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h 24, 2019

“말씀을 받아 먹으라” (Eat this Words)

Preacher:
Series:
Passage: 에스겔 (Ezekiel) 3:1~3
Service Type:

“말씀을 받아 먹으라”

(Eat this Words)

3-24-19

본문말씀: 에스겔 (Ezekiel) 3:1~3

1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받는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고하라 하시기로 (And He said to me, “Son of man, eat what is before you, eat this scroll, then go and speak to the house of Israel.”)

2 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마리를 내게 먹이시며 (So I opened my mouth, and He gave me the scroll to eat.)

3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로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 (Then He said to me, “Son of man, eat this scroll I am giving you and fill your stomach with it. “So I ate it, and it tasted as sweet as honey in my mouth.)

 

[설교 요약]

            오늘날 우리 크리스챤의 가장 심각한 딜레마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성경을 읽지 않는다는 것이 아닐까요? 성경을 읽지 않고, 묵상하지 않고, 가까이하지 않는것이 그 어떤것 보다도 우리 크리스챤의 심각한 딜레마라고 저는 이해합니다.

오늘 본문말씀에서하나님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간 에스겔에게 나타나셔서 ‘두루마리의 말씀을 먹으라’고 명하십니다. 그가 그 두루마리 말씀을 받아 먹었을때, 그 말씀은 그의 배와 창자를 채우고, 그의 입에서 달기가 꿀과 같았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성경을 실제로 깊이 읽고 묵상하며 살아가는 있는지요? 만약 그렇치 못하다면 무엇이 우리를 성경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일까요?

저는 먼저 <성경을 읽지 않을때 우리 삶의 세가지 부정적인 결과>는 무엇인지 살펴보고, 그리고나서, <성경을 읽을때 우리 삶의 세가지 긍정적인 결과>는 무엇인지를 오늘 본문을 통해 이해하기 원합니다.

먼저 ‘성경을 읽지 않을때의 <세가지 부정적인 결과들>은 무엇인지?’ 살펴 보겠습니다.

첫째, 육신의 소욕에 지배받게 됩니다: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 5:16)고 사도바울은갈라디아교회 성도들에게 도전합니다. 우리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의 지배를 받지 못할때, 필연적으로 육체적 욕망에 지배받게 됩니다. 말씀 가운데 성령의 통치하심을 받지 못할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육신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것 입니다.

둘째, ‘허무와 목마름에서 헤매게 됩니다: 중동지방 대낮의 뜨거운 햇빛아래 우물물 길러나온 한 사마리아여인에게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4:14)고 말씀하신 주님. 참되고 영원한 생명수되신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영혼을 적셔주지 않는한 여러분과 저는 세상 그 어떤것으로 부터도 채울수 없는 끊임없는 갈증가운데 고통당할것 입니다.

셋째, ‘하나님과 관계가 여전히 막연하게됩니다:  우리가 1년을 믿어도, 10년을 믿어도, 아니 평생을 믿어도 내가 말씀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할때 우리는 하나님과 여전히 소원한 관계에 머무를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내안에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갈. 2:20)을 통해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담대하게 나아갈수 있습니다. 바로 살아계신 말씀으로 부터 말입니다.

이제 ‘성경을 읽을때 우리 삶의 <세가지 긍정적인 결과들>은 무엇인지?를 오늘 본문을 통해 이해하기 원합니다.

첫째, ‘말씀이 꿀처럼 단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시. 119:103) 라고. 이렇게 말씀이 꿀처럼 단것을 경험할수 있다는 것은 복된 인생일 것 입니다. 그는 그 말씀의 진리와 은혜와 능력을 꿀송이처럼 영혼깊이 경험했기에 누가 하라고 해서 하고 하지말라고 하지 않을수 없는 것 입니다. 우리의 선하신 하나님 아버지는 그의 자녀가 당신의 말씀을 사랑하여 늘 가까이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고자 온 힘과 뜻을 다할때 그 말씀을 통한 은혜와 복을, 말씀이 꿀송이보다 더 단 경험을 허락하여 주실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둘째, ‘이마가 굳세게 됩니다: 이마가 굳세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이것은 우리의 영적 강건함을 뜻 합니다. 외적인 신체조건을 말하기 이전에 우리의 영적 상태를 말하는 것 입니다. “내가 그들의 얼굴을 대하도록 네 얼굴을 굳게 하였고 그들의 이마를 대하도록 네 이마를 굳게 하였으되, 네 이마로 화석보다 굳은 금강석 같이 하였으니 그들이 비록 패역한 족속이라도 두려워 말며 그 얼굴을 무서워 말라” (겔. 3:8,9) 라고 하나님은 에스겔을 굳세게 만드셨습입니다. 우리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은 말씀의 두루마리를 받아 먹었을때, 우리의 영적 상태는 점점더 강건하게 되는 것 입니다.

셋째, ‘말씀을 전하게 됩니다: 우리 크리스챤들이 모두 공감하면서도 가장 잘 되지 않는것 중의 하나가 ‘말씀을 전하는 것’ 아닐까요? 왜 우리는 말씀을 전하질 주저할까요? 아직까지 내가 믿는다고 하는 신앙의 진리에 대해 확신이 없고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자랑이 부족해서가 아닐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먹게 될때, 우리는 영적으로 강건해질뿐 아니라 성경의 진리를 전하고자 하는 자원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 입니다. 복음의 은혜를 나누고자 하는 열망이 말씀으로 부터 주어지는 것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온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해 사랑하는 동기로 그분의 말씀을 날마다 묵상하고 즐거워 함으로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은혜가 여러분 가운데 넘치시길 소원합니다.

 

[설교 본문]

            오늘날 우리 크리스챤의 가장 심각한 딜레마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무엇이 내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지를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다는 사실일 것 입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그 대표적인 것의 하나는 성경을 읽지 않는다는 것이 아닐까요? 성경을 읽지 않고, 묵상하지 않고, 가까이하지 않는것이 그 어떤것 보다도 우리 크리스챤의 심각한 딜레마라고 저는 이해합니다. 왜 우리크리스챤은 그 어떤것보다 먼저 성경을 읽고 묵상해야할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열심으로 살느냐? 얼마나 노력하느냐?보다는 얼마나 지혜롭게 사느냐?라고 묻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지혜는 세상의 지혜가 아니라, 이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지혜인 것 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지혜를 얻을수 있을까요? 바로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통해서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이 성경을 통해 날마다 하나님의 지혜를 소유해가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말씀 에스겔서는 이스라엘민족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 있던 <주전 593~ 565년경> 사이에 쓰여졌을것으로 추정 합니다. ‘하나님이 강하게 하신다’ ‘하나님이 훈련시키신다’는 이름의 뜻을 가진 저자 에스겔은 제사장이요,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 선지자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시기적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와 다니엘과 동시대에 활동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에스겔서의 주제는 범죄하는 이스라엘의 즉각적인 회개와 함께 미래에 주어질 하나님의 구원의 확실함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동시대에 선지자로 활동했지만, 예레미야가 ‘이스라엘의 죄악으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의 엄중함을 예언하면서 ‘눈물의 선지자’로 불린 반면, 에스겔은 ‘미래에 주어질 하나님의 온전하신 구원의’ 회복을 예언했기에 ‘비젼의 선지자’로 불린 이유일 것 입니다. 그리고 에스겔서에는 이사야서 (11:1), 예레미야서 (23:5,33:15), 그리고 스가랴서 (3:8, 6:12)와 함께 오실 메시야에 대한 예언말씀으로 유명합니다. 특히, 자기 양떼를 먹이시고 지키시는 선한 목자되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는 것 입니다(겔. 34장).

하나님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간 에스겔에게 나타나셔서 ‘두루마리의 말씀을 먹으라’고 명하십니다. 그가 그 두루마리 말씀을 받아 먹었을때, 그 말씀은 그의 배와 창자를 채우고, 그의 입에서 달기가 꿀과 같았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당신은 성경읽고 묵상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까?’라고 질문한다면 여러분 중에 ‘아니요, 필요 없어요’라고 대답할 사람은 우리중에 없을 것 입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은 과연 성경을 실제로 깊이 읽고 묵상하며 살아가는 있는지요? 무엇이 우리를 성경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일까요?

저는 먼저 <성경을 읽지 않을때 우리 삶의 세가지 부정적인 결과>는 무엇인지 살펴보고, <성경을 읽을때 우리 삶의 세가지 긍정적인 결과>는 무엇인지를 오늘 본문을 통해 이해하기 원합니다.

먼저 ‘성경을 읽지 않을때의 <세가지 부정적인 결과들>은 무엇인지?’ 살펴 보겠습니다.

첫째, 육신의 소욕에 지배받게 됩니다: 사도바울은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 5:16)고 그들에게 도전합니다. 그 이유를 바울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왜냐하면 “육체의 욕망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이 바라시는 것은 육체를 거스릅니다. 이 둘이 서로 적대관계에 있으므로,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수 없게 됩니다” (갈. 5:17/ 새번역) 라고. 우리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의 지배를 받지 못할때, 필연적으로 육체적 욕망에 지배받게 됩니다. 내가 육신의 소욕에 지배받는다는 말은 쉽게 말하면 ‘내 마음대로의 신앙생활’한다는 뜻 입니다. 절대적인 기준이 없기 때문 입니다. 신구약 성경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 성도를 향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가장 크신 카운셀링은 ‘열심히 살아라’ ‘더 노력하라’가 아니라 ‘지혜롭게 살아라’일 것 입니다. 바로 사도바울이 에베소교인들에게 도전하듯이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엡. 5:15,16) 고 권고합니다. 세월을 아낌으로 지혜롭게 행하라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행하는 것이 지혜롭게 행하는 것일까요? 그것이 바로 ‘성경’안에 있다는 것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곧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 있다는 것 입니다. 이 지혜를 말씀으로 공급받음으로서 성령의 통치하심을 받지 못할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육신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것 입니다.

둘째, ‘허무와 목마름에서 헤매게 됩니다: 여러분은 삶의 만족이 있습니까? 무엇을 해도, 무엇을 가져도 메울수 없는 깊은 삶의 허무를 맛보지는 않습니까? 해갈할수 없는 내 깊은 존재속의 목마름은 없습니까?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도 넘치는 부귀와 명예와 권력을 누렸던 솔로몬왕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얻게되는 그 마지막 한목음은 깊은 인생의 허무였습니다.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 1:2). 얼마나 허무했으면 한문장에서 무려 5번씩 ‘헛되도다’라고 부르짖는 것 입니다. 한 사마리아여인에게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4:14)고 말씀하신 주님. 참되고 영원한 생명수되신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영혼을 적셔주지 않는한 여러분과 저는 세상 그 어떤것으로 부터도 채울수 없는 끊임없는 갈증가운데 고통당할것 입니다.

셋째, ‘하나님과 관계가 여전히 막연하게됩니다: 만약 누군가가 ‘크리스챤 자신의 믿음상태를 스스로 측정할수 있는 좋은 기준은 무엇인지?’라고 묻는다면, 저는 ‘하나님이 실제하는 하나님으로 확신하는지? 아니면 하나님은 여전히 막연하고 저 멀리 계시고 나와는 별관계가 없는 하나님인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라고 저는 충고하고 싶습니다. 옳바른 하나님의 자녀로서 점점더 영적으로 성장하는 크리스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의 하나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욱 친밀하고 사랑으로 깊어져 간다는 것 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성장이 없는 교인들의 특징은 1년을 믿어도, 10년을 믿어도, 아니 평생을 믿어도 여전히 하나님과 늘 서먹서먹한 관계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 입니다. 하나님은 생명과 사랑으로, 인격과 능력으로 실제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내 삶에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그냥 상징적인 분인 것 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잘못일까요? 하나님이 실제하지 않으셔서,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요? 아닙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의 문제 입니다. 내가 말씀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생명으로 살아 계시는 예수님을 깨닫지 못하는 것 (갈. 2:20)과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영원토록 나와 함께 깊은 사랑의 교제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지 못하는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그분의 마음을 펼쳐보여 주시는 ‘말씀’을 읽고 묵상하기를 거부했기 때문 입니다.

이제 ‘성경을 읽을때 우리 삶의 <세가지 긍정적인 결과들>은 무엇인지?를 오늘 본문을 통해 이해하기 원합니다.

첫째, ‘말씀이 꿀처럼 단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로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 (v.3) 고 오늘 말씀에서 에스겔은 고백합니다. 성도 여러분은 지금까지 성경을 읽다가 말씀이 꿀처럼 달다고 느낀적이 있습니까?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시. 119:103) 라고 말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아직까지 한번도 하나님의 말씀이 꿀처럼 단것을 경험해보지 못했다면, 우리는 궁금할 것입니다. 과연 말씀이 꿀처럼 달것인가? 괜히 과장하고, 거짓말하는 것은 아닌가하고?! 이렇게 말씀이 꿀처럼 단것을 경험할수 있다는 것은 복된 인생일 것 입니다. 이런 성도에게 ‘왜 말씀을 묵상해야하는지?’ ‘왜 말씀이 신앙생활에 중요한지?’를 설명하는 것은 더 이상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말씀이 꿀송이 보다 더 달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 입니다. 이론적으로 배운것도 아니요, 남이 그렇더라는 식의 간증을 듣은 정도가 아니라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 입니다. 그는 그 말씀의 진리와 은혜와 능력을 꿀송이처럼 영혼깊이 경험했기에 누가 하라고 해서 하고 하지말라고 하지 않을수 없는 것 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은 ‘내가 말씀에 통해 어떤 놀라운 경험을 했는가 보다도, 왜 말씀을 가까이해야 하는가?’하는 것 입니다. 하나님은 그 분명한 이유를 이렇게 밝혀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 6:4,5) 이것이 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새기고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있을때든지 길에 행할때든지, 누웠을때든지 말씀을 가까이 하고, 말씀을 사랑해야하는 이유인 것 입니다. 어떻게 하면, 말씀이 꿀처럼 달아지냐고요? 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한가지 확신하는 것은 우리의 선하신 하나님 아버지는 그의 자녀가 당신의 말씀을 사랑하여 늘 가까이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고자 온 힘과 뜻을 다할때 그 말씀을 통한 은혜와 복을, 말씀이 꿀송이보다 더 단 경험을 허락하여 주실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을 우리의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보다도 더욱 더 간절히 원하시기 때문 입니다.

둘째, ‘이마가 굳세게 됩니다: 말씀을 받게 되었을때, 점점 더 우리 성도들이 변하게 되는 영적 상태는 ‘이마가 굳세게 된다’는 것 입니다. 이마가 굳세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이마가 딱딱해서 박치기를 잘한다는 뜻 입니까? 이것은 우리의 영적 강건함을 뜻 합니다. 외적인 신체조건을 말하기 이전에 우리의 영적 상태를 말하는 것 입니다. 오늘 말씀에 이어서 하나님은 에스겔선지자를 어떻게 강한 자로 세울것인지를 이렇게 선포하시는 것 입니다. “내가 그들의 얼굴을 대하도록 네 얼굴을 굳게 하였고 그들의 이마를 대하도록 네 이마를 굳게 하였으되, 네 이마로 화석보다 굳은 금강석 같이 하였으니 그들이 비록 패역한 족속이라도 두려워 말며 그 얼굴을 무서워 말라” (겔. 3:8,9) 고 말입니다. 말씀의 두루마리를 받아 먹었을때, 우리의 영적 상태는 점점더 강건하게 됩니다. 조금전에 살펴보았드시, 말씀을 가까이하지 않는자의 대표적인 특징이 육신의 정욕에 지배되는 삶인 것 입니다. 조금만 유혹에도 걸려 넘어지고, 성도로서 감당해야할 고난을 이겨내질 못합니다. 말씀을 통하여 육신의 유혹과 사단마귀에 지배받는 악하고 패역한 자들의 공격을 이겨낼 강인한 영적 상태로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 입니다. 말씀이 어떻게 우리를 그렇게 할수 있나고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히. 4:12) 라고 히브리서 기자는 말씀이 우리를 어떻게 본질적으로 변하시키실수 있는지, 어떻게 그 능력으로 금강석 같은 이마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자라날수 있는지를 탁월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의 이마는 말씀으로 인하여 금강석보다 더 굳세게 변화되어 가고 있습니까? 그 말씀의 능력으로 어떤 육신의 유혹과 악한 자의 공격에도 넘어지지않는 장성한 하나님의 자녀로 성장해 가고 있습니까?

셋째, ‘말씀을 전하게 됩니다: 우리 크리스챤들이 모두 공감하면서도 가장 잘 되지 않는것 중의 하나가 ‘말씀을 전하는 것’ 아닐까요?! 여러분은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역설적이긴 하지만, 오늘날 가장 열심으로 사람들에게 전도하는 상당수가 기독교 이단그룹에 소속되 있는 자들이라는 사실은 무엇을 뜻할까요? 그들은 잘못된 이단사상의 가르침을 받고도 그것에 자신의 인생을 걸고 죽고 살기로 전도하는데, 전통적이고 옳바른 성경 교리를 믿는다고 자부하는 우리 성도들은 상당수가 ‘말씀을 전하는 것’을 매우 부담스럽게 여긴다는 사실 입니다. 왜일까요? 아직까지도 내가 믿는다고 하는 성경의 진리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복음의 진리에 대한 진정한 자랑이 부족함이 아닐까요? 오늘 말씀에서 마지막으로, 말씀을 받게 될때 우리의 가장 두드러지는 변화는 <말씀을 전하게 된다>는 점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받는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고하라” (v.1),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숫군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v.17) 여기서 우리가 에스겔을 통하여 깨닫게 되는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달게 받고, 그로인해 영적 강건함으로 성장하는 자는 말씀을 전하게 된다는 것 입니다. 복음을 내 입술을 열어 자랑하게 된다는 것 입니다. 주님께서 그의 모든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 28:19,20)는 주님의 복음증거의 명령을 자원함으로 실천하게 될것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을 온마음과 뜻과 성품을 사랑하는 동기로 그분의 말씀을 날마다 묵상하고 즐거워 합니까? 쓴약 먹드시 억지로 하는것이 아니라, 점점더 그 말씀이 꿀송이 보다 더 단 은혜를 경험함으로 합니까? 그리하여 그 말씀이 여러분을 강건하게 세워주고, 여러분을 복음의 증인으로 살지 않으면 견딜수 없는 진정한 복음의 파숫군으로 살게 하고 있습니까? 이런 약속하신 말씀의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시길 축원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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