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ruary 5, 2023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You Have The Words of Eternal Life)

Preacher:
Passage: 요한복음 (John) 6:67-69
Service Type: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You Have The Words Of Eternal Life)

2-5-23

본문말씀: 요한복음 (John) 6:67-69

67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You do not want to leave too, do you?” Jesus asked the Twelve.)

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Simon Peter answered Him, “Lord, to whom shall we go?” You have the words of eternal life.)

69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We believe and know that you are the Holy One of God.”)

[설교 요약]

오늘 말씀은 지난 시간에 이어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주제의 두번째 시간입니다.

먼저 오늘 본문이 포함된 <요한복음 6장>에서 주님은 자신이 누구신지, 자신이 왜 이 땅에 왔는지를 영적으로 매우 깊게 그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밝히셨습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v.35)라고.

그러나 이 말씀을 들은 자들은 도리어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v.60)라고 걸림이 되었고, 이때부터 많은 자들이 주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에 대한 이들의 문제점은 무엇이었을까요?

첫째) ‘예수님에 대한 선입관’입니다. “가로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제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로서 내려왔다 하느냐” (v.42)라고.

둘째)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오해’입니다. 이들은 예수께서 영적으로 비유하심 (마. 26:26-29)을 깨닫지 못하고, “~ 사람이 어찌 능히 제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v. 52)라고 오해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주께서 열두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라고 묻으셨고, 베드로는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라고 말합니다. 이런 베드로의 대답에는 2가지 고백이 있습니다. 그것은

  • “당신만이 그리스도입니다” 라는 신앙고백 입니다 (마. 16:16)
  • “당신을 떠나 갈 곳은 없습니다” 라는 신앙고백 입니다. 곧 ‘당신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 (요. 14:6)되시는데 제가 누구에게로 가겠습니까?’ 라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생명의 떡’되신 주님을 먹고, 그분 안에 속하여 살아 가심으로 죄를 이기고 육신을 이기고 주님의 충성된 제자로 풍성한 열매 맺는 삶 사시길 축원합니다.

 

[설교 전문]

우리는 지난 시간 ‘누가 예수님의 합당한 제자라고 불리어질 수 있는 자인가’에 대해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저는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주제의 두번째 말씀을 함께 묵상해 보기 원합니다. 오늘 본문말씀이 포함된 <요. 6장>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자신이 누구신지를 매우 구체적으로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영적으로 밝히심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주님의 자신을 드러내심이 그를 따랐던 많은 자들에게는 도리어 걸림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불평합니다.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요. 6:60)라고. 바라기는 오늘 말씀 가운데 ‘여러분은 과연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인지 각자 되돌아보고, 그분 만이 영생의 말씀을 소유하신 주님이심을 더욱 깨닫아 나가는 시간되시기 바랍니다. 이로 말미암아 흔들리지 않고, 믿음으로 주를 따르는 참된 제자로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기대합니다.

<요한복음 6장>은 우리가 잘 아는<5병2어>사건으로 시작합니다. 즉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주께서 5천명이 넘는 무리를 배불리 먹이시고, 남은 것이 광주리로 12광주리가 차고 넘치도록 거둔 사건인 것입니다. 그에 대한 비용이 <1~15절>까지의 내용입니다. 그 후에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가버나움으로 갈 때 해가 어두웠고 갑자기 큰 파도가 일렁이는 가운데 물 위를 걸어오는 한사람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두려워했습니다만, 그가 주님이심을 깨닫고 그들이 기뻐하며 그분을 배 위로 영접하는 사건을 제자들이 또한 경험하게 됩니다 (v.16-21).

그리고나서, 그 다음날 무리들이 예수님을 찾아 배를 타고 가버나움에 왔습니다. 그때 주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v.26)라고 말입니다. 주께서 이런 상당히 도전적인 말씀을 하시는 이유는 그 전날 주님께서 <오병이어>의 사건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떡으로 배불리 먹이셨음으로 그들이 육신의 만족함으로 자신의 빵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현실적 메시야로 주님을 인식하고, 열광함을 주님이 아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렇게 그들을 도전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너희들의 빵문제를 해결하고자 이 땅에 온 메시야가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반면에 주님은 이렇게 그들을 일깨우십니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노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v.27) 라고. 지금 이들이 열광하는 것은 썩는 양식으로 인한 것입니다. 많은 군중들은 ‘먹고 마시고 입는, 의식주’를 해결해 줄 메시야를 찾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메시야의 진정한 이 땅에 온 목적이 아닌 것입니다. 그럼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썩지 않고 영원토록 우리를 살게 할 양식을 주시고자 함’입니다. 이것이 메시야,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요. 6장>의 이어지는 말씀의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예수님과 무리들 사이에서 상당한 긴장관계가 고조됨을 보게 됩니다. 그 핵심은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인식차이’ 입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예수님은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v.27a)고 그를 따르는 많은 무리를 향해 도전하시고 나서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노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v.27b)고 선언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자신이 구약에 예언된 ‘인자’ 곧 ‘이스라엘을, 아니 온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요, 하나님께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마. 3:17)고 인쳐 주신 그분의 독생하신 아들이시며, 모든 신자가 먹고 영생할 양식되신다고 선포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주님은 자신이 바로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야 되심을 선포하실 뿐 아니라, 핵심적인 자신의 사역은 무엇인지를 영적으로 더욱 구체적으로 밝히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적지 않은 자들이 ‘주께서 하신 말씀’ (=자신을 드러내신 말씀)에 혼돈을 겪습니다. 사실 문제의 발단이 된것은 이들이 주께 표적을 보여 달라고 구한데서 시작됩니다. “그러면 우리로 보고 당신을 믿게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v.30)라고. 그리고 나서 그들은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v.31)라고 다시 떡문제를 꺼집어 냅니다. ‘만약 당신이 메시야면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만나와 같은 떡을 선지자 모세처럼 먹게 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때 주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v.32-33)라고.

그때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렇게 열렬히 반응합니다.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v.34)라고. 그런데 주님의 답변은 그들이 전혀 기대치 못한 것인 것 같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 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v.35) 주님은 돌려서 말씀하지 않고 자신이 누구인지 매우 분명히 선포하십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다”라고. 그런데 이 말씀을 들은 유대인들이 서로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가로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제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로서 내려왔다 하느냐” (v.42)라고. 여기서 유대인의 두가지 예수님에 대한 문제점을 봅니다.

첫째는, ‘예수님에 대한 잘못된 선입관입니다.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저가 어찌하여 하늘로서 내려왔다고 하느냐”고 주님을 따르던 자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런 반응은 ‘이 예수는 갈릴리의 가난한 목수,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우리가 부모를 알고, 형제를 아는데 이런 가정에서 선지자가, 하나님의 택한 메시야가 나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개천에서 용이 나올지언정, 변두리 땅 갈릴리의 못배우고 가난한 목수의 아들이 메시야 일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그 당시 유대인의 선입관 (편견)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예수님의 12사도가 된 ‘나다나엘’ 입니다. 그는 빌립이 자신이 만난 나사렛 예수가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 곧 ‘메시야’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수 있느냐” (요. 1:46)라고 한마디로 나사렛 예수님의 메시야 되심을 강하게 의심했던 것입니다.

둘째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오해입니다. 이것은 더욱 심각한데 주께서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v.35)라는 말씀을 그들이 오해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v. 49-51)라고.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자들이 반응합니다.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가로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제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v. 52)라고 말입니다.

이 말은 마치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 3:3)고 말씀하셨을 때, 그가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요. 3:4)라는 식의 육신적인 반응과 쌍벽을 이루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속된 말로 ‘우리가 식인종이냐, 자기의 살을 먹게’라는 식으로 답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어지는 답변은 더욱 도전적이요 영적으로 매우 심오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v. 53-58)라고. 이런 주님의 대답을 들은 소위 제자라고 하는 자들 중에서 많은 자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v. 60)라고. 도데체 무슨 말인지 햇갈리고 어렵다는 것입니다.

안따갑게도 이런 일이 있은 후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자들이 주님을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였음을 사도 요한은 밝히고 있습니다 (v. 66). 그리고 이런 사실이 오늘 본문에서 주께서 그의 열두 제자들을 향해 “너희도 가려느냐” (v.67)라고 질문하시게 된 직접적인 이유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질문을 듣은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또 한번 깊은 영적 통찰력을 지닌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지혜로운 답변을 합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v.68-69)라고. 비록 베드로는 제대로 학문을 배우지 못하고 평생을 고기잡이로 생계를 이어갔던 갈릴리 어부 출신이었지만, 그에게는 그 당시 율법에 능했던 바리새인 서기관 율법학자 등과 같은 유대종교지도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깊은 영적 통찰력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베드로가 주께 대답한 ‘주님께는 영생의 말씀이 계시는데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겠습니까?’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살펴봄으로서, 과연 여러분과 저는 예수님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v.68)라는 베드로의 답변은

먼저) ‘예수님만이 영생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당신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신 영생의 말씀임을 확신하는데 지금 다른 누구에게로 돌아서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이와 같은 탁월한 대답이 또 한번 더 있었는데 그것은 주께서 어느날 12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 16:15)고 묻으셨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16:16)라고 대답했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이와 같이 자신의 정체성 (identity)을 정확히 이해하는 깊은 영성을 칭찬하셨습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마. 16:17)라고. 중요한 것은 ‘나사렛 예수’께서 구약성경에 하나님께서 여러 선지자를 통해 예언한 참된 메시야시요, 인류를 구원할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베드로는 의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떠나갈 이유는 결코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v.63)고 주께서 스스로 그 하신 말씀의 의미를 설명하셨듯이, 내가 영적 눈이 어두워 주님의 영이요 생명의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어려워한다면 이것은 예수님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탓할 것이 아니라, 나의 어두운 영적 상태를 탓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일부 교인들처럼, 그 말씀이 어렵고 걸림이 된다고 해서 주님을 떠나버린다는 것은 실로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세상 그 어디에도 예수 그리스도 말고 다른 길은 없다는 것이요, 다른 메시야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저는 오늘 말씀을 생각하면서 주를 따르던 많은 제자들에게 걸림이 되었던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 (v.35 & 48)는 주님의 말씀의 의미를 생각해보겠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주님이 주시는 것은 썩어질 양식이 아니라, 생명의 양식이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생명의 양식, 곧 ‘생명의 떡’은 무엇일까요? 생명의 떡은 주님 자신입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v.35)라고 주님은 분명히 밝히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어떻게 그 생명의 떡되신 주님을 먹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결국 주님과 하나됨으로써 가능한 것입니다. 앞서도 살펴봤듯이 주님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v.56)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런 알듯 말듯한 주님의 영적 가르침을 자신의 삶을 통해 체험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갈. 2:20)고 말입니다.

이제 저는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며 ‘왜 그동안 열광하며 주님을 따르던 그 수많은 제자들이 그분을 떠나게 되었는가?’하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오늘 본문에서 보듯이 ‘주님의 말씀에 대한 영적 무지’로 말미암아 ‘이 말씀은 너무 어렵도다’라고 잘못된 결론을 내리는 가하면, ‘예수님을 빵문제와 내가 겪는 당면한 필요를 해결해줄 현실적인 메시야’로 오해했다가 그것이 내가 원하는 때에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해결되지 않을 때 시험들과 걸림이 된다는 것입니다. 내 계획과 기대보다 크신 생명의 주님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약 우리 주께서 여러분에게 “xx야, 너희도 가려느냐?’라고 묻으신다면,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주께 대답 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은 베드로와 같이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내가 뉘게로 가겠습니까?!”라고 신실하고 확신에 찬 사랑의 고백을 할 수 있습니까? 바라기는 여러분의 제자의 삶이 아무런 생각없이 맹목적으로 주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충성된 제자로서 감당하는 삶 사시길 소망합니다. 날마다 예수님의 참된 구원자 되심을 성경말씀을 통해 더욱 배워 나가고, 그리스도의 영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생명 되신 주님께 견고한 닻을 내려서 거센 파도같이 일렁이는 세상의 유혹과 핍박에도 맞서 싸워 승리하는 주님의 충성된 제자 모두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