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h 10, 2024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Being Called Christians)

Preacher:
Passage: 사도행전 (Acts) 11:24~26
Service Type: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Being Called Christians)

3-10-24

본문말씀: 사도행전 (Acts) 11:24~26

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25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설교 요약]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보기 원하는 <사도행전 11장>말씀의 주제는 ‘안디옥교회’입니다.

그런데, 이 안디옥교회는 스데반의 순교사건 직후 예루살렘 교회에 불어 닥친 핍박으로 인하여 흩어졌던 성도들이 전한 복음으로 시작된 교회인데, 오늘날 교회가 본받아야 할 좋은 장점을 가진 공동체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안디옥 교회의 특징일까요?그것은

첫째, ‘첫 이방인 교회’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구브로와 구레네지역 성도들’이 전한 복음을 안디옥 지역의 헬라인들이 듣고 영접함으로 시작된 교회입니다 (v. 19~21). 예루살렘교회에 닥친 핍박이 도리어 복음전파의 개기가 됐고, ‘주의 손이 함께 하심으로’ 첫 이방인 교회가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둘째, ‘최초로 선교하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안디옥’이라는 첫 이방교회일 뿐 아니라, 최초로 선교사를 파송한 교회입니다. 성도들이 주를 섬겨 금식하여 기도할 때에 성령께서 안디옥의 목회자였던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명하셨고, 그들은 순종함으로 최초로 선교사를 파송했습니다 (행. 13:2).

셋째, ‘말씀을 가까이하는 교회’입니다: 어떻게 이방인으로 구성된 이 교회가 이렇게 주의 은혜에 굳건히 머물고, 선교사를 파송하는 교회가 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영적 리더인 ‘바나바와 사울’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큰 무리를 가르쳤고’ (v. 26a), 성도 각자가 말씀에서 자라났기 때문입니다.

넷째,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린 교회’입니다: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26b) 그들의 삶의 모습을 보고 세상사람들이 ‘저들은 정말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들>이 맞아!’라고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날마다 말씀을 가까이하며 성령께 순종함으로 캠퍼스의 수 많은 영혼들과 땅 끝까지 주의 복음을 담대하게 증거하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 되시길 소망합니다.

 

[설교 전문]

            우리는 지난시간, 하나님의 이방인을 향한 구원역사에서 첫 출발이란 <고넬료와 그 가정>의 구원받는 사건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큰 그림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무엇인지?’를 함께 묵상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은 한사람 ‘아브라함’을 택하셔서 복의 근원 삼으시고 그를 통해 ‘이스라엘민족’이라는 육적 후사로 두셨고, 이것으로 그치지 않고, 또한 모든 이방민족 가운데 하나님을 경외하고 구원을 갈구하는 준비된 영혼들을 거절하지 않고 부르심으로 아브라함의 영적 후사 삼으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통일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인류에게 두신 태초 전에 감추어졌던 계획, 그러나 이제는 드러난 구원의 계획임을 큰 그림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이와 같이 고넬료의 구원사건으로 인하여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이 처음엔 ‘이방인들이 성령 받았다’는 사실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지만, 베드로가 ‘환상’과 ‘성령님’의 구체적인 지시하심으로 인하여 고넬료와 가족들에게 복음을 증거했을 때 그들이 즉시 성령충만 받게 된 것과 그로 인해 그가 확신 가운데 침례를 베푼 것을 소상이 설명했고, 성도들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v. 18)라고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크신 구원의 뜻이요, 성령의 역사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사도행전 11장>의 이어지는 말씀인 <19~30절> 끝절까지의 내용이 <안디옥 교회>에 대한 말씀입니다. 여기서 <고넬료>가 이방인으로 첫 구원받는 자라면, <안디옥 교회>는 초대교회 중에서도 첫번째 ‘이방교회’라는데 그 의미가 있습니다.

저는 몇 주 전에 초대교회에서 주님의 충성된 제자이자, 사람들을 포용하고 사랑으로 섬겼던 ‘위로의 사람’, <바나바>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때, 바나바가 어떻게 주님의 제자로서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었는가를 살펴보면서, 그것은 그 무엇보다도 그가 “성령과 믿음이 충만했기 때문”임을 말씀 가운데 확인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말씀인 것입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 지더라” (v.24) 라고 말입니다. 바나바가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사랑과 관용으로 성도들을 섬겨 나갔을 때 많은 사람들이 주께로 나아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먼저 이해해야 할 한가지는 <저자 누가>가 어떤 상황에서 이렇게 바나바가 성령과 믿음이 충만하다는 영적 상채를 언급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것은 제가 조금전에 <사도행전 11장> 본문전체를 요약 설명하면서 <행. 11장>은 크게 두부분으로 나눠볼 수 있다고 말씀드린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 첫 부분은 <1~18절>인데 ‘베드로가 어떻게 율법으로 금지된 이방인과 식사하고 교제하며, 이방인 고넬료와 그 가정에 침례 베풀게 되었는지를 예루살렘 성도들에게 소상히 설명하고, 이를 통해 그들이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깨닫았다는 것’이요, 두번째 부분 <19~30절>까지가 첫 이방인 교회인 <안디옥 교회>에 관한 기록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24절>의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v.24)는 내용은 저자 누가가 <안디옥교회>를 소개하는 가운데 언급한 내용이라는 점을 우리는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저는 오늘 말씀 가운데 성도 여러분과 함께 ‘안디옥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원합니다. 특별히 신약성경에 언급된 여러 초대교회 가운데서도 안디옥 교회는 우리가 계속해서 눈여겨보고, 우리 믿음의 공동체가 배워 나가야 할 믿음의 여러가지 장점을 지닌 교회인 것을 저는 믿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안디옥 교회의 특징일까요?그것은

첫째, ‘첫 이방인 교회’입니다: 안디옥 교회가 처음 형성된 상황을 <19~21절>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v. 19~21) 라고. 앞에서 살펴본데로 <행. 7장>에서의 스데반의 순교를 시작으로 예루살렘교회에 큰 핍박이 불어 닥침으로 사도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성도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었고, 이런 가운데 몇몇 성도들이 예루살렘의 북쪽지역에 위치한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렀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들 모두는 그 복음을 유대인에게만 전했었는데, 그 이유는 지난 주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환상과 성령의 지시하심을 통해 그의 율법주의라는 선입관과 편견을 깨트린 것과 같은 까닭인 것입니다. 이 지역으로 흩어졌던 성도들은 유대인들이었기에 이방인도 하나님께서 구원할 대상임을 의심했고, 여전히 베드로처럼 율법의 사고에 갇혀 있었기에 오직 유대인에게만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그 이름은 밝혀져 있지 않지만 그들 중 몇 사람이 안디옥 지방에 있는 헬라인에게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여기까지 안디옥 교회의 형성배경을 살펴보며 이해하게 되는 사실은, 첫째) ‘성령께서 예루살렘에 모여 있던 성도들을 핍박이라는 고통을 도구로 흩으심으로 안디옥까지 이르러 복음의 씨를 퍼트리는 개기를 삼으셨다는 사실’ 입니다. 그리고 둘째)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셨다는 사실’ 입니다. 몇몇 성도들이 이 지방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영접하고 주께로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게 된 것일까요? 그 핵심을 <21절>말씀은 이렇게 한마디로 정의합니다.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The Lord’s hand was with them)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손은 곧 ‘주님의 능력이요, 은혜요, 택하심이요, 주님의 축복인 것’입니다. 첫 이방인으로 구원받은 고넬료에서 우리가 이해할 수 있었듯이, 첫 이방교회인 안디옥 교회가 세워지게 되고 수많은 이방인이 회개함으로 주께로 돌아오는 역사는 ‘오직 주님의 영, 성령의 능력과 택하심의 역사요, 축복과 은혜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성도 이름도 알 수 없지만 성령의 도우심으로 율법주의의 편견이라는 낡은 옷을 벗고 믿음으로 순종한 소수의 성도들을 사용하셔서 주님께서 그의 선한 손으로 이방민족을 구원하셔서 세우신 첫 신앙공동체가 안디옥 교회인 것입니다. 그럼으로 첫 이방인교회, 안디옥 교회의 출발은 강력하고 전적인 성령님의 작품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 ‘최초로 선교하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안디옥’이라는 지역적 특성을 살펴보자면,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480 km 떨아진 곳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안디옥은 로마제국의 영토일 뿐 아니라, 수도 ‘로마’와 제2의 도시인 아프리카 북단의 ‘알렉산드리아’에 이어서 로마제국 전체에서 제 3의 도시였던 것이 ‘안디옥’이었습니다. 이 안디옥은 특별히 그 지역의 특성상 헬라 문화의 중심지역이자, 동서양의 문화가 융합하며 주요 상업의 중심지였고, 세계 각국에서 이주해온 대략 50여만명 (* 그 당시 예루살렘인구는 8~10만명)의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국제도시>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본다면, 이 안디옥이란 도시에는 로마제국의 각종 신들을 우상숭배 했던 여러 신전들이 가득찬 곳이었고, 그 신전에서 제사한다는 명목으로 매춘을 행했던 타락한 자들과 물질적 풍요로움과 육체적 쾌락을 추구하며 세상풍조에 휩쓸려 심각하게 타락한 도시가 안디옥이었습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서 안디옥교회는 세워졌던 것입니다. 앞서 잠시 살펴본 것처럼 구브로와 구레네 출신의 유대인 성도들이 안디옥 지역의 헬라인들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파할 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왔다는 놀라운 소식을 예루살렘 교회가 듣게 되게 됩니다. 그래서 예루살렘교회 리더들이 안디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런 영적 역사가 정확히 무엇인지를 확인하고자 파송한 사람이 바로 <바나바>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이런 안디옥의 영적 역사는 바로 <주의 손이 함께 하심>으로 가능한 역사임을 확인하고, 성도들에게 더욱 주의 믿음으로 굳게 붙어 있으라 격려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바나바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 고향 땅 다소에 가서 칩거하고 있던 사울을 찾아가서 안디옥으로 데리고 와서 함께 공동목회를 합니다. 물론 이 공동목회는 아름답게 열매 맺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정체가 <사도행전 13장>에서 안디옥교회가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사로 파송하는 사건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행. 13:2-3) 이렇게 하여 바나바와 사울은 안디옥 교회의 목회자일 뿐 아니라, 그 교회에서 파송한 최초의 선교사들이 된 것입니다. 성도들이 금식하여 합심으로 기도할 때에 성령님의 말씀을 분별함으로 자신들도 여전히 바나바와 사울과 같은 훌륭한 목회자가 필요했지만, 성령께 순종함으로 최초로 이방민족을 향해 선교사를 파송하는 교회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안디옥 교회입니다.

셋째, ‘말씀을 가까이하는 교회’입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의 전후문장에 기록된 각 사람들의 출신지역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면 놓치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사실 바나바는 앞의 <4장>에서 기록된 것처럼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었습니다 (행. 4:36). 그럼으로 바나바가 자신과 같은 고향 사람들인 구브로 출신 성도들이 안디옥 지역에서 복음 전파의 주축으로 쓰임 받게 된 것을 매우 기뻐했고, 이런 하나님의 은혜에 더욱 굳게 붙어 있으라 성도들을 권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 바로 앞의 <23절> 말씀인 것입니다.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v.23)라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성도 여러분에게 질문하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어떻게 우리는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을 수 있을까요?’ 여기서 우리가 이해해야 할 한가지 사실은 이 당시 대부분의 성도들은 이제 막 주의 복음을 믿고 영접한 새신자들 이란 겁니다. 영적으로 본다면, 이제 갓 때어난 <신생아>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갓 태어난 어린 아기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 무엇보다도 당연히 엄마의 젖이 필요한 것입니다. 바로 아기가 살아가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1) <영적 젖인 말씀을 먹어야>하는 것입니다. 이점을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잘 밝히고 있습니다.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벧전. 2:2)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도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 8:3)고 선언하셨습니다. 또 한가지 중요한 영적 아이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2) <성령께서 가르치게 해야>하는 것입니다. 성도를 진정으로 성장하게 하는 것은 ‘영적 젖’ 곧 ‘하나님의 살아 계신 말씀’임을 우리가 인정한다면, 그 영적 젖인 하나님의 말씀은 나의 노력과 의지로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는 사도행전을 시작하면서 “(주께서)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행. 1:2)라고 말합니다. 주께서 그의 택한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그분의 택한 열두사도들 뿐 아니라, 주님을 구주로 영접한 모든 성도들에게 주의 영 성령을 통해 말씀으로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아니고는 그 누구도 말씀의 진리와 하나님 아버지의 그 깊으신 뜻을 올바로 깨닫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고전. 2:10-11). 그럼으로 하나님의 성령과 믿음에 충만해 있던 두 지도자, 바나바와 사울은 함께 일년간 안디옥 교회에서 이 큰 무리를 말씀으로 가르치고 훈련시켜 나갔던 것입니다.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v.26a) 어떻게 안디옥 교회가 주의 은혜에 굳게 붙어 있으며, 세계열방을 향한 첫 선교하는 교회로 쓰임받을 수 있었는지의 그 열쇠는 이와 같이 매일 매일 ‘말씀을 더욱 가까이하고, 순종하여 열린 마음으로 성령께서 말씀을 가르치게 한 결과’ 라고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아포슬교회는 말씀을 가까이하는 공동체입니까?

넷째,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린 교회’입니다: 오늘날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을 ‘그리스도인’, 영어로는 ‘Christian’이라 부릅니다. 그런데 이렇게 ‘예수 믿는 자’를 ‘그리스도인’ 곧 ‘크리스챤’이라고 처음 불리게 된 개기가 안디옥교회 성도들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6절>이 이것을 밝힙니다.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26b)라고. 여기서 ‘그리스도인’이란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그리스도에 속한 사람’이란 의미입니다. (유머/ out of Christ?!) 그렇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생명으로 구원받아 살아가는 우리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입니다.  물고기가 물을 벗어나면 살수 없듯이, 우리 믿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 밖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당시의 시대상황이 왜 이렇게 성도들을 불렀는지 이해하게 하는데, 그것은 이 당시 세상을 지배했던 로마제국의 황제 시저는 인간들에게 신격화되어 있었고, 그럼으로 그들은 스스로를 나는 ‘시저에 속한 사람’이란 의미로 <시저리안> (Caesarian)이라고 불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 눈에도 예수님을 믿는 그분의 제자들은 ‘가이사황제에 속한 자들’이 아님을 분명히 알았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믿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이라고 세상사람들이 인정한 것입니다. 이때부터 비로소 우리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인>이라 불렸다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는 것과 남들이 우리를 보고 ‘그들은 그리스도인이 맞아!’라고 인정하는 것과는 매우 큰 차이가 있음을 우리는 잘 압니다. 한마디로 안디옥교회 성도들은 죄와 부패로 얼룩진 세상에서 주를 믿는 순결한 빛과 소금의 삶을 살아감으로 ‘그리스도인’ 곧 ‘그리스도께 속한 자’라는 소중한 이름을 얻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아포슬 교회는 대부분 청년 학생들이고, 그것도 맴버들의 특성상 비교적 짧은 기간 있다가 교회를 떠나게 됩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생각해 볼 때, 우리 아포슬만큼 선교적인 교회도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 아포슬교회의 주인은 저도 아니요, 여러분도 아니요,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믿습니다. 바라기는 우리 각자가 얼마나 오래 함께 신앙생활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교회를 이끌어 가시는 그리스도의 영, 성령께 순종함으로 말씀에서 더욱 자라나고, 사랑으로 서로를 섬기며, 캠퍼스와 이웃 가운데 구원받지 못한 영혼에게 기쁨과 확신 가운데 주의 복음을 전하는 ‘진정한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 모두 되시길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