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h 3, 2024

“이방인의 구원” (The Salvation Of Gentiles)

Preacher:
Passage: 사도행전 (Acts) 10:44~46
Service Type:

“이방인의 구원”

(The Salvation Of Gentiles)

3-3-24

본문말씀: 사도행전 (Acts) 10:44~46

44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While Peter was still speaking these words, the Holy Spirit came on all who heard the message.)

45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The circumcised believers who had come with Peter were astonished that the gift of the Holy Spirit had been poured out even on Gentiles.)

46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For they heard them speaking in tongues and praising God.)

[설교 요약]

우리는 지난 시간, 하나님께서 로마군대 백부장이었던 경건한 고넬료와 그 가정을 어떻게 그 크신 은혜로 구원하셨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고넬료와 그 가정의 구원은 단순히 단순히 ‘몇 사람의 구원받음’으로 그치지 않고, 이들을 시작으로 모든 이방 민족에게로 구원의 역사가 흘러가는 중대한 사건인 것입니다.

저는 이와 같이 이방인의 구원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구속역사는 무엇인지를 함께 살펴보기 원합니다. 다시 말해, 무엇이 이방인의 구원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뜻일까요? 그것은

첫째, ‘아브라함을 통해 이스라엘민족을 택하심’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아브라함’에게서 시작됩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창. 12:1)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복의 근원>으로 삼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육적 후손인 이스라엘민족은 율법의 정신을 깨닫지 못하고, 이 땅에 오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함으로 구원에서 제외되었습니다 (롬. 9-11장).

둘째, ‘고넬료 가정을 시작으로 이방민족을 구원하심’입니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유대인의 강팍한 마음한 마음까지도 사용하셔서 이방인의 구원의 출발점으로 삼으시는 것입니다. 이제 고넬료 가정을 그들의 믿음을 통해 구원하심으로 모든 이방민족에게 생명의 복음이 퍼져가게 하십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행. 10:34),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이 되게 하십니다.

셋째, ‘만방이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통일되게 하심’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아브라함에서 시작된 구원의 역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하셔서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에게로 확장시키시고 완성시켜 가십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오랫동안 감추었다가, 이제는 드러난 구원의 비밀’이라고 에베소 성도에게 밝혔습니다 (엡. 1장).

이와 같이 만세전에 예정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로 인하여 우리는 구원받았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고, 그 구원의 역사에 쓰임 받지 않으시겠습니까?

 

[설교 전문]

            하나님은 로마군대 백부장이었던 경건한 고넬료와 그 가정을 그 크신 은혜로 구원하였습니다. 지난 시간 구체적으로 살펴본 것처럼 하나님은 그의 천사를 보내셔서 고넬료에게 이 구원의 사건을 위한 구체적 지시를 하셨고, 또한 초대교회의 대표적인 리더였던 사도 베드로에게도 ‘부정한 짐승’의 환상과 성령의 지시하심을 통해 ‘첫 이방인의 구원’이라는 이 역사적인 사건을 그 권능과 지혜를 통해 완벽하게 이끌어 가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 베드로를 대표로 한 유대민족들의 오랜 기간 걸쳐오면서 굳어져버리고 변질되어버린 율법정신, 곧 ‘율법주의’ (legalizm)으로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이라는 새 포도주를 담을 수 없음을 살펴보았습니다. ‘율법주의’라는 낡은 가죽부대로는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이라는 새 포도주를 담기에는 너무 낡고 헤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원래의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의 정신은 단순히 음식을 먹고 안 먹는 것이나, 서로 구별되고 나누어지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이것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의 거룩한 백성으로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 구원의 복음에서 핵심의 하나는 ‘하나님은 구원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된 구원은 유대인 뿐 아니라 이방인, 즉 모든 만방 가운데 차별없이 그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디모데에게 설명하듯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딤전. 2:4)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천국복음을 시작하시고, 그 제자들을 통해 ‘예루살렘과 온 유대’에 돌아다니며 유대인들에게 그 생명의 복음을 전하게 하실 뿐 아니라, 이제 주의 제자된 우리 모두를 통해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이 편만하게 증거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모든 민족과 족속들, 유대인들이 이방인이라고 부르는 모든 열방 가운데 하나님 우리 아버지는 복음이 편만하게 증거되기를 기뻐하시고 행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오늘 본문말씀을 중심으로 ‘고넬료와 그 가정’의 구원받는 이 중요한 사건을 통하여 큰 그림에서 볼 때 이방인의 구원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구속역사는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이해해 보고자 합니다. 다시 말해, 무엇이 이방인의 구원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뜻일까요? 그것은

첫째, ‘먼저 아브라함을 통해 이스라엘민족을 택하심’입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구원의 큰 그림은 <창세기 12장>에서 볼 수 있듯이  ‘아브라함’이라는 한사람을 부르심으로 시작됩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창. 12:1)라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또한 그에게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약의 역사에서 알 수 있듯이, 아브라함에서 이어지는 믿음의 계보는 아브라함이 100세에 낳은 이삭, 이삭에서 야곱, 그리고 야곱의 12아들로 이어짐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 야곱의 열 두 아들은 장차 이스라엘민족을 대표하는 12지파의 조상이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출발해서 수없이 많은 그의 후손, 이스라엘 민족으로 이어지는 이런 육적 후손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민족에게 두신 뜻이 무엇일까?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스라엘민족, 그들 자신들은 마치 ‘아브라함의 육적 후손인 자신들 만이 하나님의 유일한 택함 받은 민족’인양 우쭐대고, 선민의식에 사로잡혔는지 모르겠지만, 이것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하여 이스라엘민족을 택하신 뜻이 아닌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민족을 택하신 뜻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무엇보다도 ‘그들 만을 구원하신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통하여 ‘하나의 본보기’를 삼고자 하심 일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삼아 주신 복이 얼마나 풍성하게 그의 후손에게 넘치는지를 보여주시고자 함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민족을 통하여 그의 선한 율법을 주시고, 그의 택한 선지자들을 통해 이스라엘민족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 합당하게 살아가도록 말씀으로 축복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율법과 선지자의 가르침은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주께서 밝혀 주셨듯이,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 6:5)는 것이요, 또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레. 19:18)라는 두 말씀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육적 후손인 이스라엘민족을 택하셔서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인지를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을 명하심을 통해 복 주실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들은 이 선하신 사랑의 명령을 지키지 못한 것입니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약속하신 구원은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이해해야 할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구약의 여러 예언자들을 통해 그들을 구원할 구원자 곧 메시야 (=그리스도)를 약속하셨다는 것입니다. 바로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아브라함에게서 시작하셨고, 그 이후 이새의 아들 다윗의 뿌리에서 구원자를 보내 주실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점을 사도 바울은 <행. 13장>에서 이렇게 잘 설명합니다.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행. 13:22~23)고 말입니다. 실제 정통 유대교 신도들은 다윗의 후손 가운데서 메시야 (=구원자)가 나올 것임을 믿었고, 그렇게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도 유대인들은 그 메시야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유대인들은 수천년간 자신을 구원할 메시야를 기다렸으나, 정작 그분이 자신의 땅에 오셨을 때 그분을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그 중심에는 ‘메시야’에 대한 잘못된 선입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메시야는 다윗왕과 같은 강력한 왕권으로 로마제국의 압제에서 자기민족을 힘으로 독립시켜 줄 수 있는 메시야여야 하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과 같은 ‘고난당하고 죽는 메시야’가 아니라, 빵문제를 해결하고, 세상을 강력하게 다스리고 통치하는 현실적인 메시야를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대다수 유대인이 다윗의 씨에서 나셔서, 이미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지 않고 거부함으로 구원에서 제외된 안타까운 이유인 것입니다.

둘째, ‘이제 고넬료 가정을 시작으로 이방민족을 구원하심’입니다: 지난 시간 자세히 확인했듯이, 로마 군대 백부장이었던 고넬료와 그 가정의 구원사건은 기독교회 2천년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구원 사건입니다. 그 이유는 고넬료 가정의 구원을 시작으로 이제 본격적으로 이방을 향한 복음의 강력한 생명의 역사는 퍼져 나갔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방인의 구원’이라는 원대한 주제에 관련한 <구약 성경>에서의 예언은 이사야서와 여러 곳에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앞서도 언급했듯이, 선민의식에 사로잡혀서 하나님의 이방 족속을 향한 원대하신 구원의 계획을 간과하거나 그들의 영적 어둠으로 인하여 깨닫지 못하고 무시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후에 이방의 사도인 바울은 <에베소 성도>에게 ‘이방인의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오랫동안 감추어졌던 뜻을 이렇게 놀랍게 밝혔습니다.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이라” (엡. 3:3~6)

여기서 사도 바울이 밝힌 것처럼, ‘이방인의 구원’은 ‘영원 전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신비로운 계획하심’이었으나, 이제는 드러난 비밀인 것입니다. 이것을 다르게 표현한다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 먼저 <이스라엘민족>이라는 ‘육적 자손’만이 아니라, 이제 그 구원의 비밀이 밝히 드러남으로 <모든 이방민족들>을 믿음으로 부르셔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영적 자손’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바울은 이런 우리 거듭난 성도의 신분을 <로마서>에서 이렇게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롬. 4:16)라고.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신 것은 그의 육적 후손인 이스라엘민족 뿐 아니라, 장차 믿음을 통해 그의 영적 후손이 될 모든 이방민족까지도 구원코자 하시는 하나님의 실로 원대한 계획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에 전한 복음의 메시지와 같이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닫았도다” (행. 10:34-35)는 것입니다. 이 점을 <Grace Church>의 존 맥아더목사는 <사도행전10장>을 설교하면서 이렇게 한 문장으로 아름답게 표현했습니다. “God never reject preparing hearts!”라고. 무슨 말일까요?! ‘하나님은 결코 생명의 복음에 목말라하고, 믿음으로 그분께 나아오는 구원받기를 원하고 구하는 준비된 심령을 거절하지 (=저버리지)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결코 사람들처럼 외모를 판단하지 않으시고, 각 나라와 민족 가운데 오직 자신을 경외하고 의를 행하는 모든 자들을 받으시는 선하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셋째, ‘만방이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통일되게 하심’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방민족의 구원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런 원대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은 ‘한사람 아브라함을 택하셔서’ 이스라엘민족 뿐 아니라, 모든 이방민족까지도 믿음으로 그의 육적 그리고 영적 후손으로 삼으셨음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구원받고, 하나로 연결될 수 있는 오직 하나의 근거를 아십니까? 그것은 오직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로 가능한 것입니다. 그분은 본질상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독생하신 아들이시지만,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함으로 우리를 구원케 하시고자 우리 인간과 같이 육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구원자, 곧 그리스도이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택하여 ‘복의 근원’으로 삼으시고, 그에게 복이 그의 후손을 통해 흘러 넘치게 하시고자 약속하신 핵심입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갈. 3:14) 라고 바울은 ‘아브라함의 복’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분명히 밝힙니다.

이점은 이어지는 <16절>에서 더욱 분명히 드러납니다.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갈. 3:16)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복은 여러 자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한 명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열방 가운데 흘러 넘치게 됨을 하나님은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주 하나님 아버지의 구원의 역사는 매우 일관성이 있으면서도, 한편 점점 더 확장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은 이스라엘 민족을 지나서, 이방인 고넬료와 그 가정으로 흘러 넘치고, 이제 모든 열방을 향해 뻗어 나가는 것입니다.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통일됨을 통하여 이 복이 만방으로 뻗어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랫동안 비밀로 감추어졌다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드러나게 된 복음의 비밀을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엡. 1:8~10)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우리 인류를 향한 원대한 구원의 계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시고, 완성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죽으신지 사흘만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를 다시 살리심으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고, 승천하시면서 이렇게 제자들에게 명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행. 1:8)라고 제자들에게 당부하시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영원 전부터 감추었다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밝히 드러나고 선포된 구원의 복음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를 지나 이제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흘러 넘쳐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위대한 구원의 복음은 민족과 신분과 성별과 그 어떤 우리의 조건에 제한받지 않으시고 오직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롬. 10:13)고 사랑과 은혜로 부르십니다. 주님은 지금 ‘들판에는 희어져 추수할 곡식이 넘쳐나는데, 추수할 일군이 없음’ (요.4:35)을 보시고, 우리를 향해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은 적도다” (마. 9:37)고 도전하십니다. 바라기는 오늘 이 예배에 참석한 우리 아포슬 성도 한사람 한사람이 하나님 아버지의 원대한 복음을 듣고, 기쁨 가운데 자원하는 심령으로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을 예루살렘과 온 유대를 지나,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증거하는 아름다운 증인의 삶을 사시길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