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il 16, 2017

그리스도의 부활 (The Resurrection of Christ) – 테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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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ies:
Passage: Romans 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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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로마서 (Romans) 6:5~7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서 론>
저는 오늘 부활절을 맞아 ‘부활절 특별 마지막 메세지’ 인 ‘그리스도의 부활’ 을 성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죽은지 사흘만에 죄와 사망을 이기시고 다시사신 부활절 입니다. 사도바울은 “ ~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전. 15:20) 라고 주님 부활의 승리의 메세지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제 주께서 부활하신지도 2,000년이 가까워 옵니다. 주님의 부활은 예수님의 사도들이나 초대교회 성도들 뿐 아니라, 우리 모든 주를 믿는 크리스챤들의 소망의 근거이자 능력과 승리의 근거임을 우리는 압니다. 그러나, 실제로 주의 부활의 능력으로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성도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예수 믿고 구원 받음으로 얻게되는,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와 승리가 무엇인지를 아직까지 깨닫고 누리지 못하기 때문 입니다. 이 권세와 승리는 오직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이루어 질수 있음을 저는 믿습니다. 오늘 ‘그리스도의 부활’ 이라는 말씀을 통해 아직 까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지 않으신 분은 그분을 믿어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는 놀라운 권세 (=신분)을 소유하실수 있기를 소원 합니다. 그뿐 아니라, 이미 주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신 성도들은 그 신분에 합당한 자녀의 권세와 승리의 삶을 주님의 부활에 연합하여 살아 감으로 날마다 풍성히 누릴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 합니다.
<본 론>
저는 2주전 부활절 설교 시리즈, 첫 설교 ‘하나님의 복음’, 에서 ‘기쁜소식’, ‘복음’ 은 바로 ‘하나님의 복음’ (롬. 1:1) 이요, 그 복음은 바로 ‘하나님이 (구약의) 여러 선지자를 통해서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그의 아들에 관한 것’ (롬. 1:2) 에 관한 것이라고 사도 바울은 밝히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그 아들은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롬. 1:3), ‘거룩한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권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확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롬. 1:4) 라고 그는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기쁜소식인, ‘하나님의 복음’ 은 ‘하나님의 진노’ 에서 시작함으로서 우리 인간을 구원하고 살리는 것이 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이 하나님의 죄에 대한, 죄를 범한 인간에 대한 진노는 우리를 죽이고 망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가장 적극적인 사랑과 자비의 표현이라는 것을 우리는 깨닫아야 함을 말씀 드렸습니다; 이것을 구약의 호세아 선지자는 우상숭배와 깊은 죄악 가운데 있던 이스라엘 민족을 향해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 임이다” (호. 6:1) 라는 선포에서 잘 이해할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난주 ‘그리스도의 십자가’ 라는 제목의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나와는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생각해 보고자 노력 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영접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적어도 ‘성경적 지식으로나, 자신이 믿는 바’ 로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중요성과 그 의미를 부정하거나 거부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거부한다는 것은 주님의 피를 통해 내 죄가 씻음받고, 그 십자가의 대속죽음을 통해 내가 죄 용서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됨을 부인하는 것이기에 이런 사람은 처음부터 거듭난 성도라고 불리어 질수 없기 때문 입니다. 그러나 제가 중점적으로 생각해 보기 원했던 것은, 비록 내가 예수님을 믿고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놀라운 신분의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지만, ‘주님의 십자가’ 를 바로 이해하지 못할때, 나는 여전히 그 십자가에서 허락된 진정한 자녀의 권세와 승리의 삶을 살아갈수 없다는 점을 나누었습니다.
저는 오늘 부활절 특별 메세지, 마지막 메세지를 나누면서 ‘그리스도의 부활’ 은 지난 2주의 말씀과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의 연장선상에 있고, 하나의 기초위에 서로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밝히기 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복음’ 은 ‘그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에 관한 기쁜소식 이라는 점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한마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로 요약됨을 우리는 잘 알고 있기 때문 입니다. 더 나아가, ‘주님의 십자가는 그분의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로, 그리고 죄와 죽음에 대한 승리가 확정 되었다’ (롬. 1:4) 는 점을 사도바울의 로마서 뿐 아니라, 모든 신약서의 저자들은 동일하게 선언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 입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을 구원시키는 하나님의 복음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점점 더 이해해 나가게 될때, 우리는 더욱 더 옳바르게 깨닫고 경험하게 될 것 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이루신 완전한 승리와 구원은 그의 부활을 통하여 ‘확정’ (declare/ prove) 되었습니다. 오늘 ‘그리스도의 부활’ 을 마지막으로 살펴 봄으로서 이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허락하신 우리 모든 믿는 자를 살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복음’ 의 영원한 능력과 사랑을 깨닫고, 날마다 누려나가시길 원합니다.
제가 오늘 살펴보기 원하는 것은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했는가?” 하는 점 입니다. 이것을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에 연합한다’ (be united with Him in His resurrection) (v. 5)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연합 할수 있을까요?” (How are we united Christ in His resurrection?)

첫째,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 (We should die with Christ)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우리가 지난주에 살펴 보았드시,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못 박혔다’ 고, 다시말해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 고 고백함을 보게 됩니다. 언제 사도바울이 십자가에 목 박혔습니까? 바로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나사렛 예수님을 만남으로 그의 영적 눈이 열리고, 자기가 미워하고 핍박했던 예수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요, 선지자들이 예언한 메시야 그리스도이심’ 을 믿음으로 영접할 때 입니다. 그때, 그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고, 그와 함께 죽는 존재가 된 것 입니다. 이것은 우리 크리스챤의 ‘느낌’ 이나 ‘경험’ 의 차원이 아니기에 이해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마치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 가 어떻게 우리를 살리는 지를 경험으로 이해할수는 없드시 말 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러한 예수님의 그리스도 대심에 대한 믿음과 영접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이자, 복음의 능력’ 이라고 우리는 깨닫아야 합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놋뱀’ 을 든것 처럼)
결론은 먼저 그리스도와 함께 죽지 않고는 결코 그와 함께 부활하는 영광과 승리를 누릴수 없다는 논리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순서임을 우리가 이해해야만 한다는 것 입니다. 바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내 죄를 회개하고 그분을 영접 함으로서! 이것이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 하는 첫 걸음임을 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여러분 중에 아직까지 예수님을 구원자로 영접하지 않으신 분이 있다면, 마음의 문을 열고 그분을 영접하셔서, 그와 함께 십자가에 죽고, 그의 생명으로 다시 살아 나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진정한 축복을 누리실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 합니다. 이것이 없이는 누구도 구원 받을수 없고, 그의 부활의 능력을 누릴수 없기 때문 입니다.

둘째,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야’ (We should resurrect with Christ) 합니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v. 5)
사실,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야’ 한다는 2번째 조건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 한다는 1번째 조건의 결과라는 점을 우리는 이해해야만 합니다. 앞에서 살펴보았드시, 만약 <내가 나사렛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영접> 한다면, 그것이 바로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는 것> 이라고 말씀 드렸고, 내가 그와 함께 죽었다면 <반드시 그와 함께 다시 살아난다> 는 것이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이 확신 가운데 강조하는 점 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인 우리 주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이유’ 이기 때문 입니다. 즉, ‘그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그와 함께 다시 살아나게 하시고자 함’ 입니다.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 바로 다음절, <8절> 에서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줄을 믿노니” (Now if we died with Christ, we believe that we will also live with Him) 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와 함께 살 가능성이 크다’ 라든가, ‘그와 함께 살것으로 희망한다’ 라고 하지않고, ‘우리가 또한 살게 될것이다’ (We will also live with Him) 고 확신하는 것 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뜻이기 때문 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그분과 함께 죽고 그분과 함께 사는 것 입니다. ‘죽기는 죽는데 다시 살지 못한다’ 든가, ‘죽지는 않아도 다시 살기는 한다’ 는 것은 처음부터 상상조차 할수 없는 것이라는 것이 <로마서 6장> 을 통하여 사도바울이 거듭 거듭 강조하는 바 입니다. 그것은 무엇 입니까? 그것은 ‘나의 어떤 노력이나 행위’ 가 아니라, <오직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또한 그와 함께 살아난다> 는 것’ 이 우리 거듭난 크리스챤의 신분이요, 존재라는 것 입니다. 누구도 예외는 없습니다. 내가 그분과 함께 죽었다면, 반드시 다시 살아난 것 (=과거완료) 을 믿으라는 것 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믿으십니까? 주님과 함께 다시 살아남에 대한 확신은 그분의 부활의 능력과 승리로 우리를 한걸음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할 것 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주님의 부활에 동참’ 하기 위한 단계는 무엇 입니까” 그것은,

셋째, ‘그리스도를 주로 모셔야’ (We should apply Christ as ‘Lord’ in our daily lives) 합니다: “ ~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눅. 9:23)
우리 주님은 그를 믿고 제자로 따르고자 하는 자들에게“ ~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눅. 9:23) 고 강하게 도전 하셨습니다. 이 강한 주님의 도전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 도전은 ‘진정한 주님의 제자, 즉 거듭난 크리스찬은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자’ 라는 것 입니다.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진다’ 는 것은 ‘훈련’ 이요, ‘고난을 통한 성숙의 과정’ 이요, ‘댓가지불’ 의 삶을 뜻 합니다. 예수님은 ‘내가 십자가에서 모든 힘들것을 대신 다 감당할테니, 너희들은 하고 싶은데로 육신 가운데 살아도 된다’ 고 ‘죄에 대한 면죄부’ 를 주시지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이것이 제가 여러분과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에서 확인하고 강조하고 싶은 점 입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믿음으로 ‘십자가에 그와 함께 죽고, 또한 그와 함께 살아난’ 여러분과 저를 향해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 고 도전하시고, 격려하시는 이유는 주께서 혼자 십자가를 지신것이 억울해서도 아니요, ‘고통분담’ 하자는 의미도 아니요, 그것은 <이 십자가를 날마다 질때만 비로소, 주의 십자가와 그 부활에 동참하게 되는 통로가 됨> 을 주님은 그 명령속에 암시하고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만약, 내가 주님의 십자가의 생명과 그의 부활의 권능에 동참하기 원한다면, 나는 ‘날마다 나의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좇아야만’ 하는 것 입니다.
여기서 <남은 이슈는 2가지> 입니다; 첫째) ‘만약 믿음으로 주님과 함께 죽고, 반드시 다시 살았다면 왜 굳이 내가 다시 십자가를 져야 하는 것인가?’; 간단히 말하면, ‘나의 신분과 현재의 나의 신분에 걸맞는 삶을 살고 있는가?!’ 가 주께서 우리를 도전하시는 이유인 것 입니다. 사도바울은 그의 영적 아들, 디도에게 주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이유를 무엇이라 설명합니까?; 그것은 여러분과 저를 “ ~ 모든 불법에서 깨끗하게 하셔서,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당신의 백성이 되게 하시려는 것” (딛. 2:14) 입니다. 우리의 신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완전히 바뀌었지만, 이것이 우리의 신분에 걸맞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바뀌었음을 뜻하지 않습니다. 이런 우리의 영적 성숙은 날마다 주님 만나는 날까지 푯대를 향하여 계속해 나감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 입니다. 이것이 주께서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 고 도전하신 이유인 것 입니다. 둘째) 그렇다면 ‘무엇이 자기 십자가인가?’ 하는 점 입니다; (2가지 복음에 대한 오해/ 1) ‘율법주의 (Legalism) & 2) ‘율법폐기주의’ (Antinomianism) 혹은, 무율법주의, 반율법주의, 도덕률 폐기론) ‘내가 무엇을 나의 십자가에 못박을 것인가?’ 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우선적으로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데 가로막는 것이 무엇인가?’ 에 대해 우리 각자는 먼저 진지하게 살펴 보아야 하겠습니다. 여기에 따라서, 우리 각자는 ‘내가 날마다 주님을 따르기 위해 십자가에 목박아야 할것이 무엇인지?!’ 를 이해할수 있는 것 입니다. (예/ 부자청년, ‘많은 재산’) 이것은 어떤사람에게는 돈이요, 또는 육신의 정욕, 명예, 자기 고집, 자기계획, 자아, 성격, 기질…등 사람만큼이나 다양할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매일 매일의 삶속에서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데 가로 막는 것을 십자가에 목박고 그분을 따를수 있는가?’ 하는 것 입니다. 바로 날마다 못박아야 하는 그것이 여러분과 저의 십자가인 것 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진정한 하나님의 복음을 깨닫기 원하십니까? 그 복음의 진정한 지혜와 능력을 경험하기 원합니까? 그렇다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고, 그와 함께 다시 살아난 나의 신분에 대한 분명한 깨닫음과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누구도 하나님의 자녀된 나의 신분을 빼앗을수 없음을 이해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 신분에 걸맞는 ‘영적 성장’ 을 해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도 젖병만 빨고, 기저기만 차고 있다면 그것은 결코 정상적인 성장이 아니듯이 날마다 한걸음 한걸음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성장해 나가야만 하는 것 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우리 각자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좇음으로서’ 계획하신 그의 복음의 비밀이요, 축복인 것 입니다.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좇음으로서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함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복음의 능력을 날마다 순간마다 누리고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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