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il 1, 2018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을” (Resurrection with Christ)

Preacher:
Passage: 로마서 (Romans) 8:5,8,9
Service Type: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을”

(Resurrection with Christ)

4-1-18

본문말씀: 로마서 (Romans) 6:5,8,9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If we have been united with Him like this in His death, we will certainly also be united with Him in His resurrection.)

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Now if we died with Christ, we believe that we will also live with Him.)

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다 (For we know that since Christ was raised from the dead, He cannot die again; death no longer has mastery over Him.)

<서 론>

저는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신 부활절을 맞아서 성도 여러분과 함께 부활절 시리즈 마지막 3번째 설교,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사도바울은 오늘 <로마서 6장> 본문에서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v.5) 고 선언 하였습니다. 이 복된 주님의 부활절날,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하는 우리 모두가 됨으로서 또한 그의 부활과 함께 살아나는 성도 여러분의 능력과 승리의 삶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 합니다.

<본 론>

저는 지난주 설교, '그리스도와 더불어 고난을' 이라는 설교를 통해서 '성도 여러분은 고난을 어떻게 이해 하십니까?' 라는 중심 질문을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고난' 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이해하는가가 나의 신앙상태를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그 고난의 이해는 크리스챤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이해기준임을 함께 생각해 보았습니다. 고난은 결코 불행이나 실패나 하나님께서 나를 미워하시거나 무관심한 결과가 아니라, 정반대로 그분의 아들과 딸이라는 강력한 증거라는 사실임을 살펴 보았습니다. 따라서, 히브리서 기자는 " ~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 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히. 12:7) 라고 우리에게 반문하면서, 징계 즉, 고난은 그의 자녀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돌보심의 가장 강력한 증거라고 성경의 저자들은 주장한다는 사실을 지난 시간 살펴 보았습니다.

이제, 오늘 '그리스도와 더불어 부활을' 이라는 설교에서 우리가 함께 나눌 중심 질문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내가 어떻게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 할수 있는가?' 하는 것이 될것 입니다. 저는 오늘 성도 여러분과 함께 우리 주님은 자신을 믿는 성도들에게 그의 부활을 통해 생명과 승리를 주시고자 하심임을 살펴 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우리가 주님의 그 부활의 생명과 승리를 함께 누릴수 있는지에 대해서 살펴보기 원합니다. * "우리는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의 능력을 맛볼수 있을까요?" (How do our christian possess the power of the resurrection of Jesus Christ?);

첫째,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 (Through our faith to God who raised Jesus Christ from the dead): 사도바울은 <로마서 4장> 에서 무엇이 도데체 믿음인가? 무엇이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기뻐하시는 믿음인가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의 믿음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창세기 15:6> 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그의 의로 여기셨다' 는 사실을 환기시키면서, 이것이 왜 그토록 '무엇이 믿음의 정의로 중요한 사실인지를?' 이렇게 계속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롬. 4:23,24) 라고. 사도바울이 주장하고자 하는 핵심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약속을 믿은 아브라함을 '의롭다' 고 인정해 주신 이유는 장차 그의 믿음을 좇아 살아갈 모든 믿음의 후손들에게도 무엇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믿음인지를 분명하게 가르쳐 주시고자 함> 이라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믿음 입니까? 그것은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 곧 하나님을 믿는 믿음> 이 참된 믿음이라고 성경에서는 정의하고 있다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믿음과 우리 성도들이 예수 우리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사도 바울이 본질적으로 동일한 믿음이라고 설정한 이유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먼저, 아브라함의 경우, 그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무엇이었으며, 그 약속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하는 점을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 그리고 그의 아내 사라의 나이 90세에 그들을 통해서 아들을 낳게 할것 이라는 것 입니다. 상식적으로 불가능 함을 우리는 잘 압니다. 따라서, 이 상황을 사도바울은 이렇게 설명하는 것 입니다;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롬. 4:19) 라고. 두 부부의 몸의 상태나 여건으로 볼때는 두말할것도 없이 불가능이라는 것 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런 모든 부정적이고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도 약속하시는 하나님은 하실수 있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었다는 것 입니다. '그는 믿음이 약해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약속하신 그것을 그가 넉넉히 이루실 줄을 확신했다' (롬. 4:19~21) 것 입니다. 왜 입니까? 그것은 " ~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심)" (17) 을 그가 믿었기 때문 입니다.

두번째로, 우리 성도의 경우, 우리가 믿는 믿음은 무엇 입니까? 그것은 사도바울이 지적한데로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24) 믿음인 것 입니다. 100세 된 남자와 90세 되어 이미 아이를 낳을수 있는 임신 능력이 오래전에 없어진 여자를 통해 아이가 태어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지만, 죽은 사람중에서 그를 다시 살릴수 있다는 것도 불가능 중의 불가능임은 누구도 부인할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크리스챤들이 믿는 믿음의 핵심과 본질은 이런 불가능을 믿는 다는 것 입니다. 바로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남김없이 그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를 살리시려고 죽었고, 죽은지 3일만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다는 것 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살리셨다는 믿음인 것 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이 믿었는 하나님과 동일하다는 것 입니다. 바로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 (17) 이신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어떤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우리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과 승리를 나의 것으로 누리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 는 순전한 믿음 입니다. 여러분은 이 그리스도를 다시 죽음에서 살리신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둘째,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본받아 그와 연합함으로써' (Through the our union with Him like in His death): 지금 저희들은 계속해서 우리 성도들이 어떻게 주님의 부활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모든 특권, 즉 '약속의 유업을 누려나갈' 특권을 누릴수 있을 것인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본받아 그와 연합한다' 는 뜻은 간단히 말하면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다' 는 뜻 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성도 여러분에게 한가지 질문 하겠습니다. 그것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다" 는 것이 무슨 뜻이라고 생각 합니까?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며, 그 의미는 무엇 입니까? 그것은 첫째,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다' 는 것은 '그를 믿음을 통해서 일어나는 사건' 이라고 성경은 설명합니다. 특별히 예수님 자신이 그렇게 설명 하셨습니다. 그것이 어디에서 있습니까? 주님은 <요한복음 3장> 에서 니고데모에게 어떻게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인지를 '거듭 남' 이라는 성령을 통한 은혜로 설명하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4,15) 고 말 입니다. 지금 주님은 수천년 전에 광야에서 불뱀에 물린 이스라엘 민족들이 장대 위에 높이 달린 놋뱀을 쳐다본 자는 살아나고, 보지 않은 자는 모두 독에 의해 죽게 된 사건을 언급하시면서, 그 놋뱀과 같이 자기 자신도 십자가 위에 달려 죽어야 한다고 선언 하시는 것 입니다. 바로 십자가를 바라 보는 자, 곧 십자가 위에서 우리 인간들을 살리기 위해 죽는 그리스도를 믿는 자를 살리시고자,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고자 십자가 위에 높이 들리셔야 한다는 것 입니다. 이것은 믿음의 신비이자 능력 입니다. 아무리 위대한 신학자나 성경교사도 '어떻게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예수를 믿는 믿음이 우리를 살리게 되는 것인지 우리의 머리로 설명할수 없는 것' 입니다. 이것은 오직 믿음으로만 이해할수 있는 비밀이요, 신비인 것 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에게서 십자가는 단지 "거리끼는 것이요  ~ 미련한 것" (고전. 1:23) 입니다.

그리고, '내가 그리스도와 죽는다' 는 것의 둘째의미는 '죄와 율법에서 자유하게 되었다' 는 뜻 입니다. 사도바울은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자신의 상태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라고. 여기서 그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밖혔다" 는 것이 무엇을 뜻 할까요? 그가 실제로 십자가에 못 밖혔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바로 앞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갈. 2:19) 고. 사도바울은 이제 더 이상 율법의 종으로 살아가지 않고, 율법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을 향하여 살게 되는 존재가 되었음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목 박혔다' 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다> 는 것은 상징도, 비유도 아니요 진실 입니다. 이것은 오직 '믿음' 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잘 깨닫지 못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믿음을 통해 주와 함께 십자가에 죽은 자는 더 이상 율법과 죄의 종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유자로 살게 되는 것 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갈라디아교인들에게 전하고자 한 주제 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한 자유요, 약속하신 성령님을 통한 자유자의 삶인 것 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게 될때 우리는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게 되고, 더 이상 율법의 종으로 살지 않고 자유자의 삶을 살게 되는 것 입니다. 죽어야만 다시 살수 있는 것 입니다.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율법에 대해 죽으셨습니까? 그리고 이제 성령을 통해 자유자의 삶을 사십니까?

셋째, '우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자로 여김으로써' (Through our count ourselves dead to sin but alive to God):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보는 질문은 '우리 성도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나의 것으로 누릴수 있는가?' 입니다. 그것은 첫째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신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함을 우리는 이해 해야만 합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다는 것은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죽는다' 는 뜻임을 살펴 보았습니다. 그리고, 영적으로볼때, 내가 더이상 율법에 얽매여 살지 않고 율법에 대하여 죽고 주님과 함께 성령의 능력으로 자유자로 살게 된다는 뜻임을 살펴 보았습니다. 첫번째와 두번째 설명에서 제가 계속해서 말씀드린 것은 '무슨 뜻인가?' '무슨 의미인가?' 라는 점 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이 그를 믿는 성도들에게 어떤 의미인가 하는 것 입니다. 이것은 믿음의 결정적인 결과요, 그 믿음을 통해 우리가 누리게 될 영광된 상태인 것 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영적 상태를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성도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 입니다. 제가 그동안 여러번의 설교를 통해서 '내가 얼마나 영광된 하나님의 자녀인지에 대한 <성도의 신분>에 대한 각성이 없을때 나는 불행한 크리스챤의 삶을 살수 있다' 는 점을 성경에서 얼마나 자주 경고하는지를 말씀 드렸습니다. 이제, 3번째로 마지막으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믿음의 영적의미가 아니라 믿음의 적용' 입니다. '내가 예수 믿음으로 어떤 존재가 되었는가?'  것이 첫번째와 두번째의 요점이라면, '내가 예수 믿었기 때문에 어떤 삶을 살아야 되는가?' 가 마지막 세번째의 요점인 것 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롬. 6:10) 라고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의 의미를 설명하고 나서,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자로 여길지어다" (롬. 6:11) 라고 우리에게 도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여기다' (count/ reckon) 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이것을 <새번역> 성경에서는 " ~ 알아야 한다" 고 번역 했습니다. 이것은 적절한 번역 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말로 '여기다' 는 것이 자칫 '없는 사실을 있는 것처럼 상상한다' 든가 '불확실한 미래의 상태를 내가 바라는 데로 잘 될것이라고 스스로 설득한다' 든지 하는 것이 아니다는 것 입니다. 반대로 '여기다' 는 것은 '알아야 한다' 즉, '너희도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에 대하여는 산자로 바로 알아야 한다' 는 것 입니다. 이것이 진리라는 것 입니다. 결론은 무엇 입니까? 그것은 "그러므로 죄가 여러분의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해서, 여러분이 몸의 정욕에 굴복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12) 라고 사도바울은 이제 본격적으로 믿음의 실천을 강조 합니다. 믿음을 원론적으로 아는 것만이 전부가 아닌 것 입니다.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것 입니다. 우리 구원 받은자는 오직 믿음으로 살게 되고,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지만,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는 그 구원의 결과로 <아름답고 충성된 영적 열매>를 반드시 맺게 되는 것 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몸을 죄가 지배하지 못하게 하고, 몸의 정욕에 굴복하지 않도록 하라' 는 것 입니다. 이것은 내가 행해야 하는 것 입니다. 내가 노력하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점점 더 온전한 삶을 실천해 나가는 것 입니다. 물론, 성령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보다 한걸음 먼저 우리를 앞서 가시며 우리를 도우십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것이 믿음의 적용이라는 것 입니다. 실천하는 삶이라는 것 입니다. 따라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우리를 도전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의 지체를 죄에 내맡겨서 불의의 연장이 되게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여러분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난 사람답게, 여러분을 하나님께 바치고, 여러분의 지체를 의의 연장으로 하나님께 바치십시오" (13) 라고 말 입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구원받고, 하나님께 자녀가 된 놀라운 신분을 소유한 자가 그 신분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삶의 적용이라는 것 입니다. 여러분은 날마다 여러분의 몸을 죄에 내 맡기는 어리석은 삶을 거부하고,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아난 사람답게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 드리며, 의의 연장으로 여러분의 몸을 사용하고 있습니까?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과 저는 어떻게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그의 영광에 동참하는 축복된 삶을 살수 있을까요? 그것은 먼저, 주님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께의 선하심과 주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권능을 믿는 것에서 출발 합니다. 그리고, 주님과 부활하기 위해서 먼저 주님과 십자가에서 죽어야 합니다. 그 죽음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하여 가능한 것이며, 그 죽음은 '죄와 율법으로 부터의 죽고, 진리 안에서 자유하게 된 삶' 을 뜻 합니다. 그리고, 그런 영적 깨닫음을 가지고 내가 믿음을 실천하는 것 입니다. 말 그대로, 죄를 미워하고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우고, 나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는 삶을 사는 것 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능력과 승리의 삶을 산다는 뜻' 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셔서 우리 모든 믿는 자의 첫 열매가 되신 부활절 주일 입니다.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과 부활의 승리의 확증이 무덤덤하고 나와는 별관계가 없는 것 같은 영적으로 무지하고 깨닫음이 없는 자가 아니라, 주님을 온전히 믿음으로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고 주와 함께 부활함을 성령의 도우심으로 날마다 더 깊이 그 은혜를 깨닫는 여러분 되시기를 소원 합니다. 그리하여 날마다 죄를 이기고 자신을 하나님이 기뻐 하시는 거룩한 삶을 실천함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