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h 11, 2018

“내 마음에 합한 자” (A man after my own heart)

Preacher:
Passage: 사도행전 (Acts) 13:21~23
Service Type:

“내 마음에 합한 자”

(A man after my own heart)

3-11-18

본문말씀: 사도행전 (Acts) 13:21~23

21 그 후에 저희가 왕을 구하거는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Then the people asked for a king, and He gave them Saul son of Kish, of the tribe of Benjamin, who ruled forty years.)

22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After removing Saul, He made David their king. He testified concerning him: ‘I have found David son of Jesse a man after my own heart; he will do everything I want him to do.’)

23 하나님이 약속 하신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From this man’s descendants God has brought to Israel the Savior Jesus, as He promised.)

<서 론>

저는 오늘 성도 여러분과 함께 ‘내 마음에 합한 자’ 라는 제목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이 말씀은 누가 했습니까? 하나님 이십니다. 성경에서 ‘내 마음에 합한 자’ 라고 불리어지는 인물은 이 한사람 밖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는 바로 ‘다윗’ 입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소중한 인정함 일까요!? 우리가 잘 아는데로 다윗은 어릴적 양을 치는 목동에서 이스라엘왕국의 최고의 영광을 실현했던 이스라엘 통일왕국의 가장 위대한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 하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씨로부터 이스라엘을 , 아니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가 나게 하실 것을 하나님은 약속 하셨습니다. 오늘 다윗의 삶을 함께 묵상하면서, 단순히 우리를 죄 사하심으로 구원 하실뿐 아니라, 그 은혜로 우리를 빛과 소금처럼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시기 원합니다. 우리는 다 그 구원의 비밀을 다 알수 없을찌라도, 우리 마음에 다윗과 같이 겸손과 소원함을 주셔서 하나님의 나라에 초석처럼 사용하시는 은혜를 깨닫고 믿음과 순종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그의 자녀로 모두 살아가시기를 기대 합니다.

<본 론>

오늘 본문은 바울과 바나바가 비시디아 안디옥에 가서 안식일에 회당에 가게 되는데, 거기서 바울이 유대인을 향해 증거한 내용의 일부 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을 택하셔서 애굽땅에서 나그네 된 그 백성들을 권능으로 이끌어 내셨다’는 역사적 사실 (행. 13:17) 에서 메세지를 시작 합니다. 그때 광야에서 40년간 그들의 온갖 잘못을 참아 주시고,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시고, 그 땅을 기업 (=유산) 으로 (약 450년간) 주셨습니다 (v.18,19). 그리고 그 이후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구했을때 베냐민 지파 기스의 아들 사울을 40년간 그들의 왕으로 주셨다는 것 (v.20,21) 과 그 이후 사울을 폐하시고 다윗을 세우신 사건을 오늘 본문에서 보게 되듯이 사도바울은 요약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v.22a). 그런데, ‘하나님이 다윗을 택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을 가장 핵심적으로 간추려 하나님께서 평가하신 것이 ‘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이라는 것 입니다. 따라서, “내 뜻을 다 (다윗을 통해) 이루게 하리라” (v.22b) 고 하나님께서는 선언하신 것 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영광스럽게도 다윗에게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겠다)” (v.23) 고 약속하신 것 입니다.

이제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 “어떻게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될수 있었을지?” 에 대해 함께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원 합니다. 과연, 어떻게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될수 있었을까요?” (How could David be considered a man after God’s own heart?)

첫째, ‘순전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Because he had a genuine faith to God); 하나님께서 다윗을 마음에 합한 자라고 부르셨다면 그 중심에는 ‘다윗의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순전한 믿음이 있다고 저는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어느 누구도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자, 즉 그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될수 없음을 이렇게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히. 11:6) 고 말 입니다. 150편에 달하는 시편 가운데 다윗이 쓴것으로 알려지는 시편은 총 73편 입니다. 시편의 거의 절반을 다윗 한사람이 쓴 것 입니다. 사람이 부족해서 다윗의 글을 이렇게 많이 인용한 것이 아닙니다. 다윗의 시와 찬양은 그만큼 하나님을 향한 순수하고 뜨거운 사랑으로 듣는 자들의 영혼에 깊은 감동을 안겨주기 때문 입니다. 바로 하나님을 향한 그의 순전한 믿음 때문 일것 입니다. 그의 하나님께 대한 깊은 신뢰와 사랑이 너무도 잘 그려진 것을 말하라면, 다윗의 ‘시편 23편’ 을 뽑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 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 하시는도다” (시. 23:1,2)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은 이렇게 아름다운 <시편23편>을 다윗이 쓴 시기는 그가 인생의 노년이었을 것 이라는데 동의 합니다. 더욱이 그 시기는 그가 이스라엘을 천하통일하고 말년을 태평성대를 누리는 시기가 아니라, ‘왕자의 난’ 이라고 할수있는 그의 아들‘압살롬’의 반란에 의해 그가 참담한 심경으로 쫓겨 다니며 쓴 시가 바로 ‘시편 23편’ 이라는데 우리는 놀라지 않을수 없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안에서만 진정한 안정감과 만족을 누릴수 있었습니다. 그가 평화와 넘치는 기쁨으로 충만한 때는 왕궁에서 값비싼 옷을 입고 막강한 권력을 휘두를때가 아니라 언제나 하나님 안에 있을때 였음을 다윗은 고백하고 있는 것 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 23:4) 저는 지난 시간, 야곱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꾼 “얍복강가의 씨름” 에 대해 살펴보면서 야곱이 끈덕지게 하나님을 붙들고 간구한 ‘축복’ 이 무엇인지를 살펴 보았습니다. 그것은 ‘돈’ 도, ‘명예’ 도, ‘쾌락이나 출세’ 도 아니며, ‘하나님께서 친히 함께 하시는 것’ 임을 살펴 보았습니다. 이것이 ‘움켜잡는 자’ 야곱에서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 로 인정해 주시는 이스라엘로 이름을 바꿔주신 뜻이라고 저는 말씀 드렸습니다. 그리고, 얍곱강가에서 그 밤에 함께 하신 그 하나님이 지금 동일하게 다윗과 함께 하신 하나님이기에, 그는 어떠한 두려움없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안정함 가운데 지날수 있었던 이유인 것 입니다. <선하신 목자되신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순전한 믿음은 다윗이 이름 없는 목동으로 있을때나, 사울왕에게 쫓겨 다니던 청년시절, 그리고 이스라엘을 천하통일 하던 장년기와, 이제 인생의 말년의 시기 언제나 그가 거짓없이 고백했던 그의 삶의 이유이자 삶의 근거일 것 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다윗의 순전한 믿음을 기뻐 하셨습니다. 선한 목자되신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순전한 믿음과 사랑을 심히 기뻐 하셨습니다.

둘째, ‘성실과 겸손’ 이 있었습니다 (because he acted with integrity and humility); 다윗은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믿음 뿐 아니라, 성실과 겸손한 삶을 살았습니다. 성경의 인물 중에서 다윗만큼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다간 인물도 드물것 입니다. 야곱이 자신이 고백했던 것처럼 ‘험한 인생’을 살았다면, 다윗은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다는데 대부분 동의하실 것 입니다. 그는 앞에서 언급한 데로 인생의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고통의 시간과 승승장구하는 영광의 순간을 한몸에 누리기도 했습니다. 그의 인생은 이렇듯 끊임없는 인생의 ‘오르막과 내르막’ 의 롤러코스트를 거듭 하지만, 그가 걸어가는 자세는 결코 요동치지 않았던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는 놀라울 만큼 성실함으로 살아 갔던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그가 완벽한 삶을 살았다는 뜻이 아님도 우리는 잘 압니다. 우리는 그의 실수와 연약을 또한 잘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그의 성실과 겸손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증언 합니다; “또 그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젖 양을 지키는 중에서 저희를 이끄사 그 백성인 야곱, 그 기업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더니, 이에 저가 그 마음의 성실함으로 기르고 그 손의 공교함으로 지도 하였도다” (시. 78:70~72) 라고. (예/ ‘생활의 달인’!?) 다윗은 결코 대충 대충 하지 않았다는 것 입니다. 그는 마음의 성실함과 능숙한 손길로 어릴적 양들을 최선을 다해 돌보았드시, 이스라엘 민족을 지도 하였다는 것 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다윗을 들어 사용 하신 것 입니다.

또한 다윗은 겸손 했습니다. 그의 겸손은 결국 하나님을 향한 겸손 이었습니다. 내가 사람을 향해 겸손할수 있는 궁극적인 바른 길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할때 가능함을 다윗의 인생을 통해 잘 이해하게 됩니다. 어디에서 그것을 알수 있습니까?첫째) 그가 청년시절, 사울왕이 자기를 시기하여 죽이고자 할때 그를 피해 도망다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사무엘서를 읽어보면, 다윗이 결정적으로 자신을 죽이고자 쫓아오는 사울왕을 죽일수 있는 기회가 2번 있었음을 봅니다. 그러나, 그는 사울왕을 죽이지 않습니다. 그 이유를 다윗은 이렇게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이니 ~” (삼상. 24:6) 그는 자신을 미워하고 심지어 죽이고자 하는 사울왕 너머에 계신 하나님의 손길을 인식 했기에 겸손할수 있었습니다. 그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주권을 인식했기에 교만하게 자신의 권한을 넘어서는 행위를 하지 않았습니다. 둘째) 우리가 잘 아는데로 다윗이 충신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하고, 우리야를 전장에 나가 죽게 하는 교살을 범했을때 하나님의 사람 ‘나단선지자’ 는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대언 합니다 (삼하. 12:1~15). 그때 다윗은 나단 앞에서 죄를 인정 합니다. “내가 여호와께 범죄 하였습니다” (삼하. 12:13) 라고 자신의 죄를 정직하게 고백 합니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죄에 대한 통회하는 마음과 겸손 가운데 고백한 회개의 시가 <시편 51편> 입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 하소서 ~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시. 51:1,7) 다윗은 어떤 인간 앞에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 앞에서 아무리 수치스럽고 죄악된 모습이라 할찌라도 벌거벗은 모습 그대로 설수 있는 용기와 겸손함이 있었기에 진실로 회개를 드릴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죄 사하여 주심의 은혜를 그는 경험 했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은혜’ 가 있었습니다 (because he enjoyed the grace of God); 솔직히 저는 다윗의 삶을 모두 오늘 이 짧은 시간에 다 살펴보고, 결론 내린다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것인지를 인정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신앙의 훌륭한 선진들이 그러하듯이, 한번의 설교로 거대한 산맥과 같은 다윗의 삶에 대한 온전한 평가는 쉽지 않기 때문 입니다. 그러나, 오늘 제가 다윗이 어떻게 하나님으로 부터 ‘내 마음에 합한 자’ 라고, ‘내가 심히 기뻐하는 자’ 라는 인정을 받게 된 이유를 마지막으로 살펴 보면서, 저는 우리가 다윗의 인생에서 결코 빠트릴수 없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 임을 말씀 드리지 않을수 없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모태에서 부터 지키시고 택하신 바 되는 은혜를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내가 날때부터 주께 맡긴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내 하나님이 되셨사오니” (시. 22:10); “내가 모태에서 부터 주의 붙드신바 되었으며 내 어미 배에서 주의 취하여 내신바 되었사오니 나는 항상 주를 찬송 하리이다” (시. 71:6)

저는 지금 결론 없는 신학적인 논증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하자면, ‘다윗이 그렇게 좋은 믿음을 가졌고, 성실하고 겸손한 것도 하나님이 다 예정하신 것이다’ 는 식의 어설픈 ‘예정론’ 으로 저의 메세지를 마무리 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지난시간 ‘야곱에 대한 삶’을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야곱과 에서에 대한 평가가 어떠한지를 사도바울의 영적 해석을 통해 보았습니다;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 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서 불의가 있느뇨 그럴수 없느니라” (로마서 9:13,14) 이것은 우리가 이해하는 식으로 ‘하나님께서 야곱을 구원코자, 에서를 멸망코자 운명지어 놓으셨다’ 는 뜻이 아닙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 열매’ 따먹도록 예정하신 것이 아니듯이 말입니다. 우리가 할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으며, 그 믿음을 통해 성실과 순종으로 살아가는 것 입니다. 그때, 우리는 “ ~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롬. 9:16) 는 선언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점점 더 이해하게 될것 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믿음이 자신을 구원 했고, 자신의 의로운 행위가 자신을 살렸다고 고백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그가 그 어머니의 모태에서 부터 붙드시고 지켜 주셨다고 다윗은 고백하는 것 입니다. 이것은 정직한 고백이자, 온전한 깨닫음임을 믿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다윗을 다윗되게 하신 것 입니다. 그 은혜가 없었다면 다윗은 결코 성도의 사랑과 모범이 되는 아름다운 믿음의 삶을 감당할수 없었을 것 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다윗을 가르켜 ‘내 마음에 합한 자’ 라고 기뻐하시고, 칭찬 하셨습니다. 그의 연약과 실수에도 불구하고 말 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아버지으로 부터 이런 칭찬을 듣기를 간절히 원합니까? 아니면, ‘듣을수 있으면 듣고 못들으면 그만이다!’라는 식 입니까? 하나님께서 양들을 치며 이름없이 살아가던 목동 다윗을 들어 사용하셔서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삶을 살게 하신것은, 그리고 그를 향해 ‘내 마음에 합한 자녀다’ 고 불러 주시는 것은, 바로 여러분과 저에게 주시고자 하는 분명한 뜻이 있음을 믿습니다. 그것은 다윗의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믿음을 이해하라는 것이요, 그의 성실과 겸손을 배우라는 것이요, 이 모든 것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만이 여러분과 저를 살리시는 것임을 깨닫으라는 것임을 저는 믿습니다. 바라기는 성도 여러분 모두 주님 앞에 서는 날까지 다윗과 같이 성실과 겸손 가운데 깨우쳐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로 말미암아 날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를 즐거워하는 복된 삶 살기를 소원 합니다. 아버지 집에 영원히 거하는 그 순간까지 다윗과 같이 그분 안에서 누리는 평화와 만족으로 풍성한 삶 사시길 간절히 소원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