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il 30, 2023

“나타날 영광” (The Glory That Will Be Revealed)

Preacher:
Passage: 로마서 (Romans) 8:17~18
Service Type:

“나타날 영광”

(The Glory That Will Be Revealed)

4-30-23

본문말씀: 로마서 (Romans) 8:17-18

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설교 요약]

            지난 몇주간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그때 주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에베소서 1장>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성령의 도우심으로 밝힙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에베소서/Ephesians 1:4-5)라고.

그렇다면, ‘무엇이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하신 뜻일까요?’ 그것은

첫째,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그를 믿는 자를 죄 용서 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그분을 믿는 모든 자들의 죄를 용서해 주신 것입니다.

둘째, ‘더 풍성한 삶을 주시고자 함’입니다: 주님은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10:10)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실 뿐 아니라, 더 풍성한 삶을 주시고자 이 땅에 오셨다고 밝히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풍성한 삶일까요? 그것은 단순히 ‘물질적인 풍성함’만이 아니라, ‘육신의 병마’에서 벗어나고, ‘마음의 상처와 고통’에서 치유함 받고, 더 나아가 ‘영적 미성숙과 침체’로부터 자유케 되는 것이 모두 풍성함 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관점에서 구원받은 자녀가 누릴 풍성함을 영적으로 잘 설명하는 말씀이 오늘 ‘로마서 8장’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롬. 8장>에서 우리 성도가 누릴 풍성한 삶을 설명하면서, 이것은 곧 그리스도의 영 성령의 사역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롬. 8:1~16).

사도는 <롬. 8장>을 통해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리게 되는 현재의 <영적 풍성함과 미래의 영광>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 성도의 놀라운 신분을 우리가 깨닫고, 또한 누릴 수 있는 것은 ‘양자의 영’ (the Spirit of adoption)되신 성령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후사’ (heirs of God), 곧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모든 유업’을 이어받을 상속자임을 우리 마음에 확정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왜 우리가 그 어떤 현재의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싸워 이겨 나가야 하는 이유인지?’하는 것입니다. 왜냐면, 현재의 고난은 장차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에게 주어질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v.18).

바라기는 성령의 충만하신 은혜로 현재의 풍성을 누리고 미래의 영광을 소망하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기대합니다.

[설교 전문]

            저는 어릴 적에는 유명한 화가가 되고자 꿈꾼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청년시절, 한때는 돈 많이 버는 사업가를 꿈꾼 적도 있습니다. 사실 그 사람이 어떤 꿈을 꾸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꿈이 그 사람의 인생을 바꿔 놓기 때문입니다. 물론 무엇을 꿈꾼다고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꿈꾸지 않으면 아예 그렇게 될 가능성이 없겠죠!? 저는 인간이 꿈꿀수 있는 가장 원대하고 복된 꿈을 꾼 한사람이 사도 바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는 오늘 이런 사도 바울의 꿈을 함께 나눠보고자 합니다. 아니 이것은 단지 사도 바울만의 꿈이 아니라, 모든 구원받은 성도의 꿈이요,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그의 자녀들에게 주신 꿈임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독생하신 아들을 통하여 이루시고 약속하신 꿈이요, 그의 영, 성령을 통하여 확증해 주신 꿈입니다. 곧 우리 구원받은 성도의 현재의 풍성 함이요, 미래의 영광된 꿈인 것입니다. 이런 영광된 미래를 점점 더 이해하고 꿈꿀 수 있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소망합니다.

지난 몇주간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인지? 그리하여 이루신 것이 무엇인지를 부활절을 전후하여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그때 저는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데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셨음’을 함께 나눴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구원이라는 말은 성도의 영생의 삶을 결정하는 핵심이지만, 문제는 이 구원이라는 말이 매우 포괄적이고 최종적인 개념이다 보니, 우리 성도들이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우리가 간과해서는 않되는 것입니다. 예컨대, 이 ‘구원받았다’는 것을 ‘죽어서 천국 간다’는 것으로만 이해하는 크리스챤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그분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고자 함’일진데, 그 구원은 단지 ‘죽어서 천국감으로 완성된다’라고 오해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적어도 지난 몇주간 저와 함께 <주님의 이 땅에 오신 목적>의 메시지를 함께 나눈 우리 성도 여러분 중에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한 분도 없기를 바랍니다. 저는 성경에 나타난 주님의 오신 목적에 대해 나누면서, 그것은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하신 뜻을 이루기 위해 주님은 이 땅에 오셨다고 했습니다 (엡. 1:4-5).

그렇다면, ‘무엇이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하신 뜻일까요?’ 그것은 첫째), 우리가 이미 나눈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죽으심으로 그를 믿는 모든 자를 죄 용서하시고자 함’입니다. 그를 믿는 모든 자를 구원하여 주심으로,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앞서 살펴 본대로 ‘천국을 소유하게 되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여기서 <천국을 소유했다>는 뜻은 우리 구원받은 자가 ‘죄 용서함’ 받아 첫 사람 아담이 범죄하기 전의 완전한 인간의 상태로 돌아간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구원받은 우리 성도의 상태는 단순히 ‘죄 용서함’을 받은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놀라운 특권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두번째),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예정하신 뜻?’이 될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예수님께서 ‘왜 자신이 이 땅에 오셨는지’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 10:10)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이 오심으로 우리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할 뿐 아니라, 더 풍성한 삶을 주시고자’ 오셨다고 주님은 밝히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할 때 <현재의 성화와 미래의 영광>입니다. 이것을 성도 여러분은 깨닫고 있습니까? 아니 이 풍성함을 누리고 있습니까? 그러면, 제가 왜 이렇게 주님의 이 땅에 오신 목적을 강조하는 것일까요? 왜냐하면,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빠지게 되는 근본적인 영적 함정은 ‘우리가 구원받은 목적은 잊어버리고, 지엽적이고, 비본질적인 것에 얽매여 축복된 삶을 허비한다’는 것입니다.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닌데, 목숨 걸고 싸우는가 하면, 정작 신앙의 생명과도 같은 것들은 쉽게 포기해버리는 어리석은 우를 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의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게 될 때, 우리는 이런 함정에 빠질 위험성이 매우 크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 성도들이 주님의 양으로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뿐 아니라, 더 풍성한 삶을 산다는 뜻일까요?’ 그것은 이 풍성한 삶을 우리 성도들이 이제 주님을 다시 만나는 날까지 각자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추구해야 하는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풍성한 삶은 제가 지난 시간 나누었듯이, 물질적 풍요로움이 전부가 아니라, 육체적인 건강의 풍성함이요, 더욱 더 마음과 영혼의 갈등과 상처, 그리고 염려와 고통에서 벗어나 기쁨과 만족 그리고 감사로 누리는 풍성함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 본문이 포함된 <로마서 8장>은 로마서 전체에서도 우리 ‘성도의 존재가 얼마나 축복된 것인지를 가장 영광스럽게 선포’하는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롬. 8장>의 주제는 첫 두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 8:1-2)라고. 이것은 곧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될 때, 그의 영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영원한 생명으로 거하심으로 아담으로부터 물려 받은 죄와 사망에서 해방되는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성령님의 놀라운 사역을 더욱 구체적으로 소개하면서 “양자의 영” (The Spirit of adoption)이라고 성령을 소개하고 있음을 우리는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 앞 <15절>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v.15)라고. 사도가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우리는 원래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로마서 1장>에서 선언하듯 ‘우리는 죄로 인하여 한사람도 예외 없이 모두 하나님의 진노하심 아래 놓여진 존재’였던 것입니다 (롬.1:18). 이것이 사도가 <롬. 3장>에서 ‘한사람도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라고 선언하는 이유입니다 (롬. 3:23). 그런 우리 인간이 천사들처럼 하나님 앞에 설수 있는 죄 없는 존재가 되었고, 더더욱 천사조차도 흠모하는 ‘하나님의 자녀’ 곧 ‘하나님의 양자’가 되는 권세를 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 곧 ‘아빠, 아버지’라고 기쁨과 깊은 친근감으로 부르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게 된 것일까요? 이것은 오직 ‘성삼위 하나님’이시요,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분의 영이신 성령님이 우리 안에 살아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할 때, 그분의 영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아담의 원죄로 인하여 죽었던 우리의 영을 살리신 것입니다. 그분이 앞서 살펴봤듯이 <롬. 8:2>에서 묘사된 ‘생명의 성령님’ (The Spirit of life)이십니다.

그리고 또한 성령님을 ‘양자의 영’이라고 불리는 것은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그분과 같은 ‘하나님이 자녀’라는 자격을 얻게 되었다는 의미인데, 바로 그리스도의 영, 성령께서 우리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성령’을 ‘양자의 영’이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었음을 확정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더이상 무서워하지 않고, 도리어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며 기뻐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롬. 8:16)라고 사도가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객관적 사실을 부인할 수 없는 영적 깨닫음으로 확증하여 증거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로마서 강해’의 가장 권위있는 설교자의 한명으로 불리는 ‘로이드 존스’목사는 이 <롬. 8:16>을 일컬어 우리 성도의 가장 영적 충만의 절정의 상태라고 표현한바 있습니다. 바로 ‘양자의 영 되신, 성령님의 충만한 증거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심히 사랑받는 자녀라는 사실을 놀랍도록 우리 영이 깨닫고 그것을 넘치게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v.17)로 연결됩니다. 제가 앞에서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양으로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고자’함이라고 하셨는데, 그것은 우리가 죄사함을 얻는 것 뿐 아니라,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는 풍성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가 ‘하나님의 입양된 아들과 딸’이 된다는 것이 왜 풍성한 삶인지를 결정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바로 ‘후사’라는 말 속에 있음을 보게 됩니다. 먼저 ‘후사’ (Heirs)는 사전적 의미로 “그 집안의 대를 잇는 자식”이라는 뜻입니다. 그럼으로 <그 집안 주인에 속한 모든 ‘유업/기업/재산’을 상속받는 자>라는 의미가 그 안에 함축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17절>에서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라는 말씀의 의미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성도는 그리스도와 같은 하나님의 자녀인 그분의 아들과 딸이 되었는데, 그것은 곧 하나님께 속한 모든 하늘의 유업을 물려 받게 된 존재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엄청난 말인지 사실 저는 다 상상하기도 힘듭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 성도가 결코 예수님과 동등한 존재는 아니다 할찌라도, 주님께서 허락하신 생명으로 인해 그분과 함께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께 속한 모든 유업을 함께 물려받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은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런 우리 그리스도인의 영적 특권을 여러분과 제가 좀더 깨닫고 이해해 나갈수만 있다면, 우리는 분명 그 깨닫은 만큼 주께서 성취하시고 우리에게 약속하신 풍성한 삶을 지금 누려 나갈 수 있고, 또한 미래의 주어질 영광을 확신 가운데 소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보내는 두번째 편지에서 우리 크리스챤이 장차 받게 될 영광을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이렇게 계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후. 3:18)라고 말입니다.

이제 저는 오늘 말씀에서 사도가 이토록 강조한 우리 크리스챤의 현재와 미래에 주어질 풍성한 삶에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되는 것 하나를 함께 나누고 말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고난’ (sufferings)입니다. 사실 사도가 오늘 본문의 <로마서>뿐 아니라 대부분의 서신서를 쓰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그의 탁월한 성경지식을 자랑하거나 그리스도에 관한 신학을 체계화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가 아닌 것입니다. 그의 편지의 중심내용은 언제나 ‘그리스도의 복음’이지만, 그 동기는 언제나 ‘목회자의 심정’에서 출발했던 것입니다. 그는 결코 현실과 동떨어진 오늘날의 수많은 신학자들처럼 사변적인 영적 주장을 하고자 했던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사도는 언제나 목회자의 심정으로 성도들의 영적 상태를 돌보고, 특별히 그 당시 초대교회 성도가 겪었던 극심한 환난과 핍박을 더욱 굳건한 믿음으로 이겨 나갈수 있도록 탁월하게 도운 것입니다.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도 그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인 것입니다. “~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v.17-18) 사도는 결코 현재 로마교회 성도와 자신이 겪고 있는 고난과 핍박이 별 것 아니거나, 가벼운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 고난이 매우 혹독한 것임을 누구보다도 온몸으로 겪은 사람입니다. 사도는 여러 서신서 편지를 마무리하면서도 자신과 동역자들이 이런 극심한 핍박에서 건져질 수 있도록 성도들에게 기도를 당부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가 로마교회 성도들 뿐 아니라, 오늘 여러분에게도 도전하는 것은 ‘미래의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사도는 ‘한번 생각해보라!’고 우리에게 촉구합니다. 사도는 마치 저울에 무게를 달듯이 ‘한번 두가지를 함께 저울에 달아보라’고 도전하는 것입니다. 한쪽 끝에는 ‘로마교회 성도들’이 <현재 당하는 고난의 무게>요, 다른 끝에는 그들이 <장차 나타나게 될 미래의 영광>인 것입니다.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그분의 나라에서 왕노릇하며 누리게 될 영광인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보면 부활하신 우리 주님께서 믿음을 지키며 고난을 이겨 나가는 성도들을 향하여 이렇게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계. 3:12,21)고 말입니다.

그럼으로 사도의 결론은 ‘현재의 고난이 아무리 힘겹고 고통스럽다 할찌라도 이 고난은 잠시 동안이지만, 장차 주어질 미래의 영광은 영원히 주와 함께 누리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우리 한번 비교해 보자!’는 것입니다. 냉정하게 저울에 달아보고, 비교해 보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물 한방울’의 무게와 ‘거대한 저수지 물’의 무게를 비교하는 것보다도 더 비교 불가한 것이지요! 이것이 현재의 고난에 대한 미래에 주어질 심히 복된 영광이라고 사도는 온 힘을 다해 우리들에게 일깨워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음으로 얻게 된 것이 무엇입니까? 만약 성도 여러분이 예수 믿고 구원받아 천국을 소망한다면, 현재의 자신의 삶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약속하신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치는 성령충만한 삶을 여러분은 누리고 있습니까? 바라기는 성령과 동행하는 삶 가운데 주께서 허락하실 찐데, 물질의 풍요함만이 아니라 육신의 모든 병마로부터 온전케 되고, 마음의 상처와 고통에서 치유함 받고 더 나아가 영적 미성숙과 침체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영적 자유와 평화와 만족의 풍성함을 누려 나가시길 기대합니다. 그리하여 언젠가 다시 우리 주님을 뵈올 때 영광에서 영광으로 주님과 함께 왕 노릇하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