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ruary 4, 2018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Except in the cross of Jesus Christ)

Preacher:
Series:
Passage: 갈라디아서 (Galatians) 6:14
Service Type: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Except in the cross of Jesus Christ)

2-4-18

본문말씀: 갈라디아서 (Galatians) 6:14

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 하니라 (May I never boast except in the cross of our Lord Jesus Christ, through which the world has been crucified to me, and I to the world)

<서 론>

저는 오늘 성도 여러분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사도 바울은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 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도’를 자랑 한다고, 말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한다고 말하고 있음을 여러분은 주목 하십니까? 여러분의 자랑은 무엇 입니까? 십자가는 여러분의 자랑 입니까? 아니 십자가만이 여러분의 자랑 입니까? 왜 십자가만을 자랑 해야 합니까?오늘 말씀을 통하여, 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왜 사도 바울 한사람만의 ‘유일한 자랑’ 이 아니라, 예수를 믿음으로 거듭난 모든 성도의 ‘유일한 자랑’ 이 되어야만 하는지를 함께 묵상하고, 깨닫을수 있기를 원합니다. 이를통해 여러분의 남은 평생을 통하여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하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기대 합니다.

<본 론>

오늘 본문말씀은 사도바울이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신앙고백이요, 강력한 도전이라고 말할수 있을 것 입니다. 그가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있는 것 입니다. 그것은 무엇 입니까?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 는 것 입니다. 다시말해, ‘오직 십자가 만을 자랑 하겠다’ 는 것 입니다. 그것은 왜 일까요?

전체 6장으로 구성된 갈라디아서에서 사도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유대주의’ (Judaism) 로 되돌아가는 것을 강하게 책망하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까요? 왜냐하면, 사도바울과 동역자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으로서 기도와 섬긴 가운데 세운 갈라디아교회에 가만히 들어온 거짓교사, 즉 ‘유대교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얻는다’ 고 가르치는 자들로 인해 교회에 심각한 위기를 맞이했기 때문 입니다. 이들 거짓교사들은 이방인들로서 그리스도인이 된자들에게 특별히 ‘할례’ 를 행하게 함으로서 유대교의 율법을 지켜야 구원이 있다고 거짓되게 가르쳤던 것 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바울은 다른 어떤 서신서에서 볼수 없을 정도로 그의 사도직분을 통하여 엄중하고 강력하게 이런 ‘율법주의’ 로의 회귀를 경계하고 있습니다;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갈. 1:7,9) 라고. 심지어 하늘로서 온 천사라 할찌라도 말 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왜 이토록 ‘율법주의’를 강하게 비판하고 경계하는 것 일까요? 그것도 신앙생활 않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나름 열심히 믿어 보겠다고 하는 듯 한데 말 입니다... 사도바울은 알았습니다. 얼핏보면, 신앙적인 열심이 있는 것 같고 성경말씀을 사용하지만 이 ‘율법주의’ 는 바로 가장 사악한 ‘복음의 원수’ 라는 것을 말 입니다. 이 율법주의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완성하신 구원의 능력과 그것을 믿음으로 누리게 되는 의’ 를 부인하는 것 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신 구원의 은혜와 사랑이 아니라 ‘행위를 통해 얻게 되는 구원’ 을 율법주의자, 거짓교사들이 주장했기 때문 입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룬 복음의 자유를 송두리채 유린하고 있는 것 입니다. 사도바울이 이 율법주의, 바로 할례주의자들의 거짓가르침과 이것이 왜 복음과 원수되는 것 인지를 이 편지에서 잘 설명하고 있는 것 입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만이 유일한 구원이요 하나님의 능력이요, 자신의 자랑이라고 다시한번 복음의 진리를 고백하면서 편지를 마무리 하고 있는 것 입니다. 이런 바울의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에 대한 믿음과 자랑이 바로 오늘 본문말씀 입니다;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 는 것 입니다.

따라서,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하겠다!’ 는 사도바울의 선언은 그가 깨닫은 복음의 진리가 무엇인지를 가장 간단하면서도 강력하게 선언하고 있는 것이라고 저는 이해하게 됩니다. 그것은 선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계획하신 구원은 바로 십자가 위에서 완성 되었다는 것이요, 이 십자가는 복음의 모든 능력과 비밀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곳이기에 사도바울은 십자가를, 아니 십자가 만을 자랑한다는 것 입니다. 십자가가 아니면 어떤 구원도 능력도 소망도 없기 때문 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십자가를 그토록 자랑하고 십자가를 사랑한 이유일 것 입니다.

이제 저는 성도 여러분과 함께 구체적으로 ‘사도바울이 왜 십자가 만을 자랑했는지?’ 를 살펴보기 원합니다. 왜 이 십자가는 사도바울 한사람만이 아니라,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의 자랑이 되어야만 하는지를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 왜 십자가 만이 우리의 자랑이 되어야 할까요? (Why do we boast in the cross?):

첫째)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리를 살렸기 때문 (Because we are saved by the cross of Jesus)입니다: 저는 몇번의 설교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십자가의 죽음을 미리 예언 하셨음에 대해서 말씀 나누었습니다. 바로 ‘장대위에 높이 달린 놋뱀사건’ 을 통해서 말 입니다. 바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믿는 모든 자를 구원하시고자’ 함이라는 것 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4,15) 고 말 입니다. 주께서 누구에게 이 말씀을 하신줄 아십니까? 바로 ‘영생을 어떻게 얻을수 있을찌 알고자’ 밤에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 입니다. 우리 인간이 영생을 얻고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은 오직 물과 성령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그 영생을 주시는 인자, 즉 예수님 자신은 ‘모세가 광야에서 뱀들 든것처럼 십자가 위에서 들려야’ 한다는 것 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죽으셔야만 우리의 구원이 가능하다는 것 입니다. 이것만큼 십자가가 무엇인지, 십자가가 왜 중요한지를 잘 대변해 주는 말씀도 없을 것 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전부가 아닙니다.

주님은 언제나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제자들에게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그것은 십자가의 죽음 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데로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땅에 떨어져 죽어지는 ‘한알의 밀알’ 은 자신의 십자가의 죽음이 무엇인지를 또한 잘 나타내 주고 말씀 입니다. 한알의 밀알이 죽지 않을때 한알 그대로 있고, 죽어질때 많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 입니다. (요. 12:24) 또한 주님은 제자들이 자신의 ‘그리스도 되심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되심’ 에 대한 신앙고백을 들으시고, 이때부터 자신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3일만에 다시 살아나야 할것을 가르치셨습니다 (마. 16:13~21).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입니다. 이것은 비록 제자들의 영안이 어두워 주께서 부활하시기 까지 온전히 깨닫지 못했을찌라도, 한결같은 주님께서 밝히신 자신의 추구하는 삶의 목적이요 미션 이었습니다. 바로 <십자가의 죽음> 입니다. 주님은 언젠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받을 침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눅. 12:30) 라고.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시기 전에 침례요한으로 부터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자신이 ‘받을 침례’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고난이요, 바로 십자가의 죽음 이었습니다. 이 고난의 십자가를 지기 까지는 언제나 주님은 만족할수 없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다 순종하기 까지는 언제나 답답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뜻을 십자가 위에서 온전히 순종하셨을때 주님은 ‘다 이루었다’ 고 선언 하셨던 것 입니다. 그 답답함이 풀린 것 입니다. 왜 십자가는 우리의 자랑 입니까? 왜 십자가만이 우리의 자랑 입니까? 그것은 오직 십자가만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 (고전. 1:18) 이 되기 때문 입니다. 오직 십자가만이 능력 입니다!

둘째) 나의 자아가 죽는 유일한 곳이기 때문 (Because my ‘ego’ only be crucified on the cross) 입니다: 저는 사도바울이 오늘 말씀에서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는 고백은 단지 바울 한사람만의 고백이 되어서는 않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것은 왜일까요?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도전하고 있기 때문일 것 입니다. 저희가 조금전 살펴본대로 예수님은 땅에 떨어져 죽어지는 ‘한알의 밀알’을 통해 바로 ‘자신의 십자가의 죽음’ 을 그리고 그 죽음을 통하여 ‘많은 열매 맺는 삶’ 을 밝히 보여 주셨습니다 (요. 12:23,24) 그러나, 여기서 주님의 가르침은 결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계속해서 주님을 믿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고 도전하시는 것 입니다;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 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 하리라” (요. 12:25) 고 말 입니다. 주님의 분명한 가르침은 무엇 입니까? 십자가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그를 믿는 모든 자를 구원하는 장소 일뿐 아니라, 그를 믿고 따르는 모든 자들이 또한 죽어야 할 장소임을 주님을 말씀하고 있다는 것 입니다.

저는 여기서 한가지 우리가 분명히 구분해야 할 점이 있음을 압니다. 그것은 ‘십자가에서 죽는다’ 는 것은 2가지 의미로 성경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점 입니다. 첫째)는 바로 앞에서 말씀드렸던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그분을 믿을때 나도 함께 죽는다는 것> 입니다. 이것은 상징이나 비유가 아닙니다. 사실 입니다. 이것이 사도바울이 <로마서6:8> 에서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줄을 믿노니” 라고 말한 의미 입니다. 모든 믿는자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목박혔고, 또한 그와 함께 부활하여 새 생명 가운데 행한다는 것 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죽는다’ 는 것은 이것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둘째)로 이 십자가는 <주님의 제자가 평생을 통해 지고가는 것> 입니다. 주님은 자신을 믿고 따르는 제자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이렇게 분명히 밝히시고 도전 하셨습니다; “ ~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눅. 9:23) 고. 이 말씀은 무슨 뜻 입니까? 십자가는 예수님을 처음 믿을때 주님과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하는 십자가만 있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통하여 주님의 제자된 우리들이 지고 가야할 십자가가 있다는 것 입니다. 이 십자가는 무엇일까요? 사도바울은 이 십자가를 이렇게 잘 표현 했습니다; “ ~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전. 15:31) 고 말 입니다.

십자가는 죽는 곳 입니다. 십자가는 목이나 귀에 걸고 다니는 장식물이 아니라, 죽는 사형틀 입니다. 저는 몇주전 A.W. 토저의 ‘하나님을 추구함’ 이라는 책을 통해서 어떻게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의 축복을 누려 나갈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살펴 보았습니다. 바로 하나님과 나를 가로막고 있는 ‘자기생명’ (self-life) 이라는 휘장을 걷어내야 한다는 것 입니다. <자기생명이라는 휘장> 은 예수님을 믿었음에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내 육체 가운데 거하는 <죄된 성품> 이라는 것 입니다. <자아> 라고도 하고, <자기사랑> 이라고도 불리우는 내 안에 은밀하게 자리잡고 있는 <죄된 성품> 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자아를, 자기사랑을 죽일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 입니다. 토저목사는 ‘이 자아를 어설프게 만지작 거리지 말라’ 는 것 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은 결코 자아를 스스로 죽일수 없는 것 입니다. 결론은 오직 하나님 만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내 자아를 십자가에 죽게 하실수 있다는 것 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결심과 행동은 내가 결정하는 것 입니다. 그러나 내 자아가 날마다 죽을수 있는 것은 내 스스로가 할수 있는 것이 아니다는 것 입니다. 여전히 ‘십자가’ 가 한다는 것 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성령님이 하신다는 것 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이 고백한 “ ~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 하니라” (v.14b) 는 뜻 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우리 크리스챤들은 날마다 치열한 싸움을 싸우는 것 입니다. 세상이 나를 십자가에 목박고, 내가 또한 세상을 십자가에 목박는 것 입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이것은 세상을 미워한다는 뜻 입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자아를 죽인다는 뜻 입니다. 나는 더 이상 세상에 속해 살아가는 육에 속한 자가 아님을 깨닫고 세상을 성령의 능력으로 십자가에 못 박겠다고 선언한다는 뜻 입니다. 여러분은 아직도 세상을 사랑 하십니까? 아직도 자아를 사랑 하십니까? 아니면, 이 십자가 위에서 날마다 자아를 죽임으로서 오직 십자가만을 사랑합니까?

셋째) 하나님의 영광이 찬란히 빛나는 곳이기 때문 (Because we are able to see the glory of God on the cross) 입니다: 내가 아직까지 십자가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면,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더 나아가 그를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 했다는 뜻입니다. 사도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 하면서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 하더라" (요. 1:14) 고 <요한복음> 에서 선언 했을때, 그 독생자의 영광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기 예수가 탄생 했을때의 영광 보다, 또한 어떤 예수님의 지상 사역 중에서 그가 보이신 어떤 신적 능력의 영광 보다도 바로 십자가에서 이루신 죄와 사망을 이기신 능력과 사랑의 영광인 것입니다. 그의 십자가 위에서의 하나님 아버지 뜻에 자발적인 순종으로 인한 희생은 바로 영원토록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자신의 보좌 우편에 앉히시고, 24장로들과 하나님의 일곱영들에게 찬양과 경배를 받게 되셨음을 요한은 놀라운 환상을 통해 선언 하고 있습니다 (계. 4:1~11).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이토록 자랑하는 이유는 이 십자가는 바라볼수록 더욱 더 그리스도의 영광이 빛을 발하기 때문 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아들을 이땅에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구원의 영광이 빛나는 곳이기 때문 입니다.

따라서, 로이드존스는 그의 책, ‘십자가’에서 ‘우리가 단지 십자가를 힐끗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고 우리에게 도전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를 살리실 뿐 아니라, 날마다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요, 날마다 그 아들의 사랑을 그리고 그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와 영광을 찬란하게 비추고 있기 때문 입니다. 만약 우리의 자아가 날마다 십자가게 못 박히고 성령을 좇아 행할때, 하나님은 우리의 어두운 눈을 밝히사 그의 독생자의 영광과 그를 이 땅에 보내신 자신의 영광을 점점 더 밝히 비춰 주실 것 입니다. 여러분은 십자가에서 빛나는 하나님 아버지와 그 아들의 영광을 성령의 은혜로 더욱 더욱 밝히 보고 있습니까?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여러분의 자랑 입니까? 아니 유일한 자랑 입니까? 사도 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18) 고 선언 했습니다. 저는 세상의 똑똑한 자가, 또한 지혜롭다고 하는 자들이 십자가를 멸시하거나 무관심하게 대하는 것에 대해서 더 이상 놀라거나 이상해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십자가의 비밀이라고 성경은 밝히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진리가 멸망하는 자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어리석은 것이기 때문 입니다. 그러나, 제가 집중해서 관심가지는 것은 ‘십자가가 구원을 얻는 우리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 이라는 사실 입니다. 바로 구원 얻은 성도는 십자가를 부끄러워 하거나 무관심하지 않고 자랑하고 사랑 할수 밖에 없다는 것 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 십자가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신다>는 비밀을 영으로 깨닫았기 때문 입니다. 그리고 날마다 이 십자가를 더욱 자랑하고 사랑한다는 것 입니다. 여러분은 십자가 만을 사랑합니까? 이 십자가의 도가 여러분을 구원할뿐 아니라, 그리스도를 만나는 날까지 날마다 주의 제자로 십자가를 자랑하며 주님을 따르는 참된 제자로 살아가길 축원 합니다. 그리하여 날마다 십자가의 영광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복된 성도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소원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