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26, 2019

“내 백성을 위로하라” (Comfort my people)

Preacher:
Series:
Passage: 이사야 (Isaiah) 40:1,2
Service Type:

“내 백성을 위로하라”

(Comfort my people)

5-26-19

본문말씀: 이사야 (Isaiah) 40:1~2

1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Comfort, comfort my people, says your God)

2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 그 모든 죄를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Speak tenderly to Jerusalem, and proclaim to her that hard service has been complete, that her sin has been paid for, that she has received from the Lords hand double for all her sins)

 

[설교 요약]

            오늘 말씀에서 이사야선지자는 하나님의 계시의 영을 통해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향해 이렇게 대언하고 있습니다.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v.1)라고. 하나님은 왜 갑작스럽게 ‘위로하라’는 메세지를 선포하시는 것이며, 이 위로의 메세지는 과연 여러분과 저에게 위로가 되는것 일까요?

하나님은 그의 택한 종을 통해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가서 그들을 위로하라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위로하시는 것일까요?” (Why does God comfort His people?) 그 이유는

첫째, ‘그의 백성들이 낙심 가운데 있기 때문’ 입니다 (Because His people are downcast): 이스라엘 민족은 지금 바벨론에게 나라가 멸망하고, 그들 대부분이 바벨론으로 전쟁포로가 되어 잡혀가는 수치와 고난의 시간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선포하신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심판’이 성취된 때인 것 입니다. 문제는 그들이 그들의 죄에 대한 징계를 받는 과정에서 깊은 좌절과 낙심 가운데 처해 있다는 것 입니다. 이것이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그의 택한 백성들에게 위로의 메세지를 강하고 시급하게 선포하시는 이유인 것 입니다.

둘째, ‘그의 백성들에게 참된 소망이 있기 때문’ 입니다 (Because His people have the true hope):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낙심과 좌절 가운데 빠져 있는 것을 결코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분의 뜻이 아니기 때문 입니다. 그렇다면 그분의 뜻은 무엇 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신뢰함으로서 그분이 우리를 불과 같은 용광로를 통해 새롭게 빗으시고 치료하심을 소망하는 것 입니다. 그리고 이 소망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약속하신 구원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갖게 되는 소망 입니다.

셋째, ‘그의 백성들이 여전히 위로를 누리지 못하기 때문’ 입니다 (Because His people still are not satisfied with His comfort): 하나님의 이 위로의 말씀은 오늘날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크리스챤에게 더욱 크게 선포되어져야 할 메세지 입니다. 왜냐하면, 안타깝게도 2000년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그의 생명을 대속죄물로 드리심으로 나의 죄를 갑절이나 갚으셨는데, 수없이 많은 구원받은 자들이 낙심과 영적 패배의식에 갇혀 살아가기 때문 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충만함으로 허락하신 위로와 평화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기 때문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전쟁의 날은 이미 끝이 났고, 우리의  구원은 처음 믿을때보다 더욱 가까왔습니다. 그러므로 방탕하지 말고 술취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성령께 순종하심으로 약속하신 성령의 풍성한 열매를 누리며, 그리스도의 참된 위로와 소망이 넘치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소망 합니다.

 

[설교 전문]

          오늘 말씀에서 이사야선지자는 하나님의 계시의 영을 통해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향해 이렇게 대언하고 있습니다.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라고. 성도 여러분은 위로를 누리고 있습니까? 하나님만이 주실수 있는 참된 위로를 누리고 있습니까?우리가 이해해야하는 것은 하나님의 위로는 어떤 한 사람이나, 한 민족만이 아니라 모든 그의 자녀에게 허락하신 위로인 것 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만 주실수 있는 참된 위로를 경험하실수 있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소망 합니다.

이사야서는 여러가지로 성경전체와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음을 신학자들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이 잘 아시는데로, 성경전체가 구약 39권, 신약 27권인 총 66권인데, 신기하게도 이사야도 66장으로 구성되 있습니다. 더구나 구약 39권이 끝나고나서, 신약이 처음 시작하는 것이 40권째 이듯이, 이사야서에서도 ‘1장에서 39장’까지가 구약의 전체 요약이라고 할수있는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의 메세지>라면, 이사야서의 오늘 본문 ‘40장을 시작으로 66장까지’가 신약성경의 요약이라고 할수있는 <하나님의 위로와 구원의 메세지> 로 이어지기 때문 입니다. 이사야서가 성경전체의 내용을 정확하게 요약해서 전하는 메세지가 된다는 사실은 단순히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에는 너무도 놀라운 일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시작되는 40장 바로 전까지 이사야 선지자는 앞에서도 잠깐 언급한데로 시작하는 ‘1장부터 39장까지’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볼때 <1장~12장>까지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메세지라면, <13~39장>까지가 ‘이방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메세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물론, ‘36~39장’은 하나의 과도기적 진술로서 ‘이방민족의 심판이라기 보다는 앗수르에 의해 위협당하는 이스라엘’을 묘사함으로 후반부 [=회복]로 넘어가는 하나의 전환기적 성격을 가짐) 그리고 나서 갑자기 이사야는, 아니 하나님은 그의 종 이사야를 통해서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듯이 오늘 말씀을 선언하시는 것 입니다.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 ” (v.1)

하나님은 왜 갑작스럽게 ‘위로하라’ 는 메세지를 선포하시는 것이며, 이 위로의 메세지는 여러분과 저에게 위로가 되는것 일까요? 그런데 오늘 본문이 포함된 <사.40장>을 읽어나가다 보면, 매우 낯익은 문장이 찾을수 있습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 (사. 40:3~5) 고.

바로 이 말씀은 복음서에서 마태와 여러 저자들이 오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한 ‘침례요한’을 묘사하며 인용했던 문장 입니다 (마. 3:3/ 막. 1:3/ 눅. 3:4~6). 바로 하나님께서 이사야 뿐 아니라 여러 구약의 선지자를 통해서 우리 인간을 구원할 메시야, 구원자 그리스도께서 오시리라고 예언했는데, 때가 되어 그가 이 땅에 오셨을때 먼저 그분의 사역을 준비하고 그의 길을 예비하는 자가 먼저 나타날 것인데 그가 침례요한인 것 입니다. 그가 광야에서 외침으로서 메시야의 사역은 장엄하게 서곡을 알린다는 것 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택한 종을 통해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가서 그들을 위로하라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그들을 위로할까요? 왜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위로하시는 것일까요?” (Why does God comfort His people?) 그 이유는’

첫째, ‘그의 백성들이 낙심 가운데 있기 때문’ 입니다 (Because His people are downcast): 성도 여러분은 지금 어떤 마음의 실망과 좌절을 경험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그 낙심 가운데서 일어날 이유를 발견 했습니까? 지금 이사야가 하나님의 위로의 말씀을 선포할때는 언제였습니까? 그때는 이스라엘민족이 우상숭배와 육체에 속한 악한 죄로 인해 바벨론에게 나라가 멸망하고, 대부분의 이스라엘백성들이 바벨론으로 잡혀가는 징계를 경험한 때인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먼저 선포하신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심판’이 성취된 때인 것 입니다. 문제는 그들이 그들의 죄에 대한 징계를 받는 과정에서 깊은 좌절과 낙심 가운데 처해 있다는 것 입니다. 이것이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그의 택한 백성들에게 위로의 메세지를 강하고 시급하게 선포하시는 이유인 것 입니다.

하나님이 그의 사랑하는 자녀에게 가장 먼저 말씀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요? “내 사랑하는 아들아 & 딸아, 너희가 너희의 죄로 인해 징계 받았다고 결코 낙심해서는 않된다. 나의 징계의 회초리는 너희를 파괴하는 것도, 죽이는 것도 아니요 너희를 치료하고 살리는 것이다. 징계가 없으면 너희는 사생아요, 고아인것을 명심해라”고 말씀하지 않으실까요? 호세아 선지자는 이러한 하나님의 징계의 회초리가 우리를 새롭게 회복하고 치유됨을 이렇게 선언하는 것 입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호. 6:1) 라고.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그 어떤 것도 우연은 없습니다. 재수없어서 당하는 어려움은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안에 있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어떤 고통과 어려움이라 할찌라도, 그것은 나를 낙심과 절망가운데 가둘수가 없고 그것을 통해 내가 하나님께서 나를 찢으시는 고통이 있다할찌라도 반드시 나를 치료하시고 회복케하시는 완전한 계획이 있음을 우리는 이해해야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스스로에게 외쳐야 합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시. 42:5) 여러분은 자신을 향해 이렇게 외칩니까?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여 하느냐!” 라고.

둘째, ‘그의 백성들에게 참된 소망이 있기 때문’ 입니다 (Because His people have the true hope):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낙심과 좌절 가운데 빠져 있는 것을 결코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분의 뜻이 아니기 때문 입니다. 그렇다면 그분의 뜻은 무엇 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신뢰함으로서 그분이 우리를 그 모든 불과 같은 용광로를 통해 우리를 새롭게 빗으시고 치료하심을 소망하는 것 입니다. 그분께서 허락하신 소망이 얼마나 큰지를 점점더 우리의 영적 눈이 열리고 귀가 열려 보고 들을수 있는 것 입니다. 이 소망은 무엇 입니까? 이 소망은 바로 구약에서 여러 선지자를 통해 약속하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두신 소망 입니다. 지금으로 부터 2700여년전, 이사야가 위로의 말씀을 선포했던 이스라엘 민족뿐 아니라, 우리 모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동일하게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낙심과 좌절을 벗어나 찬란한 승리의 면류관을 향한 소망이 있는 것 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이 줄수 없는 평화와 위로를 누릴수 있는 것 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에서 이사야를 통해 “ ~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v.1)고 선언하고 나서, 왜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로해야하는지 그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너희는 예루살렘사람들을 격려하며 그들에게 고난의 날들이 끝나고 그들의 죄가 용서되었다고 말해 주어라. 그들은 자기들의 죄에 비해 갑절이나 무거운 형벌을 받았다” (v.2) 라고 <현대인의 성경>은 번역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개역한글>에서는 ‘복역의 때’라고,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고난의 날들’이라고 번역된 것이 가장 성경원문에 가깝게 번역되었다고 인정되는 <킹제임스버전/ KJV>에는 ‘her warfare’ 즉 ‘그 전쟁의 날들’이라고 번역 됩니다. 왜 백성을 위로해야하느냐 하면 이제 노예처럼 끝없이 힘겹게 노동해야만 하던 고난의 날이, 바로 영적 전쟁의 날이 끝이 났기 때문 입니다. 이미 여러분과 저의 모든 무거운 죄가 용서함 받고 그 죄가 갑절이나 형벌을 받았기 때문 입니다. 여러분이 이 형벌을 받았습니까? 제가 이 형벌을 받았습니까?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2000년 전에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이 형벌을 온전히 받으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무거운 죄의 형벌을 갑절이나, 아니 비교할수 없는 충분함으로 넘치게 갚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사랑하심으로 그의 독생하신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어주신 이유인 것 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택하신 그의 자녀를 살리심으로 ‘산소망을 주시고,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때에 칭찬과 존귀를 얻게 하고자 함’ (벧전. 1:3,7)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살아있는 소망을 소유하고 있습니까?

셋째, ‘그의 백성들이 여전히 위로를 누리지 못하기 때문’ 입니다 (Because His people still are not satisfied with His comfort): 저는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하나님의 이 위로의 말씀은 구약의 이스라엘민족 보다도 오늘날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크리스챤에게 더욱 크게 선포되어져야 할 메세지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안타깝게도 2000년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그의 생명을 대속죄물로 드리심으로 나의 죄를 갑절이나 갚으셨는데, 그로 말미암아 그분을 나의 구세주로 믿음으로서 내 죄가 용서함 받고 의롭게 된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서 약속하신 모든 은혜의 삶을 살게 하셨는데, 수없이 많은 구원받은 자들이 낙심과 영적 패배의식에 갇혀 살아가기 때문 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하신 성령의 충만함으로 허락하신 위로와 평화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기 때문 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만약 우리중에 단 한사람이라도 아직까지 예수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영접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신앙생활한다면 여러분은 결코 위로를 누릴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서 그분이 주시는 영생의 소망을 소유하는 성도 모두 되시길 소망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예수님을 이미 인격적으로 영접하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주시요, 산소망되심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이제 여러분의 믿음을 삶속에 적용하시기를 저는 강력하게 도전 합니다. 저는 지난 시간 여러번의 설교를 통해서, 내가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왜 여전히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지? 죄가 내 삶속에서 왕노릇하는지? 그리고 왜 세상의 불신자들처럼 허무하고 무의미없는 고통스런 삶이 내 속에 없어지지 않은지?를 살펴 보았습니다. 그 이유는 ‘내가 예수 믿는다고 그 믿음이 나를 자동적으로 성화시켜 주는것이 아니다’ 는 성경의 가르침을 내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 입니다. 내 존재는 이제 하나님의 구원받은 영광스러운 신분이 되었지만, 내 육신은 여전히 죄가 거하는 곳임에 따른 이 ‘크리스챤의 실존’에 대한 존재인식이 부족하기 때문 입니다. 따라서, 이런 우리의 상태를 점점더 이해한다면, 썩어질 죄가 거하는 육신과 자아를 성령의 능력으로 쳐서 복종시켜야 하는 것 입니다. 날마다 그리스도의 영, 성령님을 좇아 육신과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싸워 나감으로 하나님의 아들과 딸의 놀라운 신분에 걸맞는 영적 성숙으로 날마다 성장해 나가는 것 입니다. 이로말미암아,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하신 모든 소망과 기쁨 가운데 넘치는 위로를 누리게 될줄 저는 확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위로를 경험 합니까?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령님의 은혜로 주시는 위로를 경험 하십니까? 만약 아직까지 이 소망의 위로가 여러분의 삶속에서 경험되지 않고 있다면,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요? 사도바울은 이렇게 믿음이 연약한 지체들을 격려하고 도전 합니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롬. 13:11,12) 라고 말 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은 자다가 깰때가 벌써 되었습니다. 전쟁의 날은 이미 끝이 났고, 우리의  구원은 처음 믿을때보다 더욱 가까왔습니다. 그러므로 방탕하지 말고 술취하지 말고 방탕 가운데 빠지지 말고, 낮에 행동하듯이 단정히 행하고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읍시다! 이를 통해 성령께 순종하심으로 약속하신 성령의 풍성한 열매를 누리며, 그리스도의 참된 위로와 소망이 넘치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소망 합니다.