘 교회에서 누군가 ‘우리는 천국시민 입니다’ 라고 말하면, 여러분은 얼마만큼 그것이 가슴에 와 닿고 확신을 느낍니까? 천국시민이라는 단어가 하나의 말 뿐인 타이틀이 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사도바울은 악한 자들은 더욱 악해지고, 속이는 자들은 더욱 속인다고 여러분과 저에게 세상의 진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 결론은 “(따라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2) 는 것 입니다. 이 세상의 거짓된 패턴을 더 이상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그들에게서 돌아서라는 것 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여 그 뜻에 순종하는 장성한 자녀의 삶을 살라는 것 입니다.

셋째, ‘배우고 확실한 일에 거하라’ 는 것 입니다 (v. 14): 영적 아비 사도바울은 그의 사랑하는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권면과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권면과 도전은 첫째,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고난이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라는 것이고, 둘째 세상은 더욱 악해지고 타락하기에 그런 자들에게서 떠나라는 것 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배우고 확실한 일에 거하라’ 는 것 입니다. 그런데, 이 마지막 권면, ‘배우고 확실한 일에 거하라’ 는 것은 두번째의 ‘악한 자들에게서 돌아서라’ 는 권면의 구체적인 방법이라고 이해할수 있는 것 입니다. 다시말해, 세상은 더욱 악해지고 그런 악한 세상 가운데서 머물지 않고 떠날수 있기 위해서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취할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것이 바로 ‘배우고 확실한 일에 거하라’ 는 것 입니다.

언젠가 우리 주님은 이렇게 비유로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어떤 귀신 하나가 사람에게서 나가서 두루 다니다가 쉴곳을 찾지 못하고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그 사람에게 돌아 왔을때 그 집이 깨끗이 청소되고 수리된 것을 보고, 자기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었다’ (마. 12:43~45) 는 것 입니다. 예수님의 이런 비유는 무엇을 경고하신 것일까요? 우리는 먼저 내 속에 있는 악한 것들을 비우는 것이 필요하지만, 그 다음은 반드시 채워야 한다는 것 입니다. 무엇을 말 입니까? 주의 영, 성령으로 채워야 한다는 것 입니다. 이것이 세상 종교와 우리 기독교의 본질적인 차이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 종교는 항상 비우라고 합니다. 내 욕심과 감정과 자아를 버리라고 합니다. 그러나 무엇으로 내 속사람을 채워야 할지를 가르쳐 주지 못 합니다. 집을 깨끗이 청소하고 수리 했다면, 이제 중요한 것은 그 집을 채워야 하는 것 입니다. 더 이상 악한 귀신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나를 도우시고 나를 위해 싸우시는 보혜사 성령을 보셔야 하는 것 입니다. 악한 자들에게서 돌아서고, 악한 세대에 더 이상 영향 받지 않고자 결심 했다면 내가 할수 있는 최선의 길은 ‘배우고 확실한 일에 거하는 것’ 이라고 사도 바울은 그의 영적 아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 입니다. 바로 디모데가 그의 외할머니 로이스와 그의 어머니  유니게에게서 어려서 부터 배웠던 그 신앙과 사도바울이 눈물과 사랑 가운데 복음으로 그를 영적으로 양육했던 그 구원의 확실한 근거를 통해 성령님과 동행함으로 그렇게 하라는 것 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바울이 고백 했드시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가고 믿음을 지키는’ (딤후. 4:7) 삶이 아닐까요?성도 여러분은 지금 배우고 확실한 일에 거하기를 힘쓰고 있습니까?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삶이 불안 합니까? 왜 삶에 확신이 없고, 의미를 느끼지 못합니까? 그 이유는 아직까지 ‘내가 누구인지를 스스로 깨닫지 못했기 때문’ 입니다. 나의 정체성을 깨닫지 못한 것 입니다. 거듭난 자로서 계속해서 성경의 교훈과 가르침에서 자라지 못하고 성장해가지 못하기 때문 입니다. 사도 바울은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에게는 핍박, 곧 고난이 있을 것과 세상은 더욱 악과 멸망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며, 따라서 그런 악한 세상의 패턴을 본받지 말고 배우고 확실한 일에 거하라’ 고 격려하고 도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달려가고, 믿음을 온전히 지키는’ 주님의 참된 제자의 삶이 될것 입니다. 이런 멋지고 충성된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