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e 24, 2018

“두려워 아니하리니” (I will not be afraid)

Preacher:
Series:
Passage: 시편 (Psalms) 56:3,4
Service Type:

“두려워 아니하리니”

(I will not be afraid)

6-24-18

본문말씀: 시편 (Psalms) 56:3,4

3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When I am afraid, I will  trust in you)

4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찌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 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혈육 있는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In God, whose word I praise, in God I trust; I will not be afraid. What can mortal man do to me?)

<서 론>

저는 오늘 성도 여러분과 함께 <다윗의 시편>을 통해 함께 말씀의 진리와 은혜를 나누는 시간 가지기 원합니다. 특별히, 오늘 다윗의 시편말씀은 “의인은 사자처럼 담대하니라” (잠. 28:1) 고 선언했던 잠언의 말씀을 연상 시킵니다. 저는 그동안 ‘성도와 고난’ 과의 관계성 그리고 ‘고난의 필연성’ 에 대해서 여러분과 함께 살펴본적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과연 무엇이 ‘죽음의 음침한 골짜기’ 가운데서도 두려움에 떨거나 자포자기하지 않고, 다윗을 도리어 사자와 같이 담대하게 죄와 사망을 이기고 승리할수 있게 만들었는지를 깨닫고, 삶 가운데 적용할수 있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기대 합니다.

<본 론>

오늘 시편 56편 말씀은 다윗의 시 입니다. 다윗이 <가드에서 블레셋사람에게 잡혔을때 그가 지은 시> 라고 말씀은 먼저 밝혀주고 있습니다. 청년시절, 다윗은 사울왕에게 쫓겨 다니고, 그를 피해 이곳 저곳을 도망 다니다가 급기야 이스라엘의 적국인, 가드의 블레셋 사람에게 붙잡히게 되는 위기일발의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 입니다. 이 상황을 기록한 <사무엘상 21장> 에 보면 다윗은 이 위기의 상황을 빠져 나오기 위해, 생존을 위한 마지막 지혜를 짜내어 미친 체하며 침을 질질 흘리며 이 최악의 상황을 모면하고자 했음을 볼수 있습니다.

만약 성도 여러분이 다윗과 같은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왜 내 인생은 이렇게 쫓겨만 다니는 불행한 삶인가?’ ‘왜 나는 잘못한 것도 없이 이런 고난과 수모를 당해야 하나?’ ‘왜 하나님은 나를 이렇게 힘들게 만드시나?’ 이런 불평과 불만이 생기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다윗은 그렇치 않았습니다. 다윗은 도리어 하나님께 감사 드렸고, 이 모든 상황 가운데 오로지 그를 의지하며 찬양을 올려 드릴수 있었던 것 입니다. 우리는 그 당시로 돌아가서 다윗이 과연 어떤 생각과 마음의 동기로 그런 승리의 삶을 살았는지 직접 물어볼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시편말씀을 중심으로 성경 여러곳에서 드러난 다윗의 믿음의 수많은 파편들을 통하여 그 복된 삶을 가지고 오게 한 열쇠가 무엇인지 우리는 충분히 이해할수 있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다윗의 복된 삶을 가져온 열쇠일까요?” (What are the main keys to open for the David’s blessing life?)

첫째, <하나님 앞에 모든 문제들을 내려 놓음> 입니다 (It is to pour out all his problems before God); ‘내 마음에 합한 자’ (a man after my own heart) (행. 13:22) 라고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던 다윗에게서 우리가 배울수 있는 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의 모든 삶의 문제들을 하나님 앞에 가지고 와서 토로하고 쏟아내는 그의 자세가 아닐까요? 마치 어린아이가 벌거벗었으나 부모 앞에서 부끄러워 하지 않는 모습과 같이 말 입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사람이 나를 삼키려고 종일 치며 압제 하나이다, 나의 원수가 종일 나를 삼키려 하며 나를 교만히 치는 자 많사오니 (v.1.2) ~ 나의 불안함을 주께서 헤아리시고, 내가 흘린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v.8)” 라고 다윗은 오늘 <시편 56편>에서 자신의 답답하고 힘든 심정을 숨김없이 하나님께 쏟아 냅니다. 여기서 말하는 ‘문제’는 단순한 문제점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마치 내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 악한 자로부터 공격을 받고 어려움을 받는 것 말입니다. 물론, 오늘 말씀이 그 대표적인 것은 사실 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울러 다윗이 하나님께 모든것을 다 쏟아 놓았다고 말할때 놓쳐서는 않되는 것은 ‘자신의 실수와 연약함’ 그리고 ‘기쁨과 감사’ 그 모든것을 하나님께 가리지 않고 내어 놓았다는 점 입니다. 어떤 특별히 억울하고 남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경우만이 아니라는 것 입니다. “내가 입을 다물고 죄를 고백하지 않았을 때에는, 온종일 끊임없는 신음으로 내 몸은 탈진하고 말았습니다 ~ 내가 내 죄를 고백하기로 결심하고 내 잘못과 죄를 숨김 없이 다 털어 놓았더니 주께서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시. 32:3,5) 라고 다윗은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와 부족함을 다 털어 놓은 것 입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내가 잘못한 것이 없다고 믿는 경우에는 당당하게 나의 억울함과 아픔을 하나님께 소리 높여 고하지만, 내 자신의 실수와 죄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아무일 없는 듯 침묵하는 것 입니다. 마치 나만 입다물면 하나님도 모르는 것처럼 말 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간절히 우리의 고백과 마음의 모든 어려움을 그분께 쏟아 내기를 원하시는데도 말 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치 않았습니다. 그것이 나의 문제든 상대의 문제든 상관하지 않고 모두 하나님께 내어 놓았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어느만큼 여러분의 삶의 내용을 하나님께 쏟아내고 있습니까? 힘들고 어려운 것만 입니까? 잘나고 칭찬들을 것 입니까? 꼭 이루어졌으면 하는 기도제목 입니까? 아니면 다윗처럼 모든 삶의 모습을 숨김없이 남김없이 주께 드러내고 쏟아내고 있습니까?

둘째,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절대적 신뢰> 입니다 (It is to trust the goodness of Lord absolutely); 다윗이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성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자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 주 앞에 나아갈수 있었다는 사실임을 우리는 방금 살펴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어떻게 다윗은 이런 숨김없는 삶이 가능했을 것인가? 를 우리는 진지하게 질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다윗뿐만 아니라 모든 신앙의 인물들의 삶은 바로 우리 성도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귀중한 본보기이기 때문 입니다. ‘다윗은 특별히 사랑받은 존재라서 우리와는 달라!’ 라고 넘겨서는 않된다는 것 입니다. 다윗에게 허락하신 선하신 하나님의 은혜는 바로 성도 한사람 한사람에게 임하는 계획 하심이요, 이것이 성경의 메세지임을 저는 믿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의 그 놀라운 하나님께 숨김없이 드러내는 삶의 자세는 어떻게 가능하게 된것 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 때문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하나님의 선하심 입니까? 오늘과 동일한 상황, 즉 가드왕 블레셋 왕 앞에서 죽음을 모면하려고 침을 흘리며 미친체 한 사건을, 묘사한 것으로 추측되는 <시편 34편> 에서 다윗은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찌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 34:8) 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여호와의 선하심일까요? 그분의 선하심은 “ ~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으신 것 입니다)” (출. 34:6) 그리고 “ (자신의) 사랑을 천대까지 베풀고 죄와 잘못을 용서하지만 그렇다고 범죄한 자를 벌하지 않은 채 그대로 두지는 않을 것이며 그 죄에 대해서는 자손 사대까지 벌 (하시는 것)” (출. 34:7) 이 하나님의 선하심임을 하나님 자신이 출애굽기에서 선언하고 계시는 것 입니다. 다윗이 믿고 신뢰한 하나님은 바로 이런 사랑과 함께 공의, 긍휼하심과 동시에 죄를 미워하고 심판하시는 선하신 하나님이었습니다. 이런 하나님임을 그가 깨닫았기에 그는 언제나 그 선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신뢰하고, 그분의 선하심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재확인해 나갔던 것 입니다. 한마디로 ‘다윗의 삶의 절대적 기준은 하나님의 선하심’이 된 것 입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 하리이다” (3); “ ~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 즉 두려워 아니 하리니 혈육있는 사람이 내게 어찌 하리이까” (4); “저희가 죄악을 짓고야 피하오리이까 하나님이여 분노하사 뭇 백성을 낮추소서” (7) 이 모든 다윗의 고백과 간구는 바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근거한 것 임을 우리는 이해하게 되는 것 입니다. 이것이 시편뿐 아니라, 기록된 말씀 속에서 다윗이 한결같이 놓치 않았던 믿음의 기초였던 것 입니다. 다윗은 결코 완벽한 존재는 아니였지만, 하나님의 그 선하심에 의지했기에 죄용서함의 은혜와 그로인한 사자같이 담대한 의인의 삶을 시작하는 영적 깨닫음을 누릴수 있었던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 합니까? 자신의 행위와 노력에 관계없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선하심을 말 입니다.

셋째,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고자한 노력함> 입니다 (It is to devote his life for pleasing the Lord); 다윗의 삶을 통해 생각해 볼때, 오늘날 우리 프로테스탄트 크리스챤들에게 있어서 가장 놓쳐 버리기 쉬운 한가지가 있다면 바로 다윗의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고자 온힘을 다한 모습’ 이 아닌가라고 저는 이해 합니다. 성도 여러분과 제가 믿는 믿음의 중심에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롬. 1:17) 는 진리가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와 위대한 신학자 존 칼빈 뿐 아니라 수없이 많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 거듭난 성도의 신앙고백임을 저는 믿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내가 예수 믿고 의롭다고 칭함 받았으니까 이제 어떻게 살아도 상관이 없다> 는 뜻이 아닐것 입니다. 이점이 제가 그동안 여러차례의 설교를 통하여 강조한 점임을 여러분도 기억할 것 입니다. 우리는 결코 ‘은혜를 더하게 하고자 죄를 더욱 짓자’ 라는 그런 어리석고 죄에 지배받는 악한 자의 삶을 살아가서는 않되는 것 입니다. “(결코) 그럴수 없느니라” (롬. 6:2) 고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도전하는 것 입니다.

특별히 우리교회는 청년교회 입니다. 제가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음을 확신하는 청년들에게 도전하는 것이 바로 <다윗의 의인으로서의 삶의 태도와 최선의 노력함> 인 것 입니다. 비록 내가 내 행위로 의롭게 된다는 것은 아니라 할찌라도, 주 예수를 믿음으로 그분의 의로우심을 통하여 값없이 의롭다라고 인정함을 받았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과 저는 그런 의로운 우리의 신분에 걸맞는 삶을 살수 있는 능력과 권세를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받게 된것 입니다. 그 의로움의 권세와 능력이 주어졌다는 것 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신뢰하며 그분께 순종하며 살아갈때 말 입니다. 이것이 로마서를 통해서 사도 바울이 주장하는 바가 아닙니까? 바로 <로마서 8장> 에서 바울이 선언하고 있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의 충만하신 은혜로 가능하게 된 의인의 삶 입니다. 이것이 ‘성령충만한 삶’ 이요 ‘성령의 풍성한 열매맺는 삶’ 이요, 요즘 큐티말씀에서 모세가 예언한 ‘마음의 할례를 행한 자의 삶’ 임을 저는 믿습니다. 바로 예레미야 (렘. 9:26/ 32:40) 과 에스겔 (겔. 36:25~27) 선지자가 예언한 <성령으로 행하시는 마음의 할례>인 것 입니다. 이런 은혜를 누릴때 우리는 더 이상 죄를 즐기거나 죄에 지배되어 죄의 종으로 살아감으로 하나님을 근심케 하고 진노케 하는 삶이 아니라, 죄를 미워하고 죄와 싸워 이겨나가는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그의 자녀의 삶을 살게 되는 것 입니다.

다윗은 이런 고백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주께서는 나의 마음을 시험하여 보시고, 밤새도록 심문하시며 단련시켜 보셨지만 내 잘못을 찾지 못하셨습니다. 내가 입으로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 입니다” (시. 17:3/ 표준새번역) 라고. 이런 다윗의 고백은 자신이 죄를 결코 짓지 않은 삶을 살았다는 뜻이 전혀 아닙니다. 도리어 그는 여러번 자신의 죄와 허물을 숨김없이 고백 했습니다. 그가 감히 주장하는 것은 <그의 중심의 진실함과 정직한 영으로 최선을 다해 살았다>는 것 입니다. 때로 실수하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했지만 그것을 바로 숨김없이 다 고백하고, 언제나 중심의 진실함으로 살아온 삶임을 하나님이 더 잘 아신다는 것 입니다. 따라서 이것이 왜 다윗이 ‘두려워하는 날에 주를 의지하고 ~ 그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면서도 도리어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를 찬양할수 있었는지?!’에 대한 비밀일 것 입니다. 행위로 의롭게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죄 사하여 주시고 은혜로 의롭다고 인정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여 담대하게 살아가는 것이 다윗의 삶인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아직까지도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신분의 변화에만 만족하여 삶의 열매는 없는 안타까운 영적 어린아이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 의인된 신분에 걸맞는 삶을 살아가길 결단함으로 그리스도안에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허락하신 ‘죄를 이기고 풍성한 열매맺는 장성한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서 성장해 나가고 있습니까?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살아가는 자녀가 누리는 권세와 특권을 이렇게 놀랍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찌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 17:10) 고. 젊고 용맹한 동물의 왕, 사자가 먹이를 구하지 못해 굶주릴 수는 있을찌라도, 하나님을 찾는 자, 하나님을 추구하고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굶주림이 없고 부족함이 결코 없을 것이라고 다윗은 성령의 충만함으로 선포하는 것 입니다. 다윗은 ‘의인은 고난이 없는자’가 아니라, 도리어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져 주시는)” (시. 34:19) 은혜로 살아 가는 자라고 ‘누가 의인인지?’를 정의 합니다. 고난을 많이 받는자, 그러나 반드시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그를 고난에서 건져 주시는 자가 의인이라는 것 입니다.현재 성도 여러분의 삶에는 어떤 고난과 고통이 있습니까?그리고 여러분은 현재 어떤 삶 가운데도 만족과 기쁨과 감사로 하나님 앞에 날마다 나아가고 있습니까? 바라기는 성도 여러분을 둘러싼 환경이 얼마나 급변하고, 여러분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이끌어 간다 할찌라도, 다윗과 같이 결코 두려워 하지 않는 사자처럼 담대한 의인의 삶을 사시길 소망 합니다. 다윗이 누렸던 그 안정감과 승리의 소망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께 <내 삶을 숨기지 않고, 그분의 선하심을 의심치 않고, 자녀의 권세로 죄와 싸워 이기는 삶을 실천함>을 통해 성도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에게 모두 임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