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y 1, 2018

“광야를 지나며” (Through the wilderness)

Preacher:
Series:
Passage: 신명기 (Deuteronomy) 8:2,3
Service Type:

“광야를 지나며”

(Through the wilderness)

7-1-18

본문말씀: 신명기 (Deuteronomy) 8:2,3

  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Remember how the Lord your God led you all the way in the desert these forty years, to humble you and to test you in order to know what was in your heart, whether or not you would keep His commands.)
  2.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He humbled you, causing you to hunger and then feeding you with manna, which neither you nor your fathers had known, to teach you that man does not live on bread alone but on every word that comes from the mouth of the Lord.)

<서 론>

저는 오늘 신명기 8장 말씀을 통하여 성도 여러분과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광야를 지나며’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현재 어떤 광야를 지나고 있습니까? 오늘 모세가 밝히고 있는 이 광야는 무엇을 뜻 합니까? 이 광야를 피할수는 없는 것 일까요?우리는 각자 다른 삶을 살아간다 할찌라도, 오늘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성도 여러분의 삶속에 <광야를 지나게 하시며> 허락하신 영적 축복을 깨닫고 더욱 훈련받고 성숙된 그의 자녀로 살아가는 복된 삶사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기대 합니다.

<본 론>

이제 약속의 땅을 눈 앞에 두고 지도자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들을 떠나 보내며 그들에게 중요한 한가지 교훈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의 <주제> 가 됩니다. 그것은 <광야의 삶> 인것 입니다. 우리가 지난번에 살펴보았드시, 모세는 그의 마지막 고별설교인 <신명기 6장>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삶속에서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명령이자 축복의 통로’ 가 무엇인지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해 사랑하는 것’ 입니다. 어떤 상황 어떤 처지 가운데서도 결코 놓치지 말고 지켜야 하는 ‘하나님의 자녀의 으뜸되는 계명이자 특권이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사랑’이라는 것 입니다. 모세는 이런 이스라엘의 존재이유와 정체성을 ‘하나님 사랑’이라는 명령을 통해 선언하고 나서, 오늘 본문이 포함된 <신명기 8장>에서 ‘지난 40년간의 광야의 삶’ 은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영적으로 탁월하게 해석해 주고 있는 것 입니다. 왜 하나님은 그의 택한 자녀 이스라엘민족을 40년이라는 긴 기간을 통해 광야라는 거칠고 힘든 환경속에 두신 것인지를 모세는 설명하고 있는 것 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재수가 없어서나, 그들이 하나님께 미움을 받아서가 아니라는 것 입니다.

지도상에서 살펴볼때 모세와 함께 출애굽한 이스라엘민족이 40년간 메마른 땅을 배회하며 머물렀던 ‘시나이 광야’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까지 가는데 곧바로 차로 달려가면 불과 7시간 정도, 혹은 걸어서 가도 6일 가량이면 도달할수 있는 가까운 거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가까운 거리의 땅을 두고 40년이라는 기간동안 이스라엘 민족을 그 곳에 머무르게 하셨다는 것 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오늘 성도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광야를 지나게 하신 뜻을 함께 묵상해 보기 원합니다. 다시말해, 모세가 밝힌 40년 광야생활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What does the meaning of 40 years of wildness life through Mose’s interpretation)

첫째, ‘내려놓게 하심’ (It means to put down all my things by Him) 입니다: 오늘날 ‘민수기’ (Numbers) 라고 불리는 모세오경의 4번째 책은 BC 2세기때 70인역에서 새로 붙여진 이름 입니다. 그 민수기의 원래이름은 <광야에서> (In the wilderness) 였습니다. 많은 성경학자들은 이 ‘광야에서’ 라는 이름이 더 민수기의 내용을 잘 영적으로 드러낸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아무튼, 오늘 본문에서 모세가 밝히고 있는 ‘40년동안 너희로 광야의 길을 걷게하신 (하나님의 역사)’ (v.2) 가 무엇이었는가가 적나라하게 기록된 것이 ‘민수기’ 인것 입니다. 이 민수기는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로 말미암아 애굽에서 400년간의 노예살이에서 해방된 이스라엘민족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 시나이 광야에서 보낸 40년간의 기록인 것 입니다.

모세가 죽고 2000여년이 지난후, 초대교회의 첫 순교자였던 ‘스데반’집사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면서 과거 애굽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조상들이 광야에서 보낸 상황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내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및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 (행. 7:38) 라고 모세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조상들과 함께 <광야교회/ wilderness Church> 에 있었다는 것 입니다. 스데반집사는 성령에 충만하여 하나님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역사를 설명하는 가운데, 흥미롭게도 ‘이스라엘 민족의 광야생활’ 을 ‘광야교회’ 라고 표현했다는 것 입니다. 왜 광야교회일까요? 광야라는 히브리 원어는 ‘미드바르 (midbaar)’ 이고, 이것의 동사형태는 ‘다바르 (dabaar)’ 입니다. 그것은 ‘말씀에 청종한다/ 순종한다’ 는 의미 입니다. 그리고 ‘디바르 (divar)’ 라는 히브리어의 ‘지성소’가 그 어원이 서로 연결됨을 보게 되는 것 입니다. 광야는 영어로 볼때는 ‘wilderness’ 로서 황량하고 버려진 땅이지만, 영적으로 본다면 <광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여 순종하는 장소요, 바로 하나님의 지성소를 모시고 살아가는 장소인것> 입니다. 따라서, 이 광야는 가장 거룩한 곳이요, 이 광야는 스데반 집사가 밝힌데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거룩한 지성소를 모시는 광야교회’가 되는 것 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민족을 그토록 오랜기간동안 광야에서 머물게 하셨느냐에 대해 “너를 낮추시고 너를 시험하사 ~” (v.2)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 (v.3)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때로 그의 택한 자녀를 낮추시고, 시험하시고, 주리고 고통에 처하게도 하신다는 것 입니다. 왜일까요? 그들을 훈련하시고, 그 신분에 걸맞는 삶으로 성장시키고자 하심 입니다. 우리는 내 자존심이 상하고, 인격의 모독감을 느끼고, 마음의 상처를 입을때 많은 고통과 아픔 가운데 괴로워하지만 때로는 하나님은 이런 내 인생의 광야와 같은 순간을 통해 그 어떤때 보다도 더욱 나를 지키시고 함께 하시는 것 입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민족처럼 철저하게 내 속에 있는 세상을 향한 사랑과 우상숭배, 교만과 육신적인 생각을 이 광야의 시간을 통해 하나 하나 내려놓게 하시고, 포기하게 하시고 걸러내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 한분만 바라보게 하시는 순결한 믿음으로 나아가게 하시는 것 입니다. 혹시, 성도 여러분이 아직까지도 놓치 못하고 움켜 잡은 것이 있습니까? 그것은 무엇 입니까? 왜 놓치 못합니까?

둘째, ‘의존하게 하심’ (It means to depend on Him only) 입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지만 광야는 더 이상 인간적인 것을 기대하기가 불가능하게 만드는 곳 입니다. 사방을 둘러 보아도 보이는 것은 돌과 모래와 흙 밖에는 없는 황량한 곳이 광야 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크리스챤, 우리 스스로를 정직히 진단해 볼때 많은 경우 우리는 하나님을 먼저 찾고 그분께 나아가는 삶을 살지 못했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우리는 먼저 내 능력을 의지하고, 사람과 환경을 의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러한 연약한 믿음을 아시기에 때로 더 이상 사람과 환경 그 어떤 것도 의지할수 없는 광야와 같은 상황을 허락하시는 것 입니다. 안따깝게도 우리는 사방 그 무엇도 의지할수 없게 되었을때 그때에서야 비로소 하늘을 바라보게 되는 것 입니다. 마침내,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는 것 입니다. 이 광야를 지나며 내가 의지할것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음을 절실하게 느끼는 것 입니다.

하나님은 40년동안 구름떼 같이 많은 이스라엘민족을 그의 영광과 능력으로 광야를 지나며 인도하시고 보호 하셨습니다. 반석에서 물이 솟구쳐 나오게 하셔서 그들의 갈증을 해소해 주시고, 새벽마다 하늘의 만나로 땅에 내리시고, 저녁이면 메추라기떼를 보내셔서 풍족하게 그들에게 채워 주셨습니다. 심지어 “이 40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 하였느니라” (v.4) 고 모세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여러분과 제가 냉정하게 그리고 분명하게 생각해 볼것은 ‘내 삶에 있어서 하나님은 충분 하신가?’ 하는 것 입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사람들에게 쉽게 의존하고, 그 누군가가 나를 지켜줄것 같은 착각과 환상에 사로잡힐때가 너무도 많은 것 입니다. 정말 말로만이 아니라, 하나님 한분만으로 내 삶은 부족함이 없는 것일까요? 하나님 한분으로 넉넉하다는 뜻은 그분이 나의 모든 필요를 넉넉하게 충족시켜 주실뿐 아니라 또한 나의 모든 찬양과 존귀를 받으시기에 합당한 주님 되시다는 뜻 입니다. 광야는 이런 하나님 한분께만 의존하는 가장 완벽한 장소 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과 환경의 헛된 조건들을 모두 거둬 가시고 오직 자신이 피난처시요, 방패시요, 영광스런 창되심을 이 광야를 지나며 아낌없이 펼쳐 보여주시는 것 입니다. 이 선하신 하나님을 여러분은 신뢰하고 그분께만 의존하십니까?

셋째, ‘깨닫게 하심’ (It means to recognize about His will) 입니다: 우리가 잘 기억하는데로 우리 주님께서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신 후에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때 마귀가 주님을 시험한 첫번째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마. 4:3) 는 것 이었습니다. 이때 주님께 대답이 바로 오늘 <신명기 8:3>인 것 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 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 4:4) 라고 말 입니다. 이 말씀은 무슨 뜻 입니까? 완전한 인간일 뿐 아니라, 완전한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조차도 철저하게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말씀에 의지하여 그 은혜와 능력으로 살아 가신다는 것 입니다. 우리 주님조차도 결코 자신의 능력과 권위를 드러내지 않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권세만을 드러내시고 그의 말씀만을 추구한 것 입니다. 주께서 이런 온전한 신뢰와 충성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그의 말씀을 존귀케 하셨다면 우리들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모세는 이스라엘민족들에게 하나님께서 만나를 허락하신 이유를 이렇게 설명 합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v. 3) 고. 하나님께서 새벽마다 하늘의 만나로 그들을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고자 하심이라는 것 입니다. 하늘의 만나는 곧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인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 하셨을때, 천지가 창조 되었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 보드시,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무에서 유가 존재하게 된 것 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이는 것,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까지도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 광야를 지나게 하심으로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주시고자 하는 진정한 뜻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들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만이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요, 참된 생명이심을 깨닫아야 할것’ 이라는 것 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은 마침내 때가 되어 이 땅에 오신 것 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바로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요, ‘참된 음료’ 요,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 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요. 6:48~50) 고. 주님은 자신이 ‘하늘의 만나’ 요 ‘생명의 물’ 되심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먹을때 이 거칠고 황량한 이 땅의 광야길에서 결코 목마르지 않고 주리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 하셨습니다. 이 떡을 먹고, 이 물올 마시라고 초청하는 것 입니다. 이 초청은 단순히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으로 다된 것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그분안에서 먹고 마시며 성령을 통해 풍성한 삶을 사는 것 입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께서 하신 말씀, “볼찌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 3:20) 는 말씀,은 1차적으로 믿지 않는 불신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라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접했다는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을 향해서 하시는 말씀인 것 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차지도 덥지도 않은 믿음이 식어진 안타까운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황량한 광야를 지나며 그 가운데 허락하신 하늘의 만나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셨습니까? 그의 은혜와 생명을 누리셨습니까? 그로 말미암아, 하늘의 떡되신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날마다 하나님의 사랑안으로 더욱 들어가고 있습니까?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어떤 광야 가운데를 지나가고 있습니까?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그의 마음에 합한 의인의 삶을 살았지만 그의 고백과 같이 의인은 고난이 없는자가 아니라,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 (자)” (시. 34:19) 라는 것 입니다. 때로 여러분과 제가 지나는 광야는 눈물과 고난의 장소임을 우리는 부인할수 없을 것 입니다. 그러나, 그곳은 또한 하나님의 선하심과 지키심과 우리를 마침내 살리시고 구원하시는 은혜의 장소인 것을 우리는 고백하게 될 것 입니다. 하늘의 만나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날마다 성령과 함께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될것 입니다. 이런 은혜의 광야, 하나님과 동행하는 광야를 누리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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