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h 17, 2024

“베드로의 투옥과 탈옥” (The Imprisonment And Escape Of Peter)

Preacher:
Passage: 사도행전 (Acts) 12:6~7
Service Type:

“베드로의 투옥과 탈옥”

(The Imprisonment And Escape Of Peter)

3-17-24

본문말씀: 사도행전 (Acts) 12:6~7

6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The night before Herod was to bring him to trial, Peter was sleeping between two soldiers, bound with two chains, and sentries stood guard at the entrance.)

7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Suddenly an angel of the Lord appeared and a light shone in the cell. He struck Peter on the side and woke him up. “Quick, get up!” he said, and the chains fell off Peter’s wrists.)

[설교 요약]

오늘 <사도행전 12장>의 베드로의 투옥 그리고 주의 사자들에 의해 옥에서 자유하게 되는 놀라운 사건을 접하게 됩니다.

사실 베드로가 옥에 갇히게 된 것은 이때가 처음이 아니지만 (행. 5장), 오늘 베드로의 투옥은 단순한 위협이 아니라, 처형되는 극심한 위기의 순간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가로막는 악한 세력들의 방해를 무력화시키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을 말씀으로 목격하게 됩니다.

여기서 ‘왜 헤롯왕은 교회를 핍박하려는 것인가?’ 그것은 그의 정치적 계략임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헤롯이 사도 야고보를 칼로 처형했을 때,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이번에는 베드로를 처형하여 그들의 지지를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행. 12:1~3). 헤롯은 아무 죄도 없는 성도들을 희생양삼아 자신의 정치적 야욕을 성취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를 탄압하고자 한 헤롯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고, 하나님의 말씀은 더욱 흥왕하게 퍼져 나갔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베드로의 탈옥을 통해 우리가 이해할 교훈일까요?그것은

첫째, “우리의 무기는 기도라는 것”입니다: 이제 날이 새면 베드로가 잡혀 나가 처형되는 절대절명의 상황 속에서 성도들은 자지 않고 깨어서 합심으로 기도했습니다 (v.5). 성도의 눈물의 기도는 하늘 보좌를 움직이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을 대적함은 어리석다는 것”입니다: 헤롯은 베드로를 옥에 가두고 철통같이 감시하고 처형시키고자 했지만, 하나님은 그의 천사를 보내어 그의 계획을 수포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대적한 어리석은 헤롯은 ‘벌레가 먹어 죽는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었습니다 (v. 23).

셋째, “나의 감옥을 깨닫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나를 얽매고 감금하는 <감옥>은 무엇인가?’에 대해 깨닫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베드로 한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그분의 자녀들이 ‘육신의 죄’라는 감옥에서 해방되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롬. 8:2).

날마다 성령을 좇아 행함으로 우리를 얽매는 죄와 싸워 승리하며, 주께서 약속하신 풍성한 열매 맺는 복된 성도 여러분 되시길 기대합니다.

[설교 전문]

            오늘 <사도행전 12장>의 베드로의 투옥 그리고 주의 사자들에 의해 옥에서 자유하게 되는 놀라운 사건을 접하게 됩니다. 사실 베드로는 이렇게 유대 종교지도자들에 의해 옥에 갇히게 된 것이 이때가 처음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도행전 5장>을 살펴보았는데, 사도들이 예루살렘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주의 복음을 전하고 각색 병든 자를 치유했을 때,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사도들의 복음전파를 방해하고 그들을 위협하고자 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러나, 그 밤에 주의 사자가 옥문을 열고 그들에게 지시하기를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행. 5:20) 명했고, 그들이 담대히 나사렛 예수의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말씀에서 베드로의 투옥은 사도행전에서 볼 때 두번째 투옥이요, 첫번째와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위험한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말씀은 세상의 권력자들과 복음을 가로막는 모든 악한 세력들의 방해를 무력화시키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선하신 뜻과 복음으로 승리케 하시는 성령의 권능을 깨닫게 됩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겪는 고난과 장애물로 인하여 낙심하고 자포자기하지 않고, 도리어 주께 간구함으로 이 장벽을 성령과 함께 뚫고 승리하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소망합니다.

제가 앞서 오늘 본문의 <베드로의 투옥>이 두번째의 투옥이라 말씀드렸는데, 이것은 매우 심각한 것임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행. 12장>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에 헤롯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 새 때는 무교절 기간이라” (v. 1-3)라고. 여기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헤롯 왕>의 정확한 이름은 <헤롯 아그립바 1세>입니다. 그리고 성경이 언급된 그의 계보를 보자면, 로서 예수님의 탄생시 아기 예수님을 죽이고자 했던 왕이 <헤롯 대왕>인데 바로 그의 할아버지였고, 또한 침례 요한을 목 베어 죽게 한 <헤롯 안티파스>가 그의 삼촌이 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알 수 있듯이 헤롯 왕 그 자신은 사도 요한의 형제이기도 한 야고보를 죽이고 교회를 핍박했던 왕인 것입니다.

여기서 한가지 이해해야 할 상황은 지금까지 교회를 핍박했던 주된 세력이 유대종교 지도자들 이라면, 이제는 유대 왕인 헤롯 왕, 곧 그 당시 정치세력의 최고권력자인 왕이 교회를 핍박한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왜 헤롯은 교회를 해하려 한 것일까요? 교회가 그에게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아니면 성도들이 무슨 나쁜 짓을 했습니까? 아닙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가 단지 정치적인 목적에서 그러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당시 그는 갈릴리의 분봉왕이자, 글라우디오 황제의 위임을 받은 유대의 총독이었습니다. 그럼으로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그러하듯 그 또한 ‘민심’에 매우 민감하고 유대지역을 확실하게 정치적으로 장악하고자 안간힘을 썼던 것입니다.

그런 와중에 ‘그리스도의 교회’가 점점 더 왕성하게 성장했고,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율법주의를 고집하는 유대인들이 이런 그리스도인들을 매우 싫어한다는 것을 헤롯이 파악하고는 사도 야고보를 칼로 죽었던 것입니다. 헤롯은 아무 잘못도 없는 성도들을 핍박하여 유대인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그들의 지지를 통해 정치적 실익을 챙기고자 하는 교활한 정치꾼이었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12:3>에서 밝히고 있듯이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그가)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했던)” (v. 3)것입니다. 이렇게 야고보 사도를 희생양 삼아 칼고 죽었는데, 이것을 유대인들이 기뻐하는 것을 보고 이제는 교회의 대표적 지도자인 베드로를 처단하고자 헤롯은 또 다시 칼을 빼든 것입니다.

그 내용이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사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v. 4-5)라고. 이제 헤롯은 본격적으로 베드로를 잡아 가두었는데, 이것은 단순한 위협정도가 아니라 이미 야고보를 죽였듯이 베드로도 칼로 죽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는 그 처형날짜를 <유월절 기간>이 끝나는 날, 곧 <무교절 다음날>을 D-day로 잡았는데, 그 이유는 먼저 ‘유대인들은 유월절 기간에는 사람을 사형시킬 수 없기 때문’이고, 또한 이 날이 명절 끝날로서 ‘많은 유대인들이 모여 있어서 베드로를 처형하는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그가 판단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함으로써 유대인들의 마음을 완전히 얻고자 하는 정치적인 계략을 실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베드로 한사람’을 감옥에 가두는데 무려 ‘4명씩’ 4조, 즉 16명의 보초군인들을 배치시켜 돌아가면서 삼엄하게 지키게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어지는 말씀이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v. 6)라고. 이렇게 헤롯이 사도 베드로를 살벌하게 지키는 이유는 제가 앞서 언급했듯이 베드로를 포함한 사도들이 천사들의 도움으로 이미 감옥에서 탈옥하게 된 전례가 있었기 때문 (행. 5장)일 뿐 아니라 헤롯은 베드로를, 아니 그의 뒤에 계신 하나님을, 두려워 했기 때문임을 이해하게 됩니다.

헤롯은 온 힘을 다해 베드로를 가두고 죽임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자 했지만, 그 결과는 실패였습니다. 그는 결코 하나님의 손을 막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제 저는 성도 여러분과 함께 베드로의 탈옥사건을 통해 우리가 이해해야 할 영적 교훈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베드로의 탈옥을 통해 우리가 이해할 교훈일까요?그것은

첫째, “우리의 무기는 기도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행. 12:6~7>은 매우 긴박한 상황임을 우리는 잘 알 수 있습니다.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v. 6a)라고 기술된 상황에서 알 수 있듯이, 이제 이 밤을 지나 날이 밝으면 예정했던 대로 헤롯은 유대인들을 기쁘게 하고자 베드로를 감옥에서 끌고 나가 처형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런 절대절명의 상황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는 베드로는 깊은 잠을 자고 있습니다.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v. 7)라고. 만약 여러분이 베드로의 입장이 되어 날이 밝으면 당장 처형당하는 상황이라면, 이렇게 베드로처럼 잠잘 수 있을까요? 저라면 불안하고 무서워서 못 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이런 깊은 잠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요? 저는 그의 주를 향한 신뢰와 온전한 맡김에서 기인했다고 믿습니다.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그 어떤 인간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고,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능력으로라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물론 베드로도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했지만, 그가 확신한 것은 주님의 은혜와 함께 하심이었기에 모든 것을 주께 맡기고 이 상황에서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시편기자의 고백과 같이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 (시. 4:8)라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지금 베드로의 처형을 바로 눈앞에 둔 이 마지막 순간에도 자지 않고 함께 모여 깨어 눈물로 간절히 그를 위해 기도했던 성도들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성도의 ‘기도와 찬양’은 하늘문을 여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나중에 <사도행전 16장>에서도 보면,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서 기쁨 가운데 ‘기도와 찬양’을 했을 때 옥문이 열리는 기적이 벌어졌던 것을 보게 됩니다 (행. 16:23~26). 주석가 매튜헨리는 이것을 한마디로 “교회의 적들과 싸우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기도와 눈물’이다”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베드로가 천사의 도움으로 탈옥해서 성도들이 함께 모여 기도했던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집에 가서 문을 두드렸는데, 그의 음성을 들은 ‘로데’라는 여자아이가 사람들에게 달려가서 ‘베드로가 왔다’고 말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그들은 “네가 미쳤다” (v. 15a)라고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가 계속 참말이라 했을 때, 그들은 “그러면 그의 천사라” (v. 15b)고 말했던 것입니다. 이런 아이러니컬한 사실은 <성도들은 진정으로 눈물과 기도로 하나님께 간절히 베드로의 구원을 위해 기도했는데, 그가 정작 ‘문밖에 와 있다’는 말은 믿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고 나서는 ‘설마 그것이 이루어졌을까?’하고 믿지 않는 것이 혹시 우리의 모습은 아닐까요?

둘째, “하나님을 대적함은 어리석다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 본문의 <베드로의 탈옥사건>은 사도행전의 여러 표적과 이적사건 가운데서도 가장 손에 땀을 쥐게 하고,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를 영광스럽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제가 얼마나 헤롯이 삼엄하게 베드로를 감옥에서 지켰는지 이미 말씀드렸는데, 오늘 말씀에서 보듯이 그는 4명의 군인이 일조가 되어 군인 2명이 한 명은 베드로의 오른손, 그리고 다른 한 명은 그의 왼손에 각각 자기 손을 쇠사슬로 서로 묶어서 도망가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문 밖에서 두명의 군병으로 지키며 이렇게 1조가 4팀으로 돌아가며 철통같이 지키게 했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죄수가 도망갈 한치의 빈틈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슨 일이 벌어진 것입니까? 홀연히 주님의 사자가 나타났고 감옥안을 광채로 가득 채우고, 천사가 깊이 잠든 베드로를 그냥 흔들어도 깨지 않음으로 옆구리를 쳐서 깨울 정도였지만, 옆에 있던 두 병사는 전혀 이 상황을 의식하지 못한 것입니다. 아마도 주께서 그들을 깊은 잠에 빠지게 한 것이라 여겨집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다윗을 잡고자 했던 사울 왕과 그의 많은 병사들을 평야와 동굴에서 두번씩이나 깊게 잠들게 하셨듯이 말입니다.

이렇게 천사가 베드로를 깨워 급히 “일어나라”고 했을 때, 손목에 묶었던 쇠사슬이 벗어졌습니다 (v. 7). 뿐만 아니라 천사가 그에게 “띠를 띠고 신을 신으라” (v.8a) 그리고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v. 8b)고 명했고, 그가 그렇게 하여 그를 따라 갈 때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조차 분별하지 못하고, 스스로 환상을 보는 것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10절>입니다.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시내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리는지라 나와서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v. 10)라고. 베드로가 이중으로 지키고 있는 첫째와 둘째 파숫군의 앞을 지나 갔지만 그들은 전혀 그를 알아 차리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굳게 잠긴 쇠문에 이르렀을 때에 그 문이 저절로 열리게 되었고, 그는 시내로 통하는 거리로 나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천사가 떠난 것입니다. 마치 지어낸 이야기 같은 실로 믿기기 어려운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오늘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교훈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 세상 그 누구도 그 어떤 위정자도 하나님의 뜻과 능력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백성을 이끌어 가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의 손을 바로의 막강한 군사력으로 막을 수 없었고, 베드로를 자유케 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의 손에서 헤롯이 쳐 놓은 철통 같은 감옥이라는 철벽도 가로막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헤롯의 실패는 이것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20~23절>에서 저자 누가의 기록에서 볼 때, 헤롯은 두로와 시돈 지방에서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아니했을 때, 주의 사자가 그를 침으로 벌레에게 먹혀 죽게 된 것입니다 (v. 23).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고, 그분을 대적하는 자는 심히 어리석은 자인 것입니다. 헤롯과 같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는 반드시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v. 24)고 누가는 대조적으로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는 망하게 되지만, 그분을 경외하는 자는 그분의 생명과 진리의 말씀으로 인하여 물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푸른 잎사귀와 풍성한 열매를 맺음으로 점점 더 자라나는 것입니다.

셋째, “나의 감옥을 깨닫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사건과 같은 하나님의 강력한 능력의 임재하심이 언제나 우리 크리스챤의 삶에 적용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우리는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본문과 같은 사도시대가 아닌 오늘날과 같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크리스챤에게 있어서 이런 사건이 문자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불가능하지는 않터라도, 매우 드문 경우임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할 한가지 영적 교훈이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 중요한 영적 사실은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의 베드로를 죽음의 위기에서 자유케 하시는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와 같은 권능의 은혜는 단지 사도시대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모든 시대와 장소에서 적용됨>을 우리에게 말씀하신다고 저는 믿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 성도 한사람 한사람이 육체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겪는 수없이 많은 상황 가운데 하나님은 지금도 그분의 선하신 뜻과 은혜를 따라 우리들을 권능의 손으로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위기와 절망적인 상황에서 건져 내시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자신의 든든한 방패 되시고, 환란날에 피할 산성 되신 하나님 아버지를 이렇게 고백하고 송축합니다.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 ~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시. 3:1,3,6)라고. 이제 제가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며 성도 여러분과 나누고자 하는 한가지 사실은 ‘다윗과 같이 우리 각자는 날마다 순간마다 수없이 많은 외부에서 혹은 내면에서 비롯된 환난과 고난의 순간들을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녀라고 해서 이런 아픔과 고통을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고백했듯이, 우리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확신해야 할 것은 <나를 공격하는 환난과 핍박이라는 ‘감옥’이 나를 거꾸러트릴 수 없고, 가두어 둘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때로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치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 (롬. 7:19) 모순되고 연약한 삶을 통해 실망하고 좌절하기도 하지만, 나의 방패되시고, 나의 피할 바위 되신 신실한 하나님 아버지로 인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마침내 성령으로 일어서서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 (롬. 8:2)을 우리는 깨닫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는 더 이상 뒤로 물러나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우리를 속박하는 정신적인 영적인 감옥에 갇혀 있을 자가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현재 여러분을 속박하고 가두는 육적, 정신적 혹은 영적 감옥은 무엇입니까? 왜 여러분은 그 속에 갇혀 있습니까? 그러나 우리 성도가 뒤로 물러나 침륜에 빠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바라기는 하나님을 참 사랑하고 그 선하신 아버지를 신뢰하는 그분의 자녀답게 이 고난과 핍박과 상처와 갈등이라는 감옥을, 그리고 암담한 현실과 두려운 미래라는 장벽을 눈물과 기도를 통해 믿음으로 통과하셔서, 주께서 약속하신 풍성한 삶을 누려 나가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