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ruary 12, 2023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When I Am Afraid)

Preacher:
Passage: 시편 (Psalms) 56:1-3
Service Type: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When I Am Afraid)

2-12-23

본문말씀: 시편 (Psalms) 56:1-3

1 하나님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사람이 나를 삼키려고 종일 치며 압제하나이다

2 나의 원수가 종일 나를 삼키려 하며 나를 교만히 치는 자 많사오니

3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설교 요약]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향해 간구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v.3)라고.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등장인물 가운데에서 끊임없는 고난과 역경의 삶을 살았던 대표적인 인물의 한 명이 다윗일 것입니다.

다윗의 이와 같은 고난과 질고의 삶을 통하여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다윗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입니다. 다윗을 모태에서 택하신 하나님, 그리고 그의 젊은 날 뿐 아니라 평생을 통하여 그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다윗을 지키시고 동행하신 하나님의 손길이 있는 것입니다 (시편 22-23편).

그럼으로 다윗의 혹독한 고난의 날에 하나님의 강한 손길을 구하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나타난 말씀이 오늘 본문의 <시편 56편>말씀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외부의 거센 폭풍과 파도가 몰려올 때 휩쓸려 가라앉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크게 주께 부르짖는 것입니다.

이제 그렇다면, 다윗이 고난 가운데 승리를 거둘수 있었던 열쇠는? 무엇인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그것은

첫째, “하나님을 신뢰”했던 것입니다: 다윗은 “나의 원수가 종일 나를 삼키려 하며 나를 교만히 치는 자 많사오니,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v.2-3)라고 고백합니다. 다윗이 영적 승리를 가져올 수 있었던 그 시작은 언제나 하나님을 향한 신뢰에서 출발합니다. 그 크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그분을 피난처로 신뢰하는 믿음에서 그 승리는 시작됩니다.

둘째. “말씀을 찬송”했던 것입니다: 다윗은 몇 번씩이나 “그 말씀을 찬송하리이다” (v.4,10)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한가지 이해하게 되는 것은 다윗이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그 심령이 평화를 누릴 때, 그는 말씀이 꿀송이처럼 달게 느껴짐으로 그 말씀을 노래했다는 사실입니다.

셋째,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것 입니다: 이제 다윗은 담대히 선포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 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혈육 있는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v.4)라고. 다윗이 오직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성령을 통해 그분의 말씀을 즐거워하는 영의 충만한 심령이 회복되었을 때, 그는 이제 더 이상 사람과 세상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성령을 통해 허락하신 구원의 은혜과 승리의 확신을 그가 선언하는 것입니다.

다윗과 같이 하나님 아버지의 선하신 손길로 인하여 폭풍 가운데서도 기쁨으로 승리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성도 모두 되시길 축원합니다.

[설교 전문]

            우리는 각자 힘쓰고 노력함으로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 우리는 우리가 결코 원치도 않았고, 예상치도 못했던 인생의 깊은 수렁과 같은 고통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스스로의 힘과 노력으로는 결코 빠져 나올수 없을 것 같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우리는 때로 걷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성도 여러분이 이런 상황 가운데 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런 자신의 무기력감에 좌절하고, 이런 꼬인 상황을 원망하며 절망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오늘 본문의 다윗처럼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간구를 올려드리겠습니까? “하나님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v.3)라고 말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등장인물 가운데에서 그 수많은 고난과 역경의 삶으로 인하여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람의 한 명이 다윗이 아닌가 하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런 그의 고난의 삶은 때로 밧세바와의 간음과 같은 자신의 허물고 실수로 인함 일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자신의 허물보다는 타인과 환경으로 인한 고난과 시련의 날들이 다윗의 삶에서는 더 많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젊은 날 자신을 향한 사울 왕의 시기와 질투로 인해 겪어야 했던 죽음의 고비를 넘나드는 그 숱한 고난의 시간과 나중에 왕이 된 이후에도 아들 압살롬의 반역이나 시편에서 이름을 알수는 없지만 그가 언급한 그 수많은 악한 자들의 핍박과 계략으로 인하여 겪었던 고통의 시간이 그것입니다. 그는 실로 인생의 많은 질고를 겪은 성경의 대표적인 인물임에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여러해 전에 같이 신앙생활하던 한 형제와 다윗의 삶에 대해 얘기 나눈 적이 있었는데 그때 형제가 이렇게 말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목사님, 저는 그전에는 다윗과 같이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해주시는 삶을 살고 싶어 했는데, 다윗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그의 인생이 얼마나 힘들고 고생스러운 삶인지를 보고는, 이제는 그의 삶이 부럽지 않고 그처럼 살기를 윈치 않습니다!”라고 그가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형제의 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만약 여러분이 저의 의견을 묻는다면, 저는 인간적인 관점으로는 그 형제의 말에 어느정도 동의할 수 있겠지만, 영적인 관점에서는 전혀 동의할 수가 없다고 말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형제뿐 아니라, 우리 크리스챤들 가운데서도 많은 성도들이 다윗의 삶에서 영적으로 놓치는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윗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인간적인 관점으로 다윗의 인생을 본다면, 그 형제의 말처럼 이런 저런 이유로 사람들에게 시기 질투 당하거나, 재수없이 억울하게 고통 당하는 고생스러운 삶이라고 볼 수 있겠으나, 영적인 관점에서는 전혀 새로운 진실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어려서부터, 아니 그가 어머니의 모태에서부터 그를 택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이심’ (시. 22편)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신실하신 하나님은 다윗의 젊은 날 뿐 아니라, 그의 평생에 그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그를 따라 동행하시고, 모든 원수의 앞에서 그를 기름 부으셔서 존귀하고 영화롭게 관을 씌워 주신 것입니다 (시. 23편). 이것이 다윗이 특별히 70여편이 넘는 그의 시편에서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찬양의 고백을 올려 드리며, 그가 확신하고 감사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한결같은 ‘하나님의 지켜 주심과 원수를 이기게 하시는 권능의 손길’인 것입니다. 그럼으로, 다윗의 배후에 있는 이 하나님의 신실한 손길을 우리가 발견할 수 있다면 우리는 결코 다윗을 ‘고생 많이 한 힘든 인생’이라고 단순히 치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점이 제가 시간이가면 갈수록 더욱 더 ‘다윗의 인생’을 존귀케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다윗의 삶을 통해 본받기 원하는 핵심입니다. ‘언제나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하고, 고난의 날에 그분께 피하는 자녀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이 매우 적나라하게 나타난 말씀의 하나가 바로 오늘 본문의 <시편 56편>말씀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 다윗의 본문말씀은 고통이 인생에서 가져오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강력하게 질문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글은 다윗이 젊은 날, 사울 왕을 피해 적국, 가드에서 블레셋 사람들에게 잡혀 깊은 고통 가운데 기록한 시편인 것입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사람이 나를 삼키려고 종일치며 압제 하나이다” (v.1)라고.

그런데, 오늘 다윗의 삶을 통해 다시 한번 이해하게 되는 것은 크리스챤 (하나님의 자녀)의 삶의 진정한 능력은 별 탈없고 무사태평한 때 보다는, 오히려 비오고 바람불고 폭풍우 몰아치는 고난의 날에 그 진가를 발휘한다는 사실입니다. 어떠한 외부에서 거센 공격과 핍박이 몰아치면 칠수록, 하나님의 자녀는 그냥 힘없이 주저앉고 절망하는 존재가 아니라, 마치 용수철이 압박하면 할수록 나중엔 더 큰 힘으로 튀어 오르듯이, 성도는 어떤 압박에도 결코 실패하지 않는 존재인 것입니다. 어떻게요?! 바로 “두려운 날에 주를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정확히 다윗의 열매 맺고 승리하는 삶의 핵심인 것입니다.

이제 그렇다면, 다윗이 고난 가운데 승리를 거둘수 있었던 열쇠는? 무엇인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그것은

첫째, “하나님을 신뢰”했던 것입니다: 다윗은 극심한 고난의 날에 이와 같이 고백합니다. “나의 원수가 종일 나를 삼키려 하며 나를 교만히 치는 자 많사오니,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v.2-3)라고. 다윗이 영적 승리를 가져올 수 있었던 그 시작은 언제나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그 크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그분을 피난처 삼음으로 세상에서 줄수 없는 참된 영적 평화와 안정을 누렸던 것입니다. 여기서 먼저, 우리가 한번 근본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과연 무엇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고, 또한 무엇이 믿음이 아닌 것일까요? 먼저 믿음이 아닌 것은 ‘맹목적인 신앙’은 믿음이 아닙니다. 또한 ‘자기신념과 자기 설득’도 믿음이 아니며, ‘단순한 지적동의’도 결코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반면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서 볼 수 있듯이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소망’하고 ‘약속하신 그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다윗에게서 동일하게 발견되는 하나님을 향한 하나님을 향한 신뢰요, 사랑인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주에 예수 그리스도를 저버리지 않고 충성되게 살아가고자 하는 그의 제자의 조건으로서 “생명의 떡되신 주님”을 먹어야 한다고 나눴습니다. 이런 ‘생명의 떡되신 주님을 먹는다’는 영적 비유의 핵심은 ‘매일 매일 주님의 말씀을 먹는다는 것’과 ‘그분의 사랑을 실천해 나간다는 것’ 그리고 ‘주의 영되신 성령께 순종함을 통해 성령의 충만을 받아 열매 맺는다는 것’임을 살펴보았습니다. 다윗과 같이 우리도 성부 하나님을 진실로 믿고 신뢰함으로 영적 승리의 첫발을 내디딜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 “말씀을 찬송”했던 것입니다: 다윗은 <시. 56장>에서 몇번씩이나 ‘하나님 말씀을 찬송’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v.4);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 말씀을 찬송하며, 여호와를 의지하여 그 말씀을 찬송하리이다” (v.10) 라고 거듭해서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 하노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가지 이해하게 되는 영적 논리의 흐름은 ‘만약 성도가 먼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게 되면, 그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 찬송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그의 심령이 깨끗하고 그분 안에서 참된 평안을 누리는 자는 말씀이 꿀송이처럼 달게 느껴지고 말씀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확히 <시편 1편>말씀이 시작되면서, ‘누가 참된 복을 누리는 자인지?’를 시편기자가 이렇게 묘사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시. 1:1-2)라고 말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즐거워함으로 그 입술로 작은 소리로 읇조리고 말씀을 노래하는 심령은 진정으로 축복된 인생이요, 어떤 고난에서도 침몰되지 않는 철옹성같은 영적 거인인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겸손히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는 것은 ‘내가 얼마나 열심히 큐티 말씀보고 기도에 힘쓰냐’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출발하여 그분의 말씀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순전한 심령의 회복’이 내게 있는지를 우리는 되돌아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값비싸지만 냉냉하고 차가운 제사보다는, 동전 한잎이라 할찌라도 기쁨과 감사로 드리는 찬양의 제사를 기뻐 받으시는 하나님 아버지임을 저는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함으로 이런 찬양의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까?

셋째,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것 입니다: 잠언 말씀에 보면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니라” (잠. 28:1)고 선언합니다. 여기서 한가지 확인하게 되는 성경의 진리는 ‘악인과 의인의 삶’에서 극명한 대조점은 ‘그 마음에 상태가 어떠하냐?’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마음의 담대함이 있느냐, 아니면 염려와 두려움으로 가득 찼느냐’ 라는 점입니다. 악인은 그가 아무리 많은 재물을 모으고, 건강하고 세상의 부귀영화를 다 누린다고 해도 늘 불안하고 두려움으로 가득찬 삶이라면, 의인은 소유의 많고 적음이나 어떤 그의 삶의 조건에 상관없이 두려워하지 않고 사자처럼 담대한 심령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우리의 마음처럼 저절로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저 자신을 돌아볼 때, 두려워 떠는 저 자신을 발견할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막연한 미래에 대한 염려와 불안, 교회사역에 대한 인간적인 염려, 저 자신의 연약한 능력과 부정적인 환경들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여러 번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지 알수 없습니다. 이것이 솔직한 현재의 저의 모습이요, 또한 성도 여러분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과 저가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그리고 그의 말씀의 능력으로 모든 두려움과 염려를 물리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저는 믿습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 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혈육 있는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v.4)라고 다윗이 담대함으로 주께 노래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내 편이신데, 감히 혈과 육을 가진 인간이 나를 이기겠다는 거냐?’는 의미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배짱과 담대함이 우리에게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담대함은 <시. 56장>의 마지막 <13절>에서 놀라운 확신으로 나타남을 봅니다. “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음이라” (v.13)라고. ‘내 영혼을 장차 미래에 건져 주실 것이다’가 아니라, ‘이미 사망에서 건져 주셨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미래에 주어질 구원이 아니라, 이미 현재에 받아 누리는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현재 내가 어떤 죽음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닌다 할찌라도 결코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구원의 확신인 것입니다. 사실 다윗은 현실적으로는 여전히 혹독한 시련과 죽음의 사선을 넘는 적진 블레셋의 악한 자들 가운데 둘러싸여 고통받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그의 생명을 사망에서 건져 주셨다’고 그는 깨닫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의뢰하고 그에게 삶을 드린 자에게 세상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고, 허락하신 구원의 확신을 통해 사자같이 담대한 영적 축복을 풍성하게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다윗과 사도 바울과 기독교 역사를 통하여 수없이 많은 신실한 성도들에게서 보듯이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삶은 평안하십니까? 기쁨과 즐거움으로 충만하십니까? 아니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침체와 고난의 수렁에서 상처받고 고통 가운데 놓여 있습니까? 바라기는 다윗의 고난의 삶을 통하여 위로받고, 소망을 회복하시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원합니다. 수없이 많은 원수들의 공격과 위협 앞에서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믿음을 지켰을 뿐 아니라, 그의 후손을 통해 대대로 이어지는 영광스러운 복을 하나님으로부터 허락받았던 다윗의 삶이 여러분 안에서 새롭게 열매맺기 기대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참된 구원을 누려 나감으로 그 어떤 태풍 가운데서도 평화를 누리고, 고난 가운데서도 흘러 넘치는 기쁨을 누리는 영적 축복이 성도 여러분 모두에게도 우리 주님의 영, 성령의 충만하심을 통해 더욱 새롭고 풍성하게 경험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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