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h 17, 2019

“권력, 청년의 유혹 (3)” (Power, the temptation of young men)

Preacher:
Passage: 마태복음 (Matthew) 4:8~10
Service Type:

“권력, 청년의 유혹”

(Power, the temptation of young men)

3-17-19

본문말씀: 마태복음 (Matthew) 4:8~10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Again, the devil took Him to a very high mountain and showed Him all the kingdoms of the world and their splendor.)

9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All this I will give you,” he said, “if You will bow down and worship me.”)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Jesus said to him, “Away from me, Satan! For it is written: ‘Worship the Lord your God, and serve Him only.”)

 

[설교 요약]

            저는 오늘 청년이 겪는 가장 강력한 유혹, 3번째시간 ‘권력’에 대해 함께 나눠보기 원합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에 이끌리어 40일간 광야에서 금식하신 후에 마귀에게 시험 받으시는 내용 입니다. 마귀는 3가지로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오늘 본문 앞에서 보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v.3),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게’ (v.5,6), 그리고 오늘 말씀에서 보드시 ‘자신에게 엎드려 경배하게’ (v.9) 유혹 했습니다.

우리 크리스챤들은 어떻게 자기 중심적인 권력추구를 거부하고, 선한 영향력을 서로에게 미칠수 있는 ‘권위’의 삶을 살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리더쉽을 통해 소중한 열쇠를 찾을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주님으로 부터 배울 참된 리더쉽일까요?” (What is the genuine leadership from the life of Christ?) 일까요?

첫째, ‘섬김의 리더쉽’ 입니다 (It is the leadership to serve): 주님은 서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자 다투는 그의 제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너희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막. 10:43,44) 주님은 진정한 리더는 섬김을 통해, 그리고 자기희생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임을 우리에게 도전하는 것 입니다.

둘째, ‘품어주는 리더쉽’ 입니다 (It is the leadership to embrace): 예수님은 ‘삭개오’라는 세리장을 구원한 스토리를 우리는 기억 합니다 (눅. 19:1~10). 그당시 ‘죄인’ (sinner) 으로 낙인찍혔던 세리들과 창녀들을 주님은 멸시하지 않고 내치지 않고 품어주셨습니다. 진정한 리더쉽은 자신은 비록 깨끗할찌라도 상대의 부족과 더러움도 품을수 있는 포용력 입니다. 지금도 수없는 자들이 소외와 죄의 상처로 힘들어 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품고자 한발짝 더 다가가고 있습니까?

셋째, ‘하나님을 경배하는 리더쉽’ 입니다 (It is the leadership to worship God): 우리 크리스챤들 중에는 안타깝게도 영적 교만에 빠지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내가 소유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망각>한데 있을 것 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께 사단의 유혹을 물리치고“ ~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v.10) 고 선포하신 이유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경배하지 않고 불순종했을때 이것이 바로 영적 교만이요, 죄의 시작이요,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하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옴을 주님은 아시기 때문 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온전히 경배와 순종이 우리 주님의 리더쉽의 핵심인 것 입니다.

 

[설교 전문]

            저는 오늘 청년이 겪는 가장 강력한 유혹, 3번째시간 ‘권력’에 대해 함께 나눠보기 원합니다. 성도 여러분은 어떤 권력의 유혹을 받고 있습니까? ‘돈, 섹스, 권력’이란 책을 저술한 이 시대의 대표적 영성가, 리챠드 포스트는 언젠가 “당신에게 있어서 <돈, 섹스, 권력>중에서 가장 뿌리치기 힘든 유혹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당연히 권력의 유혹 입니다”라고 그는 답변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어서 “이 권력의 유혹은 지금도 계속 도망치고 있는 중인데, 권력의 유혹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위험한 것이기에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 라고 포스트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데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침례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시고 난 다음 성령에 이끌리어 40일간 광야에서 금식하신 후에 마귀에게 시험 받으시는 내용 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메시야, 그리스도 되심을 밝히시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마. 4:17) 고 선포하시면서 공생애를 시작하기 앞서 최종적으로 받으신 것이 마귀의 시험이었습니다. 마귀는 3가지로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오늘 본문 앞에서 보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v.3),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게’ (v.5,6), 그리고 오늘 말씀에서 보드시 ‘자신에게 엎드려 경배하게’ (v.9) 유혹 했습니다.

이런 마귀의 3가지 시험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마귀는 3가지 강력한 표징을 통해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네가 메시야임을 보여라’고 유혹하는 것 입니다. 첫번째 ‘돌덩이가 떡덩이가 되게하라’는 것은 ‘육체적인 유혹’ 입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배고픔의 문제를 해결해줄 메시야를 고대하기 때문 입니다. 두번째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려라’는 것은 ‘명예의 유혹’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서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렸다고 상상해 본다면, 그래서 마귀의 말대로 하나님의 사자들이 손으로 주님을 받아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했다면, 예수님은 하루아침에 온 사람들의 주목의 대상이 되고 사람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았을 것 입니다. 마귀는 이런 사람들의 관심과 추앙을 한몸에 받고자 하는 명예욕을 부추기며 주님을 유혹한 것 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보듯이 세번째로 ‘내게 엎드려 경배하라’고 ‘권력의 유혹’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권력의 유혹은 과연 무엇이며, 얼마나 강력한 것일까요? 저는 먼저 ‘권력’(權力)이란 말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사전을 찾아 봤습니다. <국립표준어 대사전>에는 <권력>은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할수 있는 공인된 권리와 힘. 특히 국가나 정부가 국민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강제력을 이른다’ 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제가 ‘돈’과 ‘성적 타락’에 이어서 오늘 마지막으로 우리 청년들이 가장 강력하게 유혹받는 것, 권력에 대한 말씀을 준비하면서 점점 더 이해하게 된것은 이 권력의 유혹은 우리 각자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포괄적이고 강력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일반적으로 ‘권력’이라고 하면 그 사전적 의미에서 살펴 봤을때와 같이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할수 있는 공적 힘’과 같은 것을 연상하게 되기 쉽습니다. 마치 정치인이나 어떤 조직의 장(長)이 되고자 하는 그런 사람들만이 권력욕을 가졌다고 우리는 이해하는 것 입니다. 그러나, ‘권력욕’은 이것보다 훨씬 그 뿌리가 깊고 원초적인 것 입니다. 쉽게 말해서, 내가 세상의 정치나 공적인 권력에 관심이 없다고 해서 내가 권력욕이 없는 것이 전혀 아니다는 사실 입니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어쩌면 오늘 말씀의 핵심일 것 입니다.

사실, ‘권력의 추구’는 그것을 단순히 나쁜것으로 규정해서는 곤란합니다. 권력은 상대방에게 어떤 힘뿐 아니라, 하나의 영향력을 미치는 것을 의미할 것 입니다. 특별히 신앙 안에서 서로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고자 하는 것이 신앙적 동기라면 그런 열심은 좋은 것이요, 서로 권장해야할것 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크리스챤들은 어떻게 자기 중심적인 권력추구를 거부하고, 선한 영향력을 서로에게 미칠수 있는 ‘권위’의 삶을 살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통해 소중한 열쇠를 찾을수 있을것 입니다. 그것은 그분의 삶에서 ‘참된 리더쉽’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 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주님으로 부터 배울 참된 리더쉽일까요?” (What is the genuine leadership from the life of Christ?) 일까요?

첫째, ‘섬김의 리더쉽’ 입니다 (It is the leadership to serve): 주님의 12제자중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자신들을 주의 영광중에서 우편과 좌편에 앉게 해 달라고 구했고, 이 말은 들은 제자들이 화가 나 있을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너희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막. 10:43,44) 고. 그리고 더나아가서 왜 주께서 이 땅에 오셨는지, 그분의 진정한 리더쉽은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이렇게 선포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막. 10:45)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도전하시고 격려하시는 지도자의 모습은 그 당시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매우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 입니다. 왜냐하면 말로만이 아니라 삶으로 섬기고 더 나아가 자신을 희생하는 리더를 우리는 좀처럼 보지 못했기 때문 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진정한 리더는 섬김을 통해, 자기희생을 통해 선한 영향력을 줄수 있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 입니다. 이시간, 주님은 청년 여러분을 향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고 도전하심을 믿습니다. 여러분은 섬김으로, 지체의 종이 됨으로 그들을 선하게 영향을 주는 리더로 살아가고자 삶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둘째, ‘어울리는 리더쉽’ 입니다 (It is the leadership to die): 복음서를 읽어가다보면 예수님께서 여리고라는 성으로 들어가시다가 ‘삭개오’라는 세리장을 만나서 그와 그 온가족을 구원한 스토리를 보게 됩니다 (눅. 19:1~10). 키가 작고 부자였던 삭개오는 예수님이 그 지역을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그가 어떤사람인가 궁금해서 뽕나무에 올라가 주님을 기다렸습니다. 한가지 놀라운 사실은 예수께서 그길을 지나시다가 뽕나무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보고있는 삭개오를 향해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눅. 19:5) 고 말씀하신 것 입니다. 그리고 삭개오는 우리가 잘 아는데로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주님을 영접할뿐 아니라, 자신의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겠다는 것과 만약 자신이 남의것을 속여 빼앗은 것이 있다면 4배로 갚겠습니다’고 주께 다짐 했습니다. 삭개오의 이 행동은 무엇을 뜻할까요?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새로운 하나님의 자녀로 살겠다는 결심입니다.

사실 누가복음의 ‘삭개오 이야기’를 생각할수록 결코 쉬운 이야기가 아닌 것은 예수님의 과감한 (아니 혁명적이라고 할수있는) 행동일 것 입니다. 왜 그런가하면 이 당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세리’ (tax collector)는 민족의 반역자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사회에서는 몸을 파는 여인과 함께, 세리들은 대표적인 ‘죄인들’ (sinners)이라는 낙인이 찍여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런 부류의 사람들과 인사도 하지 않고, 그들의 집에 들어가서 그들과 먹고 마시는 것은 더더욱 터부시 했습니다. 죄인들과 접촉하면 자신도 부정하게 된다고 그들은 생각 했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속에서 예수님은 나무위에 올라간 삭개오를 보자마자 그의 집에 들어가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가 누군지 몰라서일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을 삭개오를 보기전 부터 그를 아셨습니다. 주님은 계층간의 장벽을 허무셨습니다. 상대를 무시하고, 정죄하고 판단하는 모든 비교의식의 장벽을 허무시고 그를 찾아가셨습니다. 우리는 또 다른 집단이기주의를 형성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보다 가지지 못한, 나보다 배우지 못한, 나보다 잘나지 못한 그누구를 은근히 무시하고 접근금지시키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주위에 소외된 수많은 청년들이 함께 따뜻한 관심가운데 위로받고 상처가 치유되도록 우리도 주님처럼 그들에게 한발 나아가고 있습니까?

셋째, ‘하나님을 경배하는 리더쉽’ 입니다 (It is the leadership to worship God): 리차드 포스트는 그의 책, ‘돈, 섹스, 권력’에서 이렇게 우리 크리스챤이 추구해야할 선한 권력을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창조적인 권력입니다. 그것은 속박이 아닌 자유를, 죽음이 아닌 생명을. 강제가 아닌 변화를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이는 다른 사람을 돕고 섬기며, 겸손하고 배려하며, 순종하며, 상황을 초월하는 삶의 자세를 갖는 것입니다 라고. 그리고 덧붙여서 “그런데 하나님에 대한 순종이 빠진 리더쉽은 영적인 교만을 나타내며 교묘하게 남을 지배하는 방식으로 나타나게 됩니다”라고 그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우리 크리스챤이 신앙안에서 서로를 섬긴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남을 교묘히 지배하고자 하는 영적 교만에 빠질수 있다는 강한 경고를 하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크리스챤들 중에는 하나님을 믿는 영적 리더로 살아가고자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영적 교만에 빠짐으로 악한 지배욕에 사로잡히는 안타까운 삶으로 변질되어지는 것일까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내가 소유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망각한데 있을 것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사단의 유혹을 물리치고“ ~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v.10) 고 선포하신 이유가 바로 그것 입니다.

주님은 이땅의 삶을 사시며 결코 스스로의 영광을 취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그 뜻에 순종하기위해 온힘을 다하신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본질상 하나님이시요, 메시야의 놀라운 권세를 가지신 존재였지만, 결코 자신의 영광과 권세를 나타내지 않으셨습니다. 철저하게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를 경외하고 그분만을 섬겼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 자신조차도 진정한 권위는 오직 하나님 아버지 한분으로부터만 오는 것임을 우리에게 분명히 밝히시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성도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신앙 공동체뿐 아니라 세상 그 어떤 모임 가운데서도 허락하신 ‘창조적 권력’을 통해 선하게 쓰임받기 원한다면 “주 너희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v.10) 는 주님의 고백은 언제나 여러분의 고백이 되어야 할것 입니다. 왜냐하면 최초의 인간부부가 뱀의 유혹에 빠져 하나님께 경배하지 않고, 말씀에 불순종했을때 이것이 바로 영적 교만이요, 죄의 시작이요,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하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옴을 성경은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축복으로 허락하신 ‘생육하고 번창하여 땅에 충만하고, 땅과 바다와 공중의 모든 생물들을 다스리는 삶’ (창. 1:28) 을 가능하게 하시고, 허락하신 ‘창조적 권력’을 통해 그분의 선한 뜻데로 이루게 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청년 여러분은 하나님을 향한 그 신실한 믿음가운데 오직 그분만을 경배하고 그를 섬김으로 선한 리더쉽을 준비해 가고 있습니까?

프랑스의 문학가 폴 부르제는 “생각하는데로 살지 않으면 사는데로 생각하게 된다” (One must live the way one thinks or end up thinking the way one has lived) 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생각하는데로 살기를 원합니까? 아니면 사는데로 생각하기를 원합니까? 만약 생각하는데로 살기를 원하다면 현재 어떤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오늘날 우리 청년들을 강력하게 유혹하는 ‘권력에 대한 욕구’도  ‘돈과 성’에 대한 욕구와 마찬가지로 절대적으로 선한것도 절대적으로 악한 것도 아닙니다. 이 ‘권력의 욕구’를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한 요소 입니다. 여러분은 리챠드 포스트가 묘사했드시 <하나님이 원하시는 창조적인 권력>을 추구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주님의 리더쉽입니다. 이것은 자신을 낮추어 겸손히 지체를 섬기고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담을 허물고 소외된자를 포용하고, 하나님만을 경외하고 순종하는 리더쉽입니다. 이런 섬기는 리더쉽을 통해 세상의 악하고 변질된 권력을 허물고, 우리주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와 그 뜻에 쓰임받는 축복된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소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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